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관광일정을 고려해서 구라요시(倉吉) 역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센토팔레스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생각보다는 썩 괜찮은 호텔이었다. 어제 밤에 구라요시에 도착할 무렵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밤새도록 눈이 그치지 않고 내려 아침에 일어나보니 눈이 제법 많이 쌓여 있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내렸다. 오늘 여행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걱정은 미뤄 놓고 먹을 것을 잘 먹어야 할 것이 아닌가?
이 호텔 로비에도 돗토리에 있는 다른 호텔이나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한국드람 '아테나'의 포스터를 붙여 놓았다.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호텔이거나, 또는 이곳에 드라마에 잠시라도 나온 찰영지 중의 하나였을지 모르겠다. 지난 여름 묵었던 호텔은 아테나 촬영팀이 묵었던 숙박 장소라고 선전하면서 촬영지가 아님에도 호텔 곳곳에 아테나와 관련된 사진과 설명문을 붙여 놓았었다. 어찌되었던 기분은 좋다.
동생가족과 아들 둘은 톳토리(鳥取) 여행이 처음이라서 작년에 우리가 이곳에서 이용했던 1일 관광버스를 이용해서 구라요시(倉吉)의 곳곳을 다니기로 했다. 1인당 2천엔의 비용으로 구라요시의 여러 곳을 관광시켜 주는 것인데, 관광객이 많이 찾아와서 이곳에서 돈을 많이 쓰고 가는 것이 시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해서 시 예산의 지원이 있는 듯하다. 일정중에 점심도 주고, 각종 시설 입장료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만 해도 2천엔에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작년에 다녀 왔던 곳중 다시 가고 싶었던 미사사(三朝)온천과 아카가와라(赤瓦) 지역을 천천히 돌아보기로 했다.
나머지 가족을 먼저 떠나 보내고 우리 부부만 남아서 구라요시의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미사사(三朝)온천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밤새 눈이 엄청 많이 내려서 도로가 온통 눈밭으로 변해버렸다. 더구나 아침까지도 눈이 그치지 않아 도로가 위험해 보이고, 버스가 다니기에도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눈 속의 여행도 지나고 보면 멋진 추억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고, 눈 내린다고 차가 다니지 못한다면 모르겠으나 차만 다니면 계획된 일정을 진행하기로 했다.
주말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아니면 눈이 많이 내려 사람들이 밖에 나오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으나 시내버스에 탄 사람이 우리 밖에 없었다. 버스 한대를 통째로 전세 낸 것처럼 미사사(三朝) 마을로 이동중이다.
구라요시(倉吉) 역 앞 도로에는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온천수를 이용해서 밤새 쌓인 눈을 모두 녹여 버렸다. 이 지역에 온천이 많다보니 온천수를 이용해서 이런 식으로 제설 작업이 이루어지는 듯하다. 도시 전체를 녹일만큼의 시설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였고, 역앞에 있는 일부 구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단한 제설방법이었다.
구라요시(倉吉) 역에서 40여분 정도 걸려서 미사사(三朝) 마을에 도착했다. 미사사(三朝)란 뜻은 온천마을에서 아침을 세 번 맞이하면 몸에 있던 모든 병이 다 낫는다고 해서 지어진 마을이름이라고... 온천수가 라듐성분을 띄고 있어 만병통치의 효능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에도막부 시대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의 옛 정취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라고 한다. 지난 여름 이곳을 방문했을 때 개별적인 행동을 할 수가 없어 마을의 일부만 스쳐 지나가듯 가버려 다시 오겠다고 했던 스스로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오늘은 이곳에서 온천을 즐겨볼 생각이다.
눈발이 점점 더 거세져서 하천 너머로 보이는 이잔로 이와사키(依山樓岩崎) 료칸이 흐릿하게 보인다. 한폭의 동양화를 감상한다는 느낌도 있지만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눈 속에 발이 푹푹 빠져버려서 돌아다니기에 불편함이 생긴다.
미사사 다리(三朝橋)에서 고이다니 다리(戀谷橋)까지 약 400여m에 이르는 골목같은 온센혼도오리(溫泉本通り)는 이 마을의 풍경들이 다 담겨져 있었다. 공중 목욕탕 다마와리오유(たまわりの湯)가 있는 곳부터 시작해 민예품, 술공장, 약국, 인형가게, 구멍가게, 과자점, 자료관, 여관, 카페, 스넥바, 음식점... 짧은 거리지만 있을 것은 다 모아 놓았다. 거리는 한적하고 고풍스러우며 걷고 싶은 길인데, 오늘은 눈 때문에 사람도 보이질 않고 다니기에도 불편했다.
