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인도네시아 ('17.7)

인도네시아 여행 29-19 ( 족자카르타 마차박물관, 따만사리 등 ), (2017.7)

남녘하늘 2018. 11. 10. 12:36


 크라톤 왕궁에서 입장권을 판매하는 오른쪽 편에 마차박물관(Museum Kareta Karaton)이 있었다. Museum Kareta Karaton이라고 쓰여 있어서 어떤 박물관인지 모르고 일단 가보니 마차박물관이다. 3,000루피아의 저렴한 입장료와 함께 이곳에서도 사진기를 가지고 가면 따로 1,000루피아의 비용을 내야 한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볼거리가 많이 있었던 박물관이다. 어제 솔로시에 가서도 크라톤 내에 마차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족자카르타의 크라톤에는 이렇게 따로 마차박물관을 만들어 놓을만큼 마차가 많이 있었던 모양이다.    





 박물관 내부에는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23대의 마차가 전시되어 있었다. 족자카르타 궁전의 컬렉션인데 모든 마차에 천을 씌어놓고 한쪽을 겉어 놓아서 그다지 보지 좋지 않았다. 먼지가 걱정이 되면 아예 유리로 만든 전시 부스를 만들어 놓고 안쪽에 보관하는 방식을 취했으면 좋았을 터인데 천 한쪽만 걷어 놓아 관리하는 사람들이 게을러 보였다. 아니면 투자를 더할 여력이 없었거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마차중 가장 오래된 마차는 1750년 네덜란드에서 제작되어 족자카르타의 슐탄에게 보내준 마차였다. 네덜란드에서 가져온 마차 이외에도 정교하고 멋있는 마차가 전시되어 있다. 슐탄의 취임식에 사용한 마차에서부터, 심어지 영구차 용도로 사용한 마차도 전시되어 있다. 공주를 위한 마차도 있었는데 족자카르타의 슐탄은 상당히 호화스러운 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로 아래에 있는 마차는 메인 전시실에 있던 2대의 마차중 한대(Kareta Kyai Garuda Yeksa)로  1861년 네덜란드에서 만들어졌고 슐탄의 대관식때 사용한 마차라고 한다. 한눈에 보아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박물관이라는 것만 알고 어떤 박물관인지도 모르고 들어왔지만 꽤나 좋은 구경을 했다고 생각한다. 아직 구글번역기가 인도네시아말을 정확하게 번역해 주지 못하는 것 같다. 인구 2억 5천만명으로 세계에서 4번째나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는 인도네시아인데 아직 구글에게는 큰 고객이 아닌 모양이다. 실내가 조금 덥기는 했지만 족자카르타 슐탄이 어떤 정도였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던 관람이었다. 외국인 방문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현지인들이 많이 찾아왔다.    




 마차박물관 관람을 끝내고 술탄 여인들의 수영장이고 물의 궁전이라 부르는  따만사리(Taman Sari)로 향한다. 별로 멀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는 조금 거리가 있다. 이곳으로 가는 길에도 자전거를 개조한 뻬짝이 옆으로 와 타라고 하지만 이동하는 동안 볼거리가 많아서 그냥 걷기로 했다. 나중에 관람을 마치고 나서 돌아갈 때 이용하기로 한다. 따만 사리는 크라톤 궁전의 남서쪽으로 약 2km 거리에 위치한 일종의 별궁이다. 이곳도 족자카르타 술탄 왕궁의 일부로 인정되어 크라톤과 함께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지금은 서민들이 이용하는 길로 바뀌어 걷지만 처음에는 수로로 배가 다니거나 또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컸던 모양이다. 이동하는 동안 보이는 민가가 있는 곳이 과거에는 모두 왕이 사용하던 정원이었을 것이다. 어디가 입구인가 하면서 왔는데 외국인이 많이 보여서 따라갔더니 동문 출입구와 매표소가 나왔다. 따만사리는 1758년 짓기 시작하여 10여년간 공사를 했다고... 이후에도 증개축이 이뤄졌고 휴식, 연수, 명상, 방어, 은신처의 기능을 갖춘 다목적용 궁전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출입문 들어가기 전에 뱀모양의 수호신 문양이 있는 계단을 올라가 보았다. 이슬람 왕국때 만들어졌지만 건축에서는 힌두교와 불교의 양식이 많이 응용된 것 같다. 이슬람건축은 꽃이나 기하학적인 무늬를 주로 사용하는데 신이나 동물의 문양이 많이 보인다. 따만사리는 힌두, 이슬람, 불교 등 여러 종교와 함께 인도네시아와 포루투칼의 문화가 복합적으로 적용되어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옥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바로 따만사리 옆으로 마을에 둘러싸여 있다. 문화재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따만사리 수영장 입구로 귀면상인 칼라(Kalar)문양이 있다. 계단을 내려 서면 수영장이 바로 보이고 서문과 마주하고 있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에는 네 구역으로 나뉘어 서쪽에 섬과 누각을 갖춘 인공호수, 중앙은 종합 목욕시설, 남쪽은 정자를 갖춘 풀장,그리고 동쪽은 작은 풀장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대규모 물의 궁전은 완공 후 지진과 전쟁으로 파괴되었고 종합 목욕시설만 1970년대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관리 상태가 좋지 않아서 조금 안타깝기는 해도 특별한 장소임에는 틀림없다. 






