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고개 대관령 울트라 마라톤 (2006.7.16)
지난 6월 25일 북한강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 이어 3주만에 다시 100Km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하게 되었다. 마라톤 대회가 없는 시즌이라서 편하게 연습한다는 생각으로 참석해 즐거운 마음으로 달리기는 했지만 너무 힘이 들었다.
먼저 대회장으로 가는 길부터 험난한 여정의 시작이었다. 장미비로 인한 산사태로 인해 강릉으로 통하는 영동고속도로를 비롯한 대부분의 도로가 차단되어버린 상태에서 여주에서 중부내륙간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충주와 제천, 영월, 사북, 태백을 거쳐 동해시를 돌고 돌아 서울 출발 8시간만에 경포대에 도착했다. 중간에 교통표지판에서 영동고속도로가 통제되었다는 소식은 보았지만 함께 동행하는 사람들과 얘기 나누느라 바같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있었고 여주 부근부터 차량이 밀리는 것을 보고는 멀리 돌아가는 것이 차라리 낳을 것이란 순간의 선택이 강릉에 들어갈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을 택할수 있었던 것 같다.
대회 주최측에서는 진고개 구간을 왕복하는 것으로 코스를 바꾸어 대회를 진행한다고 가는 도중에 문자를 보내왔다. 서울에서 일찍 출발했음에도 도착하니 이미 출발시간이 1시간이나 지나버렸다. 때문에 오랫시간 장대빗속의 운전으로 뭉친 다리를 풀지도 못한채 바로 출발선으로 갔다. 강릉과 강릉근처에서 거주하는 신청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신청자가 교통불통으로 인해 참가하지 못한채 40-50여명만이 경포호수를 달리고 있어 대회준비를 열심히 했던 주최측을 허탈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대관령구간과 진고개 구간이 모두 산사태로 통제되고 주최측에서 사고를 우려해 대회 코스를 다시금 경포호수 23바퀴를 도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경포호수 한바퀴가 4.35Km 이므로 23바퀴를 돌면 100Km가 되긴 되는데 어떻게 경포호수를 빙빙 돌수 있을지 감감하다. 함께 한 일행이 천천히 LSD하는 기분으로 함께 달리자고 해서 남들보다 한참 늦었지만 비 내리는 경포호수를 달리기 시작한다.
출발때부터 비가 내려 핸드폰도 지참하지 못한채 달리기에 돌입했다. 때문에 엄청 비를 많이 맞았지만 달리는 세상 밖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날이 밝을 때까지 알지 못했다. 그래도 초반에는 비가 내리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는데 밤 10시가 넘어서는 밤새 장대비와 함께 천둥 번개까지 치면서 쉬지 않고 비가 내린다.
경포호수의 순환도로는 산책을 하기에는 꽤 괜찮은 도로이지만 달리기에는 엄청 불편하고 힘든 도로였다. 코스의 절반 가까이 울퉁불퉁한 보도불럭이 깔려 있어 다리에 큰 충격이 가해졌고, 또 일부구간은 많은 비로 인해 배수가 되질 않아 물속을 달려야만 했다. 그나마 오죽헌에서 경포해수욕장으로 가는 도로 옆의 구간만이 달리기에 편한 코스였다.
처음부터 진고개와 대관령을 넘는 서바이벌 울트라 대회임을 감안하고 대회에 신청했기에 기상악화로 인해 코스가 변경되었다 하더라도 달리지 못할 이유야 없지만 백두대간의 고개를 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어려웠던 코스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같은 코스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만큼 지루하고 짜증나는 일도 없다.