골목을 걸어 올라가면 야쿠시노유(藥師の湯)라고 하는 족욕탕이 나온다. 지팡이를 짚고 왔다가 온천을 하고 나면 건강해져서 지팡이가 필요없다는 문구가 적혀 있는 족욕탕이다. 지난번에 왔을 때 온천수를 마실 수 있는데 마셔보지 못해 이번 방문때에는 온천수를 마셔 보았다. 특별한 맛이 있는 것은 아니였으나, 눈 내리는 날 이렇게 동내 한가운데서 따뜻한 온천수를 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족욕탕도 있지만 이런 날씨에 족욕을 즐길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꾸미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미를 간직한 미사사 온천의 중심 골목인 온센혼도오리(溫泉本通り)는 짧은 구간임에도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에게 정겨운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는 곳이다. 여름에 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지만 역시 분위기는 좋다. 눈이 내리는 가운데 담쟁이 덩쿨이 남아 있어 진짜인지 인공인지 만져 보았더니 진짜 식물이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더 잘 꾸며 놓았다는 생각이다. 사람들이 자꾸 찾아오니 투자를 하고 있는듯한 느낌이...
지난 여름에 왔을 때에는 단체로 가이드가 안내 하는 곳만 둘러 보았기 때문에 오늘은 우리 부부가 가보고 싶은 곳을 우리 마음대로 다닐 수 있었다. 미사사(三朝)의 몇 곳을 둘러 볼 생각으로 움직였는데 다만 눈속에 발이 파묻힐 정도로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돌아 다니기가 점점 불편해졌다. 오히려 도로상에 차가 다닌 흔적이 있으면 바퀴에 눌린 곳을 밟고 다닐 수 있었는데 그마저 찾기 어려웠다. 한 호텔 앞에서는 경운기를 이용해서 제설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눈이 워낙 많이 내리니 제설작업을 하기에 역부족인듯 해 보였다.
한국에 있을 때 눈이 내리는 것을 생각하고서는 이곳에서 눈 내리는 것을 추측해 낼 수가 없다. 어느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리는지 우산에 잠시동안 쌓인 눈때문에 우산이 무거워져서 들고 서있기 힘들 정도로 많이 내렸다. 도로에 눈이 너무 많이 쌓이니 부츠나 장화를 신지 않고 운동화를 신고 돌아 다니기가 어려워졌다. 신발과 옷 사이로 눈이 들어와 동상의 우려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눈 때문에 호젓한 산책까지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택시라도 있다면 차를 이용해서 돌아다녀 볼텐데 이곳은 워낙 작은 마을이어서 돌아다니는 택시조차도 없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을 택해서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관광안내소 앞쭉이 미사사(三朝)에서는 가장 번화가이다. 버스 정류장과 상점도 있고, 진쇼(陣所) 자료관과 미사사온천의 명물인 혼욕노천온천인 미사사 가와라부로(三朝 河原風呂)도 있다. 이곳도 구라요시(倉吉) 역앞처럼 온천수를 이용해서 도로를 녹이는 시스템을 갖춰 놓았는데 눈이 워낙 많이 내리니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눈이 녹은 물이 하수관을 통해 빠져 나가야 하는데 하수관 주변에 눈이 녹지 않아 도로가 온통 물바다가 되어 버렸다. 정말 눈 많이 본다.
관광안내소옆에 공중목욕탕인 다마와리오유(たまわりの湯)은 현지인들 뿐만 아니라 당일치기 여행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이라고 한다. 미사사(三朝)에 온 목적이 온천욕을 하고 싶어서였는데 눈이 워낙 많이 내려 처음 생각하고 있었던 곳은 가지 못하고, 온천을 하고 나서 차를 타기 편한 공중목욕탕을 이용하기로 했다. 시설면에서는 공중목욕탕인지라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겠지만, 미사사(三朝)에서의 온천욕을 즐기기에는 무리가 없어 보였고 목욕료도 300엔으로 저렴하다. 옷도 락커룸을 이용하지 않으면 아무곳에서 넣어두면 되게 되어 있었다. 어짜피 가져갈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목욕을 마치고 나니 눈이 많이 내리는 것과 상관없이 기분이 한결 상쾌해졌다. 원래 계획하고 있었던 온천에는 가지 못했지만 공중목욕탕인 다마와리오유(たまわりの湯)도 괜찮았다. 더구나 내가 들어와 있는 동안 이곳에 온 사람이 없어 목욕탕 전체를 혼자서 이용하니 더욱 좋았던 것 같다. 탕 안쪽에는 여탕과 남탕 사이에 벽만 있어 벽 윗쪽으로는 뚫려 있어 여탕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목욕탕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이상하지만 혼자 있어서 몇 장 찍어 보았다.
미사사(三朝)온천을 떠나서 아카가와라(赤瓦)로 이동중이다. 원래 계획대로면 조금 더 일찍 아카가와라(赤瓦)로 이동했어야 했는데 눈 때문에 대중교통의 운행이 대축 축소되어서 계획된 시간에 아카가와라로 이동할 수가 없었다. 눈이 조금 그쳐 주었으면 좋겠는데, 장마철 하늘이 뚤린 것처럼 비가 오듯이 끊임없이 눈이 내린다. 내가 평생동안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고 오래동안 내리는 것을 본적이 없었는데 어제부터 오늘까지 원없이 보게 된다. 이동중에 주변의 산과 들은 한폭의 동양화이다. 해가 뜨지 않아 나무에 쌓인 눈이 떨어지지 않아 보기에는 좋았다.
(7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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