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산악회에서 선자령으로 신년 산행을 가게 되었다. 선자령은 겨울철에 영서지방의 대륙 편서풍과 영동지방의 습기 많은 바닷바람이 부딪쳐서 우리나라에서 눈이 많이 내리는 곳으로 유명하며, 3월초까지도 적설량이 1m가 넘기도 한다. 회사 산악회에서는 신년 산행을 눈꽃 산행으로 기획하고 선자령은 택하게 되었다. 강릉과 평창의 경계에 있는 선자령은 눈과 바람, 그리고 탁 트인 조망이라는 겨울 산행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선자령은 해발 1,157m로 높지만 대관령휴게소가 840m로 정상과의 표고차 317m밖에 되지 않고 긴 능선을 통해 산행하게 되므로 일반인들도 쉽게 오를 수 있다. 등산로는 동네 뒷산 가는 길 만큼이나 평탄하고 잘 조성되어 있어서 가족단위 산행으로도 괜찮은 곳이다.
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1,000m 이상되는 산행지는 이곳 선자령을 비롯해서 전국에 계방산(운두령,1,577m), 조령산(이화령,1,017m), 노인봉(진고개, 1,338m), 함백산(만항재, 1,572m), 백덕산(문재, 1,350m), 소백산(죽령, 1,440m), 태백산 (화방재, 1,567m) 등이 있다. 이 산들은 1,000m 이상이지만 표고차가 적어 산행하기가 비교적 수월한 곳이다. 오늘 산행코스는 대관령휴게소에서 시작해 새봉을 거쳐 선자령정상에 오른 뒤 다시 대관령 휴게소로 되돌아 오기로 되어 있다. 여건이 되면 보현사 방면으로 내려갈 계획도 있었는데 눈이 많이 내려서 경사가 급한 보현사 방면으로 가는 것이 위험할 것 같아서 일정을 변경하게 되었다. 산행거리는 약 10km이며, 산행시간은 4시간 정도 예상한다.
산행은 대관령옛휴게소에서 시작한다. 5분 정도 걸으면 대관령 기상관측소 가는 안내표지판이 있다. 여기서부터 30여분 정도 비교적 완만한 도로를 따라 걷는다. 도로를 따라 30여분 걷다 보면 선자령 등산로라는 작은 안내판이 보이고 이곳에서 왼쪽 등산로로 들어 선다. 이곳까지는 포장된 임도여서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는 것이 편하다.
대관령과 선자령(1,157m)을 잇는 5㎞ 길이의 백두대간 능선은 겨울 트레킹 코스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곳이다. 오늘은 산악회원들과 함께 선자령에 왔기에 일행들을 따라서 송신탑쪽으로 올랐지만 더 좋은 것은 국사성황당 길로 올라서 송신탑을 지나서 능선으로 오르는 것이다. 송신탑 길은 특별한 볼거리가 없고 , 이 주변에는 그래도 볼만한 곳이 국사성황당 이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출발하기 앞서 대관령 일기예보를 보니 아침 기온이 영하 20도이고 풍속은 4m/s라고 한다. 추위에 대비하여 보온장구를 철저히 갖추고 산행에 올랐다. 심한 바람이 불어 왔지만 아랫쪽에는 나무가 방패막이가 되어 큰 문제가 없었다. 전망이 트인 능선길에는 나무가 살아가지 못할 정도의 환경이다. 이곳부터 심한 강풍에 곤혹을 치러야 했다.
새봉 전망대에 오르니 많은 인파들이 조망을 감상하고 있다. 오늘 날씨는 춥지만 조망은 좋은 편이어서 동쪽편으로 멀리 강릉시내와 동해바다가 보였다. 전망대가 있는 곳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장갑을 벗으면 동상에 걸릴 것처럼 순식간에 손이 곱아버린다. 사진 한장 찍기가 쉽지 않다. 날씨가 추우니 카메라 배터리가 잘 작동하지 않기도 한다. 몸이 휘청거릴정도의 세기로 칼바람이 몰아부쳐 얼굴도 살을 에이는 듯하다. 이곳 전망대는 대관령과 선자령의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다.
날이 맑고 눈길 산행을 편하게 할 수 있어서인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선자령을 찾았다. 산행객들이 한줄로 줄서서 앞사람을 따라가는 형국이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는 눈이 다져져서 잘 모르겠지만, 길가 옆으로는 수십cm 이상 눈이 쌓여 있는 듯하다. 눈이 많은 태백산처럼 바람에 눈이 날려 가버린 언덕과 정상 빼곤 흙이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좁은 길에서 사람들과 교차할 때가 가장 힘들다. 친절하게 비켜주다 보면 한 발이 눈속에 푹 빠져 버리거나 굴러 떨어질 수 있어 조심해야 했다.
