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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통영 답사여행 3-1 (진주성, 한산도) (2012.10.9)

남녘하늘 2014. 6. 15. 16:59

 

 토지주택박물관 대학에서 지난 봄에 이어 가을 역사와 문화 답사여행으로 임진왜란과 충무공의 흔적을 찾아 진주와 통영지역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올 가을 전통문화과정 강의가 '이순신과 임진왜란'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는데, 최근 독도 문제로 인해 일본과 불편한 외교사태를 맞는 시점에서 시의적절한 강의 주제였던 것 같다. 교육과정 중에 하나로서 오늘 임진왜란의 흔적을 찾아 답사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이번 답사여행은 모처럼 1박 2일의 일정으로 떠나게 되었다. 답사에 참가하려는 수강생이 많아서 버스를 2대나 배정해야 했다. 숙소문제만 해결되었다면 참가하고 싶어 하는 더 많은 참가자를 모두 받아주었을텐데 아쉽다. 100명이 넘는 인원을 한번에 수용할 숙소를 확보하지 못해 80여명에서 선착순으로 신청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오늘 일정은 진주로 내려가서 진주성을 구경하고 나서 다시 바로 통영으로 이동해서 제승당이 있는 한산도를 방문하는 일정으로 잡았다. 진주가 워낙 멀리 있는 곳이어서 아침일찍 출발했음에도 진주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다. 식사를 빨리 하고 나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진주성이다.   

 

 올 4월달에도 공공기관 가족들이 문화탐방과 진주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 내 고향 진주를 방문했었는데, 올해는 진주에 굉장히 자주 오게 되는 것 같다. 올해가 임진왜란 이후 60갑자로 7번째 맞이하는 임진년인데, 올해에만 진주성을 세번째 방문하게 된다.

 

 

 

 

 진주를 찾는 여행객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 진주성과 촉석루이다. 진주성에 들어서면 공원처럼 정갈하게 꾸며져 있는 내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성벽을 따라 나 있는 산책로와 잘 정돈된 수목과 조경이 진주성을 방문한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촉석루에 오르면

영남제일형승(嶺南第一形勝)이라는 현판이 있는데, 현판에 있는 말처럼 빼어난 자태의 자연 풍관으로 예부터 평양 부벽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치가 빼어나고 시원한 촉석루에 올라 문화해설 선생님으로부터 임진왜란과 진주성 전투에 관한 여러가지 설명을 듣고 있는 중이다.

 

 

 

 

 

 남강에는 유등축제 기간 중이어서 촉석루에서 내려보이는 남강에 각종 유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달 1일부터 14일까지 유등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가까이 가서 한번 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오늘 우리가 진주를 방문한 목적이 유등축제에 참석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멀리서 한번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유등이 남강 한가운데만 설치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강 양쪽편에 있는 둔치와 진주성 내에까지 설치되어 있다. 어두워져야 제대로 볼 수 있을 터인데 저녁에는 통영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진주성과 촉석루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진주성 내부를 관람했다. 성 내부에도 유등축제의 영향으로 관광객을 위한 여러가지 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곳곳에 조명시설을 갖춘 설치물이 있었는데 야간에는 모두 점등이 되고 제법 멋있는 광경을 연출할 것으로 보였다. 유등축제 안내도도 성안에 있었는데 규모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의암과 의가사도 관람하고 성내 곳곳을 둘러 보았다. 진주성의 촉석문은 1972년에 복원하였고, 1975년에는 일제강점기에 허물어졌던 서쪽 외성의 일부와 내성의 성곽을 복원하였다고 한다. 1979년부터는 성 안팎의 민가를 모두 철거하는 등 진주성의 정화사업을 시작해 2002년 공북문 복원 공사를 마지막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임진왜란 관련 유물 800여점을 관리하고 있는 진주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진주성의 중심부에 있는 국립진주박물관은 임진왜란의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제1차 진주성 전투, 제2차 진주성 전투가 벌어진 진주성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임진왜란을 주제로 하여 설립된 역사박물관이다.

