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서 오늘 끝으로 방분하는 곳은 간고지(元興寺)다. 간고지는 고후쿠지(興福寺에서 남쪽으로 500m 가량 떨어져 있다. 고풍스러운 나라마치(奈良町) 동네를 지나서 찾아간다. 원래는 이 일대 전체가 간고지의 절 부지였는데 지금은 민가가 들어서, 작은 음식점, 선물가게 등이 아기자기하게 자리잡고 있다. 간고지를 향해 가는 골목길도 일본식 정원 형태의 아름다운 길이다.
간고지는 아주 작은 절이다. 이 절이 세계유산이 된 이유는 나라시대의 건축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간고지는 원래 아스카에 있던 일본 최초의 사찰인 아스카데라(飛鳥寺)를 옮겨온 절이다. 수도가 이전하면서 중요한 사찰도 함께 옮겨갔던 것이다. 지금의 간고지는 나라시대의 절 규묘의 1/20도 안된다. 입장료 500엔은 내고 들어간다.
입구를 지나면 바로 이렇게 간고지의 메인인 고쿠락쿠보(極楽坊)가 나온다. 일본이 백제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은지라, 이 사찰도 옛날 백제식의 기와 등 형태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지붕으로 국보로 지정되어있는 극락방은 승려들이 생활하는 승방을 개축한 13세기의 건축물이다. 극락방 안쪽에는 안에는 본존불 대신에 지광만다라(智光曼荼羅)라는 걸개 그림이 본존으로 모셔져 있다. 내부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해서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
극락방 옆으로는 법륜관이라고 하는 수장고가 있다. 이곳도 찰영 불가라고 한다. 안쪽에 들어가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고 구경만 하고 나오는 길에 입구에서 안쪽 사진을 한장 찍었다. 후레쉬를 사용하지 않으면 유물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닌데 왜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법륜관에는 국보로 지정된 오층소탑부터 볼거리가 상당히 많았다.
석불과 석탑이 나열된 간고지의 경내 후토덴(浮図田)의 모습이다. 가지런하게 정렬되어 있는 모습이 일본인들의 청결함을 보는 듯하다. 날씨가 많이 더웠는데 후토덴 가운데에는 손을 씻을 수 있고 물을 마실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물을 마셔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그냥 손과 입을 헹구기만 했다. 절이 규모는 작아도 굉장히 아기자기한 느낌과 깨끗함을 보여 주었다.
한 때는 나라마치 일대를 모두 포함하는 대가람이 세워져 있었다고 하나 점점 크기가 줄어들어 지금은 본당인 고쿠라쿠보(極樂坊)와 몇 개의 건물이 남아 있을 뿐이다.그러나 항상 관광객들로 번잡한 도다이지(東大寺)나 고후쿠지(興福寺)보다 한적한 풍경은 간고지가 풍기는 이미지와 딱 들어맞는다. 만약 단체 관광객이나 수학여행 학생들의 물결 속에서 간고지를 보게 됐다면, 간고지의 진짜 매력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고쿠락쿠보(極楽坊) 뒷쪽으로 선실이 있다. 극락방과 같은 나라시대의 건물을 가마쿠라 시대에 개조한 것이다. 승방에 딸린 회랑 형태의 생활방이다. 이곳 역시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데, 안쪽을 들어갈 수 있었다. 내부에는 다다미가 깔려 있었고, 목조 건물 특유의 묵직함이 느껴졌다. 붓글씨를 써 놓은 편액들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상시 전시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더운 날에 건물 안쪽에 들어가니 시원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고즈넉하고 조용했던 간고지(元興寺)가 우리가 나올 무렵에 갑자기 사람들이 많이 몰려 왔다. 조금만 늦게 왔으면 조요한 절 분위기를 느끼지 못할 뻔 했다. 본당과 선실의 지붕에는 그 옛날 아스카데라에서부터 전해온 일본의 가장 오래된 지붕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해서 기와를 중점적으로 보지 못했다. 되돌아 오는 전철에서 입장권을 살 때 받은 안내 자료를 보니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역시 문화재 관람이나 여행은 알고 접하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가져 온다.
간고지(元興寺)에서 나와 고후쿠지(興福寺) 방향으로 가다 보니 사루사와이케(猿沢池)라는 인공 연못이 나온다. 원숭이 연못이라는 뜻인데, 예전에 고후쿠지의 경내에 자리하고 있던 연못이었다고 한다. 사루사와이케를 가까이에서 보면 생각보다 깨끗하지 않은 호수 물때문에 약간 실망스럽지만 그 주변 풍경은 상당히 멋있다. 아침 저녁으로 연못 주변으로 달리기를 해도 좋은 듯 해 보인다. 날씨만 덥지 않다면 연못 주변에 설치되어 있는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책을 읽어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씨는 아니다.