정상 아래쪽에는 높이 80m의 타워에 직경 9m의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설원 위에서 힘차게 돌아가고 있어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긴다. 이 풍력발전기가 강릉시 전력소비량의 60%를 담당한다하니 대단한 발전량이다. 우리나라 업체인 유니손이라는 중소업체가 설치했다고 한다. 얼마전 베트남에 갔을 때에도 강홍원선배님 공장에서도 한라중공업에서 풍력발전기와 관련된 제품을 만든다고 했는데, 이제 우리나라도 어떤 분야에서든 세계적인 제품을 만들고 있는 듯하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 계속해서 풍력발전기를 만나게 된다.
선자령은 바람이 강한 산이다. 오늘처럼 겨울철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시사철 바람이 많고, 특히 겨울에는 바람이 뺨을 칼로 베어내는듯 하여 칼바람이 분다. 동해에서 올라오는 바닷바람과 주변을 빙둘러 싸고 있는 산골짜기 바람까지 합하여 몰아치기 때문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바람이 강할 때가 많다. 특히 풍력발전기가 있는 정상 부근은 탁트인 개활지여서 방패막이 될만한 언덕은 커녕 나무도 없다. 바람이 많기에 풍력발전기가 세워져 있는 것이다.
풍력발전 단지를 800m 쯤 더 걸어 올라가야 정상이 나온다. 사진으로는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고, 바람이 얼마나 거세게 부는지 알 수 없지만 엄청나게 추워서 빨리 정상을 밟고 돌아가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사진으로 보기에는 파란하늘에 하얀 풍력발전기가 여유롭고 조화로워 보이지만 실제는 두터운 장갑을 끼고도 한기를 느낄만큼 추웠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풍력발전기도 소리를 내면서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데 사진으로는 그 느낌을 알 수가 없다. 날은 추워도 산행객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평창 대관령면 횡계리와 강릉 성산면 보광리를 잇는 고갯길로 예전에는 대관산 또는 보현산이라 불리웠고 둥그스럼하다하여 만월산이란 이름도 가지고 있다. 선자령은 선녀들이 선자령 자락에 내려와 뛰어 놀다 하늘로 올라갔다는 설에 따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 온다. 선자령 정상 풍경은 자칫 실망할 정도로 평이하지만, 360도로 탁 트인 조망으로 인해 맑은 날이면 동해와 강릉시내가 눈 안의 들어온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발왕산, 능경봉(1,123m)· 고루포기산(1,238m), 서쪽으로 계방산, 서북쪽으로 오대산(1,422m), 북쪽으로 황병산(1,328m)이 이어진다.
이날 선자령 정상 부근에는 초속 5m에 이르는 강한 바람이 불었다. 정상 부근의 온도는 영하 10도 아래도 내려갔는데, 바람때문에 체감온도는 영하 20도 이상이었던 것 같다. 선자령은 정신을 빼앗길 정도로 황홀한 설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지만 급변하는 날씨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겨울 바람의 초속이 1m 빨라지면 체감온도는 0.6도씩 내려간다. 사람의 체온이 34도로 아래로 내려가면 근육이 굳어지면서 몸이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31도가 되면 의식을 잃어 버린다. 저체온증을 특히 조심해야 하는 것이 겨울산행이다. 정상에서 사진 한장만 남기고 바로 바람이 덜 부는 곳을 찾아 이동한다.
선자령 정상은 바람도 많고 불고 강하게 불어 바람이 없는 아랫쪽으로 조금 이동해서 점심을 먹었다. 넓은 공간이 확보되지 않아 몇사람씩 모여서 간단히 식사를 마쳤다. 그래도 바람을 피해 밥을 먹고 나니 한결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식사 이후에는 올라 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 왔기에 따로 사진을 찍지 않았다. 사진 찍은 것 자체가 상당히 고역스러운 일이였기 때문이도 하다. 너무 추워서 빨리 차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다행이 아랫쪽으로 내려 오니 숲이 바람을 막아주고 따스한 햇살이 비추어 한결 졸아졌다. 대관령 주차장으로 내려와서 오늘 선자령 산행을 마쳤다. 다음에는 따스한 날에 한번 더 와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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