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기예프 파사드를 떠나 모스크바로 돌아 오는 도중의 도로 모습이다. 일요일 오후인데 우리가 가는 시내방향은 도로가 밀리지 않았지만 외곽으로 나가는 방향은 도로가 완전히 주차장이었다. 첫날 모스크바 쉐르메체보 공항에 도착해서 모스크바 시내로 들어올 때 이미 도로 체증을 한번 경험한 터라 말로만 듣던 모스크바의 체증을 느끼고 있었는데 오늘도 그 현장을 목격했다. 우리가 가는 방향이 아니고 반대 방향이어서 다행이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우리가 도착한 것은 아를료녹 호텔. 카지노가 있어 로비의 장식이 굉장히 화려하게 되어 있는 호텔이다. 모스크바 시내 중심가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는 호텔이어서 장사가 잘 안 되는 호텔이었는데 한국인이 인수해서 임대 호텔을 개설하자 한국인들이 모여들었고, 더불어 한국식당도 많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런데 장사가 잘 되니 러시아 마피아가 개입하고 압력으로 영업권을 빼앗아, 지금은 마피아가 뒤를 봐주고 있으며 명목상 미국인이 운영하는 카지노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도 러시아 마피아는 정계와 경제계에 폭넓게 자리하고 있어 지금도 마피아를 통하지 않으면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한다. 어두운 러시아의 한 단면이다. 이 호텔에 한식당과, 일식당, 중화식당이 나란히 입주해서 영업하고 있어, 한국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곳이라고 한다.
아를료녹 호텔 2층에 위치한 가야식당은 넓직한 실내와 편안한 분위기의 한식당이다. 러시아에 온지 3일밖에 되지 않아 우리나라 음식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지만, 나보다 조금 더 나이 드신 분들을 배려해서 잡은 식당이다. 외국에서 접하는 한식당에 비해서 그런데로 먹을만 했다는 평가이지만, 나는 불만이었다. 한달 정도는 한식을 먹지 않아도 얼마든지 버틸 수 있는데... 더구나 한식값이 현지음식 값보다 훨씬 더 비싸다.
식사후 우리 일행은 모스크바의 중심, 붉은 광장으로 향했다. 붉은 광장은 주변에있는 끄레믈(크렘린)궁전과 더불어 모스크바 제일의 관광명소로, 넓은 광장을 사이로 바실리 성당과 레닌묘, 국립역사박물관과 러시아 국영백화점인 굼백화점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길이 695m, 평균폭 130m의 드넓은 광장이다. '붉은'이란 단어 때문에 냉전 시기 만든 광장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고대 러시아에선 붉다는 말이 아름답다란 뜻이라고 한다. 붉은 광장 또한 아름다운 광장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진의 왼쪽으로 보이는 담벽이 끄레믈(크렘린)궁전의 벽이다.
언덕을 오르니 러시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성 바실리 성당이 화려한 자태를 보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틀 뒤로 다가온 6월 12일이 러시아의 날(Дня России)이라서 사전에 행사 준비를 한다고 붉은 광장 전체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었다. 바실리 성당과 끄레믈을 잊는 통제선을 만들어 이 이상 들어갈 수 없게 만들었다. 모스크바에 와서 붉은 광장을 밟지 못하고 가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때 독립 기념일로 불리다 지금은 러시아의 날로 이름이 바뀐 국경일을 맞아 모스크바를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에서 기념식과 축하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모스크바 크레물(크렘린)에서도 기념 리셉션이 열리고, 붉은 광장에서는 시민들이 참가하는 축하 공연이 열릴 예정이다고 한다. 옛 소련의 일원이었던 러시아는 소련을 계승한 나라로 인정되는데, 소련에서 러시아가 1990년 6월 12일 독립했다고 기념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 같다. 하여간 이런 사정으로 붉은 광장을 밟아 보지도 못했고 바실리 성당도 정면의 모습이 아닌 뒷 모습만 볼 수 있었다.