사루사와이케(猿沢池) 에서는 바로 고후쿠지(興福寺)로 올라 갈 수가 있다. 언덕 계단만 올라가면 고후쿠지 난엔도(南円堂)가 나오는 모양이다. 지도책을 가지고 오지 않아서 바로 옆에 있는지를 몰랐다. 2시간 동안 아들과 함께 나라마치(奈良町)와 간고지(元興寺)를 둘러 보고 오려 했는데 다니다 보니 시간이 조금 지났다. 혼자서 기다리느라 심심해 하실 숙부님을 생각해서 빨리 약속장소로 되돌아 갔다. 역시 나라(奈良)도 하룻만에 관광을 하겠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다음에 다시 한번 더 와 보기로 한다.
킨덴츠(近鉄) 나라(奈良)역으로 와서 숙부님을 만났다. 혼자서 맥주 한잔을 하시면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신다. 내가 빨리 판단을 내려서 아들과 둘이서 둘러 보고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 나라역 곳곳에 사슴 그림과 모형이 있어서 나라공원이 있는 곳이란 느낌을 확실하게 준다. 입구 앞쪽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스님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아마 도다이지(東大寺)를 만든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만...
나라(奈良) 구경을 마치고 다시 교토로 돌아간다. 20여년 전에 나라 구경을 온 뒤로 이번에 왔으니 다음은 또 20년이 지나야 와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최근 들어서 마라톤 때문에 간사이 쪽을 오는 횟수가 잦아 졌기에 머지 않아 다시 한번 나라에 올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때는 오늘처럼 하루도 안되는 시간을 투자할 것이 아니라 하루나 이틀정도 이곳에서 숙박을 하면서 구석 구석 돌아 보았으면 한다.
열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헤이조(平城)궁 터를 지나게 된다. 헤이조(平城)궁은 나라의 고도 헤이죠쿄의 헤이안 시대의 대궐 구역이자 터이다. 나라의 문화재로 도다이지(東大寺) 등과 함께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고 한다. 따로 시간을 내어서 가보지는 못하고 교토로 돌아오는 열차에서 스쳐 지나가면서 구경을 한다. 궁궐터의 한가운데로 철도가 지나가고 있는데 아마 처음에 궁권터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철도가 들어온 듯하다. 도시가 형성되어서 철도를 외곽으로 돌리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터만 남아 있던 장소에 조금씩 옛 모습을 복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다음에 나라에 오면 한번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킨덴츠(近鉄) 나라역에서 출발해서 30분 정도 걸려서 우지(宇治)시의 킨덴츠(近鉄) 오쿠보(大久保)역에 도착했다. 고모님 중에 한분이 우지시에 살고 있는데 숙부님께 이야기를 해서 나라에 갔다 오는 길에 잠시 들렀다 가라고 했던 모양이다. 아침에 출발할 때 따로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고모님 댁에 가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고모님이 우리를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시간에 맞춰서 역 앞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쿠보(大久保)역은 우지(宇治)역보다는 나라쪽에 가까이 있던 역이다. 역 앞쪽에 육상자위대 주둔지가 꽤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우지에 있는 고모님 댁에서 차한잔을 마시고 모처럼 친척들과 이야기 를 나누고 나왔다. 오랫만에 방문한 우리를 너무 환대해 주어서 고마운 생각이다. 처음 방문한 아들에게는 적지 않은 용돈까지 주어서 더욱 감사했다. 고모님께 따로 선물도 준비해 가지 못했는데... 숙부님 댁 6촌 동생들은 교토에 올 때마나 만나 보았지만 고모님쪽 동생들은 고모님과 고모부만 만나 뵈다가 오늘 처음으로 만났다. 처음 만나도 아주 오래전부터 만나 본 듯 친해지는 것은 핏줄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고모님 댁에서 교토로 돌아올때는 고모님이 차를 태워 주셨다. 미리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지만 함께 저녁을 하기로 선약이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숙부님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쿠시카츠(串カツ) 전문점인 쿠시하치(串八) 에서 이른 저녁을 했다. 쿠시(串)는 꼬치를 뜻하는데, 쿠시카츠(串カツ)는 건 꼬치에 꿰어 빵가루를 입혀서 튀긴 음식이다. 교토가 본점이 있다는 쿠시하치(串八)는 교토에도 여러 곳에 분점이 있다고 한다. 단순히 고기 고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표고버섯, 아스파라거스, 문어, 게 집게발, 새송이 버섯등 등 종류도 다양했다.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나름 맛집이었다. 덕분에 좋은 시간을 보냈다.
(7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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