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과 생활 /마라톤대회 후기

홍콩마라톤 참가후기 (2010.2.28)

남녘하늘 2010. 4. 14. 23:25

  

 새벽 4시, 모닝콜을 부탁해 일어났다. 4시간 수면과 어제 하루종일 돌아다니 피로감이 남아있으나 일어나니 기분은 상쾌하다.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없을 것 같아 어제 저녁에 준비해둔 빵과 한국에서 가져온 떡등으로 대충 아침식사를 대신 하기로 했다. 어제 하루종일 시내를 돌아다녔지만 오늘 대회에서는 기록에 욕심을 낼 생각이 없기때문에 그다지 부담이 없다. 한국에서는 홍콩의 날씨가 어떻게 될지 몰라 달리기 복장을 두어가지 준비해 왔는데 어제 관광을 하면서 날씨와 온도를 보니 무조건 반바지에 어깨걸이 셔스를 입고 뛰어야 할 것 같다.

 

TV를 켜고 날씨를 확인하니 아침기온은 23도, 낮 기온은 27도에 습도는 93%가 된다고 한다. 어제 저녁 스타의 거리에서 레이져쇼를 볼때도 낮고 짙게 깔린 구름때문에 건물 상층부가 가려져 제대로 쇼를 감상할 수 없었는데 그 여파가 오늘까지도 이어질 것 같다. 아침 기온이 23도면 오늘 달리기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을 서둘러 간단하게 먹은 후 짐을 간단하게 꾸려 지하철을 타고 출발지인 '침사츄이'로 향한다. 집사람과 함께 온 정현태 가족에게는 아침에 천천히 일어나서 골인점 주변인 빅토리아 공원 근처를 관광하고 있다가 11시 언저리에 빅토리아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한국에서의 대회 참가때와는 달리 아예 대회복장에 배번까지 붙인 차림으로 호텔을 출발한다. 이른 아침인데 마라톤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지하철에 가득하다.

 

홍콩마라톤의 우리나라의 마라톤대회와는 달리 10km 부문이 가장 빨리 출발하고 풀코스 부문이 가장 늦게 출발한다. 출발시간 간격도 무척 벌어져 있다. 출발지점은 10km 부문은 홍콩섬의 Island Eastern Corridor에서 출발하고 하프코스와 풀코스는 구룡반도 끝자락에 있는 침사추이에서 출발하는데 도착지점은 모든 부문이 동일하게 빅토리아 공원이다. 10Km 부문의 출발팀도 5개조로 나뉘어 5시 15분에 첫 그룹의 출발이 있고, 이후 순차적으로 출발해 마지막 팀은 7시에 출발한다.


출발 시간이 다르다보니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에도 10Km부문에 참가자들도 많이 만났다. 다른 짐을 소지하지 않은채 배번을 가슴에 달고 달리는 복장만으로 이동중인 달림이들이 굉장히 많아서 배번으로 어느 부문에 참가하는지를 알 수가 있다. 각 부문별의 참가연령대와 참가 조건, 경기 당일의 제한 시간 등을 세밀하게 나누는 이유는 엄청난 참석인원 때문이다. 홍콩마라톤 조직위원회는 2010년 대회에 총 6만여명이 참가했다고 했다. (10km부문은 37,000명, 하프코스는 15,000명 그리고 풀코스는 8,400여명) 1997년 첫 대회 때 1,076명으로 시작한 홍콩마라톤은 13년 만에 60배에 가까운 대규모로 성장했다. 자원봉사자 숫자 4,000여명은 어지간한 중소규모 풀코스 마라톤대회 참가자 숫자와 비슷한 규모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풀코스와 하프코스의 출발지인 침사추이엔 수많은 인파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풀코스와 하프코스는 같은 장소에서 출발하게 되는데 하프코스도 두개팀으로 나뉘어 한 그룹은 6시에 출발하고 또 다른 그룹은 6시 30분에 출발한다. 지하철역에서 출발점 옆을 지나가는데 하프참가자들이 이미 달리는 복장을 갖추고 출발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홍콩에서 가장 번잡하고 중심도로인 나단로(Nathan Road)가 차량이 완전 차단된채 생각보다 훨씬 많은 달림이로 가득하다. 어제 봐 두었던 침사츄이역 출구 홍콩마라톤 광고벽면을 배경으로 사진도 한장 찍었다.  

