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인도네시아 ('17.7)

인도네시아 여행 29-4 (자카르타 해양박물관 ), (2017.7)

남녘하늘 2018. 9. 30. 09:34


 후배 집에서 나와 해양박물관을 가는 길에 잠시 마이에스틱시장(Pasar Mayestik)에 들렀다. 내가 자카르타에 있는 재래시장을 한번 가 보았으면 했더니 후배가 가끔씩 찾는 재래시장이라고 안내해 주었다. 후배 집에서 직선거리로 5-6km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시장이었는데 시장으로 이동하면서 최악의 교통체증을 겪었다. 걸어가도 1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차를 타고 1시간이 훨씬 넘게 걸렸다. 자카르타에서는 약속시간을 잡으려면 충분한 여유를 두고 해야 할 것 같다. 아니면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가... 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과일을 팔고 있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저렴하지가 않다. 계절적으로 과일이 많이 나오는 시기가 아닌 듯하다.   





 

 재래시장인줄 알고 왔는데 다른 곳에 또 재래시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대식 건물이 세워져 있고 안쪽에 식당가와 함께 상점이 가득하다. 도심에서의 재래시장은 약간의 현대화를 거친 모양이다. 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사탕수수를 판매하고 있어서 인도네시아에 와서 처음으로 사탕수수를 먹었다. 가격은 아주 저렴하다. 커다란 컵 하나에 우리돈으로 천원정도. 너무 맛 있어서 들어올 때 한번 사먹고 시장구경을 마치고 나가면서 다시 한잔 더 사 먹었다.  






 시장 안쪽에 신발을 파는 매장이 몇 곳 몰려 있었다. 가격도 그다지 비싸지 않고 집사람이 원하는 스타일의 신발이 있어서 결국 이곳에서 하나 구입했다. 여행을 나와서 짐을 늘리고 싶지 않은데 여행초반부터 짐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곳 시장은 직물을 많이 판매하는 시장이라고 한다. 나는 농수산물을 판매하는 재래시장 방문을 생각했던지라 신발 한켤레를 사고나서는 더 이상 구경은 하지 않고 자카르타 북쪽에 있는 코타지역으로 이동했다.  




 후배가 시장에서 헤어지면서 저녁식사를 다른 후배 가족과 함께 만나 하자면서 차와 기사를 내게 보내 주었다. 오늘은 내가 생각하고 있던 몇몇 곳을 돌아보기로 했다.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의 흔적을 찾아서 코타 지역으로 이동했다. 코타지역은 자카르타의 북부이며 해안 가까운 순다 끌라빠의 옛 항구 근처이다. 싱가폴이나 홍콩의 마천루를 방불케하는 자카르타의 도심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분위기이다. 문자 그대로 Old Town이다. 이곳에 동인도회사의 창고를 개조하여 해양박물관을 만들었다. 제대로 된 자카르타 여행책자가 없어, 단편적인 정보를 취득해서 찾아가는 길이어서 쉽게 찾아가질 못한다. 미리 구글맵으로 위치를 찾아 놓고 기사에게 알려주면서 찾아가는 형식을 취했다. 







 인도네시아의 해양 관련 자료와 전시물들이 보인다. 이 빌딩은 원래는 동인도회사 (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 VOC)의 향신료 저장 창고였다고 한다. 옛 흑백 사진을 포함하여 모형 배, 그리고 풍부한 해양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근대 역사에서 네덜란드의 식민지배 역사는 빠질 수 없다. 1602년 인도네시아에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가 설립되었다. 네덜란드의 식민지 경영이 시작된 것이다. 1824년에 이르러서는 인도네시아 전체가 네덜란드의 직할 식민지가 되었다. 일개 회사가 지배하기에는 엄청난 크기의 대국이다. 인도네시아는 인구 순위 세계 4위이고 1만 8천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도서 국가이며 세계에서 이슬람 신도가 제일 많은 나라이다. 그런 나라를 유럽의 소국 네덜란드가 거의 300년 넘게 지배했다는 자체가 믿어지지 않는다.   






 아주 오랜 시간 이곳에서 식민지배에 사용되었넌 창고는 독특한 구조였다. 자바섬에 들이닥친 여러곳의 해양문화와 세력들에 대하여서도 실물 모형의 인형을 만들어 놓고 보여주고 있었다. 이슬람 세력, 중화권의 도래, 서구 열강의 해양세력 진출 그리고 일본의 침략까지 전시실이 마련되어있다. 눈을 끄는 곳은 세계의 모험가를 한자리에 모아 놓은 전설적 세계의 항해자라는 코너였다. 마르코폴로, 이븐바투타, 바스코타 가마, 정화 등의 탐험가들이 그 주인공이다.








