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모가와(鴨川) 강변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교토의 도심을 달린다. 마루타마치도오리(丸太町通り)를 따라서 뛰게 되는데 조금 지나니 교토고쇼(京都御所)의 높은 담장과 숲이 나타났다. 메이지 덴노(明治 天皇)가 도쿄로 거처를 옮기기 전까지 대대로 일본의 덴노들은 바로 이 교토고쇼에서 기거했다고 한다. 34km 안내판이 보인다. 이제 남은 거리는 8km남짖. 참가자가 많아서 이 지점에서도 주자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주자가 많으니 외롭지 않아서 힘이 난다.
35km를 지나면서 교토시청의 모습이 보인다. 시청앞의 조그마한 광장을 한바퀴 돌아서 나가는 코스를 만들어 놓았다. 엄청나게 많은 시민들이 이곳에서 응원을 하고 있고, 광장 한켠에서는 큰 음악과 함께 여성들이 현대무용을 추면서 힘을 불어주고 있었다. 교토마라톤 대회는 대회 주최가 교토시와 교토육상경기협회로 되어 있어 일부러 교토시청 앞을 지나도록 해 놓은 모양이다. 지방자치단체가 대회를 주관하니 대회 운영이 다른 기관이나 단체, 시민의 협조를 얻어서 대회 진행이 매끄러운 듯하다.
시청 앞에 간식을 제공하는 곳에서는 딸기까지 주고 있었다. 딸기 철에도 딸기를 간식으로 제공하는 대회를 본적이 한번도 없는데 딸기철이 아님에도 딸기가 간식으로 나와 있어 다시 한번 감동이다. 어짜피 빨리 달리지 않기에 제공하는 간식을 골고루 먹으면서 달려 배가 불러서 이제는 더 이상 간식을 먹지 않으려고 했는데 딸기는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몇 개 먹고 달렸다. 오늘 달리면서 감짝 놀라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39km를 지나 긴카쿠지(銀閣寺) 입구로 가는 오르막인 이마데가와도리(今出川通)다. 경사도가 급한 것은 아니었지만 주자들이 이미 40km 가까이 달려 왔기 때문에 지쳐서 언덕길을 걷는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거리는 3km남짖. 초반부터 천천히 사진을 찍으면서 달렸기 때문에 오히려 후반부에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다. 작년에도 한번 뛰어 보았고, 어제 긴카쿠지(銀閣寺) 구경을 하면서 한번 답사해 본 길이어서 익숙한 느낌이다. 오를 때 힘든만큼 반환점을 지나면 긴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다.
긴카쿠지(銀閣寺) 입구에서 언덕길을 편하게 내려와서 평지를 열심히 달리니 드디어 결승점이 1km 정도 남았다. 이제 모자도 벗고 결승점을 통과할 때 멋진 포즈를 잡기 위해서, 그리고 힘들게 달리지 않은 것같은 표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마음의 준비를 한다. 작년 결승점 근처에 와서 사진을 찍는다고 뒷 주자의 주로를 방해해서 민폐를 끼쳤기에 오늘은 주자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멀찍히 떨어져서 사진을 찍었다. 결승점 가까이 오면 대부분의 주자는 몸이 자신의 생각처럼 바로 바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눈에 보이면서도 멈추거나 피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거의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리기 때문이다.
헤이안진구(平安神宮)가 보이는 42km지점에 도착했다. 남은 거리는 195m다. 조금 더 뛰어서 헤이안진구 정문 앞에서 우회전하니 결승점이 보인다. 결승점 너머로 헤이안진구(平安神宮)의 큰 도리이(鳥居)도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 세계 문화유산 등의 많은 관광 명소를 지나치면서 보았고, 자원봉사자들의 성원과 시민의 응원에 힘입어 즐거운 여행을 마무리지어 가고 있다. 교토 시민들의 응원 문화도 우리나라에서는 경험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달리면서 내가 주인공이라는 느낌을 받으면서 달릴 수 있어 이렇게 한번씩 해외마라톤 대회에 참석하게 된다.
초반부터 동료들과 사진을 찍어 주면서 즐겁게 달려 4시간 20분 36초의 기록으로 결승점을 들어왔다. 작년보다 8분정도 기록이 늦어졌지만 기록을 생각하지 않고 완주에 목표를 두고 달렸기에 기록은 큰 의미가 없다. 사진을 찍지 않고 그냥 달리기에만 집중했다면 아마 50분 정도는 단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록때문에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고 즐기려고 왔기에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 함께 온 동료들과 끝까지 함께 했으면 더 좋았을 터인데 그 점이 조금 아쉽다.
결승점을 통과해서 조금 나오니 작년에는 보지 못했던 완주를 축하합니다(完走 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라고 쓰여진 커다란 안내판에 세워져 있다. 작년에도 세워져 있었던 것을 잘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다. 올해도 완주하고 나서 가장 먼저 완주한 주자에게 음료수부터 나눠주지 않고 완주 기념 대형수건을 가장 먼저 지급했다. 날씨가 쌀쌀하면 저체온증으로 고생할까봐 수건부터 나눠주는 듯하다. 42km를 달려와서 몸이 데워져 있어 타월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들고 다니기에는 불편한 크기여서 자연스럽게 어깨에 두르고 다니게 된다.