  

 

 

하프 참가자들의 대회 참가 준비하는 모습을 살펴보면서 출발장 주변을 조금 돌아보았다. 출발점 주변의 급수대와 화장실도 많이 설치되어
있고, 오래되지 않은 대회 연륜에도 불구하고 준비상황이 완벽해 보였다. 홍콩의 달림이들도 역시 흥겨운 축제 분위기며 많은 참가자들의 긴장감과 흥분의 분위기도 느껴진다. 풀코스 출발시간이 가까와지면서 날이 서서이 밝아왔다. 우리나라보다는 위도상 적도쪽에 가깝다보니 해 뜨는 시간도 훨씬 빠른듯하다.

 

호텔에서 나올 때 대회에서 뛸 수 있는 준비를 모두 했기때문에 츄리닝 하의만 벗어서 짐을 맡기러 이동한다. 홍콩마라톤도 출발지와 도착점이 다르기 때문에 트럭에 짐을 보관하고 결승점에 도착해서 찾아야 한다. 얼마전 싱가포르 대회에서 물품보관에 문제점이 많아 물품 찾는데 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는지라 물품보관을 하지 말고 달리는 복장으로 가서 뛰고 바로 들어올까도 생각해 보았는데 디카는 들고 뛸 수 있어도 휴대폰까지 들고 뛰기에는 문제가 있을 것 같아 짐은 최대한 줄이고 물품을 보관하기로 했다.  

 

 

옷을 맡기고 워밍업을 위해 천천히 몸을 움직이니 땀은 흐르지 않지만 본격적인 달리기를 시작하면 곧바로 땀을 많이 흘릴 것이 예상된다. 쇼핑가와 식당등 많은 매장이 있는 좁은 나단로(Nathan Road)의 출발지 주로에 풀코스 참가자만 8,000명이나 되다보니 길을 꽉 메우고도 넘치는 형편인데 자꾸 앞으로 가려는 사람들때문에 앞쪽은 발 디딜 자리도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출발전까지 뒷쪽에서 사람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다가 나 역시 적당한 위치로 끼어들었다.

 

오전 7시 15분. 남녀 사회자의 중국어인지 영어인지 알아듣기 힘든 시끄러운 멘트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풀코스가 출발되었다. 참가자는 많고 주로가 좁아 출발 후 한참동안 천천히 물흐르듯이 출발할 수 밖에 없었다. 출발한지 얼마뒤 사람에게 걸려 넘어지는 주자가 발생했는데 이런 상황을 볼 때 기록순으로 주자를 출발하는 시스템을 도입했으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달리기 능력이 다른 사람을 모두 한테 모아 놓고 출발시키니 문제가 발생한다. 많은 마라톤대회에서 이미 하고 있는 시스템인데 아직 홍콩마라톤에서는 벤치마칭을 하지 못한 것 같다.

 

많은 인원으로 초반에는 사람에 치여서 속도를 내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달리니 서서히 정리되기 시작한다. 어짜피 기록을 위해 달리러 온 것이 아니기에 주변 사람들의 속도에 맞추어 추월하지 않고 달리니 호홉은 굉장히 편하다. 다만 워밍업을 하면서 예상을 했지만 1Km도 달리지 않았는데 벌써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높은 기온보다는 습도가 높아서 땀이 더 많이 나는듯하다. 습도높고 더운날 더욱 더 욕심내지 않고 즐기기로 생각을 굳힌다.


1km를 통과하면서 시간을 체크해보니 6분40초, 출발지점의 좁은 도로와 밀리는 사람들 때문에 초반 속도가 많이 늦다. 하지만 초반에 늦게 달리는 것이 후반부에 힘을 남게 해주는 것을 여러번 경험했기에 큰 문제가 없다. 더위를 감안해서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20분 늦은 4시간 20분을 목표시간으로 정한다. 침사추이 시내를 출발한 후 도심에서 벗어나 응원하는 사람들이 전혀 없는 고속화도로에 접어드니 막막한 도로만 눈 앞에 펼쳐졌다. 응원객이 한명도 없는 도로만 보면서 달리는 것만큼 심심한 일이 없다. 독특한 홍콩의 달리기환경에 레이스가 재미 있을 줄 알았는데 고가와 언덕, 엄청나게 긴 다리, 그리고 경사가 심한 수Km에 달하는 해저터널등등. 재미없는 코스의 연속이다. 하늘 높은줄 모르고 서 있는 고층빌딩과 부산항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항구만을 쳐다보면서 달리기 시작한다.  

