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스키 마라톤 9-1 (나가사키 평화 공원, 데지마) (2018.1)
2018년에 이부스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로 생각하지 지난해 9월부터 여행 준비를 했다. 이부스키 마라톤 대회는 4번째 참가하는데, 보스턴마라톤 대회를 제외하고는 내가 가장 훌륭하게 진행하는 대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기회만 된다면 참가하고픈 대회이다. 다른 달리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대회다. 이번에도 혼자 참가하지 않고 10명의 달림이와 가족과 함께 13명이 떠나게 되었다. 나도 다른 참가자와 똑같은 비용을 내고 참가하기에 일정을 정하고 인솔하기에는 조금은 힘든 일이긴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기부한다는 생각에서 기분좋게 추진하기로 했다. 내가 속해 있는 수원마라톤클럽 회원과 또 나이가 70세가 넘어 달리기를 하고 있는 칠마회 회원 3분을 모시고 떠나게 되었다. 중간에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마라톤 대회에 참석해서 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당초 4박 5일 일정이 달리기와 여행을 즐기기에 적당한 시간인데, 사정이 여의치 않는 인원이 있어 이번 여행은 3박 4일의 일정으로 다녀 오기로 했다. 짧은 기간이어서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지만,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함께 하는 여행이 되다보니 중간점을 찾기가 어렵기도 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지만 자유여행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해서 여행계획을 세웠다. 계획대로 진행하다가 문제가 있으면 얼마든지 변경이 가능한 자유여행이다.
3박 4일 일정이서 출발하는 날도 여행 계획을 세워서 인천공항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는 비행편을 예약했다. 공항에 6시가 되기 전에 도착해야 했는데 이른 시간이어서 공항이 한산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른 아침에 출발하는 비행편이 많아서 이른 시간임에도 엄청 복잡하다. 전체인원의 체크인까지 하다보니 면세점에 들릴 시간도 빡빡하다. 경기가 어렵다고 해도 공항에 와보면 전혀 딴 세상에 와 있는 느낌이다.
이번 여행에 앞서 참가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인사할 기회를 갖지 못해서 출국에 앞서 전체인원이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뵙는 분들도 주로에서 한두번은 보았던지라 어색하지 않았다. 어짜피 달리기를 한다는 공통분모가 있고, 대화의 주제가 달리기인지라 금방 어색함이 없어졌다. 출국 비행편이 조금 연착되는 바람에 인사할 시간도, 여행계획을 설명한 기회도 만들 수 있었다.
2018년 들어서 영하 15도의 최강 한파가 몰려온 서울과 비슷하게 후쿠오카에도 제법 쌀쌀한 날씨였다. 서울은 추워도 날씨는 맑았는데, 후쿠오카에는 해가 떠 있으면서도 눈이 내리고 있는 이상한 날씨였다. 눈이 잘 내리지 않는 큐슈지역인데 한파의 영향이 이곳에 눈을 뿌리고 있었다. 눈은 내려도 도로에 눈이 쌓이지는 않는 정도의 날씨였다. 비가 내리는 것보다는 여행하기에는 훨씬 낳은 듯하다.
일본으로 오기 전에 세워 놓았던 계획으로는 공항에서 수속을 마치고 나면 호텔로 이동해서 체크인을 하고 짐을 놓아두고 이동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비행기가 한시간 연착하는 관계로 시간 계획이 조금 어긋나게 되어서 바로 하카다역으로 와서 나가사키로 이동하기로 했다. 열차가 30분에 한대 정도가 운행하기에 짐을 하카다역에 맡기지 못하고 나가사키역에 도착해서 맡기기로 했다. 내가 열차표를 예매하는 동안 열차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에키벤을 구입했다. JR패스만 있다면 규슈 전역을 편하게 다닐 수 있으니 이번 여행에서는 3일권은 16만원에 구입했는데, 교통비가 비싼 일본에서 이 패스가 요긴하다.