 

 

 

 

 진주박물관에서는 임진왜란 7주갑(420년)을 맞아 진주성전투와 관련된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진주성에서는 임진왜란 때 큰 전투가 두 번 있었다. 선조 25년(1592년) 음력 10월 왜군 2만명이 침략해오자 김시민장군이 이끄는 3,800명의 군사와 민간인이 힘을 합쳐 이들을 물리쳤다.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이다. 그러나 1차 진주성전투에서 대참패한 왜군은 1593년 6월 10만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2차 진주성전투를 벌인다. 2차 전투에서는 조선군 3,800여명을 포함해 6만여명의 민·관·군·승려가 모두 학살돼 임진전쟁에 가장 처절한 패전으로 기록된다. 진주성 2차 전투는 패전의 멍에를 안고 있기는 하나 6만 민관군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애국심으로 왜군의 총공격에 끝까지 저항해 비록 패했지만 왜군을 남해안으로 철수시키고 내륙 진출 의욕을 저지한 역사적인 전투였다. 

 

 

 

 

 

 

 

 박물관 3D 입체영상관에서는 '진주대첩'과 '명량대첩'을 주제로 만든 영화가 15분씩 교차상영하고 있다는데, 오늘도 그 영화를 볼 기회가 없다. 입체영화가 아이들에게만 즐거운 체험이 아닌데, 일행들과 함께 움직여야 해서 또 아쉽게 그냥 지나쳐야 한다. 지난 4월달에 진주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이미 박물관의 대락적인 것을 모두 보았었고, 오늘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니 더욱 체계적으로 임진왜란에 대한 개념이 만들어지는 듯하다. 남은 시간 진주성의 몇 곳을 둘러보고 진주성을 나온다.  

 

 

 

 

 

 유등축제가 열리는 있는 진주는 우리가 방문한 때가 진주의 대표적인 축제인 개천예술제가 열리는 시기였다.  올해 62번째를 맞은 개천예술제는 지방예술제중에서 가장 오래된 예술제로서 내일까지 진행된다고 되어 있었다. 전야서제, 개제식, 예술경연, 부대행사 등 9개 부문에 걸쳐 58개 세부행사로 진행되는데, 유등축제와는 별개로 진행되는 행사다. 시민과 관광객에게 가장 인기있는 가장행렬도 개천예술제의 행사인데 우리의 목적이 예술제 참여가 아니어서 다음 기회로 미룬다. 내 어릴적에 개천예술제에 오면 소싸움도 볼거리었는데... 

 

 

 


 진주성과 진주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우리 일행은 통영에 있는 한산도로 이동한다. 경상남도 통영시에 속해 있는 아름다운 섬 한산도는 해상 국립공원인 한려수도 비경의 출발점이자, 그 옛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끌던 조선 수군의 최고 사령부가 자리한 유서 깊은 섬이다.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곳은 사실상 우리나라 서남해안 전역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유형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어 곳이 바로 한산도다. 한산도는 조선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영, 요즘으로 치면 해군본부가 설치되었던 곳이다.

 

 한산도를 가려면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배를 타야 한다. 한산도로 가는 길은 참으로 운치 있는 뱃길이다.

 

 

 

 

 통영항 여객선 터미널을 출발한 여객선은 금호 충무마리나 리조트 옆을 지나쳐 한산도로 향한다. 한려수도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사방에 점점이 흩어져 있고, 그 섬들로 인해 파도가 거의 없는 잔잔한 물살이어서 호수 위를 지나는 듯하다. 통영항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즈음이면 배는 사방이 탁 트인 넓은 바다의 물살을 가르기 시작한다. 아마도 이 바다가 전설적인 해전, 한산대첩의 현장이었을 것이다. 한산도는 통영과 지척이어서 배를 탄지 30분이 걸리지 않아서 한산도 충무공 유적지에 도착한다. 

 

 

 

 

 

 한산만 입구에 도착할 무렵 거북등대가 보인다.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격파한 한산도 해역에 건립되어 있는 거북등대는 한산도 역사탐방 길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충무공 관련 기념물이다. 등대가 세워진 모형 거북선의 용머리는 언제나 일본 열도를 향하고 있다. 제승당 선착장에 도착을 하니 먼저 차량들이 섬으로 올라가고 그 뒤를 따라 승객들이 내리는데 항구가 한산하고 여유롭다. 선착장에 내려서 함께 동행한 문화해설사 선생님의 한산도 유적지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들었다.    

 

 

 

 

 

 우리가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해군의 장성이 한산도 제승당을 방문하고 떠나는 듯 해군 경비정으로 보이는 배가 지나갔다. 육군의 짚차에 장성기가 걸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해군은 배에다 장성기를 걸고 있는 것도 처음 보았다. 해군 삼성 장군이면 어느 보직정도가 되는지 궁금하다. 육군이라면 군단장 계급인데... 육군과 달리 해군은 중장계급의 보직이 많지는 않을 듯 싶은데...