 


5Km를 뛰어갈 무렵 멀리서 보니 배낭을 매고 태극기를 꼽고 달리는 남녀주자가 보여 서서히 속도를 높여 따라가 보았다. 나처럼 카메라를 들고 뛰면서 좋은 풍경이 나오면 사진도 찍으면서 달리고 있는 것이 기록에 욕심은 없고 즐기러 온 주자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나역시 이번 홍콩 마라톤에도 카메라를 들고 뛰면서 즐기러온 터인지라 외국에서 만나는 한국주자에 반가움이 더해 함께 달려 보기로 마음먹고 부지런히 나아갔다.

 

얼마를 더가다보니 사진을 찍기 위해 멈춰선 한국인 참가자에게 나 역시 한국에서 참가했음을 알리고 대화를 나눠보니 목포에서 오셨다는 60대의 양인균, 최광님 부부이시다. 달리고 있는 다른 주자들에게 부부의 모습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기 어려웠을터인데 내가 사진을 찍어주니 상당히 고마워한다. 60대 부부인데 이렇게 함께 외국의 마라톤대회까지 함께 와서 달릴 수 있다는 것이 부럽고 좋아보였다. 얼마전 중국의 하문마라톤 대회도 참가했다고 하면 오늘 부부가 4시간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고 했다. 나 역시 날씨만 덥지 않았다면 4시간 안으로 들어올 계획이었지만 더운 날씨에 무리하기 싫어 대략 4시간 20분 정도의 목표로 달릴 것이라고 말하고 4-5 Km 정도를 함께 달려 주면서 사진도 찍어 드렸다. 요즘 집사람이 헬스클럽에서 달리기 연습을 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풀코스대회에도 입문시키고 외국대회에도 함께 달리는 것을 꿈꾸어도 될 듯하다.

 

주로는 계속해서 외곽도로와 터널, 교량으로만 이어진 지루한 코스가 이어진다. 아마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인구밀도가 높고 복잡한 도시에서 개최되는 마라톤 대회인지라 주민들에게 교통통제에 따른 불편함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코스 설계가 아니었다싶다. 결국 처음 1Km 정도와 마지막 2Km구간에서만 응원하는 시민을 만날 수 있었을 뿐 나머지 구간에서는 시민이나 가족이 코스의 접근이 완벽하게 차단된 도로를 달리게 되었다. 주자 이외의 사람이라곤 급수대에서 일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뿐이었다.

 

올해는 작년까지의 대회와는 달리 얼마전에 개통된 스톤 컷터스대교(昻船洲大橋)를 달리는 코스로 변경되어 작년에 비해 교량을 통과하는 구간이 훨씬 더 길어졌다. 어떻게 보면 작년 10월달에 개최되었던 인천대교 개통기념 마라톤대회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대회이기는 하지만 도로가 콘크리트 도로는 아니어서 발에 느껴지는 충격은 덜했다. 하지만 나무그늘 하나 없이 달리는 내내 응원객 하나 없이 달리는 것은 인천대회와 비슷한 느낌이다. 홍콩마라톤대회 역시 코스에 대한 점수를 주자면 아무리 후하게 주어도 70점을 넘게 줄수 없는 대회이다.  

 

 

홍콩시내를 달린다는 말에 현혹되어 홍콩시내를 달리지만 교량과 터널, 고가도로를 달린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가 홍콩시내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대회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는 코스도만으로는 이런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홍콩대회에 다녀온 사람들도 홍콩대회에 대해서 이런 코스임을 알려준 사람도 없었다. 그져 당연하게 홍콩의 마천루 사이를 달리면서 홍콩시민의 응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앞으로 홍콩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사전 정보를 미리 알고 참가해야 할 것이다.

