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여행 29-18 ( 족자카르타 크라톤 ), (2017.7)
족자카르타 술탄은 영어로 욕야카르타 술타네이트(Yogyakarta Sultanate)라 부르는데 이곳에서는 크라톤(Kraton)이라고 한다. 술탄은 이슬람 국가에서 절대군주, 즉 왕을 일컫는 말로 족자의 크라톤은 족자카르타의 왕을 말한다. 16세기 말에서 18세기 초까지 세력을 떨쳤던 중부 자바의 마지막 독립국가였던 마타람 왕조(Sultanate of Mataram)가 내부혼란과 네덜란드의 침략으로 붕괴되면서 둘로 쪼개 지게 된다. 1775년 네덜란드 총독의 강압으로 마타람 왕조는 수라카라타(Surakarta)혹은 솔로(Solo)로 부르는 왕조가 별도로 분리되고 나머지는 족자카르타 술탄이 된다. 그렇게 분리된 족자의 왕인 술탄이 아직 족자에 살고 있다. 족자의 중심가인 뜨리코라거리(Jalan Trikora)를 따라가면 나오는 왕궁에서 지금 족자의 주지사이기도 한 하멩쿠보노 10세(Hamengku Buwono X)와 가족이 실제로 살고 있다.
도로 남쪽 끝에는 알룬알룬 우따라(alun-alun utara)라고 불리는 넓은 광장이 있다, 이 광장의 한가운데로 도로는 이어지는데 이 길의 끝에 술탄왕궁 정문이 나온다. 크라톤의 북쪽에 있는 광장으로 과거 군대 훈련 장소로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종교 축제 장소로 사용한다. 대략 축구장 8개 정도의 공간인데 넓은 광장에는 아무런 시설물이 없어 황량해 보이기도 한다.
지금 이 왕궁은 1755년 마타람 왕조가 분리되고 나서 하멩쿠보노 1세가 건립한 것이다. 입장료에 사진찍는 비용까지 지불하고는 크라톤으로 들어갔다. 첫날 이곳을 방문하려고 했는데 오후 2시까지만 관람이 가능하다고 해서 첫날 오지 못하고 오늘 아침에 오게 되었다. 모두 일곱 구역으로 나누어진 궁전은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이어지며 나름대로 특색 있는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관람객들에게 완전 개방은 되지 않고 직접 술탄을 알현할 수는 없지만 개방되는 일부만으로도 술탄의 왕궁 생활을 엿볼 수 있다.
크라톤에는 외국 여행자들도 보이지만 현지인들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현지인들에게는 상당히 의미있는 곳이라는 얘기였다. 인도네시아의 역사가 세겨진 부조가 벽으로 세겨져 있고 인도네시아 전통 양식의 건물의 미니어쳐가 놓여져 있다. 궁전치고는 좀 소박하다는 느낌이다.
크라톤의 내부에는 대리석처럼 반들반들한 바닥이 있는 건물이 많았다. 아무래도 더운 나라라서 그런지 타일바닥이 시원해 보이긴 했다. 다만 술탄 왕궁이라고 해서 뭔가 엄청 기대를 하고 들어왔는데 2일전 솔로에서 보았던 솔로 크라톤보다도 볼거리가 없는 듯해서 실망스러웠다. 왕궁 이 넓어 보이긴 했는데 이쪽은 그냥 건물 몇 채와 술탄이 사용한 물건들을 전시해 놓은 것 뿐이라 볼것이 별로 엇었다. 건물은 대부분 단층이고, 개방형이었다. 언뜻 보면 그냥 평범한 마당처럼 보여서 왕궁이라는 느낌이 별로 없다.