 무엇보다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건물 자체가 볼거리이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관람객이 거의 없어서 우리 가족과 몇 몇 외국인만이 건물을 둘러 볼 수 있어 좋았다. 1층 전시실은 에어콘 없이 자연 통풍을 하고 있었는데 2층 전시실에는 에어콘을 세게 틀어놓아서 춥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사람도 별로 없는 전시실에 왜 그렇게 춥게 해 놓았는지 모르겠다. 흔히 식민지 하면 총독이 파견 되어 본국을 위해 모든 행정과 군사 외교적 업무를 총괄하며 원주민들을 지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런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의 이야기이다. 17~18세기에는 그렇게 모든 것을 장악할만한 군사력을 보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지금도 선박으로 군대를 옮기려면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드는데 300년 전에는 훨씬 열악한 환경이었을 것이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OC)를 중심으로 거점마다 교역소와 요새를 건설했고 그곳을 중심으로 국제무역을 독점했다. 인도네시아는 향료가 유명했기 때문에 네덜란드에 상당한 이득을 남겨 주었다. 해양박물관답게 다른 건물에는 실물크기의 배와 배 모형도 전시되고 있었다.    







 해양박물관 바깥쪽 입구에는 해양감독 감시탑(Menara Syahbandar)이 있다. 박물관에 방문하려면 이곳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갔다 와야 한다. 순다끌라빠 전망대로 알려진 감시탑은 바타비아 시절에는순다 끌라빠 항에 입출항 하는 배의 동태를 관찰했다고 한다. 또한 해양과 토지의 안전을 감독하고 지키기도 했으며, 기상에 대한 관찰과 관세 초소로도 사용되었다. 이 감시탑 아래 쇠창살 철문이 있는 곳은 법률을 위반한 선원을 감금한 감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군인들의 동태도 살폈는데 감시탑 바깥에 있는 큰 대포를 보면 그 역할이 짐작이 간다. 






 18m 높이의 감시탑 정상부에는 사방을 살펴볼 수 있는 네 개의 창문이 만들어져 있었다. 한 창은 항구를, 또 한 창은 암스테르담 게이트를 지나 보이는 파타힐라 광장(구 시청 광장)을, 다른 창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을 볼 수 있었다는데 이미 주변이 과거와는 달라서 감시탑 역할도 할 수 없다. 항구도 겨우 조금 보일뿐이다. 시간이 되면 그다지 멀지 않은 순다 끌라빠(Sunda Kelapa) 항도 방문하고 싶었는데 한번에 모든 것을 볼 수는 없다. 






 네덜란드 식민통치의 첨병인 동인도회사의 조선소로 지금은 갈랑안(Galangan)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다고 들었는데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기사에게 설명을 할 수 없어 그냥 도개교로 이동하자고 했다. 기사없이 우리끼리만 왔다면 물어서라도 찾아가 보았을터인데 조금 아쉽다. 간단하게 차라도 한잔 하고 오고 싶었는데.. 2일동안 자카르타 시내를 안내해주었던 후배집의 기사와 함께 사진을 한장 남겼다. 영어라도 조금 할줄 알면 더 좋았을터인데 아쉽다. 후배가 인도네시아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니 굳이 영어를 배울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해양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대략 500여m)에 있는 네덜란드 식민시절에 건설된 도개교(다리 양편을 올리고 내려 선박통행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다리)다. 인도네시아어로 "Jambatan Kota Intan" 이라고 한다. 그냥 걸어서 가 보아도 멀지 않은 곳이었는데 차를 타고 이동했더니 주변이 모두 일방 통행로여서 한참을 돌고 돌아서 도착했다. 지금은 하천을 따라서 이동하는 배가 없기 때문에 다리를 들어 올릴 일도 없고, 주변에 다른 현대식 다리가 놓여져 있어 다리로서의 활용가치는 없어져 버렸다. 입구에 울타리를 쳐 놓고 있다가 관광객이 오면 문을 열어주고 있었다. 약간의 기부금을 받고 있었는데 공식적으로 받는 것은 아닌 듯했다. 






 4.4m의 폭과 30m 길이의 붉은 색 도개교는 1628년 건설되었다. 지금은 다리의 기능을 상실하고 관광 상품이 되었지만 우리나라 부산 영도다리처럼 부지런히 올리고 내리고를 반복하며 다리의 기능을 수행했던 곳이다. 도개교가 있는 찔리웅강은 자카르타 내륙과 순다 끌라빠(Sunda Kelapa) 항를 이어주는 강으로 식민지시절에는 수탈된 물자가 드나들기도 곳이다. 지금은 퇴적물이 쌓이고 하천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서 보기에 조금 민망해 보였다. 안타깝지만 아직 인도네시아가 환경에 신경을 쓸 정도로 의식도 없고 여유도 없는 모양이다.  








(5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