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여행 17-1 (수즈달) (2012.6)
회사내 토지주택박물관에서 운영하는 박물관대학의 해외답사 여행의 진행자로 러시아 답사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회사 업무를 수행하면서 6월 8일부터 15일까지 6박8일간의 휴가를 얻어 떠나는 것과 같은 여행을 하게 되었다. 시기적으로 러시아 여행을 떠나기에 너무나 좋은 6월에 여행을 떠나게 되어 정말 좋다. 그동안 유럽을 가면서 러시아 상공은 몇 번 지나가 보기는 했지만 러시아 방문은 처음이어서 내심 기대도 많이 하고 있었다.
박물관대학에서는 반기별로 총 4개의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2012년 상반기 세계문화과정이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고, 해외답사도 러시아로 떠나게 되었다. 교육생과 스텝을 포함해서 67명이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일정은 모스크바로 입국하고 다음날부터 수즈달과 블라디미르, 세르게이파사드 등에 있는 문화재를 관람하고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와서 모스크바를 돌아볼 계획이다. 6월 12일에 러시아 국내 항공을 이용해서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이동해서 에카테리나 궁전과 에르미타주 미술관 등 문화 탐방을 하고 15일날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출발 서울로 돌아 오는 일정이다.
이번 답사여행의 강사이신 충북대학교의 최진석교수님과 함께. 러시아로 가는 비행편의 옆자리에 앉아서 함께 이동하게 되었다. 이미 이번 동행에 앞서 교육생들에게 강의를 왔었기에 구면이었다.
인천공항을 떠나 9시간의 비행을 거쳐 도착한 모스크바 쉐르메체보 공항에서... 인천에서 오후 1시 45분에 출발했는데 시차로 인하여 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6시경이다. 러시아는 지금 백야기간이어서 서울에 비해서는 해가 지는 시간이 몇시간이 늦어 저녁임에도 아직 저녁같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첫날 모스크바에 들어와 다른 곳을 돌아보지는 못하고 호텔에서 잠만 자고 실질적인 여행은 다음날부터 시작되었다.
첫 관광지는 '수즈달'이라는 도시이다. 모스크바를 벗어나 북동쪽 볼가 강 일대에는 중세 러시아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고도가 산재해 있다. 그 고도들을 연결하면 거의 원형이 되기 때문에 ‘황금의 고리’라고 부른다. 그 중 수즈달은 모스크바 북동쪽으로 약 217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까멘까 강변에 놓인 박물관 지구로 러시아의 세계유산이 산재해 있는 곳이다. 모스크바에서 버스로 3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수즈달에 도착하는데에만 4시간 반이 걸려버렸다. 모스크바 외곽의 교통정체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첫 관광을 하면서부터 치명적인 교통체증을 체험하게 되었다.
당초 계획대로였다면 도착후 점심을 먹기 전 수즈달의 관광지 한두곳이라도 둘러 보았어야 하는 시간인데 오는 길이 워낙 정체가 심해서 길에서 시간을 다 보내 버렸다. 결국 수즈달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식당예약을 해 놓았기 때문에 당초 일정을 조금 변경해서 점심식사를 먼저 하게 되었다. 관광을 와서 이렇게 길에서 낭비해 버리는 시간이 너무 아쉽다. 수즈달의 중심에 있었던 한 끄레물에 러시아 전통 레스토랑이 있었다. 입구 간판에 우리 메뉴는 300년 됐다고 쓰여 있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꽤 괜찮은 레스토랑이었고, 식사는 러시아에서 보통 먹을 수 있는 러시아 전통 흑빵과 샐러드, 스프, 주요리와 후식이 나오는 식당이었다. 특히 러시아 전통 스프인 보르쉬를 이곳에서 처음으로 먹을 수 있었는데 현지식에 잘 적응하는 나는 맛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홍당무와 토마토가 재료로 들어가 붉은색 계통의 보르쉬는 보르쉬는 가장 러시아적인 요리로, 러시아 각 지방마다 그 지역 향토색이 가미된 여러 가지 보르쉬가 있다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차갑게 해서 먹는다고 한다.
멀리서 바라본 끄레믈의 모습. 이 끄레믈의 일부를 식당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상징으로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중 하나가 아마도 끄레믈(Кремль) 일 것이다. '크렘린'이니 '크레믈린 궁전'과 같은 영어식 표현으로 신문과 방송에서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끄레믈은 특정한 성의 이름은 아니다. 끄레믈의 원래 사전적인 의미는 ‘성벽’, ‘요새’라는 뜻의 보통명사이다. 모스크바가 아닌 지방 도시의 성벽 모양의 건축물들이 ‘끄레믈’이라고 불리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재는 수도 모스크바의 심장부로 상징되는 고유명사처럼 사용하기도 하지만, 아직도 지방에는 끄레믈이 많이 있다.