조금 돌아 다니다 보니 반대편에 왕이 살고 있는 궁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되어지는 곳까지 왔다. 흰색 벽이 이곳 왕궁의 대표적인 색인듯하다. 크라톤을 중심으로 성벽으로 둘려 쌓여 있는 이곳에 2만5천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들었다. 커다란 문 너머로 왕궁이 있는지 현지인들이 들여다 보고 있었지만 크게 궁금하지 않아서 그냥 패스... 이 담장까지 구경하고 돌아 나오니 들어올 때 보았던 장소로 되돌아 나오게 되었다. 이 정도를 가지고 그렇게 유명하다는 크라톤인가 싶어서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왕실 관련 유물 몇 개가 있는 작은 전시관 하나가 있는게 고작이었다. 크라톤은 족자카르타를 대표하는 유적인데, 이렇게 작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물어볼 사람도 없고 안내를 해주는 사람도 없어서 아침에 돌아본 것이 크라톤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몇 몇 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나왔다. 그러나 왕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물의 궁전이라 부르는 따만사리(Taman Sari)를 구경하러 갈 계획이어서 이동하는 중에 한차례 반전이 생긴다. 지금까지 둘러본 것은 크라톤의 북쪽 왕궁이었다. 걷지 않고 베짝을 타고 따만사리로 이동했으면 본 궁전을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통과했을 것이다.
왕궁에서 나와 물의 궁전이라 부르는 따만사리(Taman Sari)를 향해서 걸어갔다. 왕궁 앞에는 길가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입구 부근에는 장사를 하는 사람들로 많았는데 옷이나 가방, 기념품, 혹은 먹을거리를 팔고 있었다. 그러나 이쪽 사람들은 관광객을 피곤하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걷는 것에 자신이 있다면 왕궁 주변을 걸어서 둘러 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다.
따만사리로 가는 중에 다시 크라톤 입장권을 판매하고 있는 곳이 나왔다. 아까 먼저 들렀던 곳은 왕궁의 북쪽이었고, 이곳이 술탄이 거주하고 있는 크라톤이었다. 북쪽 왕궁의 입장권과 상관없이 다시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 입장료가 12,500루피아(우리돈 1,250원 정도)로 저렴한 편이다. 이곳에서도 사진 촬영비로 1,000루피아를 따로 받았다. 크라톤에 대한 제대로된 설명서나 안내서가 없어서 일어난 해프닝인데 이곳을 둘러보지 못했으면 많이 아쉬움이 남았을 것이다. 다시 한번 크라톤에 입장하게 되었다. 북쪽 왕궁은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문을 들어서자면 정면 벽에 칼라(Kala)신의 문양이 붙여져 있다. 칼라는 나쁜 기운을 쫓는 벽사의 신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도깨비와 흡사한 모양이라 낯설지가 않다.
다시 크라톤이 입장하니 한쪽에 가믈란 악기들이 엄청나게 많이 놓여져있다. 하지만 좋았던 것은 직접 연주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믈란 연주를 하는 시간이 정해져있다는데, 우연찮게 딱 그 시간에 맞춘 모양이다. 아예 앉아서 구경할 수 있도록 의자도 마련되어 있었다. 크라톤에 은은하게 번져가는 악기소리가 참 좋았다. 오래 들으면 가락도 모르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연주가 조금 지루하기는 하지만 직접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행운이다. 나중에 알아보니 금요일을 제외하곤 매일 10시부터 12시까지 전통음악을 들을수 있다고 한다. 금요일에는 사원에 가서 기도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연을 잠시나마 관람한 것으로도 기분이 좋다.
정문을 들어서면 깔끔하게 단장된 뜰이 나온다. 그리고 팔각으로 된 작은 정자 형태의 건물이 하나 보인다. 언뜻 놀이공원의 회전목마 타는 곳처럼 보이는데 안을 들여다보니 넓은 의자가 그네가 그네처럼 매달려있다. 왕족들이 휴식을 취하는 곳이라고 한다. 들어오면서 가이드를 해 주겠다는 것을 사양했는데 중간 중간 영어가이드가 해 주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가이드가 있으면 설명을 해 주어서 좋은 점도 있지만, 가이드를 따라서 다녀야 하고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없는 단점이 있다. 오늘은 다른 일행 가이드의 설명을 보충해서 듣는 것으로 했다.