바실리 성당은 과거 200년 간 러시아를 점령하고 있던 몽골의 카잔 한을 항복시킨 것을 기념하여 이반 대제의 명령에 따라 설립했다. 성당의 이름은 당시 이반 대제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수도사의 이름 '바실리'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1555년에 착공해 1561년 완공했다. 양파처럼 생긴 8개의 돔은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고 있는데, 이반 대제는 이 성당이 완공된 이후 아름다움에 집착한 나머지 다시는 똑같은 사원을 짓지 못하도록 건축가의 눈을 뽑아버렸다고 한다. 참 이기적이고 잔인한 일이다.
들어가지도 못하는 바실리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찍고, 모스크바에 왔었다는 흔적을 남기기로 했다.
다행이 붉은 광장을 지나서 갈 수 없었지만 바실리 성당을 끼고 반대로 한바퀴 돌아가니 바실리 성당 출입문이 있는 곳까지 갈 수는 있게 해 놓았다. 하지만 성당 입장은 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바실리 성당 바로 앞에 위치한 '미닌과 포르자스끼의 동상'이다. 현재 붉은 광장으로 불리우는 끄레믈 앞의 광장은 17세기에 포르자스키 광장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영웅 미닌과 포르자스키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포르자스키는 1612년 폴란드 군을 몰아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수즈달 공국의 대공후였다. 그는 당시 무능한 황제를 대신하여 미닌과 함께 의용군을 결성하여 폴란드 군을 몰아낸 러시아 구국의 영웅이었다. 어제 다녀온 수즈달 성 옙피미예프 수도원에 포르자스키의 무덤이 있었다.
오늘부터 3일간은 붉은 광장을 찾는 관광객들은 모두 우리와 같은 처지에 놓였다. 이렇게 곳곳에 통제선을 만들어 놓고 들어가지 못하게 해 놓았으니... 관광대국으로 가려고 한다면 행사 준비를 위한 최소한의 공간을 이용해서 행사를 준비하고, 멀리서 찾아온 손님을 위해서는 개방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완전 통제를 해 버리면 주최하는 입장에서는 나중에 경호의 문제라든가 행사 준비의 편의성에서 편하기 때문이기는 하겠지만... 아직 의식까지 선진국이 되지 못한 러시아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하다.
붉은광장을 사이에 두고 모스크바 끄레믈과 마주 보는 있는, 옛날 궁전 건물같은 기다랗고 고풍스러운 건물이 굼 백화점이다. 바실리 성당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굼 백화점은 1890년에 만들어져 꽤 오래된 건물인데, 1950년대 대대적인 수리를 거쳐 러시아에서 고급 백화점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외관도 궁전같은 모양이어서 화려해 보이지만, 안쪽에 들어서니 입점 브랜드를 보아도 상당히 고급 백화점이라는 느낌이 다가온다.
굼 백화점은 최근에도 보수를 했다고 하는데 시설이 깨끗하고 현대적이다. 굼 백화점 내부는 길고 넓은 복도와 그 양쪽으로 매장이 늘어서 있었고, 그런 복도 형식의 매장이 여러 줄 있었다. 복도를 따라서 내부 공간 인테리어를 고급스럽게 해 놓아 분위기가 좋았다. 매장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공간을 만들어 놓고 분수를 설치해서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천정 돔은 유리로 되어 있어 자연 채광이 되어서 실내가 매우 밝았다. 상점만 없다면 고급 호텔에 온 듯한 느낌이다.
3줄의 긴 복도를 감싼 천장의 유리돔은 250미터나 된다는데 자연채광의 효과도 볼 수 있게 되어 있어 특이했다. 보행로를 따라 양 옆으로 세계의 고급 브랜드들이 샵이 밀집해 있어, 쇼핑나온 관광객들을 겨냥해서 영업중인 명품 백화점이란 생각이... 물건을 사러 여행을 온 것이 아니었기에 쇼핑에는 관심이 없었고, 단지 전통 있다는 이 백화점을 이곳 저곳을 둘러 보는데 시간을 보냈다. 2층과 3층에도 올라가 보았는데 화려한 인테이어와는 별개로 아이쇼핑을 즐기는 관광객은 많아도, 실제로 쇼핑을 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은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실제로 모스크바 사람들도 이 굼 백화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최고의 브랜드의 입점과 고풍스러운 실내 인테리어에도 불구하고 공무원같은 직원들의 태도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모두 비슷한 모양이다. 오히려 이곳 사람들은 근처의 쭘 백화점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굼 백화점은 붉은 광장 인근에 있어 이곳을 구경온 사람들이 한번 들러보는 관광지가 되어 버린 듯하다. 매장을 돌아다니다 나처럼 관광을 온 귀엽게 생긴 아이와 사진 한장을 남겼다.