 건물 자체는 어디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근사하다. 채색이 벗겨지고 조금 때가 타긴 해도 그 정도는 세월의 흐름이나 앤티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영장 바닥에 잔뜩 낀 이끼와 함께 전반적으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너무 강하게 들었다. 청소라도 깨끗이 하고, 분수를 틀어 놓고 조금 관리를 하면 이곳의 스토리와 함께 꽤 유명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쉽다. 지금 가장 원형 그대로 보존이 되어 있는 수영장은 왕과 왕비, 공두들 그리고 후궁들과 여자 궁녀들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슐탄이 물놀이하는 후궁을 살펴 보았다는 건물에 올라가 보았다. 가파른 계단을 통해 3층에 올라서면 옥탑방 기분이 드는 방이 나오는데, 벽에 잔뜩 낙서가 되어있다. 한글낙서가 없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현대의 개념으로 보면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후궁들이 슐탄의 눈에 들어 팔자를 고치려고 요염있는 자태를 보여주고 기쁨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지금 내눈에는 문창살로 물놀이 하던 뒷쪽으로 일반인이 사는 집에 바로 붙어 있어 그점이 더 안타깝다.    





 건물 뒤쪽에도 앞 보다는 조금 작은 풀장이 있다. 이곳은 이미 술탄의 여인이 된 후궁들과 딸들이 주로 사용하는 곳으로 역시 술탄 이외의 남자는 근접할 수 없는 곳이다. 물론 술탄이 연회실에서 훤히 볼 수 있음은 앞의 풀장과 마찬가지다. 1층 시설은 술탄가족의 탈의실이나 휴게실로 추정되고 또한 간택된 여인들이 대기실로 화장을 하고 몸단장을 하고 교육을 받는 곳이라고 한다. 밑에 아궁이가 있고 불을 지펴서 사우나도 즐겼다고 하니 그 옛날에도 인도네시아에 사우나라는 것이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을 한 서문이다. 따만 사리는 주변의 벽과 더불어 문이 완성됨으로서 건설이 마무리되었는데 그 때가 1765년, 자바력으로 1691년이었다. 그래서 이를 기념하는 문양을 서문에 표현을 하였다고 한다. 이 부조 주위는 새들이 꽃나무의 꿀을 빨고 있는 모습이라는데 화려하게 조각되었다는 것은 알겠지만,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명문이 보이지 않는다. 이 서문을 나가면 조그마한 마당이 하나 있고 바로 동네가 이어진다. 이 일대가 모두 과거에는 왕궁에 딸린 정원이었을텐데 이렇게 흔적조차 없어져 버렸는지 정말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물의 궁전인 따만사리 서문에서 나와 150m 거리에 있는 지하사원(Underground Mosque)을 향해 이동한다. 현지인들에게는 수무르 구물링(Sumur Gumuling)으로 알려져 있다고 하는데 Sumur는 샘을 뜻한다고 한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아도 잘 알지 못한다. 현지인이 아니라 나같은 여행자였던 모양이다. 지나치는 사람이 별로 없는 한적한 마을이이서 한동안 골목길에서 헤맸다. 지하사원으로 가는 골목은 우리나라의 벽화마을을 연상하듯 화려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외국인 단체여행객들이 지나치기에 이들을 따라가면 지하사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따라가니 역시 내가 찾던 장소였다. 아마도 가이드와 함께 이동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따만 사리 서문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평지로 가다가 계단으로 내려가니 지하사원 입구가 보인다. 이 지하사원이 언제 건립되었는지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지하가 어둡기 때문에 자연채광이 들어오도록 가는 길 중간에 창문형식의 빈공간이 있다. 지하통로지만 외부에는 노출되어 마치 벙커식으로 만들어져 있고, 이슬람식 아치형의 지하 통로는 조금 어두웠다.






