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꾸타에서 렌트한 차가 아침에 호텔로 도착했다. 오늘부터는 내가 차를 직접 운전해서 가고 싶은 곳을 찾아 가는 여행을 시작한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차를 렌트해 가고 싶은 곳을 찾아다니겠다고 생각하고 그 계획에 맞추어 여행 일정을 잡았다. 한국에서는 구굴맵이 서비스를 하지 않고 있지만, 외국에서는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한국에 있을 때 미리 구굴맵에다가 찾아가야 할 장소를 마킹해 놓았었다. 구글 맵에는 네비게이션 기능까지 있어서 해외에서 운전을 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발리에서 직접 운전을 하는데 신경이 쓰이는 것은 운전석이 우리 나라와 달리 오른쪽에 있고, 차선도 좌측 차선으로 다녀야 한다는 것, 그리고 도로에 오토바이가 많고 길이 좁아서 상당히 신경이 쓰인다는 것, 또 하나 오토매틱 차량이 거의 없어 스틱차량을 운전해야 한다는 것만 감수할 수 있다면 나처럼 차를 렌트해서 다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차량 렌트비도 하루에 우리나라 돈으로 2만원이 안된다. 렌트비가 저렴한 이유는 서양 여행자들이 차를 빌리지 않고 대부분 오토바이를 빌리기 때문이다. 스틱차량을 운전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렌트비가 저렴했는데 새차가 아니라 다소 중고차같은 차가 왔는데 운전하고 돌아다니는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에어콘도 빵빵하게 나와서 불만이 없었다. 꾸타의 뽀비스 거리에 가면 차를 렌트해주는 업체가 엄청나게 많이 있다. 흥정은 기본이다.
꾸타의 호텔에서 출발해 오늘은 우붓으로 이동해서 우붓에서 잠을 자기도 되어 있었다. 우붓으로 가는 중간에 있는 수가와티 시장을 다시 방문해 보기로 했다. 지난번 방문했을 때 그림을 샀던 화방에도 다시 한번 찾아가 볼 생각이었다.
수가와티 시장은 꾸따에서 우붓 방향으로 약 17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으로 각종 수공예품, 기념품과 회화, 그리고 의류 제품들을 판매한다. 농산물을 비롯해서 공예품이나 회화등을 판매하는데 다른 지역에 비해 저렴한 수준이라고 한다. 이번에도 비싼 예술적 가치가 있는 그림은 사지 못하더라고 소품으로 활용할 수 있는 그림 몇 점을 사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날씨가 더웠지만 그래도 재래시장을 돌아 다니는 재미가 솔솔했다. 시장 중심가 근처에는 조그마한 사원이 있었는데 짜낭 사리(Canang Sari)라는 신에게 바치는 공양물을 올리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경외심이 든다.
지난번에 방문했던 DINA라는 화실을 찾아 가 보았더니 이제는 화실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때 방문했던 안주인이 살고 있어서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 찍었던 사진을 전달해 주었다. 내 맘에 들었던 화풍이어서 이번에도 기회가 된다면 그림을 더 사오려고 했는데 아쉽다. 이곳 수가와티 시장도 4년만에 와보니 많이 상업화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발리의 다른 시장들처럼 높은 가격을 불러 흥정을 하는 곳도 많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리내에서 가격도 저렴하고 가장 순박한 사람들이 있는 듯한 느낌이다. 시장을 이곳 저곳 기웃거리면서 내 마음에 드는 그림 몇 점을 사가지고 왔다. 주로 선물용으로 구입한 것이다.
이번에는 아주 오랜시간 스가와티 시장의 곳곳을 모두 둘러 보았다. 가이드가 없이 내 차를 가지고 여행을 하게 되어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돌아 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시장 입구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서 차르 세워 놓기도 좋았다. 주차비는 시간에 상관없이 우리돈으로 200원을 받았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와서 그런지 스가와티 시장이 조금은 변한 듯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순수함이 많이 남아 있어 좋았다. 이곳 시장에서 구입한 열대과일인 망고는 철이 아닌지 맛이 없어 거의 먹지 못했지만, 망고스틴은 몇 일동안 돌아다니면서 저녁마다 먹었다. 이곳 재래시장의 과일 값은 수퍼나 여행지의 과일 값의 1/4 가격이었다.