‘러시아-비잔틴’ 양식이 혼합된 양파 모양의 돔을 꾸뽈이라고 한다. 러시아 건축의 특징은 겨울의 추위에 견딜 수 있도록 벽을 두껍게 하고 창문을 작게 만들며, 한겨울에 눈이 쌓이지 않게 하기 위해 돔을 가파르게 만들다. 꾸뽈은 교회의 돔에 하나뿐만 아니라 여러 개가 세워질 때도 있는데, 꾸뽈의 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예를 들어 2개는 신인성, 즉 그리스도 안의 신과 인간적인 속성을 의미하며, 3개는 삼위일체를, 5개는 그리스도와 복음서를 쓴 그의 사도 4명을 각각 의미한다. 러시아 여행을 하면서 이런 양식의 교회를 수없이 만나게 된다.
끄레물 안에 있는 예수탄생성당(로줴스뜨벤스끼 성당). 13세기 초에 세워진 성당으로 13세기 중엽 따따르의 침략으로 거의 파괴되었다가 16세기 이후 보수 되었다고 한다. 수즈달을 생각하면 이 예수탄생성당이 가장 먼저 떠 오른다. 러시아에 와서 처음으로 가까이서 본 성당이기 때문이다. 현재 보수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고 식사후 수즈달에 있는 다른 이름 있는 수도원과 성당을 보기 위해 이 성당 안에는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예수탄생성당을 나오는데 성당옆을 지나쳐 가던 관광마차. 여유 있는 여행이라면 이런 마차를 한번 타 보는 것도 꽤 운치가 있을텐데 그럴 여유가 없다. 이곳에 오는데 시간을 많이 빼앗겨 수즈달에서 꼭 봐야 하는 것조차 다 보고 갈 처지가 아니였기 때문이다. 수즈달은 여유를 가지고 이런 마차도 타면서 도시를 둘러 보고, 또 시간내서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주변을 보았어야 했는데...
수즈달 시내를 가로 지르는 까멘까강. 이름은 강이지만 강의 규모는 아니다. 이 강을 중심으로 이곳 저곳에 수도원과 교회가 산재해 있다. 고대 키예프 루시의 주요 도시 수즈달은 러시아 정부가 지정한 박물관 지역이어서 고층 건물이나 공장을 지울 수 없다고 한다. 건축물도 2층 이상 올릴 수 없고, 복합 건물 인허가도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중세 러시아 수도원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조용하고 평화로운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강을 가로 지르는 목재 다리도 꽤 운치가 있는 다리였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시내 곳곳에 수도원과 성당, 교회를 볼 수가 있었다. 왜 수즈달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는 도시였는지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날씨가 흐려고 가끔 비까지 내려서 그 분위기가 더욱 차분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따뜻한 느낌과 함께 아스라함. 화려함 등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 곳이나 카메라로 찍으면 엽서에 사용할 수 있는 멋진 풍경사진이 된다는 것... 눈으로만 담아 가기에는 아쉬움이 있어 몇 몇 풍광이 좋은 곳에서는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었다.
수즈달은 11세기 이후 분열된 러시아 공국의 수도여서 역사적으로 유서깊은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대체로 성곽과 수도원들이 많다. 식사후 수즈달에서 가장 유명한 성 옙피미예프 수도원에 도착했다. 수도원의 외벽은 붉은 벽돌로 성곽처럼 둘려 쌓여 있었다. 수도원 맞은편에도 그리스 정교 성당이 보인다. 스몰렌스크 교회라고 하는데 여름용 성당과 겨울용 성당이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성당이었는데 이곳도 지나치면서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런 정도의 건축물은 수즈달에 너무나 흔하기 때문이었다.
성 옙피미예프 수도원의 외벽의 모습이다. 14세기 수즈달 노브고러드 공국의 군주가 도시 북부를 사수하기 위해 목조 외벽을 두른 것을 17세기 초 러시아 귀족들이 기부한 돈으로 성벽과 수도원을 보강했다고 한다. 길이 1160m, 높이 9m, 두께 6m의 외벽이니 수도원이 아니라 엄청나게 튼튼하게 쌓은 성곽의 느낌이다. 수도원 가운데에는 그리스도 변용 성당이 있고, 성당 왼쪽에는 에카테리나 여제가 왕권에 대항한 정치범을 가둔 감옥도 있다. 성벽 동쪽에 폴란드군의 침략에 맞서 싸운 러시아 민병대장 포르자스키의 무덤도 있다고 한다. 현재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그의 동상이 있다고 한다.
