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작은 왕국 말라카는 무역을 하는 국가를 상대로 세계적인 항구로 성장했다. 말라카 사람들은 해상 교역 활동에 관련된 '말라카법을 만들어 교역 기반을 다졌으며, 이슬람교로 개종해 멀리서 온 아랍 상인들의 호감을 샀다. 하지만 말라카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건국 백여년 만인 1511년 포르투갈에 의해 망하게 되었고, 100년이 넘도록 포르투칼의 지배를 받았다. 그 다음에는 동인도회사를 앞세운 네덜란드가 200년을 넘게, 그 이후에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주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게다가 근세에는 일본까지 이 곳을 식민지화 했었다. 1957년 말레이시아가 독립할 때까지 말라카는 유난히도 다른 나라에 휘둘려 온 왕국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 흔적이 말라카 도시 곳곳에, 그리고 사람들의 문화에 남아있다. 중국색 짙은 사원과 거리, 이국적인 음식, 이슬람 사원, 서양의 교회나 성당, 마치 세계 문명의 축소판으로 느껴질만큼 다양한 색채를 간직한 말라카는 2008년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캄풍 클릿 모스크 (Masjid Kampung Kling)를 지나서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라고 하는 쳉훈텡 사원( Cheng Hoon Teng Temple)을 방문했다. 15세기에는 명(明)나라의 사신이 말라카를 찾아왔고,1405년부터 33년 사이에 명나라 정화(鄭和)의 선단이 동남·남아시아의 각지를 방문하자 그 보급 기지가 되어 창고를 설치했다. 이 때문에 말라카는 국제무역항이 되었고 각지에서 상선과 상인이 모여 들었다. 쳉훈텡 사원은 전형적인 중국 사원으로, 1646년에 명나라 장수 정화(鄭和)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하다. 말레이시아의 가장 오래된 중국 사원인데 모든 재료들은 중국에서 공수해 온 것이라고 한다. 중국인들이 말레이 반도에 정착하기 시작할 무렵 지어진 사원이다.
이 사원에도 들어가는 입구에 향을 파는 노점상들이 많이 있었는데 사원 안쪽으로 들어가니 특유의 향냄새가 진동한다. 중국사원이나 사찰에는 왜 이렇게 향을 많이 피우는지 알수가 없다. 쳉훈텡 사원(Cheng Hoon Teng Temple)으로 부처님을 모시는 사찰이 아닌 유교와 도교를 숭배하는 사원으로 어민들의 수호신으로 받들어지는 조상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건물 곳곳에는 도자기와 유리 등으로 정밀하게 조각이 되어 있어 중국 사원 특유의 양식미가 돋보인다.
쳉훈텡 사원을 구경하고 나서 다시 존커워크(Jonker Walk) 야시장 들어가는 입구쪽에 BOON LEONG 체육관이 있었다. 체육관 앞에는 Dr. Gan Boon Leong이라는 말라카 출신의 보디빌더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 사람이 미스터 유니버스, 미스터 아시아, 미스터 말레이시아, 미스터 말라카 등의 타이틀을 획득했었다고 한다. 동상 설명문에 Father of bodybuilders of Malaysia 라고 적혀있었다. 동양인으로서 Mr. Universe가 되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인데 엄청 노력을 했던 모양이다. 말레카에 온 기념으로 동상 앞에서 포즈를 취해 본다.
복잡한 존커워크(Jonker Walk) 야시장과 차이나 타운쪽으로는 아예 가지 않고 차이나 타운을 크게 돌아서 이동해 보기로 했다. 붐비는 사람보다는 주변의 풍경을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삼거리가 있는 곳에는 갤러리가 있어서 한번 들어가 볼까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그림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없어서 그냥 지나쳤다. 주변에 있는 집들은 오래 되었지만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었고, 집 주변에 심어 놓은 나무에서는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 있기도 했다. 망고가 엄청나게 많이 열려 있는 나무가 신기해서 사진 한장을 남긴다.
어제 오후에 와 보았던 현지인의 토요시장 자리에 다시 와 보았더니 오늘은 거리가 깨끗하다. 혹시 존커 야시장처럼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 장이 서는가 싶어서 와 보았는데 토요일만 열리는게 맞는 모양이다. 거리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 한산하다. 어제 근처에 식당이 많이 보어서 혹시 갈만한 곳이 있는지 살펴 보았다.
Trip Advisor 등 여러 곳에서 말라카의 맛집으로 이름나 있는 Pak Putra 식당에 근처에 있었다. 이 시갇은 오후 5시에 문을 열고 새벽 1시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길거리에 파라솔 의자랑 테이블 놓고 운영하는 식당을 말레이시아에서 마막이라고 한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좋은 자리를 선택해서 앉았는데 조금 지나니 그 많던 자리가 금방 차 버렸다. 지역 주민들인지 아니면 도시에서 온 말레이 관광객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이 만들어 내는 그 여유로운 분위기가 너무나 좋았다. 관광지 같아 보이지 않고, 정말 말레이시아 한 동네에 우리가 놀러 온듯한 기분이 들어서 더 좋았다.
이 식당은 탄두리 치킨이 가장 유명하고 갈릭 더블 치즈 난(Naan)도 추천 메뉴라고 한다. 식당 이름도 Pak Putra Tandoori & Naan Restaurant이라고 되어 있다. 주문하고 15분 기다리니 주문한 갈릭 더블 치즈 난과 탄두리 치킨이 나왔다. 내가 워낙 커리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먹어보니 남들이 추천한 이유를 알 수 있을 듯하다. 음식을 조리하고 만드는 모습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도록 오픈되어 있었다. 이 곳에서 일 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밝고 즐거워 보여서 더욱 좋았다. 좋은 식당을 알아 놓았고 다음에 다시 말라카를 방문해서 찾아 왔으면 좋겠다. 물론 가격도 엄청 저렴하다.