 

 

 

 선착장을 출발해 이충무공의 유적지 제승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선착장에서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100여미터를 걸으면 제승당 입구가 보인다. 입장권을 구입해 안으로 들어가면 움푹하게 들어온 해안선을 따라 송림이 우거져 있다. 깨끗하고 잘 단장된 길, 그리고 수려한 바다 풍경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다.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를 집필하였던 곳, 막료 장수들과 작전회의를 하였던 곳, 병사들을 단련시키던 곳, 그리고 충무공의 영정이 있는 충무사. 이들 모두를 합쳐 제승당 유적지라고 부른다. 이곳은 1592년 7월 5척의 판옥선으로 수십 여척의 왜군 병선을 달아나는 척하며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해, 학익진 진법을 써서 73척 가운데 59척은 격파한 세계 4대 해전사에 남아 있는 한산도 대첩의 현장이다. 입구에 도착하면 충무공 유적지에 대한 안내문과 제승당경내 안내도가 세워져 있어 제승당 유적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충무문을 통과하면 정면으로 제승당이, 오른쪽으로 수루가, 왼쪽으로는 사당인 충무사(忠武祠)가 보인다.  가장 먼저 충무공의 영정이 있는 사당인 충무사(忠武祠)로 향한다. 사당에는 충무공의 친필인 국보 서간첩과 독후감 병풍과 함께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있는데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지고 경건해 진다. 우리 일행은 분향을 하고 묵념과 함께 참배를 드리는 행사부터 가졌다. 묵념후 사당안쪽도 한번 둘러 보고 싶었는데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모양이다. 얼마전 아산 현충사에 갔을 때에는 사당 안쪽을 개방해서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는데 아쉬운 마음이다.

 

 

 

 

 

 충무사에 모셔진 영정은 종이품 통제사의 관복 차림이고 1978년에 이곳을 새롭게 개축할 때 정형모 화백이 그린 것이라고 한다. 매년 봄.가을에는 제사를 지내며 한산대첩 기념일인 8월 14일에는 해군작전 사령관과 해군사관생도들이 참배를 하고, 통영시는 한산대첩제를 성대히 거행하여 충무공의 정신을 이어간다고 한다. 

 

 

 

 

 승리를 만든다는 뜻의 제승당(制勝堂)은 1593년부터 1597년까지 삼도수군 본영으로 이순신 장군이 거처하면서 삼도 수군을 지휘하며 무기를 만들고 군량을 비축하던 곳이다. 총 1,491일 분의 난중일기(亂中日記)중 1,029일의 일기(日記)가 여기에서 쓰여졌고 많은 시(詩)를 남기기도 했던 곳이다. 현재의 제승당은 충무공이 떠난뒤 폐허가 되었다가 1739년(영조 15년)에 제107대 통제사 조경이 운주당(運籌堂) 자리에 중건한 것을 1976년 다시 세운 것이다. 제승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복원했는데 안에는 당시의 전투를 그린 5폭의 벽화가 벽을 장식하고 있고, 바닥에는 화포 복원품을 전시되어 있다. 대형으로 제작된 제승당 편액도 한 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전에 걸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제승당 경내는 너무나 한적하고 조용했다. 아무리 관광객이 많아도 제승당의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서 차분해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제승당 앞 마당에는 후손통제사행적비(後孫統制使行績碑) 6기를 세워 둔 2채의 비각이 있다. 이 비는 이충무공의 후손으로 통제사나 부사로 부임했던 이들의 선행을 기면 하기 위해 한산도와 거제도의 주민들이 세웠던 송덕비를 한자리에 모은 것이다. 

 

 


 수루(戍樓)는 일종의 망루로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님이 이곳에 자주 올라 왜적의 동태를 살피던 곳으로, 1976년에 고증에 의해 현위치에 복원된 것이라 한다.  수루에 올라가 바라보는 한산도 앞바다의 경치를 참 아름답고 감동이 몰려 올 정도였는데, 통영 8경 중 하나에 뽑힐만 하다는 생각이다. 수루 왼쪽으로 한산대첩의 상황을 그림으로 표현한 대형 한산대첩도가 세워져 있어 당시 전투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수루에 올라서 해설사 선생님으로부터 다시 한산대첩과 제승당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수루에는 여러가지 현판이 있었는데 이순신 장군의 싯귀 한구절이 있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 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실제로 난중일기에는 제승당과 수루가 많이 등장한다고 한다. 수루에 올라 한산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나라와 국민들을 생각하며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고뇌했을 것을 생각하니 내 마음도 조금은 아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