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보사 후배들과 속초연수원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서 문상연이를 다시 삼척에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속초연수원을 출발했다. 어젯밤에 얼마나 늦게까지 후배들과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도 체력은 상당히 좋은 편이지만, 술은 몸에 맞지 않아 많이 마시지 않아도 빨리 취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런 체력으로 평소에 술 잘먹기로 소문한 후배들과의 대작을 했으니 이미 예상된 결과였다. 정신은 말짱한 것 같은데 몸이 따라주지 못해 먼저 잤다. 후배들은 몇 시에 잠들었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으면 삼척에서 문상연의 요트도 타보고 했을텐데 오늘은 상연이가 바빠서 우리와 함께 놀 시간이 없단다. 따라서 삼척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요트를 탈 수가 없다. 삼척으로 이동중 망상해수욕장이 내려다 보이는 동해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최근들어 강릉 아랫쪽으로 가보지 않아서 오랫만에 들린 동해휴게소다. 휴게소 바로 아랫쪽에는 도직해수욕장이 있다. 아직 날이 많이 풀리지 않아 바람이 상당히 쌀쌀하다. 올해는 정말로 유난히 늦게 봄이 찾아오는 것 같다.
도직해수욕장을 배경으로 후배 조경운이와 함께 동해휴게소에서...
문상연이를 삼척에 내려주고 박웅서와 조경운이와 함께 두타산 무릉계곡으로 이동했다. 삼척과 동해에 여러번 와 보았지만 아직 무릉계곡에는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 혼자 왔으면 두타산 정상까지 한번 올라가 보았을텐데 후배들이 산에 오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용추폭포가 있는 곳까지만 다녀 오기로했다. 산행은 하지 못했지만 무릉계곡의 방문도 무척이나 좋았다.
신선이 노닐었다는 무릉계곡은 두타산(해발 1,353m)과 청옥산(해발 1,404m)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계곡으로 호암소로부터 시작하여 약4km 상류에 있는 용추폭포까지를 말한다. 신선이 노닐었다고 해서 무릉도원이라고 불리우기도 했다는데 수많은 기암괴석과 절경들이 많아서 생각보다 훨씬 좋았던 것 같다.
본격적인 산행은 삼화사(三和寺)부터 시작된다. 산 정상까지 오르기 위한 등산이 아니어서 산행이라고 말할수도 없지만 용추폭포까지 오르는 계곡도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더구나 지금 비가 내리는 시기는 아니였지만 지난 겨울동안 내렸던 눈이 녹은 물이 계곡에 가득해서 더욱 보기가 좋았던 것 같다. 예로부터 무릉도원이라 불리며 시인, 선비, 고승들이 찾아 오던 경승지였다는 것이 실감났다.
많은 기암괴석과 절경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고, 아직 봄이 오지 않아 푸른 숲의 기운은 느낄 수 없지만 그래도 맑은 공기를 마시며 기분좋게 출발한다. 삼화사를 지나 조금 올라가니 학소대가 보인다. 물이 많을 때는 이 곳 폭포가 그리도 아름답고 장관이라고 들었는데 물이 말라서 안타깝게도 바위 사이 절벽이 폭포인지조차 느낄 수가 없다.
병풍을 둘러 놓은 것처럼 보여 불리는 병풍바위와 그 옆에 장군의 풍모를 갖추고 있는 장군바위도 있다. 산을 깎아낸 것처럼 수직으로 뻗은 병풍바위 밑에는 계곡 물을 가로막은 집채만한 바위도 있다.
선녀탕을 지나면서부터 들려오는 우렁찬 물소리가 쌍폭포에서 들리는 소리다. 이름처럼 두 개의 폭포가 한 곳으로 떨어진다고 해서 쌍폭포라고 불리는데 용추와 박달령에서 각각 내려온 물이 여기서 만난다. 보통 폭포라고 불리우는 곳에 가보면 수량이 얼마되지 않거나 폭포의 높이가 너무 낮아서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쌍폭포의 모습은 다른 곳에서 보던 폭포와는 사뭇 달라보였다. 철제 난간에 기대 서서 그곳까지 퍼져 얼굴까지 와 닿는 물보라의 감촉을 음미해 보았다.
사진 찍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후배 박웅서와 함께 쌍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오늘 이 계곡에 함께 오기 위해 삼척에서 등산용 바지까지 하나 구매해서 오게 되었다. 운동하는 것을 별로 내켜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오히려 앞장서서 계곡을 따라 오른다. 아직 한기가 남아 있는 계곡이지만 산을 오르니 땀이 많이 나서 겉옷은 벗어버렸다. 폭포 주변에도 노란 생강나무 꽃이 많이 피어 있었고, 산 전체에서 생강나무 꽃을 많이 보았다.
쌍폭포에서 약5분 정도 더 올라가니 드디어 용추폭포의 위용이 나타난다. 낙수에 파인 기암괴석이 시야를 사로잡는다. 절벽에는 마치 용이 몸을 꼬며 승천하는 모양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하여 용추폭포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는데 물빛부터 이미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물이 직접 떨어지는 곳은 물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물빛이 진한 푸른색이다.
