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서 출발해서 한신 우메다(阪神 梅田)역을 거쳐 히메지로 오는 여정은 3시간 30분이 넘게 걸렸고, 겨우 오늘의 목적지인 산요 히메지(山陽姬路)역에 도착했다. 일요일이 아니어서 차편만 많이 있었다면 1시간은 더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점심 먹고 나서 부지런히 움직였음에도 오후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산요 히메지역에 도착하게 되었다. 히메지 성에 입장하지 못할까 싶어서 오는 동안 마음을 많이 졸였는데 이제는 편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만 해보기로 했다. 역사에는 한글로도 히메지에 대한 안내가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산요 히메지(山陽姬路)역에서 밖으로 나오니 깨끗한 분위기의 히메지 시내가 보인다. 히메지 성으로 가는 길에 보행자 도로가 너무나 잘 만들어져 있었다. 자전거를 빌려서 시내 구경을 해 볼까도 생각했는데 성까지 거리도 멀지 않고, 그냥 두 발로 걸어보는 것이 좋을 듯 해서 성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히메지의 중심가인 오테마에도리를 약 20여분간 걷는다. 보행자 도로 곳곳에 조각 작품이 세워져 있어 걷으면서 감상하는 재미도 솔솔하다. 도로를 따라서 상가가 이어져 있는데 상가는 되돌아 올 때 구경하기로 한다.
가는 길 중간 중간에 히메지성에 관한 설명판도 설치되어 있었다. 히메지 성의 흔적으로보이는 성벽도 보인다. 과거 히메지 성의 규모는 히메지역이 있는 곳까지 였다고 한다. 중간 중간에 보이는 성벽 흔적도 그런 이유에서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한다. 히메지를 찾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히메지 성을 보러 온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물론 도시 전체를 놓고 보면 볼거리가 많이 있겠지만, 히메지에서도 히메지 성에 대한 안내와 소개에 많은 노력을 기우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성으로 가는 중간에 아기자기한 소품을 판매하는 상점과 예쁜 카페, 기념품점, 식당들이 오밀조밀하게 많이 보였지만, 나 역시 히메지 성에 입장하지는 못하더도 성을 구경하는 것이 우선이어서 성으로 계속해서 이동했다. 최소한 오전이나 점심 무렵이라도 이곳에 도착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에서 20여분동안 주변 구경을 하면서 걷다보니 히메지 성앞에 도착했다. 히메지성은 화재 및 폭격 등으로 소실되지 않아 지금까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오는 12개의 성 중 하나일 뿐 아니라, 그 새하얀 외벽으로도 유명하다. 화재를 막기 위해 외벽에 모조리 회칠을 해서 이런 새하얀 외벽이 탄생했다고 한다. 세계문화유산이자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히메지성은 1596년~1615년에 건립되었다. 1993년에는 일본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는데, 2009년부터 약 5년반 동안 개보수 공사를 마치고 작년에 다시 일반에게 공개한다고 한다. 시기는 맞추었는데 시간을 맞추지 못해 입장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성의 입구인 오테몬(大手門)은 본래 히메지성의 정문으로 고라이몬(高麗門) 형식으로 1938년 재건한 것이다. 원래는 대단히 큰 규모의 문이었다고 한다. 여기를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성주와 그 가족, 그리고 가신들이 생활하거나 업무를 보는 산노마루 이하 성이 펼쳐지는 것이다. 오테몬 앞의 사쿠라몬바시(桜門橋)는 천수각이 잘 보이는 포인트 중에 하나이다. 이름이 사쿠라몬바시인 것으로 봐서 이곳에 벚꽃이 엄청 많이 피는 모양이다.
오테몬을 지나 산노마루 지역으로 들어가면 천수각이 더 잘 보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표석도 보이고, 멋진 풍광의 히메지성 대천수각의 모습이 정면에 들어온다. 안쪽에 들어가 보지 못해 아쉽지만 이 정도만이라도 보는 것이 다행스럽다. 혼마루를 둘러싼 하얀 성벽 위로 대천수각과 3개의 소천수각이 있다. 여러 관청이 있었던 이곳이 지금은 운동장처럼 넓은 광장으로 조성되어 있다. 날씨는 많이 덥지만 멋진 풍광을 보느라 덥다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입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매표소에 가보니 입장시간이 오후 5시까지였다. 개장은 6시까지 하지만 구경하는 시간을 고려해서 입장 시간을 한시간 당겨 놓은 모양이다. 매표소를 중심으로 가 볼 수 있는 곳까지 다니면서 사진을 찍어 보았다. 가능하면 들어가서 구경을 하고 싶었는데 많이 아쉽다. 입장 시간이 지나서 인적이 뚝 끊어진 히메지 성의 히시노몬(菱の門) 입구까지만 가 볼 수 있었다. 히메지 성의 성문은 갈수록 좁아지거나 다른 형태의 문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는 적군의 침략을 대비한 것이라고 한다.
