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여행 7-6 (수니온 포세이돈 신전) (2014.5)
사로닉만(Saronic Gulf)을 따라 수니온(Sunion)으로 가는 길은 아폴로 코스트, 즉 아폴로의 해안이다. 아테네에서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해변이며 일년 내내 관광객들로 붐빈다. 에머랄드빛 에게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는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오른쪽은 바다이고 왼쪽은 산이 이어진다. 이곳 산은 토심이 깊지 않은 듯 나무들의 자람이 영 시원치 못해 보이는데, 소철과 측백나무가 곳곳에 보인다. 급경사 면을 깎아 도로를 건설했는지 길이 아슬아슬한 느낌이 드는 곳이 많이 있었다. 스니온 곶은 아테네에서 남동쪽으로 약70km 지점에 아티카 반도 제일 끝 에 위치해 있다. 파르테논 신전 구경을 마치고 우리 일행은 스니온 곶에 있는 포세이돈 신전을 관람하기 위해 나섰다. 해변가를 달리다 보니 별장지역이 많아 보였고, 제법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해수욕장도 거치면서 이동해 간다. 가는 도중에 유람선과 요트가 지중해에 한가롭게 떠 있다.
그리스는 우리나라 처럼 삼면이 바다로 되어 있고, 이곳 사람들은 바다를 좋아 하고 휴가는 대부분 바닷가로 간다고 한다. 수니온 곶으로 가는 도중에 해수욕장이 계속 이어졌는데 그 중 한곳은 누드 해수욕장이었다. 도로에서 제법 거리가 떨어진 곳에 있어서 가이드가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면 그냥 일반 해수욕장으로 생각하고 지나쳤을 그런 해수욕장이다. 차에서 내려다 보니 수영복을 입지 않고 다니는 것은 확실한데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서 보지 않는 이상 누드 해수욕장의 분위기를 느낄 수는 없었다. 그래도 길가에서 보이는 곳에 있는 해수욕장이 누드 비치라니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테네에서 수니온곶까지는70여km. 아테네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임에도 거의 한시간 반 가까이 걸려서 수니온곶 포세이돈 신전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아티카 지방의 최남단 지점으로 수니온 반도의 끝에 있는 수니온곶은 핀토스산맥의 끝에 있어 모든 배들이 이곳을 통과한다고 한다. 멀리 보이는 포세이돈 신전은 고대 아테네인들이 포세이돈에게 봉헌하기 위해 기원전 5세기 중엽에 건설했다고 한다. 신전이 눈 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도 신전까지는 한참을 더 가야 했다.
우리를 실은 버스가 수니온곶의 언덕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 언덕에 서니 바람이 세차게 부는데, 이곳은 바람이 세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주차장 언덕 남쪽 바닷가의 언덕위로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의 신전이 있었다. 주차장에서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카페가 있는데 일행중에 많은 사람들이 언덕위에 있는 포세이돈 신전까지 오르지 않고 이곳 카페에서 쉬고 있겠다고 한다. 카페쪽에서 봐도 멋있는데 힘들게 올라 갈 필요가 있냐고 하는데, 그리스에 와서 이렇게 기둥만 남아 있는 건축물을 많이 봤다고 생각하기에 그러는 것 같았다. 왕복 3시간을 넘게 투자해서 힘들게 와서 불과 몇백m를 오르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온 것인데...
날씨가 더워서인지 카페에는 관광객들이 엄청 많은데 비해서 포세이돈 신전으로 오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다들 이곳까지 와서 아래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중해의 섬들이 보이는 수니온곶은 말그대로 바람코지다. 높은 산에 오르게되면 바람때문에 큰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것처럼 이곳에도 바람때문에 나무가 크지 못한채 관목들만 보였고, 주변 해변가가 많이 침식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바람으로 인한 파도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포세이돈 입장료도 4유로다. 우리 돈으로 5천원이 조금 넘었다. 멀리 시간을 내서 이곳까지 왔는데 이 입장료가 비싸다고 아랫쪽에서 사진만 찍고 간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스 유적이 대부분 비슷하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그리스 신화에도 등장하고 포세이돈 신전을 비롯해서 거의 대부분이 2,500년전의 건축물들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삼국시대 이전으로 봐야 한다. 우리 선조들은 토굴에 움막짓고 살 때 이런 웅장한 건축물이 만들어진 것이다. 비록 지금은 지진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무너지고 흔적만 남아 있어도 그 가치를 이해라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표소에서 오르막을 약간만 올라가면 정상이 나온다.
포세이돈 신전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보다는 규모는 작다. 하지만, 해변의 절벽 위의 넓지 않은 공간 위에 세워져 주변 경관을 지배하는 위세는 휠씬 더 당당하다. 지금은 신전은 무너져 폐허처럼 보이지만 이곳이 아테네에게 전략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전문가가 아니라도 느길 수 있다. 에게해의 해상권을 지배했던 아테네에게 수니온 곶은 해상 전초기지이자, 아테네 진입을 통제하는 전략적 요충지였을 것이다. 아테네 사람들에게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Poseidon)은 제우스 못지않게 중요한 신으로 여겼는데, 아테네가 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지중해를 제패하고 곳곳에 식민지를 개척하려면 바다를 안전하게 누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포세이돈의 가호가 절실히 필요했다. 이런 까닭에 수느온 곳에 포세이돈 신전을 건립하게 된 것이다.