 

다만 홍콩마라톤대회는 코스는 재미없고 몇가지 면에서 개선해야 할 내용이 보이지만 대회 운영은 확실하게 잘했다. 때문에 홍콩시민과 홍콩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엄청난 인원들이 참가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홍콩마라톤은 Standard Chartered 은행이 후원하는 지상최대의 마라톤(The Greatest Race on Earth)중 하나로 스폰서가 대형은행이어서 상금액도 많고 각종지원이 잘되어 있다. 스탠다드 차타드은행이 후원하는 4개의 마라톤 대회는 코스가 지상 최대라는 수식어로 홍보를 하는데, 해발 1,600m의 고지대인 케냐의 나이로비를 시작으로 섭씨 32도에 습도마저 높아 악명 높은 싱가폴과 섭씨 30도가 넘으면서 건조한 뭄바이, 그리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한 홍콩마라톤까지 포함해서 모두 지옥의 코스라고 불린다. 싱가폴마라톤 대회는 몇 년전에 참가해 보았고, 오늘 홍콩마라톤 대회에 참가했으니 다음에 또 시간과 여유를 만들어 뭄바이대회와 나이로비 대회에도 참가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달려 본다.

 

즐거운 상상을 해도 이미 온몸은 땀범벅, 엄청높은 습도와 바람이 불지 않아 달리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땀은 멈추질 않는다. 첫번째 다리를 지나고 차량 한대 없는 오르막의 긴터널을 지나 두번째 다리인 칭마대교(靑馬大橋 :해발 70m)가 나왔다. 칭마대교는 홍콩공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다리로 전체 길이가 2.2km로 전세계에서 가장 큰 철교라고 한다. 터널을 통과하면서 다리에 가까이 가면 바닷바람이라도 불줄 알았는데 오늘은 해변에서도 바람이 별로 없어 시원함을 느낄 수가 없다. 선두 주자들은 이미 칭마대교를 들어서기도 전에 반환점을 돌아나와 또다른 교량을 향해 달려 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홍콩에 거주하고 있는 김윤배님을 만나서 홍콩마라톤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나보다 달리는 속도가 빨라 끝까지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셔스 뒷쪽에 한글이름을 새겨놓은 한국인을 외국대회에서 만나는 것은 항상 반갑기 그지없다. 오늘 대회에서는 다른 외국대회에서와는 달리 한국인을 별로 만나보지 못했다.

 

칭마대교를 돌아와 팅까우다리(汀九橋 :구룡과 신계지를 잇는 다리)를 향하는 중간에는 정말로 바람한점 없는 움푹파인 언덕구간이였다. 해변에서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바람이 있었는데 바람한점 없는 이 구간에서는 그야말로 사우나에서 달리는 듯한 느낌이다. 어짜피 더울 것은 예상하고 왔기에 더 이상 더위에 신경쓰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달리기로 생각했다. 속도는 초반 2Km 정도 사람들이 많았던 구간을 제외하고는 Km당 6분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 중간 중간 사진도 찍어가면서 6분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으니 충분히 만족스럽다.  

 

 

몇개의 터널과 교량을 지나고 나니 이제는 고가도로가 나타난다. 당연히 터널이나 교량과 마찬가지로 길가에서 구경하는 사람이나 응원하는 사람은 전혀 없다. 보이는 것은 주자들과 도로, 그리고 고가도로에서 보이는 하늘 높이 치솟은 아파트와 몇몇 건물뿐... 급수대 자원봉사자 몇 명이 막대 풍선을 두드리며 응원해 주고 있을 뿐이다. 주로에 사람도 없고 고가도로 이외에 볼 것도 없으니 영 심심하다. 자원봉사자들의 응원에도 화답하는 주자도 드물어 썰렁한 분위기이다. 나 혼자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하고 사진도 같이 찍자고 하면서 달렸다.

 