이번 대회에서는 달리는 중간에 규칙적으로 걷기를 반복하는 주법인 워크 브레이크 방식(대략 1마일(1.6Km)를 달리고 1분 걷기가 기본)을 이번 대회에서 적용해 보기로 마음먹고 경포호수를 3등분하여 1.4Km를 뛰고 50m는 걷는 방식을 취해보았다. 호수 한바퀴를 삼등분하여 적용하니 매번 같은 장소에서 걸을 수 있어 따로 뛰는 시간을 확인하지 않아도 좋았다. Km당 7분 페이스로 시작해서 끝까지 유지하기로 했고 중간에 1분을 걸어주면 결국 8분 페이스가 되는 셈이니 13시간이 조금 넘으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었다.
워크 브레이크이 방식이 울트라를 뛰는데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1.4Km를 달리고 나서 1분을 걸으니 힘도 들지않고 엔진이 가열될만 하면 멈쳐버려 심장이 부담이 갈 시간도 없는 것 같고,다리의 모든 근육을 사용하게 되어 달리는 근육만 사용하는 것에 비해 종아리가 아파오는 것도 한참이나 지연된 것 같다. 다만 조금 더 평탄한 길을 달렸으면 효과를 더 보았을텐데 너무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을 달려 시간이 지날수록 발목과 종아리가 아파왔다. 하지만 함께 달린 사람들은 효과를 많이 느낀 듯하다.
6시간 30분만에 경포호수 12바퀴를 돌고 나서 처음으로 휴식을 가졌다. 힘들지만 절반을 더 뛰었다는 안도감과 함께 대회 주최측에서 준비한 전복죽을 먹는데 너무 맛있다. 신청자가 모두 참가할 것으로 생각하고 준비를 했는데 반도 참가하지 않고 그 참가자 중에서 절반이 중도포기를 해버려 식사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자원봉사하는 분들이 힘없어 한다. 죽을 먹는 사이에 그 빗속을 뚫고 지독한 바다갓 모기가 달려들어 피를 빨아 먹는다. 물리는 순간 따끔한 것이 아니라 통증을 느낄만큼 아프다. 모기가 무서워 휴식을 더 취하지 못하고 10분만에 다시 주로에 나선다.
이제 11바퀴만 더 돌면 되는데 남은 거리가 까막득해 보인다. 절반을 돌때까지 배낭에서 우의를 꺼내는 것조차 귀찮아서 우의를 입지 않고 뛰었는데 더 이상 빗속에 체온을 떨어뜨리면 안될 것 같아 휴식시간에 입었는데 입고 나니 한결 낳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작 입을걸하는 생각이 든다. 서바이벌 울트라 대회여서 음료를 비롯해 먹을 것을 많이 준비했었는데 같은 코스를 반복해서 뛰다보니 주최측에서 준비한 음료도 계속해서 먹을 수 있고, 또 떡과 수박, 사탕등도 있어 휴식을 취하는 동안 메고 있던 배낭의 내용물중 대부분을 빼 놓고 달렸다.
산악코스에 비해 평지를 달리고 배낭의 무게도 가볍게해서 달리는 여건이 좋아진듯 하지만 울퉁불퉁한 도로로 인해 오히려 훨씬 더 힘든 경기를 한 듯하다. 경포호수는 도립공원이라 공원에 가로등이 켜 있었는데 새벽 3시경 번개로 인해 주변이 정전되면서 완전히 어두운 길을 달리려 하니 그 또한 힘이 들었다.
평탄치 못한 도로를 달리니 신경도 훨씬 더 쓰인다. 더구나 대회초반에는 못 느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스트레칭을 하지 않고 달린 것이 다리에 부담으로 다가온다. 다음부터는 출발이 좀 더 늦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스트레칭을 꼭 하고 달려야 함을 느꼈다.
대회관계자들이 우리 일행이 아무리 악조건이라도 항상 일정한 시간만 되면 되돌아오니 신기해 하기도 하고 대단하다고 한다. 새벽 4시에 접어들자 달리는 사람은 우리 일행 6명을 포함해 20여명이 되지 않는것 같다. 대회진행을 하고 있는 경포마라톤클럽의 스텝들만해도 30여명이 넘으니 이제는 참가자보다 진행자가 더 많은 셈이다.