백화점을 구경하러 다니다가 붉은 광장쪽을 나 있는 창문을 통해서 본 붉은 광장의 모습. 2일뒤 행사에 사용할 무대를 설치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행을 오더라고 이런 경우를 맞닥드리면 방법이 없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굼 백화점 바로 옆에 있는 고풍스러운 성당처럼 생긴 붉은 색상의 건물은 러시아 역사 박물관의 후면이다. 원래 오늘 우리 일행이 이곳을 관광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여러가지 사정상 들어가 보지 못한 곳이기도 하다. 이 박물관은 선사시대로부터 찬란했던 제정 러시아시대, 사회주의 시절의 소련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역사적 유물들과 황실의 보물들을 시대별로 잘 전시해 놓았다고 한다. 어느 나라에 가던지 박물관 구경부터 하는 나로서는 꼭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니 방법이 없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으나 다음에 오면 꼭 다시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
붉은 광장이 통제되어 광장을 걸어보지 못하는 바람에 오히려 이 부근의 여러 곳을 돌아 다닐 수 있어 좋았던 점도 많았다. 붉은 광장을 갔으면 보지 못했을 중심가 후면의 고풍스러운 뒷골목도 다녀 보았다. 마치 자유여행을 가서 내 마음대로 뒷골목을 누비는 듯한 여행을 잠시 한 셈이다. 어느 골목인지, 무엇하는 곳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깨끗하고, 한번을 들러서 차라도 한잔 하고 싶은 곳들도 많이 있었다. 마냥 돌아 다니면서 구경만 하는 것이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아닌데...
붉은 광장의 중심가를 빠져나와 유명한 볼쇼이 극장 쪽으로 걸어나갔다. 오페라와 발레의 공연장으로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러시아 예술의 전당인 볼쇼이 극장은 소문대로 웅장하다. 우리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가서 공연을 볼 예정이어서 모스크바에서는 공연을 보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여름에는 공연도 많이 하지도 않고, 하더라도 최상의 배우들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유명한 배우들은 여름철에는 전세계를 돌면서 해외 공연을 나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발레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공연예술로 프랑스에서 생겨났지만 정작 프랑스에서는 그렇게 크게 성공하지 못했고, 당시 제정이었던 러시아로 넘어오면서 황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이나라의 상징적인 공연예술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볼쇼이 극장 맞은 편 광장에 세워져 있는 공산주의 이론의 창시자, 칼 막스의 석상. 큰 바위를 깍아서 세워 놓았는데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슬로건이 새겨져 있다. 모스크바 광장에는 레닌과 혁명주의자 동상과 조각은 사라졌어도 멋진 카이젤 수염이 브렌드가 된 위대한 사상가 칼막스의 조각상은 아직도 서있다. 그가 살았던 19세기는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그동안 지속되어온 봉건적 사회관계가 파괴되어 혼란에 빠져, 혁명이 충만한 시기였다. 1848년 칼 막스와 프리디리히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을 통해 자본주의는 그 자체가 갖고 있는 모순과 비리, 빈부격차에서 오는 사회분열, 이를 해결하는 정치력의 한계로 기필코 망한다는 선언을 했다. 그러나 공산주의 건설이라는 웅대한 포부로 출범한 소련 공산주의는 100년의 역사를 채우지 못한 채 74년 만에 조용히 사라졌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차용해서라도 소련의 파탄된 경제를 회복하자며 러시아로 재탄생했다. 그것이 1991년의 일이고, 오늘 붉은 광장을 다닐때 본 행사준비가 러시아의 날이 새로운 출범을 알리는 기념일이 된 것이다.
(5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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