달리는 도로 안쪽 한차선에는 차량이 다닐 수 있도록 전 구간을 테이프로 구분해 놓았는데 이 차선에는 회수차가 운영되어 있었다. 23Km를 지나갈 무렵 회수차 한대를 만났는데 이 회수차량의 천천히 움직이는데 나의 달리는 속도와 비슷했다. 차량이 조금 빨리 지나쳐 버렸으면 좋겠는데 나와 나란히 거의 6Km 이상을 함께 달렸다. 차량에 있는 사람을 쳐다보니 시원해 보이는 차량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중간에 포기하고 차량에 올라탄 사람들은 잘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부러울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달렸다. 너무 오랫동안 옆에 붙어서 가니 괜스레 달리고 있는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렇다고 내가 빨리 달려 나갈 수도 더 천천히 달릴 수도 없어 답답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온이 점점 더 올라갔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구름이 중간 중간있어 계속해서 햇볕아래서 달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습도도 높고 날씨도 더운데 햇쌀까지 내리쬐었다면 달리기가 더 힘들었을텐데 그나마 다행이다. 날씨는 더워도 급수지원은 잘 되어 있었다. 우리처럼 급수대에서 급하게 담아주는 것이 아니라 미리 컵에 음료수를 미리 담아놓고 몇단에 걸쳐 쌓아놓고 있다가 한단을 다쓰면 다음단의 물을 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급수지점에서의 조급함이 없이 보였다. 이런 점은 국내의 대형 대회에서 참고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두개를 준비했던 파워젤은 20Km 지점과 30Km 지점에서 먹었고, 급수대에 있던 바나나등을 먹었더니 달리는 도중에 허기지지는 않았다.

 

해저터널을 앞둔 35Km 지점에서는 도로 폭이 잠시 넓어지면서 홍콩의 각종 마라톤 클럽 회원들이 응원을 나와 있었다. 그 응원에 힘이 다시 솟아 오른다. 이제 해저터널과 홍콩섬만 가로지르면 완주할 수 있다고 생각과 응원에 힘입어 늦어지던 속도를 다시 한번 올려본다. 올해 들어서 달리기를 꾸준히 해 주었으면 후반부에 힘이 덜 들었을텐데 훈련부족으로 인한 막판 어려움을 절실히 느꼈다.

 

홍콩 구룡반도와 홍콩섬을 연결하는 해저터널로 접어들었다. 홍콩 앞바다에 다니는 선박들을 위해서 육지와 섬간에 다리를 만들지 않고 해저터널을 여러개 만들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통과한 해저터널도 2Km가 넘는 긴 터널이었다. 등고선을 보니 해저 30m부터 해발 20m까지를 오르내리니 만만한 언덕은 아닌 셈이다. 긴 터널이었음에도 환기가 잘 되어 있어 달리기에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 구간이어서 땀은 역시 많이 흘렀다. 이제 결승점까지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터널부터는 걷는 사람이 눈에 뛰게 많아졌다. 나 또한 걷고 싶은 생각이 어른거렸지만 참아내고 정 힘들어지면 즐겁게 천천히 달리자고 마음 먹었다.


해저터널을 차량이 아닌 내 두 발로 뛰어서 달려본다는 생각에 쉽게 통과했다. 하지만 마지막 구간의 오르막에서는 뛰는 것인지 걷는 것인지 모를 속도로 변했다.  터널을 힘겹게 통과하고 나니 드디어 홍콩섬이다. 남은 거리는 5Km 정도. 이제부터는 홍콩의 도심, 빌딩 숲 사이로 뛰어 갈 것을 예상했는데 이마저도 예상을 벗어났다. 홍콩섬의 교통체증을 우려한듯 달리기코스는 계속해서 몇 개의 고가도로와 지하도를 통해 섬의 가장자리를 통해서 이어졌다. 그래도 홍콩섬은 금융과 상업의 중심지구로 높고 화려한 건물들이 가득하고, 그 중심가를 달리지 않아도 가까운 거리에 멋진 건물들을 구경하며 달릴 수 있었다. 다만 홍콩섬에 들어와서도 3Km 가량은 역시 응원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는 도로 구간과 변두리 외곽구간을 더 달려야했다.  

 


어제 관광을 하면서 지나쳤던 컨변션센터 앞길을 통과할 무렵부터 응원객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로 오랜 시간을 응원객을 기다려왔는데 결승점 2Km구간을 남겨놓고서야 홍콩시민의 응원을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로가 큰 대로가 아닌 뒷골목 같은 코스로 이어져 있어 응원객이 많은 것은 아니였고 이곳에서부터 결승점으로 갈수록 사람들이 많아졌다. 더운 날씨에 사진을 찍기 위해서 달리다 서다를 반복하다 보니 피로감이 많이 몰려왔다.