결승점을 향해서 뛸 때 멀리 보이던 헤이안진구(平安神宮)의 큰 도리이(鳥居)가 눈 앞에 있다. 높이 24m 폭 18m로 교토에서 가장 큰 도리이인데 엄청난 규모다. 도오리 앞에서 완주 메달을 주자들 목에 걸어주고 있었다. 완주 메달을 주자 한명 한명에게 모두 직접 걸어주니 목에 걸지 않을 수가 없다. 자원봉사자들이 너무나 바쁘게 일을 하고 있어 메달을 걸어준 학생과 사진 한장을 남기지 못했다. 나도 기념이 되고, 자원봉사자에게는 기쁨을 줄 수 있는데....
완주 기념 수건과 완주메달을 지급하고 나서 가장 끝으로 물과 바나나 등 간단한 간식을 나누어 준다. 오늘 달리는 주로에서 먹거리를 너무 많이 준비했고, 기록에 신경쓰지 않고 주는 것 다 먹고 뛰어서 결승점에 들어와서도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즐거운 마라톤을 실천한 것이다. 교토마라톤은 지구온난화 방지를 협의했던1997년 교토의정서의 체결 도시임을 강조하고자 인쇄물도 최소화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패트병, 비닐봉투도 최소화해서 사용하고 있어 물병도 그냥 들고 가야 한다.
오늘도 현장에서 바로 기록증을 발급해 준다. 우리나라도 기록증을 나중에 보내기 위해서 비용을 들이지 않고 이렇게 현장 발급을 하면 서로 편할 터인데 이런 것을 보면서도 개선이 되지 않는다. 일부 대회는 홈페이지에서 바로 출력할 수 있게 만들어 놓기도 했지만 조금만 신경쓰면 현장 발급이 가장 좋은 시스템이 아닐까 생각된다. 동시에 수많은 주자가 들어오지만 기록증 발급 부스를 많이 만들어 놓아서 정체가 생기지 않았다. 주자가 다가가니 벌써 체크를 해서 기록증을 바로 출력해서 내준다. 서비스가 만점이다.
아침에 맡겼던 물품을 찾기 위해서 미야코멧세(みやこめっせ)로 이동하게 된다. 결승점부터 물품을 되찾고 옷을 갈아입는 곳까지 대회 참가선수만이 입장할 수 있었고, 옷을 갈아 입은 이후 밖으로 나가야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동선을 만들어 놓았다. 힘들게 뛰어온 주자들이 완주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를 받지 않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먼저 들어와서 기다리고 있는 일행들을 만나기 위해 부지런히 물품보관소로 이동한다.
물폼보관소 근처에 오니 도쿄마라톤 관련 내용이 포함된 교토신문 호외가 발행되어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제 일간신문이 미디어 부분에서 볼때 방송에 밀려서 한물간 듯한 느낌인데 일본은 아직 신문이 영향력을 많이 발휘하고 있다고 한다. 유효판매부수나 발행부수가 예전에 비해서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1만 6천명이 교토의 도심을 달렸다는 내용과 함께 달리고 있는 주자들의 모습을 담은 호외였다. 빠르기도 하다.
주로에서 만났던 분당검푸마라톤클럽의 강홍원선배님을 다시 만났다. 분당검푸마라톤클럽에서 같이 활동했던 프랑스인 실뱅씨도 일본에서 만나 함께 달렸다고 한다. 다른 선배 한분도 함께 와서 달렸다고 하는데 다음주에 도쿄마라톤 대회도 참석할 예정이어서 일본에서 여행을 하다가 다시 도쿄로 넘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도쿄마라톤대회에 참석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교토마라톤을 신청했는데 두군데 모두 당첨이 되어서 두곳을 모두 뛴다고 한다. 함께 온 일행이 없었으면 식사라도 한번 했어야 했는데 아쉽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서 만나보기로 했다.
작년에는 미야코멧세(みやこめっせ) 건물 내부에서만 물품보관소가 운영되고 있었는데 올해는 해외 참가자의 물품은 찾기 편하게 들어가는 입구쪽 외부에서 찾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외국인 참가자에 대한 배려로 보인다. 자원봉사자가 많아 주자가 도착하면 즉시 물품을 내어준다. 우리나라 대회의 물품보관 자원봉사자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자원봉사자가 이곳에서 봉사하면서 일을 처리하고 있다. 건물 내부 물품보관소 바로 옆 전시장은 옷을 갈아 입는 공간이고, 한쪽에는 족욕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기다리는 일행때문에 옷만 갈아 입고 나왔다.
원래 계획은 달리기를 하고 나서 결승점 근처에 있는 일본의 대중목욕탕 센토(錢湯)에서 간단히 목욕을 하고 근처에 있는 패스트 푸드점에서 기다리는 것으로 했었다. 그런데 빨리 들어온 주자들이 숙소로 돌아가서 숙소에서 목욕을 하고 기다리고 있겠다고 먼저 숙소로 돌아갔다고 한다. 빨리 들어온 사람들은 숙소로 갔고, 늦게 들어온 주자를 기다려 함께 숙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분들은 그냥 숙소 근처만 구경하고 결승점에 일찌감치 나와서 들어오는 주자를 보고 있었다고 한다. 결승점에서 받은 바나나와 간단한 음식을 먹고 숙소로 이동한다.
(10편에서 계속)
'외국 마라톤 여행 > 교토마라톤 ('17.2)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토마라톤 16-11 (가모가와 산책, 도케츠교 ) (2017.2) (0) | 2018.07.25 |
---|---|
교토마라톤 16-10 (니시키 시장구경 ) (2017.2) (0) | 2018.07.23 |
교토마라톤 16-8 (주로 풍경 ) (2017.2) (0) | 2018.07.19 |
교토마라톤 16-7 (대회장 주변 풍경 ) (2017.2) (0) | 2018.07.17 |
교토마라톤 16-6 (헤이안 진구 ) (2017.2) (0) | 2018.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