나가시키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눈이 오락가락 내리고 있었다. 하카타역에서 나가사키역까지는 JR특급인 가모메열차를 이용하면 2시간이면 갈 수 있다. 나가사키 관광도 가능하면 1박을 하고 싶지만 관광이 우선이 아니고 마라톤 참가가 우선이어서 당일 여행으로 계획을 세웠다. 근세 유적지가 가득하고 또 일본 3대 야경중에 하나로 손꼽히고 있어 하루를 머무면 좋은데 아쉽다. 신간센이 우리나라의 KTX라면 이 카모메 열차는 우리의 새마을호 열차쯤 된다. 시설은 훨씬 깔끔하고 부대시설을 잘 갖추었다. 바닥은 고급 나무판이 깔려 있어 느낌이 좋고 의자도 아주 편하다. 눈 내린 북 큐슈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나가시키로 이동한다.
나가사키역에 도착해서 일행들이 코인라커를 찾아 짐을 맡기는 사이에 나는 관광안내소를 찾아 전차 1일 승차권(500엔)을 구매했다. 하루종일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데 관광지 대부분은 전차로 갈 수 있다. 오늘 현금을 주고 타는 것이나 1일 승차권을 사는 것이나 가격차이는 거의 없을 듯한데 매번 계산하느라 시간을 보내기 싫어서 그냥 승차권을 구매했다. 하루 종일 나가사키 여행을 한다면 당연히 1일승차권이 유용하다. 관광안내소에서 한국어로 된 관광 지도를 챙겼다. 상세한 추천코스, 여행지 소개, 전차노선표 등 알짜배기 정보가 가득 담겨 있다.
나가사키 역 앞 육교를 건너면 전차 정류장이 나온다. 나가사키의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전차. 다양한 전차를 볼 수 있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시내 구석구석을 누비기 때문에 나가사키 여행의 발 역할을 한다. 운 좋으면 1910년대 전차까지 탈 수 있다. 나가사키는 전차박물관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다양한 전차가 다닌다. 원폭낙하중심지와 평화공원을 찾아가는 길에 마쓰야마쵸(松山町)전차역에서 내렸다.
나가사키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원자폭탄이다. 함께 한 일행들에게 원폭이 투하되었던 장소를 알려 주고 싶어서 첫 여행지로 삼았다. 나가사키역에서 전차로 20여분 떨어져 있다. 평화 공원으로 가기에 앞서 평화공원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원자폭탄이 낙하되었던 중심지부터 방문했다. 지금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고 검은 기둥이 서 있는 곳이 폭판이 떨어진 중심지라고 한다. 평화공원으로 이동중에도 눈이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는데 평화공원에 도착할 무렵에는 함박눈 수준의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이곳에서도 보기 쉽지 않는 눈이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와 8월 9일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단 두 발의 원자폭탄으로 일본은 항복을 선언했고 2차대전은 막을 내렸다. 또한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지 1주일만에 우리나라는 해방이 되었다. 미군은 당시 히로시마에 이어 지금의 기타규슈 지역에 있는 고쿠라(小倉)를 원폭투하 목표지점으로 잡았으나 흐린 날씨로 인하여 방향을 선회한 곳이 무기창고가 있던 나가사키의 미쓰비시 공장이었다고 한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시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반경 2Km를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고 7만3천여명의 목숨을 한순간에 빼앗아갔다. 원폭중심부 공원에 있는 모자상. 이곳에도 피폭자들의 명복을 비는 종이학들이 걸려있었다.
원폭중심부 공원 한켠에는 원폭으로 피해를 당한 재일 한국인 추모비가 조그맣게 설치되어 있다. 추모비 옆에 설치된 안내문에는 1945년에 나가사키시와 주변에 3만여명이 징용으로 끌려와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원폭투하로 2만여명이 피폭 당하였고 그중 약 1만여명이 폭사했다고 되어있다. 함께 온 일행들에게 이곳을 알려 주려고 일부러 이곳부터 방문했다. 그래도 한국사람들이 많이 다녀 갔는지 추모비 앞에 우리나라 생수병이 많이 놓여 있었다. '이름없는 일본사람들이 얼마간의 돈을 모아 이곳 나가사키에서 비참한 생애를 보낸 1만여명의 조선사람을 위하여 이 추도비를 건설한다'고 쓰여 있다.