다시 말라카 강이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강으로 나오니 까사 델 리오 호텔 맞은 편으로 보이는 말라카 리버 휠이 보인다. 우리나라 물레방아처럼 보이는데 ,말라카 강에 물이 부족할 때 바닷물을 위쪽으로 올려주는 용도라고 하는데 조그만 물레방아 하나로 얼마나 물을 퍼 올릴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말라카의 유적중 하나인데 이 말라카 리버 휠 뒤쪽으로 붉은 벽돌들로 이루어진 옛터도 있다. 사람들이 물레방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엄청 몰려 있었다. 그냥 멀리서 보아도 볼만한데...
강변을 따라 산책을 시작했다. 아기자기한 건물과 강이 어울려 참 멋있다. 개인적으로 말라카의 베스트 명소를 뽑으라고 하면 말라카 강을 따라 늘어선 강변의 모습이다. 고압적인 높이의 건물이 아닌 친근한 사이즈의 건물과 매우 깨끗한 산책로. 동남아시아 국가를 떠 올리면 약간은 지저분함을 연상하는데, 말라카는 그런 편견을 깨준 곳이었다. 날이 조금 덥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습하지 않아서 견딜만했다. 다른 동남아국가는 그렇게나 습한데 말레이시아는 습도가 낮은 이유가 적도에 더 가까워서 그런지 모르겠다. 알록달록한 가게들을 따라 걷는 재미가 솔솔하다.
강변으로 늘어선 건물들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어떤 곳의 벽화는 회색빛 도시를 환하게 바꿔주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어줍잖은 솜씨로 도시의 미관을 헤치는 주범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하지만 길위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벽화들은 적어도 분위기를 바꾸는 역할을 했다. 말라카 강변의 진짜 볼거리는 바로 화려한 색과 그림으로 치장한 벽화 건물들이다. 말라카의 전통과 문화를 보여주는 그림들부터 피카소와 바스키아를 꿈꾸는 예비 작가들의 작품들까지 다양하다. 조금 엉성한 그림들도 있지만, 강변의 분위기를 살리는데는 한몫 단단히 했고, 관광객들에겐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하지만 정작 이 강변의 집주인들은 제멋대로 그려진 벽화를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멋진 풍광을 즐기면서 다니기는 하지만 더운 말라카의 오후에 강변을 산책하는 것이 더워서 쉽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산책하는 사람이 많이 않은 이유가 날씨가 덥기 때문일 것이다. 더운 시간에 걷는 것보다는 새벽에 다른데 돌아다니지 알고 말라카 강변을 산책하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 그냥 사진을 찍으면서 다니겠다는 욕심에 좋은 사진은 많이 찍었지만 더위때문에 고생을 조금 했다. 아침 일찍 강변을 따라 조깅을 하면서 구경하고 땀 흘리면 호텔로 돌아가서 시원하게 샤워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일 듯하다.
가끔씩 지나가는 리버 크루저를 보며 여유로운 산책을 이어간다. 낮에 산책을 추천하고 싶지 않은 것이 단지 더운 날씨때문만은 아니다. 사실은 말라카 강물은 생각보다 깨끗하지는 않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은 괜찮지만 가까이에 보면 깨긋한 물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아직 이곳 사람들이 환경문제를 생각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한 모양이다. 그럼에도 더러운 강물이 용서되는 강변 풍경이다. 산책로는 생각보다 잘 조성되어 있다.
중간 중간에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여러개 보이는데 베니스의 리알토 다리와 닮은 다리가 나온다. 크기만 조금 작고 건물 사이로 만들어지지않았을 뿐 형태가 거의 비슷하게 만들어 놓아서, 누가 보아도 리알토 다리를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리알토 다리 뒷쪽으로는 조그마한 크기의 대관람차도 보인다. 강변에 놀이공원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지나치면서 보니 바이킹도 보이고 여러가지 기구가 있는 작은 유원지가 있었다.
리알토 다리처럼 생긴 다리를 지나면 말라카에서 보기 힘든 고층 주상복합건물인 더 쇼어(The Shore)가 나온다. 얼핏 보아도 말라카 일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이 건물 상층부에는 말라카가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어제 타밍 사리( Taming Sari) 전망대에서 시내 야경을 구경했기 때문에 전망대에는 오르지 않았다. 더운 날씨에 강변을 걸어 오느라 대형 쇼핑몰에 들어가면 시원하게 쉴 장소가 있으리란 생각에 쇼핑몰에 들어갔다.
쇼핑몰은 무척 잘 꾸며 놓았고 예상했던 것처럼 시원했다. 아이스크림을 한개씩 먹으면서 땀을 식혔다. 멋진 강변을 따라 걸으면서 벽화도 보고 구경도 잘 했지만 더운 날씨가 복병이다. 집사람이 시원한 곳에 들어오더니 이제 충분하게 걸었으니 나머지는 유람선을 타고 구경했으면 한다. 어제 오늘 강변을 많이 돌아다녔기에 동의하고 근처에 있는 리버 쿠르즈 탑승장에서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더 쇼어 건물 1층에서 서울가든이라는 잘 꾸며 놓은 한식당이 보이는데 상호만 보아도 반갑다.
(10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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