철계단을 따라 폭포 위쪽으로 올라가 보았다. 폭포 위쪽의 전망대 위로는 깍아지른 화강암 절벽으로 그 자태가 장엄하다. 용추폭포 앞산에 위치해 있는 발바닥 바위도 보인다. 철다리 위에서 윗쪽을 향해 쳐다보면 발가락 모양의 바위형상이 보인다고 하는데, 발바닥 바위는 사업성공을 상징한다고 한다. 길은 여기서 끝이 나고 이제는 다시 계곡을 따라 내려가야만 한다. 산행을 계속하려면 이 철계단이 아닌 다른 루트를 통해서 가야 하는 것 같았다.
내려 오는 길에 들린 삼화사(三和寺).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신라 선덕여왕12년(서기 643년)에 자장선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무릉반석위에 절을 세워다고 한다. 템플 스테이가 가능한 절이므로 언젠가 휴가를 내서 이 무릉계곡의 풍광도 즐기고 참선도 해 보면 좋을 것 같아 보였다.
계곡 입구에 있는 무릉반석은 그 넓이가 약1,500여평으로 약1,000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넓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라며 부단한 노력을 촉구하는 시조를 짓기도 했던 조선 4대 명필중의 한 분인 양사언(楊士彦)이 1571년 강릉부사로 부임하던 해 이곳에 와서 암각서도 구경했다.
무릉반석, 학소대, 용추폭포, 쌍폭포, 장군바위 등 수 많은 기암괴석과 절경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마치 선경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은 무릉계곡... 다음에 가족과 함께 와 보고 싶은 괜찮은 장소라고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동고속도로로 들어가지 않고 대관령 옛길로 오다가 옛날 대관령 휴게소가 있던 곳에 잠시 쉬었다. 고속도로가 새로 생기면서 북적대던 대관령 휴게소가 용도가 바뀌고 늘 차량과 사람들도 북적대던 이곳이 한참 썰렁하다. 아직 산 위라 눈이 녹지도 않았고, 훵하니 풍력발전소가 들어서 휴게소를 지키고 있었다.
평창의 김창렬원장님이 계시는 한국자생식물원에 올 때마다 가까운 곳에 있어 항상 방문하고 싶었던 방아다리 약수를 돌아오는 길에 들렀다. 이곳은 한국의 7대 약수에 해당하는 곳으로 이곳 물을 마시면 위장병, 신경통, 피부병 등에 효과가 있다는 약수다. 약간 비리면서 톡 쏘는 시원한 물맛이 특이하다고 들었는데 입구에서 약수터 까지 가는 전나무 숲길은 깨끗하면서 산림욕하기에 좋았다. 쭉쭉 뻗은 전나무 숲길에서 가슴가득 큰 숨을 내쉬어 보았는데, 습기 머금은 맑은 공기가 앞에서 들렀던 두타산 무릉계곡에서와는 또다른 느낌이다. 내 몸속 세포들이 정화되는 기분인데 가 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입구에서 조금만 걸어서 오르면 방아다리 약수터를 만날 수 있다. 몇년 전만해도 입장료를 내고 들어와야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입장료도 없다. 약수물을 떠 갈 계획이 없었는데 혼자서 마시기는 아까워 산장에서 판매하는 물통을 사서 약수를 담아왔다. 다행히 우리가 갔을 때는 조금 늦은 시간이어서 약수를 뜨러 온 사람이 많지 않아 부담없이 두통을 떠서 후배와 나눠 가져올 수 있었다. 생각보다는 약수의 양이 많지 않아 사람들이 많을 때에는 눈치가 어지간히 보일 것 같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강원도의 여러 곳을 다니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결국 평창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가기로 했다. 평창에 오면 늦 찾아가는 진부의 부일식당을 찾아갔다. 산채백반이 주메뉴로 인원수대로 산채백반을 가져다 주는데 내가 좋아하는 산채 나물이 가득나와서 이곳에 오면 언제나 방문하는 집이다.
후배들과 강릉 인근의 바우길을 걸어 보려고 했던 계획이 갑자기 변경되어 삼척을 비롯해서 다른 여러 곳을 다녔지만 이번 여정도 상당히 좋았던 것 같다. 늘 한번 가 보아야지 생각만 하고 가보지 못했던 무릉계곡도 좋았고, 방아다리 약수도 좋았다. 후배들과 갑작스럽게 추진된 여행이었지만 가보고 싶었던 곳을 방문해 보았고, 또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다.
우리나라가 그리 넓은 땅을 가진 국토는 아니지만, 여행을 다닐 때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가보지 않아서 그렇지 꽤 볼만한 장소가 많다는 것을 느낀다. 이번 여행도 무릉계곡도 그랬었고, 방아다리 약수도 생각하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다음에 이곳을 방문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꼭 추천해 주고 싶다. 다만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너무 번잡한 곳이나, 너무 걷기 싫어한다면 느끼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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