왕궁 안에 들어가니 내부는 경건한 분위기이다. 역대 족자카르타의 술탄들은 외세에 대항하여 싸웠고, 검소한 생활과 책임감을 실천하여 자와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족자는 특별자치주로 현재의 하멩꾸부워노 10세가 술탄인 동시에 선거에 의해 선출된 주지사를 겸하고 있다. 왕궁 곳곳에 사람들은 그냥 앉아 있는 아저씨들 같지만 모두가 궁궐을 수비하고 방어하고 지키는 군인들이라고 한다. 옛날 복장을 하고 있어서 관광객을 위해서 전통복장을 하고 있나 했지만 진짜로 수비병들이었다. 하지만 모두 나이가 상당히 들어보인다.
입구에 들어올 때 정통복장을 한 검표원부터 왕궁 곳곳에 있는 군인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나이든 노인이었던 것이 인상적이다. 왕궁 안에는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 집사들이나 궁녀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도 대부분 노인이었다. 초소에서 근무를 서거나 일정한 장소에서 궁내를 순찰하기도 하는 사람은 젊은 사람을 가끔 볼 수 있었다. 집사들과는 달리 등 뒤에 단도를 차고 있어 쉽게 구분이 된다. 이 왕궁의 집사, 궁녀 그리고 호위무사들은 하루에 6시간씩 근무를 하되 보수는 거의 없다고 한다. 술탄에 대한 충성심과 더불어 왕궁에 근무한다는 자긍심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다만 이들은 주정부에서 부과되는 각종 세금을 면제 받고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비를 면제 받는다. 그래서 한번 들어오면 그만 두는 사람이 잘 없다고 한다,
조금 더 들어가니 온통 황금색으로 된 화려한 건물이 나오는데 술탄이 집무실로 사용하던 곳이다. 내부에는 술탄이 앉았던 의자와 탁자를 비롯하여 실제 슐탄이 쓰던 필기도구, 도서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가 이곳을 방문 했을 때 술탄과 함께 이곳에서 회의를 했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있다. 기둥이나 천정 등의 황금색은 실제로 금을 입힌 것이라 한다. 네덜란드 식민 통치자들이 나름대로 술탄을 예우해 줌으로써 족자인들의 민심을 얻으려고 한 흔적을 보는 것 같다.
왕궁 곳곳에는 슐탄이 사용했던 가마가 전시되어 있다. 서양의 왕궁이나 박물관에서는 볼 수 없는 가마가 이곳에 있는 것이 새롭게 보인다. 적도를 지나 남반구에 속하는 이곳도 같은 동양 문화권이라는 공통점을 보여 주는 유물이다. 가마들은 열대지방답게 유리창을 달아 사방이 시원하게 탁 트인 모양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슬람 왕조임에도 힌두신 비슈누가 타고 다니는 가루다로 보이는 새를 가마 앞에 장식했다. 가마 이외에도 왕궁 작은 건물에는 모두 전시관처럼 사소한 생활용품부터 역사적으로 가치있는 물건까지 수 많은 전시물이 진열되어 있었다.
전시 공간 중에는 역대 족자 술탄과 왕비 그리고 그 가족들의 초상화나 사진을 걸어 둔 곳이 있다. 그들이 살아 온 주요 역정(歷程)을 담은 것들이다. 술탄들이 받은 훈장과 상장을 비롯해 하멩쿠보노 9세가 네덜란드로 유학을 가서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모습과 사진 찍는 취미에 빠진 모습, 역대 왕비나 공주들의 초상 그리고 어린 왕자와 공주들의 모습 등이 있다. 박물관에는 역대 술탄이 사용하던 가구와 사진, 초상화 등이 있다.
19세기 영국군의 침략으로 인해 많이 훼손되었기에 현재의 왕궁 대부분은 1920-30년대 하멩쿠부워노 8세 시절에 재건된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관광지와 박물관으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도 실제 왕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크라톤을 한 바퀴 대충 돌고 나왔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왕궁치고는 외형은 그냥 평범한 편이지만 면적은 역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북쪽 궁전만 보고 볼거리가 없다고 했으면 큰 오판이었을 것이다. 족자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라 한번쯤은 가볼만한 곳이라 추천한다.
(19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