1594년 완성된 그리스도 변용성당(The Cathedral of the Transfiguration)은 전형적인 러시아 정교회 사원이다. 단아한 성당 외부와는 달리 성당 내부에는 프레스코 성화 (Icon)으로 가득했다. 17세기의 화가들이 그린 작품이라는데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보존 상태가 상당히 양호했다. 예수의 수난과 사도들의 활동을 그린 파스넬 톤의 이콘화들, 화려하고 섬세한 작품들이었다. 이곳에서 남성 합창단이 멋진 하모니의 찬송을 들려 주었는데 악기 없이 오직 목소리로만 표현하는 찬송가가 노래를 잘 알지 못하는 내가 들어도 환상적이었다.
블라디미르-수즈달은 러시아의 첫번째 수도인 키예프의 비잔틴미술 전통을 이어받은 지역으로, 수즈달의 교회에 장식되어 있는 프레스코 (Icon)들은 절정기 비잔틴 미술의 특징인 독특한 현실과 이상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그와 동시에 러시아의 강렬한 정서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인물을 상세하게 표현하지 않았고 손은 작게 표현되어 있었으며, 얼굴 표정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독특한 감정을 묘사하고 있었다. 내가 미술에 대한 조예가 없어 이콘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를 대표하는 화풍의 하나이고 어느 수도원이나 성당을 가더라도 비슷한 형태의 이콘화를 볼 수 있었다.
그리스도 변용성당(The Cathedral of the Transfiguration)을 비롯한 전형적인 러시아 정교회 성당에는 의자가 없었다. 4시간이고 5시간이고 예배를 모두 서서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배에 참가하려면 체력이 뒷바침 되어야 할듯... 이 성 옙피미예프 수도원에는 종루와 여러 러시아 정교회 건물뿐만 아니라 입구 근처에 제법 큰 뮤모의 텃밭도 있었는데, 수도사들이 지금도 채소를 가꾸고 있는 듯했다.
성당 옆에는 세개의 아치모양의 창을 따라 크고 작은 종들이 늘어서 있는 종탑이 있었는데 종탑은 성당과는 달리 붉은 벽돌로 마감되어 있었다. 이곳 종루에서는 하루 여러차례 연주를 들을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 마침 종지기가 종을 쳤다. 종루에서 여러개의 줄을 잡아 당겼다가 놓았다를 반복하면서 연주를 하는데 종치는 것이 거의 예술의 경지이다. 무용을 하듯이 이쪽 저쪽을 오가면 크고 작은 종을 치는데 대단한 광경을 봤다는 생각이다.
14세기에 조성이 시작되어 16-17세기에 전성기를 맞은 성 옙피미예프 수도원은 수도원 내부에 감옥까지 있는 독특한 수도원이다. 예카테니나 여제 치하인 18세기 후반에서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종교적, 정치적 자유주의자를 구금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에카테리나 여제가 왕권에 대항한 정치범을 가둔 감옥(1766년)이다.
성 옙피미예프 수도원을 나와서 까멘까강을 다시 지나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빠끄롭스키 수도원으로 이동했다.14세기 만들어진 성벽이나 성당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지금은 16세기에 들어선 건물 몇 채만 남아 있었다. 이곳 역시 다른 수도원과 마찬가지로 수도원의 외곽은 성벽처럼 만들어져 있었는데, 느낌이 교도소의 담장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들어 갔다. 빠끄롭스키 수도원의 내력을 알고 보니 내 첫 느낌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는데, 이 수도원은 수즈달에 있는 다른 수도원과는 달리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장소였다.
성벽 같았던 입구를 지나치니 안쪽에는 멋진 교회가 자리잡고 있었다. 멀리 강 건너편에서 보이던 평화로운 이미지와는 달리, 이 수도원은 러시아 귀부인들에게 운명의 족쇄를 채운 감옥이나 다름없었데 자신의 부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곳 수도원으로 강제로 보내버렸다고 한다. 바실리 3세의 첫 부인과 표트 대제의 첫 부인(예프도키야 라뿌히나)을 비롯해 여러 귀부인들이 이곳에서 수도승에 가까운 생활을 해야 했다. 특히 러시아 역사상 가장 주목해야할 군주 표트르대제는 예카테리나를 새로운 황후로 맞이하기 위해 1698년 9월 자신의 세명의 아들을 낳은 첫째 부인 예프도키아를 이곳으로 보내 강제로 수녀로 만들었다고 한다.
본당 앞으로 늘어서 있는 개별 가옥들이 과거 왕족이나 황제의 부인들이 강제적으로 이곳에 보내져 수녀로 생활했던 장소라고 한다. 황실을 떠나 이곳 생활을 하게 되었던 당시의 귀족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생활을 했을까 궁금하다. 지금은 호텔로 만들어져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