 

남은 거리와 달리는 속도를 감안해보니 대략 처음에 마음먹었던 4시간 20분 안에는 들어갈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결승점까지 오는 동안 꽤 지루했지만 막판 시민들의 대대적인 응원과 환호의 함성소리, 박수가 다시 한번 힘을 솟게 만든다. 그 힘으로 마지막 구간을 달렸다. 나 역시 마지막 구간에서 여러장의 사진을 찍으면서 그 분위기에 온몸으로 느껴 보았다. 몇 분 빨리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런 분위기를 체험하고 간직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싶다. 해외마라톤에 참석해서 기록에 욕심을 가져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늘 카메라를 들고 뛰면서 주로 풍경과 달리는 내 모습을 담아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실천해 왔다.

 

골인점 1km를 남겨놓은 지점부터는 길가에 진입금지 펜스를 쳐 놓고 사람들의 통행을 통제하며 응원이 이루어졌다. 빅토리아 파크에서 연결된 이면도로에 접어드니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펼치고 있었다. 마라톤 대회는 대회에 참가해서 달리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이들을 응원하는 사람들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행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스를 조금 변경하더라도 많은 시민들에게도 개방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 보았지만 행사 주최자들도 얼마나 고심을 많이 했을까 생각해보니 이해도 된다. 그래도 출발점은 홍콩의 중심도로였는데 이곳도 교통을 완전 통제했었고 새벽부터 한낮까지 교통혼잡으로 이름난 홍콩의 도로 곳곳이 통제했기에 대회코스가 다소 삭막하고 응원객이 없는 도로를 달렸어도 이해해 주어야 할 것 같다.  

 

 

골인지점인 빅토리아 공원으로 들어서자 모여 있던 많은 관중들이 응원을 해 주셨다. 도심 한가운데 높은 빌딩 사이로 푸른 숲과 공원이 있다는 것이 참 부럽다. 골인지점은 폭이 다른 어떤 대회장보다도 무척 넓었다. 길이는 약 100m가 넘고, 폭도 넓게 되어 있어 한번에 사람들이 많이 오더라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규모로 되어 있어 다른 대회와는 비교가 되었다. 또한 코스의 마지막 직선 코스에는 타이틀 스폰서인 스탠다드차터드 은행 특유의 파란색과 녹색 메트가 깔려 있어 특이했다.  2일전 물품을 받으로 빅토리아 공원에 왔을 때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훌륭한 결승점을 만들어 놓았다. 결승점에 있는 많은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결승점을 통과했다. 결승점 가까이 오면서 집사람과 정현태부부가 있을까 싶어 열심히 찾으면서 왔건만 보이지 않았다. 골인지점과 행사장은 일반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해서 행사장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힘들 것으로 판단했다.


102번째 풀코스 완주. 기록은 4시간 20분 47초. 습도가 높고 더웠지만 예상했던 시간에 들어왔다. 막판 기록을 조금 더 줄일 수 있었지만 달리는 내내 사람들의 응원소리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기에 응원객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다보니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다. 하지만 늘 하는 이야기지만 기록을 위해서 해외마라톤을 온 것이 아니기에 기록은 크게 의미가 없다. 26도까지 올라가는 초여름의 날씨에 땀도 많이 흘렸지만 언제가는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대회였기에 완주만으로도 기쁘다. 결승점을 통과해서 조금 더 들어오니 집사람과 정현태부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처럼 결승점 부근에서 일반인들의 통제때문에 앞으로 오지 못하고 결승점을 지나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 오랫시간 날 위해서 기다려준 가족과 친구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나는 마라톤과 여행을 동시에 할 수 있었기에 1석2조의 효과를 얻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나를 위해서 그다지 즐기지도 않는 마라톤대회까지 따라와서 습하고도 더운 날씨에 오랜시간을 기다려 주었으니 미안할 수 밖에... 홍콩마라톤은 좁은 땅덩어리에 복잡한 교통망을 고려하면 코스가 개선될 여지는 그다지 없지만, 마라톤 참가숫자나 그들이 마라톤을 축제로 여기고 광고하며 즐기는 것을 보았을 때 앞으로도 규모가 계속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코스에 상관없이 달리기를 즐기고, 그 달리기를 즐기는 친구와 가족을 응원하고 축복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 한번의 즐거운 '마라닉'을 마쳤다. 이번 홍콩마라톤 대회의 슬로건은 " JOIN THE RACE  FEEL THE ENERGY  ( 경주를 통해 에너지를 느끼자.) "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