수가와티 시장을 출발해서 우붓으로 이동했다. 오늘과 내일은 우붓에서 2박을 하면서 우붓과 우붓 근교를 둘러볼 계획을 잡아 놓았다. 지난번 방문때 우붓을 스쳐 지나가듯 하루만에 미술관 몇 곳과 몇 몇 장소만 들러 보았더니 아쉬움이 많았었다. 더구나 새벽 시장도 가 보고 싶었고, 저녁에 우붓 왕궁에서 하는 공연도 보고 싶었는데, 이곳에서 잠을 자지 않고는 시간을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붓에 도착해서 조금 늦은 점심을 했다. 와룽 카쿠(Warung Kacu)라는 현지 식당인데 미리 검색을 해서 찾아 간 곳이였지만 그다지 특색이 있는 곳은 아니었다. 다만 식당 앞에 차를 세워 놓을 공간이 많아서 편하게 먹었던 기억이...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현지식당이라고 들었는데 우리가 조금 늦게 와서 외국인을 포함해서 밥먹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식사를 마치고 우붓에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블랑코 미술관(The Blanco Rennassance Museum)이다. 발리 우붓에는 예술의 도시답게 많은 갤러리와 미술관이 있는데, 발리의 3대 미술관이라 불리는 곳이 네카미술관, 아르마미술관, 블랑코미술관이다. 이 중에서 네카미술관과 아르마미술관은 지난번 방문 때 둘러보아서 이번에 남아 있던 블랑코 미술관을 둘러 보겠다고 계획을 잡았다. 블랑코 미술관은 제법 높은 언덕에 있었는데 차를 가지고 이동을 하니 다른 방문객에 비해서는 아주 편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입장료가 1인당 8만루피아(한화 약8천 원 정도)였다. 한국에서 미술관에 입장하는 비용에 비한다면 비싼 것은 아니지만 발리의 물가로 보았을때는 아주 비싼 편이라고 생각된다. 주변의 다른 미술관 보다는 비싸고, 이번 여행중 다녔던 사원이나 입장료를 내는 곳중에서 가장 비쌌다. 입장료에는 월컴 드링크 가격이 포함되어 있어 그냥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짜피 입장료에 상관없이 관람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온 곳이기에... 입장권을 사니 프랑지파니 꽃(Frangipani)을 귀에 꼽아 준다. 이 꽃을 꽂고 다녀야 하는지, 버려야 하는지...
안토니오 블랑코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미술관 입구인데, 입구가 특이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사진을 찍지 않을 수가 없는 특히함이다. 팜플렛에 있는 내용을 보니, 원래 살고 있는 집을 박물관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정원도 굉장히 잘 꾸며져 있었고, 정원 들어오는 입구에 앵무새 같은 커다란 새를 키우고 있었다. 날씨가 더운 시간이어서 그런지 미술관에 관람하는 사람이 우리 밖에는 없었다. 주로 테라스에서 차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 나중에 이유를 생각해보니 작품이 1,2층으로 60점 전시되고 있어서 볼 것이 별로 없었다는 이야기다. 한번 둘러보면 그냥 끝이다. 네카 미술관이나 아르마 미술관에 비해서 너무나 단순하고, 전시품목도 적고... 조금 실망이다.
안토니오 블랑코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미술을 공부한 스페인 사람이라고 한다. 발리에 정착하면서 발리의 춤 '레공' 댄서인 발리여성과 결혼하고, 50년 동안 발리에서 살면서 그림을 그렸다. 블랑코는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영향을 받아 몽환적인 분위기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고 팜플랫에 쓰여 있다. 박물관 내부에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해서 다른 곳에 있는 작품 사진 한장을 올려 놓는다. 원주민 여성들의 누드를 주로 그린 것 같다. 미술에 대한 안목이 없어 평가는 내 몫이 아니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미술관 내에서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었고, 우리가 관람을 하는 동안 직원 두명이 사진을 찍는지 확인하려고 계속해서 따라 다녀 기분이 좋지 않았다. 후레쉬를 사용해서 사진을 찍는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후레쉬 없이 사진을 찍는 것까지 그렇게 막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미술관은 모두 후레쉬를 사용하지 않으면 사진 찍는 것을 허용하는데...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작품의 대부분이 여성 누드풍의 그림이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하는데 굳이 찍을 필요가 없어서 사진을 생략하고, 2층 전시물을 보고 옆으로 나가는 베란다가 있어 그곳에 설치되어 있는 무희 상이나 찍어서 내려 왔다.
미술관에는 해외의 유명한 사람들과 찍은 사진도 많이 있었지만, 작품의 숫자는 너무 적었다는 느낌이다. 보는 사람의 수준과 안목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내 수준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블랑코 미술관 관람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다. 훌룽한 작품 하나를 구경하려고 가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미술관 보다는 잘 꾸면진 정원과 미술관에 딸린 레스토랑에서 우붓의 경치를 관람하면서 월컴 드링크를 마신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미술관 관람보다 더 좋았던 미술관에 딸린 레스토랑에서의 휴식. 이곳에서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었던 웰컴 드링크를 무료로 마실 수 있었다. 미술관에서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서 쉬고 있는 모양이다. 좌석이 많이 있었는데 전망이 좋은 자리에는 이미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그냥 중간에 있는 자리에서 차 한잔을 마셨다. 미술관 안쪽에 에어컨이 없어서 더웠는데 이곳에 훨씬 더 시원했다. 내가 블랑코 미술관에 대해서 너무 혹평을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언덕위에 위치한 테라스에서 보이는 우붓 시내 전경도 멋있다. 사진으로는 더위의 강도를 느낄 수 없지만 날씨가 상당히 더웠다. 푸르른 열대 우림의 모습이 시원함을 선사하고 있지만, 움직이기만 하면 땀이 흐른다. 테라스 아래 내가 렌트해 온 차량이 세워져 있는데, 우리는 차량을 이용해서 그나마 더위를 덜 느끼면서 여행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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