성 안쪽으로는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 성벽을 따라서 주변을 돌아 보았다. 성의 개보수 공사를 2015년에 끝냈다고 했지만 아직 성벽은 보수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일부구간 공사를 하고 있어서 성벽을 따라서 계속 가 볼 수도 없게 되어 있었다. 성벽의 변천 과정에 대해서도 안내를 해 놓았다. 천수각에 올라가지 못하니 히메지 성의 다른 모습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나처럼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이 비슷한 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천수각이 잘 보이는 곳에서 몇 장의 사진을 더 남겨 보았다. 히메지 성은 오사카 성, 구마모토 성과 더불어 일본의 3대 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히메지 성을 빼고 나고야 성을 넣기도 한다. 하지만 오사카 성과 구마모토 성은 근대에 파괴되어 재건된 것을 생각하면 사실상 일본의 성 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별칭으로 시라사기(白鷺) 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히메지성의 입장시간은 오후 5시가 마감이지만 성 둘레길은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늦은 시간까지 개방한다. 성 내부는 구경하지 못했지만 생각을 바꿔서 성 둘레길을 한번 돌아보기로 했다. 히메지성은 이곳 시민들에게 있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공원으로서 삶의 일부와 같은 공간이다. 성벽길을 따라 걸어 데이트도 하고, 숲처럼 꾸며진 둘레길을 따라서 조깅도 하는 그런 장소로 보인다. 아쉽지만 둘레길을 걸어 보기로 한다.
히메지성에서 30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고코엔(好古園). 약 1만평의 일본식 정원으로 1992년에 개원하였다고 한다. 1618년의 저택 흔적등이 남아 있는데, 9개의 크고 작은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히메지성을 배경으로, 연못이나 물의 흐름으로 연결된 지천 회유식 정원을 볼 수 있다는데, 이곳도 당연히 입장이 종료되었다. 여름철인데 조금 더 입장을 시켜 주어도 될 것 같은데 그런 융통성이 전혀 없다. 그런 원칙이 사회를 지탱해 가는 일본이라고 생각한다. 고코엔은 들아가지 못하고 고코엔과 히메지 성 사이의 해자를 따라서 산책을 시작한다.
성 둘레길을 걸으면서 먼저 든 생각은 이곳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아침에 이 길을 한번 뛰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어느 도시를 가던지 한번씩을 아침 달리기를 하곤 하느데 히메지 성 둘레길도 그만큼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었다. 오사카 성 주변도 마라톤 대회에 참석해서 주변을 뛰었는데 그 때 생각이 많이 났다. 히메지 성에서도 봄철에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고 하는데 그 시가를 맞춰서 한번 와 봐도 좋은 것 같기도 하다. 해자와 성벽을 따라서 멋진 공원이 이어진다.
해자를 따라서 걷다가 중간에 센히메노 고미치(千姫の小径)라는 히메지 성의 서북쪽에 위치한 흙 길이 있는 곳에 나가 보았다. 성곽 바깥쪽 해자 사이에 있는 좁은 길인데 단풍 나무와 벚나무가 심어져 있어 보기 좋았다. 한번 걸어보고 싶은 길인데 다시 반대쪽으로 되돌아 가야 해서 가 보지 못했다. 잠시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과 도로가 있는 곳으로 나갔다가 다시 안쪽으로 들어와서 산책을 이어간다. 숲이 너무 좋아서 어두운 느낌이 들 정도다.
히에지 성의 북쪽에는 히에지 신사가 있었다. 히메지 신사가 있는 쪽에는 시민들도 별로 보이지 않고 한적한 분위기였다. 주변에 역사박물관이나 시림미술관 등이 있고 주거지에서 많이 떨어져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니 훨씬 더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가 감도는 신사였다. 가이드가 없이 혼자서 성을 돌아다니니 궁금한 것들이 많이 있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으니 조금 갑갑하다. 대신 멋진 풍광을 두 눈에 가득 담아 왔다. 주변에 벚꽃 나무들이 많아서 봄에 오면 이 곳에도 벚꽃 천지가 될 듯하다.
산책로를 따라서 성을 거의 한바퀴 돌아서 히메지 성의 동쪽으로 돌아오니 다시 성이 가까이 잘 보이는 장소가 나왔다. 이쪽도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가까이 가 볼 수는 없었다. 주변에 높은 전주처럼 생긴 탑이 몇 개 보였는데 역시 어떤 것인지 물어볼 사람이 없어 사진만 찍고 지나친다.
히메지 성의 북동쪽 공원에 히메지 시립 미술관이 있었다. 미술관 역시 시간이 늦어서 들어가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히메지성과 어울리는 붉은 벽돌로 쌓아 만든 복고풍 건물과 함께 정원에 조각 작품들의 전시 되어 있었다. 과거 일본 육군의 병기고로 사용하던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미술관이라고 한다. 박물관 정원에 있는 조각작품이라도 보고 싶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는 문 자체가 이미 닫혀 있어, 멀리서 눈으로 감상할수 밖에 없다. 주변의 경관과 분위기가 조용하고 참 좋다.
처음 히메지성 입구쪽으로 오는 도중에 히메지 성이 잘 보이는 장소에 샤치호코(鯱 : しゃちほこ)가 공원 한켠에 전시되어 있었다. 히메지 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좋은 위치에 설치해 둔 모양이다. 샤치호코는 몸은 물고기이고, 머리는 호랑이, 꼬리는 항상 하늘을 향하고 있고, 배와 등에는 날카로운 돌기가 나와 있는 상상 속의 동물이다. 일본의 성에 가면 장식으로 많이 사용된다.
히메지 성을 한바퀴 돌아서 나오는 길에 있었던 고코쿠신사(護国神社). 이름으로 보아서 전쟁이 많았던 히메지 지역의 장군과 병사를 위한 신사가 아닐까 하는 추측만 가능하다. 들어가는 입구 출입문이 닫혀 있어서 입장하지는 못하고 입구에서 사진만 몇 장 찍고 지나쳤다. 신사 앞마당을 비롯해서 신사 전체가 굉장히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히메지 성에 입장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성 외곽을 완전히 한바퀴 돌아 보았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성 입장은 다음에 히메지에 오면 다시 시도해 봐야 할 것 같다.
(11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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