 모스크로 사용되던 건물이라고 하는데, 어지간해선 입구 찾기도 쉽지 않고, 출입구도 딱 하나 밖에 없어서 왠지 감옥 같은 느낌이 들었던 곳이다. 거대한 원형의 2층 건물인 모스크는 수백년을 견딜 수 있도록 단단한 벽으로 만들어졌고, 기도자의 음성이 울려퍼지도록 음향 효과를 고려하여 설계되었다고 한다. 가운데에 크고 둥근 천정이 하늘을 향해 뚫려있어 채광과 환기에도 문제가 없었다. 중앙 원형 공간에 4개의 계단이 만나 하나의 계단으로 갈 수 있도록 구조가 돼 있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어 사진 한장 남기기가 쉽지 않다.   





 1층은 여자들이 기도를 하는 장소였고, 2층에서는 남자들이 기도를 하였다고 한다. 중앙의 뻥 뚫린 천정과 2층 회랑의 창문에 의한 자연 채광 때문에 지하 모스크는 그리 어둡지 않았다. 지하 모스크가 수무르 구물링(Sumur Gumuling)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된 둥근 우물이 계단 아래쪽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깥은 많이 더웠지만 사원은 외부의 열기를 차단해 주고 통풍이 잘 되어서인지 선선한 느낌이다. 지하 모스크는 자연 채광의 신비로운 빛과 정교한 건축 기술이 만난 독특한 구조의 종교 시설이었다. 출구가 따로 없어 들어 왔던 입구로 되돌아 가야 한다.






 밖으로 나와 마을길을 걸으니 오래된 유적의 흔적들이 여기 저기 보였다. 좁은 골목길을 걷다보니 재미있게 그려진 인형들이 많이 걸려 있고 벽화도 많이 보였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손재주가 많은 모양이다. 예술품의 수준도 높고, 마을 벽화 하나도 꽤 정교하고 화려하게 그려져 예술성이 가미된 느낌이다. 근처에 바틱공예를 하는 곳을 비롯해서 그림자극 인형인 와양을 제작하는 공방이 많다고 하는데 내일 크라톤 남쪽을 다시 한번 구경올 생각이어서 오늘은 더 이상 돌아다니지 않았다.  





  마을 출구를 찾아 나가는데 이번에는 아까 지하모스크를 들어갈 때 지나쳤넌 지하통로와 비슷한 통로를 지나가게 된다. 과거 크라톤에서 따만사리로 오는 통로가 아니었을까 추정이 되는데 이 주변에는 이런 통로가 많이 남아 있는 듯하다. 이런 유물을 관리하지 않고 그냥 방치하고 있다고 생각되니 많이 안타까운 마음이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올라가고, 이런 것을 관리하면 관광자원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때까지 파손이나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니 다시 따만사리 입구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 나왔다. 날이 더워서 다시 숙소로 되돌아가서 정비를 취하고 오후에 은세공마을인 꼬따 그데 마을을 돌아볼 예정이다. 올 때는 마을 구경을 하느라 걸어서 왔지만 되돌아가는 길에는 베짝을 타고 돌아왔다. 옛날에는 자전거를 개조한 베짝이 대부분이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베짝이 많아서 빠르게 움직여 주지만 이곳 족자카르타의 공기를 오염시키는 오염원 중에 하나가 되어 버렸다. 베짝을 타고 가면서도 매연을 엄청 들여 마시게 된다. 이 또한 안타까운 현실이다. 







(20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