원폭중심지에서 나와 원폭자료관을 방문해서 자료관 구경을 할까 잠시 고민을 했는데 멀리 나가사키까지 와서 원폭관련 내용만 보고 가기에는 너무 아쉬움이 많아서 일행들에게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원폭자료관은 뛰어 넘었다. 평화 공원에 잠시 들러서 구경을 하고 나가사키의 다른 곳을 구경하는 편이 훨씬 낳다고 판단했다. 아침에 비행기가 연착함으로서 여행한 시간이 줄어들어 아쉽다. 원폭자료관 앞에서 평화 공원으로 가는 길에도 원폭관련 동상이나 기념물들이 많이 세워져 있다.
평화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몇년전 왔을 때에는 계단만 있었는데 이제는 에스컬레이터까지 만들어 놓았다. 올가가는 계단에 있는 꽃밭에도 눈이 많이 쌓여 있다. 서울에서도 제대로 보지 못한 눈을 훨씬 더 따뜻한 큐슈에서 많이 보게된다. 공원계단을 올라가면 원폭투하 당시 목마름에 숨을 거두어간 사람들을 추모하기위해 만들어진 평화의 샘에 도착한다. 평화의 샘 분수 너머에는 1955년에 완성된 평화기념상(平和祈念像)이 있다.
공원 북쪽에는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평화기념상이 있다. 나가사키를 상징하는 조각상으로 높이 9.7m의 청동으로 제작되었다. 기념상은 오른 손은 원폭의 위협을, 수평으로 펼친 왼팔은 평화를, 가볍게 감은 눈은 원폭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것이라고 한다. 평화의 샘에서부터 기념상으로 오는 길 좌우에는 세계 각국으로부터 온 평화의 조각상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기념상의 왼쪽 편에는 원폭피해 무연고 사망자 추모 기념실도 있었다. 평화기념상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것으로 나가사키 평화공원 방문을 마쳤다.
평화공원에서 나와 식사를 하기 위해서 나가사키 신치 추카가이(新地 中華街)로 이동했다. 평소 점심을 잘 먹지 않는 나로서는 저녁때가 되어야 식사를 할 생각이었는데 에키벤으로 식사가 부족했던 일행이 있어서 조금 빨리 먹기로 했다. 자유여행이기에 일정이야 우리가 편한대로 변경하고 행동하면 된다. 나가사키의 신치 주카가이(新地 中華街)는 요코하마 주카가이, 고베의 난킨마치와 함께 일본 3대 차이나타운으로 꼽히는 곳이다. 이 지역은 원래 에도 시대 중기에 중국 선박 전용 창고를 만들기 위해 바다를 메워 만든 곳이다. 무역 활동이 제한되던 시절에도 중국인이 많이 살고 있었으며, 무역이 활발해진 다음에는 더 많은 중국인이 이곳으로 이주했다. 동서와 남북으로 뻗은, 길이 약 250m인 사거리에는 중국 음식점과 제과점, 잡화점 등 40여 개 점포가 들어서 있다.
나가사키의 자매도시인 중국 푸젠(福建)성의 협력으로 길에는 포석이 깔려 있어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이다. 신치 주카가이의 동서남북에는 청색, 백색, 적색, 흑색으로 각각 색을 달리한 화려한 중화문이 거리의 시작을 알린다. 이곳의 명물은 나가사키 짬뽕과 나가사키 사라우동이다. 우리나라에서 파는 짬뽕과는 달리 맵지 않고 시원한 국물 맛의 짬뽕이다. 나가사기에 왔으니 이곳의 명물을 한번 먹어봐야 한다는 생각에 이곳에서 식사를 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어서 건강에 자신이 있는지 오늘 처음부터 식사를 하면서 반주가 등장한다. 내 생각으로는 술을 하지 않았으면 하지만, 술이 빠지면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일행들에게 술을 마시지 말자고 하는 것은 고문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사키(長崎) 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들려보는 곳 중에 데지마(出島)를 찾았다. 데지마는 1636년 에도 막부의 쇄국정책(기독교 포교 금지 포함)의 일환으로 나가사키에 건설된 인공섬이다. 부채꼴모양의 섬으로, 전체넓이는 약 1.3ha정도이다. 1641년에서 1859년 사이에 대 네덜란드 무역은 오직 이곳에서만 독점적으로 허용되었으며, 쇄국일본 시기에 서양과의 교류라는 숨통을 터놓았던 상징적인 장소이다. 원래 있던 것을 그대로 보존한 것이 아니라 동일한 위치에 모습을 재현한 유적이다. 2011년에도 왔을 때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복원을 해 놓았고 입장료도 받고 있었다.