파란 하늘과 에머랄드 빛 바다를 배경으로 황갈색의 척박한 산 위에 웅장하게 솟은 포세이돈 신전의 기둥은 감동적이다. 지금은 측면의 13개, 전면과 후면의 6개 기둥만 남아있다. 멀리서 보았던 신전과 주변의 풍광도 압도적이지만, 언덕 꼭대기에 올라 탁 트인 에게해를 내려다보면 신전의 탁월한 위치와 장중한 아름다움에 대단함을 느낀다. 신전 앞쪽으로는 에게해의 여러 섬들이 보이고, 징검다리처럼 이어진 키클라데스 제도가 길게 뻗어있다. 포세이돈 신전 앞에서 탁 트인 양쪽 바다를 바라보려니 눈이 부셔서 그냥 바라볼 수 없을만큼 햇살이 강하다.
수니온 곶의 포세이돈신전은 기원전 480년 3차 페르시아 전쟁 당시 아티카 전역을 점령한 페르시아 군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된다. 이 때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과 함께 불태워지고 파괴된다. 살라미스 해전의 승전이후 한 세대가 지나 탁월한 정치가 페리클레스가 아테네의 융성기를 이끌면서 비로소 수니온 곶의 포세이돈 신전은 재건된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격돌한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과, 마케도니아와의 전쟁을 겪으면서 참화를 피하지 못했다. 포세이돈 신전은 아테네의 영광과 수난의 역사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현재 이곳도 복원을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언제 완공이 될지는 알수가 없다. 신전 주변으로 유물들이 널부려져 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방치되고 있는 상황이다.
포세이돈 신전 오른쪽 아래에는 작은 만이 형성되어 있다. 하얀 요트 몇 척이 한가로이 떠있다. 이곳은 물살이 잔잔하여 조정경기의 대기 장소로 쓰기에 적합했을 듯 싶다. 고대에 이곳에 포세이돈 신전의 방벽을 지키는 해군의 선착장이 있었다. 또한 아테네인들이 수니온 곶에서 4년마다 대대적인 조정경기 축제를 개최했다고 한다. 조정경기는 해군의 전투력 강화 차원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수니온 곶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 있는데, 일몰때까지 이곳에 머물수가 없어서 그 유명한 일몰 구경은 다음으로 미루고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신전에 올라오면서 개인 투어 시간이 여유있게 주어졌지만 일행중에 정상까지 올라온 사람은 우리 부부를 포함해서 4명밖에 올라오지 않아서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지루해 할까봐 시간을 모두 활용하면서 구경하기가 부담스러웠다. 사실 포세이돈 신전을 구경하고 주변 바닷가를 보는 것만 한다면 주어진 시간의 절반만 사용해도 가능했지만, 하지만 다음에 이곳을 다시 온다는 보장이 없기에 이곳 저곳을 아보고는 가야겠다는 생각에서 가 볼 수 있는 곳은 빠르게 돌아보았다. 내려 오는 길에 보니 포세이돈 신전은 군사적 기능으로도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신전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방벽의 흔적과 이를 발굴 복원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신전 구경을 마치고 다시 에게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위 카페로 내려왔다. 카페는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정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각종 엽서와 기념셔스, 다양한 소품류의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리스의 추억을 기억할만한 기념품이 많이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들 조각한 기념품도 괜찮아 보였고, 로마시대 전차를 비롯한 군인들의 모습을 축소해서 만들어 놓어 미니어쳐도 기념품으로 괜찮아 보였다.
신전에 오르지 않고 있던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던 나오스 카페로 돌아왔다. 우리 일행 이외에도 더운 날씨에 신전을 구경하기보다 시원한 그늘에서 차를 시켜 마시거나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 카페는 세기의 결혼으로 화제를 뿌린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클린 여사도 이곳에 와서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관광객이 낭만적 분위기에 취하기 좋은 경관임에는 틀림없다. 이곳에서 그리스 전통커피인 엘리니꼬 까페라고 불리는 그린커리(Greek Coffee)를 주문해서 마셨는데 처음에 어떻게 마시는지 잘 몰라서 그냥 마셨더니 바로 마시면 안된다고 한다. 그릭 커피는 커피가루를 포트에 넣고 차 숟가락으로 저어가며 끓이다가 한 번 거품이 일면 불을 끄고 그냥 마시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커피 가루가 잔 아래 가라 앉길 기다렸다가 마신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인지를 몰랐다. 무식하면 몸으로 때워야 한다.
포세이돈 신전에서 거의 두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아테네 시내로 되돌아 왔다. 주말인 일요일이어서 해변으로 놀러 왔다가 집으로 가는 사람들과 시간이 겹쳐져서 되돌아 오는 시간을 훨씬 더 많이 걸렸다. 아테네로 들어와서 그리스에 와서 처음으로 가이드가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안내했다. 일부러 비용을 더 지불하고 노옵션인 여행상품을 선택했는데 가이드가 한인이 운영하는 기념품 샵으로 안내를 하니 부담스럽기만 하다.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올리브유를 선물로 몇 개 구입했지만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포세이돈 신전에서 느꼈던 감동이 반으로 확 줄어 버렸다.
(7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