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여행에서 사누르 해변을 방문해 산책하면서 사누르 해변가에 호텔을 잡고 여유있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에 이번에는 사누르에 호텔을 예약하고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지난번 발리를 방문했을 때에도 숙소가 사누르였지만 해변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사누르였다. 이번에는 해변에 접한 호텔로 정하니 해변에서 가까와 바닷가에 나오는 것이 편하다. 꾸따나 짐바란 비치가 일몰로 유명하다면, 사누르 비치(Sanur Beach)는 일출로 잘 알려진 곳이다. 그리고 사누르 지역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활기차고 다소 번잡한 꾸따나,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스미냑 같은 지역과는 정반대로, 조금은 정적이고 차분한 느낌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일출이 유명한 이곳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일출을 보려고 사누르 해변을 찾았다. 호텔이 해변에 있어 몇 걸음만 걸어나오면 바로 해변이다. 열대지방이지만 해가 뜨기 전까지는 선선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발리는 1년내내 여름이지만, 7~8월은 바다 건너 호주가 겨울이라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서 조금 덜 덥다고 한다. 5월의 아침이라 아직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지는 않았지만 바닷가여서 시야가 트여있고 신선한 아침의 느낌이 좋다.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보고 싶었는데 오늘 일출은 구름이 많아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질 않았다.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자연의 현상을 사람들이 어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금은 아쉽기는 하지만 해뜨는 모습을 처음보는 것도 아니고 큰 의미는 두지 않기로 했다. 해뜨는 해변에 앉아 기도하고 있는 모녀의 모습이 하도 경건해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사진을 한장 남겼다. 이번 여행에서 사원을 자주 방문하다보니 발리 사람들의 기도하는 모습을 자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참으로 경건하고 성심성의껏 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는다.
해뜨는 모습을 구경하고 나서 아침을 먹기전에 사누르 해변을 산책했다. 해변은 자전거나 걷기 편하도록 길이 잘 꾸며져 있어 나무가 심어져 있어 햇빛을 피하면서 천천히 2시간 정도 산책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해변에는 선베드 갔다 놓고 해변에서 맛사지 호객하는 로컬 맛사지사들도 있다는데 이른 아침이라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간단하게 음료나 식사를 할 수 있는 카페가 많이 있었는데,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 시켜놓고
느긋하게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멋진 휴가가 될 듯하다.
호텔로 돌아와서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호텔에서 가까이 있는 르 마이어 뮤지엄 (Le Mayeur Museum)을 찾았다.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에는 너무 일찍 방문해서 아직 문을 열지 않아서 그냥 지나쳤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1932년부터 이 곳 사누르에서 30여년간 살았던 벨기에인 화가 르 마이어는 레공댄스의 명인인 아내와 발리를 사랑하여 평생 그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바다가 보이는 작은 목조가옥을 아뜰리에로 삼아 그린 90여점의 작품이 전시된 곳이 바로 르 마이어 뮤지엄이다. 박물관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미술관이라고 봐야 한다.
이색적인 건 전시실이 발리 전통가옥의 방안이어서 신발착용이 되지 않아 에 맨발로 들어가 관람을 하게 되어 있었다. 방바닥의 시원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주거공간을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기에 그가 쓰던 가구와 공예품들이 작품과 어울려 있는 가운데 그림을 감상할 수 있게 되어 있다. 90여점의 작품이 집안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데, 그의 작품은 레공 댄스로 유명했던 발리니스 아내와 그녀의 친구 두명이 주 모델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 발리 여성들은 거의 토플리스 상태로 지냈다는 것을 그림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다른 발리의 전통그림을 보아도 그런 모습이 많이 보였는데 자기 부인을 모델로 그린 그림에서도 그런 것을 보면 불과 100년도 되지 않은 과거에는 그 모습이 일반적이었던 모양이다.
미술관 혹은 뮤지엄으로 불리운다면, 어느 정도의 규모를 연상하기 마련인데 이곳은 그저 조금 넓직한 정도의 주택 규모에 불과하다. 벨기에 브뤼셀 태생의 화가 르 마이어(Le Mayeur : 1880-1958)가 1935년 발리에 발리의 전통 춤인 레공댄스를 추는 거의 40살이 어린 니 뇨만 폴록(Ni Nyoman Pollok)을 만나 결혼하고 생활하면서 작품활동을 한 곳이 이 뮤지엄이다. 지금은 인도네시아 정부 소유로 되어 있다고 한다. 비교적 아침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그런지 다른 관람객이 거의 없어서 이곳 저곳을 여유있게 돌아볼 수 있었다. 미술관으로 쓰이는 집 외벽에는 힌두의 설화가 부조로 되어 있어서 그 당시에도 상당히 잘 지었던 집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정원의 한쪽 작은 공간에는 르 마이어와 부인 니 뇨만 폴록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이 조금 협소하고 산만한 느낌이었지만 당시의 발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이다.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크기로 압도하는 문턱높은 미술관이 아니라 그냥 현지가옥의 벽에 캔버스를 전시한 참으로 만만한 작은 규모의 개인 기념 미술관이었다. 집을 잘 꾸미고 가꾸어 놓아서 정원을 둘러 보는 것도 느낌이 좋다. 뮤지엄을 들어오는 입구가 좁고 현지인이 거주하는 가옥처럼 해변의 길가에 자리잡고 있어 자칫 간판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울 듯하다. 이른 아침 좋은 시간을 보낸 듯하다.
르 마이어 뮤지엄을 나와 호텔로 되돌아 오면서 다시 사누르 비치를 걸었다. 사누르는 꾸따와는 반대쪽에 위치한 곳으로 발리에서는 조금 오래된 휴양지이고, 한적한 것을 좋아하는 나이든 서양사람들이 많이 눈에 띠고 동양인들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해가 뜨는 쪽의 해변이어서 아침부터 햇살은 강하지만 해변을 따라서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 산책을 하는데에 전혀 문제가 없다.
(18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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