과거에 받지 않았던 입장료가 생긴 것으로 보아서 안쪽에 무엇인가 볼거리가 많이 생긴 모양이다. 동쪽 출입구를 통해서 들어가니 데지마의 축소 모형이 있었다. 이 축소 모형은 과거에 왔을 때에도 있었던 것이다. 오전 내내 눈이 내려서 모형에도 눈이 쌓어 있어 보기가 좋다. 눈이 내린 데지마를 보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이 데지마 모형은 1976년에 데지마를 15분의 1로 축소한 것으로, 1820년경의 데지마를 그렸다고 하는 나가사키 데지마 지도를 참고해 제작했다고 한다.
축소 모형을 지나니 옛날과는 달리 건물도 많이 복원되었고, 주변 정리도 깨끗하게 되어 있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올 만하다고 생각된다. 복원된 건물 안쪽에는 과거 데지마와 관련된 여러가지 역사와 관련 유물을 전시해 놓았다. 데지마는 1634년부터 2년에 걸쳐 포르투갈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한 시설로서 막부가 나가사키의 마치슈(町衆 : 부유한 상공업자)에게 건설을 명하여 만들어졌다. 건설 비용은 우선 건설을 담당한 사람에게 부담하게 하고, 나중에 입주한 포르투갈 사람(후에 네덜란드 사람으로 교체)에게 토지 사용료를 지불하는 형식으로 건설 비용을 보상받도록 했다고 한다. 1639년 로마 가톨릭 선교 활동을 하는 포르투갈인 추방 후에 1641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이곳으로 옮기고 네덜란드인들을 거주시켰다. 이후, 약 200년 동안 네덜란드인과의 통상 활동 및 일본 내 활동에 대한 막부의 통제가 이루어졌다. 원칙적으로 공무상 출입이 허용된 일본의 관리 이외에는 출입이 금지되었고, 네덜란드인도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일본 체류 기간 동안 좁은 데지마 안에서만 지내야 했다.
데지마는 일본의 유일한 서양과의 교류창구였으며, 네덜란드 상관에 부임한 엥게르벨트 캠벨과 칼 튠베리크 그리고 시볼트 등의 네덜란드인들은 일본의 문화 및 동·식물을 그들의 고국에 소개했다.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실학을 장려하고, 양서를 해금 조치한 결과, 데지마를 통해 입수된 서양서적들은 의학,천문역학 등의 연구를 촉진시켰다. 난학을 통하여 탄생한 합리적 사고 및 인간평등사상 등은 막부말기의 일본에 커다란 사상적 영향을 끼쳤다. 복원된 건물 안쪽에는 박물관의 전시물처럼 각종 유물과 안내문이 잘 정리되어 있어 볼거리가 많았다.
데지마는 1904년 항만개량공사를 통해 주변이 매립되어 섬으로써의 기능을 상실하였고, 현재는 당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최근에 많이 복원을 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곳에 올 때마다 우리나라도 쇄국정책을 펼치지 않고 최소한 이곳 데지마처럼 외국 문물을 받아 드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생각한다. 인천이나 부산같은 곳에 설치하고 개방의 길을 갔으면 근대화도 조금 빠르게 했을 것이고, 일제 36년이나 남북분단 같은 비극도 겪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구리창고 건물 안에는 수출하기 위해서 구리상자를 쌓아 놓은 모형도 만들어 놓았다. 옛날 역사시간 우리가 일본에서 수입했던 것이 구리와 유황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많으면 건물마다 들어가서 전시되어 있는 내용을 모두 읽어보고 전시물도 보고 싶었지만 나가사키에서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가 봐야 할 곳은 몇 군데가 더 남아 있어서 데지마에서 시간을 더 보낼 수가 없다. 겨울철이라서 조금 황량한 느낌이 들었지만 지난번 방문때보다는 볼거리가 훨씬 많았던 데지마에서 출발한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