나의 생각과 생활 /마라톤대회 후기

바다의 날 마라톤 참가후기 (2005.5.29)

남녘하늘 2008. 3. 14. 00:19
  

 

최근에 개최된 마라톤대회때와달리 아침부터 구름한점 없이 햇살이 밝게 비추는 것이 오늘 대회가 쉽지 않으리란 것을 예견한다. 한낮의 기온이 28도에 가까울 것이라는 기상대의 예보도 있었기에 마음의 작정은 단단히 해 두었다. 대회 개최장소인 여의도에 도착한 시간이 아침 7시 40분. 이른 시간인데도 덥다는 느낌이 든다.

어제도 다른때와 마찬가지로 하루 종일 충분한 수분섭취는 해 놓은 상태여서 탈수로 인한 고생은 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들었지만 더운 날씨를 대비해 아침에도 물을 조금더 섭취해 주었다. 대회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집결해 있지만 오늘 대회는 풀코스 참가자는 400여명밖에 되질 않아 풀코스 대회로서는 단촐한 규모이다.

간단한 행사가 진행되고 출발점으로 집결했다. 풀코스가 가장 먼저 출발하는데 오늘 육국사관학교 생도들이 단체로 참가해 보기가 좋다. 하프코스에 참가한 4학년 생도에게 초급장교시절에 부하가 말을 듣지 않으면 달리기로 군기를 잡으라고 코치를 해주었다. 이때만 해도 오늘의 달리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지에 대해서 전혀 예상치 않았기에 여유만만이었다.

출발점에 앞서 내 스스로 기록에 대한 욕심은 가지지 않고 편안하고 즐겁게 달리자고 생각했다. 매 Km를 5분 정도로 달리면 그다지 힘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3시간 30분정도의 기록이면 되지 않겠나 생각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딴판이었다.

 


400여명의 달림이가 풀코스에 도전했으니 오늘같이 더운날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도 어지간히 마라톤에 심취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출발했다. 날씨는 덥지만 초반이라 무리가 없었고 구름한점 없지만 바람이 간간이 불어와 주위의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어 달리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옆에서 뛰는 잘 모르는 사람들과 달리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17Km까지는 특별한 변동사항없이 매 Km를 4분 40초에서 5분의 속도로 달렸다. 조금 빠르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도 지난주 하프마라톤대회때보다는 속도를 많이 낮추었기 때문에 풀코스를 뛰어도 무리가 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그러나 첫 번째 복병은 17Km지점부터 시작된 허기짐이었다. 다른때와 큰 차이없이 아침식사를 하고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부족했었나보다.

갑자기 배가 고프단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뛰기가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머니 속에는 먹을 것도 돈도 준비하질 않았다. 한강변의 주로인지라 돈만 있으면 근처에 있는 매점에 가서 간단히 뭐라도 먹을 수 있을터인데 할 수가 없었다. 오늘따라 돈을 운동복 속에 챙기질 않았다. 더욱이 풀코스 참가자가 적어서인지 2.5 Km 간격으로 운영되는 급수대도 오늘은 5Km 단위로 운영되어 중간에 급식이나 급수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반환점까지 4Km를 속도를 조금 낮추면서 달렸다. 하필 이 구간은 반환점에 급수대가 준비되는 바람에 20Km에는 급수대가 없어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1.2Km를 더 갔다. 반환점에서 달리면서 잘 먹지 않던 양갱을 처음으로 세 개나 먹고 바나나도 두 개나 먹었다. 보통때는 한 급수대에서 한컵이상의 이온음료나 물을 먹는데 이곳에서 4컵이나 마셨다.

급수대 주변에 그늘 벤치가 있어 아주 편한 마음으로 8분간 휴식을 취했다. 반환점에 도착시간은 1시간 44분. 결국 반환점까지는 매 Km가 5분이 되지 않는 속도로 달려온 셈이었다. 날씨가 11시가 되어가면서 무척 더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날씨에 무리해서 달리면 사고 날것 같은 생각도 들었고, 몸에 열이 많이 나서 그늘에서 쉬는 너무 편하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미 대회는 나왔고 달리기를 멈출수는 없어 쉬고 싶은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주로로 나왔다.

갑자기 양갱 3개와 바나나 2개를 먹었더니 배가 출렁출렁하는 느낌이다. 전반의 속도를 회복하고 싶었지만 그 속도가 나지는 않았다. 서서히 내부에 있는 두가지 생각이 충돌을 시작한다. '대회에 나왔는데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지'라는 생각과 '이런 날씨에 달리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는 생각이. 그래도 아직까지 대회에 출전해서 중간에 포기한 적이 한번도 없었기에 걷지만 말고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더 강해서 멈추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23Km에서 26Km 까지는 3시간 45분 페이스 메에커를 만나서 다시 힘을 내 달렸다. 그런데 이 페이스 메이커가 매 Km를 5분의 속도로 달린다 5분주를 하면 기록이 3시간 30분인데 이 페이스 메이커는 시간 계산을 정확하게 하고 달리는지 묻고 싶었다. 26Km 지점에서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고 놓쳐버렸다. 이때부터는 외로운 자신과의 싸움이 다시 시작되었다. 참가자가 많이 않다보니 시야에 들어오는 주자도 별로 없고 날씨는 덥고 쉬고 싶단 생각이 간절하다.