새벽 5시가 되니 날이 차츰 밝아오기 시작하는데 내리는 빗줄기는 멈출 생각을 안한다. 물속을 오랫동안 달렸더니 발이 퉁퉁 불은 것 같고 왼쪽 발에는 물집도 생기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도 비가 체온과 발은 온도를 낮추어서 오히려 힘은 덜 드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상체는 큰 불편함이 없는 것에 비해 발목과 종아리 발가락에 불편함이 자꾸 가중되고 있다.
가로등 불빛도 없이 달리다 날이 밝아와서 내가 달린 주로가 다시 살펴보니, 그 길을 내가 달렸나싶을 정도로 열악하고 험한 길이다. 밤새 비를 맞아가며 이 험한 길을 달린 것에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앞으로 100Km 울트라 대회는 가능하면 더 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너무나 많이 들었다. 너무 힘들고 피곤하고 어렵다. 밤새워 달리는 것도 너무 힘이 든다.
아침 7시가 넘어 이제 몇 Km만 더 가면 목표에 도달하는데 주로 사정이 너무나 나빠졌고, 비 때문에 온 나라전체가 큰일이 났고 특히 강원도 지역에 산사태등으로 인해 피해가 막심한데 한가하게 달리기만 하는 것도 부담스러워 대회 주최측에서 대회를 종료했다. 지금까지 달린 거리와 속도를 감안해서 완주증과 완주메달은 지급하겠다고 하는데 얼마남지 않은 상태에서 아쉽긴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대회를 속행한다는 것도 문제가 있어 보여 반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중단했다. 달린 거리는 91Km 정도이고 시간은 11시간 50분 정도이다.
워크 브레이크 주법을 이용해 달린 것이 효과를 본듯하다. 끝까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할 수 있었고 다리 근육의 피곤함도 훨씬 덜한 것 같다. 진행본부에 가서 전복죽을 먹고나서 해수 사우나에 가서 저녁이후 처음으로 뉴스를 보았더니 나라전체가 물난리에 큰일이 났다. 당장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데 돌아 갈일이 걱정이다.
비가 와서 핸드폰을 지참하지 않고 달렸더니 밤새 전화와 문자가 수십통이 와 있는데 밧데리가 거의 없어 간단한 문자 몇개로 대신하고 휴식을 취했다. 사우나에서 발을 보니 지난밤의 처절했던 흔적에 여러곳에 남아있다. 발전체가 불어있고 물집도 잡혔다가 터져버린 상태라 발 전체가 엉망이다. 무엇때문에 사서 고생을 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힘든 여정이었지만 달리는 것만 놓고 보았을 때는 아주 즐거운 여행과 추억이 아니었나 싶다.
사우나에서 샤워와 함께 간단히 눈을 붙이고 나서 강릉에 있는 지인의 안내로 횟집에서 회를 맛있게 먹었다. 이번 연휴가 이곳 사람들에게는 대목이었을텐데 교통이 두절되는 바람에 그 사람많다는 횟집에 손님이 두팀밖에 없어 우리는 상대적으로 대접을 잘 받았다.
돌아오는 길도 탁월한 선택으로 인해 큰 고생을 하지 않고 돌아왔다. 서울로 돌아오는 대부분의 길이 끊겼음에도 도로공사에 전화를 하면서 양양을 지나 56번 국도를 이용해 홍천을 경우 양평으로 해서 서울로 돌아왔다. 양평에서는 한강 북쪽의 도로 일부가 물에 잠겨 통행이 불가해 중미산쪽으로 우회하여 문호리와 서종리를 거쳐 돌아왔다. 돌아오는 시간도 6시간이나 걸린 셈이였지만 무사히 돌아올 수 있어 다행이었고, 전국이 난리가 났던 빗속에서 달리고 운전하면서 보낸 무식한 무박 이일간의 여행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