그늘하나 없는 한강주로를 달리면서 생맥주 한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 뛰고 들어가면 생맥주 한잔 할 수 있을거야. 그래서 달리는 것이 괴로웠지만 뛰 이유를 만들었다. 1Km를 더 가면 1Km가 줄어드니까 힘들지만 달리자. 이 때부터는 이미 즐거운 달리기가 아니였다. 최근에 이렇게 힘들게 달린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완주만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힘들게 30Km에 도착했다. 동호대교 밑 급수대. 너무나 반가웠다. 급수대가 5Km 간격으로 있다보니 너무다 갈증이 났다. 반환점에서 충분한 열량보충을 하였는지 배는 고프지 않은데 너무나 더워 탈수현상이 느껴진다. 너무나 덥고 몸에 열이 많이 나서 더 달리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이제는 달리는 사람보다 걷는 사람이 더 많아 지고 있다. 뙤약볕아래서 뛰다가 동호대교 아래 그늘에서 쉬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계속 쉴 수는 없는법.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다시 뛰었다. 30Km 통과시간이 2시간 43분. 7분동안 휴식을 취하고 나니 2시간 50분. 이제 남은 12Km를 6분주를 해야 4시간 안에 들어갈 수 잇을 것 같았다. 그래 4시간 안에는 들어가자. 처음 시작할 때에는 즐겁게 달리자고 마음 먹었었는데 이제는 4시간을 넘기지 말고 들어가자로 목표가 바뀌었다. Km당 6분은 그래도 달릴만 했다.

33Km지점인 반포부근에서 풀냄새가 진동한다. 잔디밭을 벌초를 한 이곳을 아침에 지날때는 상큼한 풀냄새를 느끼면서 지나쳤는데 돌아올 때의 풀냄새는 그다지 풋풋한 느낌이 아니라 역겹다는 생각이다. 풀이 마르는 냄새가 싫은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오늘 나의 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은 틀림이 없다. 냄새가 맡기 싫어 이 구간을 빨리 통과했다.

최근에 마라톤을 뛰면서 '내가 왜 달리고 있나?'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수 없이 그생각을 했다. '지금 내가 왜 뛰고 있지?' '아! 오늘 내가 미친 짓을 하고 있는거야' 앞으론 더운 날 다시는 대회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것을 수없이 다짐하면서 달렸다.

35Km를 3시간 21분에 통과했다. 그동안에도 걷고 싶은 유혹을 끊임없이 느꼈지만 100회마라톤 유니폼을 입었기에 걸을수가 없었다. 아마 동호회 복장을 하지 않았다면 걷거나 아니면 지나가는 자전거라도 얻어타고 가고 싶단 생각을 너무나 많이 했다. 평소 한강 주로를 달리면서 자전거를 타거나 인라인 스케이트를 즐기는 사람이 부러웠던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오늘은 너무나도 그 사람들이 부러웠다.
아직도 7Km가 남아 있다

35Km를 통과하면서 4시간 목표도 버렸다. 남은 7Km를 6분주로 달려도 4시간 안에 들어갈 수 없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들어가면 시원한 생맥주 한잔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남은 거리를 달렸다. 걷지만 말고 달리자. 지금까지 중도에 포기한 적이 한번도 없으니 중도포기라는 기록은 남지기 말자는 생각으로 달렸다. 중간 급수대에서 주는 음료도 이미 미지근함을 넘어서 뜨듯하다. 얼음을 준비해 놓고 주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생각했다. 그나마 미지근한 물이지만 그 물을 마실수 있다는 것이 행복한 것 아니냐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멀리 63빌딩이 보이고 남은 거리가 2.5Km. 정말로 뛰기가 싫다. 이미 이 속도면 4시간은 넘어가버렸도 낮 1시가 되어가면서 주로는 달궈질대로 달궈져 복사열이 얼굴을 화끈하게 만든다. 이 시간에 뛰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는 사람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달리기에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 뻔하다. 내가 생각해도 미친 것이 틀림없다. 뭐가 나온다고 이 더운 날씨에 참가비를 줘 가면서 달리는 것인지. 오늘이 2005년 상반기 마지막 풀코스라고 생각하니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클럽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상반기 두세번의 대회가 남아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걷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고 드디어 결승점을 4시간 5분 11초의 기록으로 통과했다. 아무 생각이 없다. 어디 시원한 곳에 가서 ?고 싶다는 생각뿐.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다. 끝까지 걷지 않고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달린 내 자신에 대해 칭찬을 해 주었다.

 

 


아침 식사를 부실하게 한 것도 오늘 마라톤을 힘들게 만든 원인이였고 30도 가까운 날씨에 의욕상실이 더욱 마라톤을 힘들게 만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전고투하며 달린 나의 기록에 만족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정말 더운 날씨에 달리지 않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즐거운 마라톤이 되어야 하는데 오늘은 정말 즐거운 마라톤이 아니라 너무나 괴로운 마라톤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힘이 들면서도 완주한 내 스스로에게 '넌 대단하다'고 칭찬을 보내는 바이다.

뛰고 들어오니 갑장 박상학이가 시원한 캔맥주를 준비해와 너무나 맛있게 맥주를 한잔했다. 나무그늘은 아니지만 텐트 그늘도 이렇게 반가울수 있단 생각을 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그냥 푹 퍼져서 한숨 자고 싶은데 땅에서 올라오는 복사열도 보통이 아니다. 다음에 또 대회신청을 했는데 당일 기온이 25도가 넘으면 처음부터 포기하고 달리지 않겟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했다.

몸의 열을 식히려고 근처 목욕탕에 갔는데 탕에서 거울을 비쳐보니 완전히 살이 완전히 익어버렸다. 그나마 선크림을 바른 곳은 조금 덜 탔는데 중간중간 썬크림이 부족했던 부위는 완전히 익어버려 몇일간은 고생할 것 같다. 그래도 시원한 냉탕을 드나드니 힘들었던 기억은 어느새 가물거리고 조그만한 기쁨에 빠져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도 마라톤에 중독된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