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다른 때보다 일찍 휴식을 취했더니 새벽 일찍 일어났다. 잠을 다시 더 청하기도 시간이 어중간해서 동이 트지 않은 새벽 시내 산책을 나섰다. 이곳에서 아침 해가 뜨는 것을 구경하겠다는 생각에서 아직 피곤해하는 집사람을 깨워서 함께 나왔다. 말라카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고 알려진 세인트 폴 교회가 있는 언덕에 올라가 볼 생각이었다. 숙소에서 네덜란드 광장으로 가는 길에도 차한대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시간이다. 말레이시아는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늦은데 현지 시각 5시 30분인데도 많이 어둡다. 말라카에서 가장 복잡한 장소가 이렇게 조용하고 한적할 수도 있다는 것이 조금 어색하다. 네덜란드 광장 앞쪽에도 여행객 한 명 보이지 않는다. 너무 빨리 숙소에서 나온 모양이다.
조금은 어두운 길을 올라서 세인트 폴 성당(St. Pouls Church)에 올랐다. 아직 시내가 어둠에 잠겨 있어 날이 새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해뜨는 시간을 가늠하지 못하고 너무 서둘러 나왔음을 인정했다. 세인트 폴 성당은 말라카 해협이 보이는 언덕 위에 포르투갈이 1521년에 지었다고 한다. 입구에는 신부님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가톨릭을 반대하던 네덜란드나 영국군의 공격에 의해 파괴되어 지금은 폐허처럼 교회벽만 일부 남아 있다. 어찌되었든 해가 뜰 때까지 이곳에서 있다가 다른 곳을 구경해야 할 것 같다. 다른 곳도 너무 어두워서 돌아다니기에도 이른 시간이다.
해 뜨는 것을 보려고 일찍 나왔는데 옅은 구름이 있어서 결국 해 뜨는 것을 보지도 못한 채 날이 밝았다. 어두컴컴한 세인트 폴 성당에서 거의 40-50분 정도를 기다린 듯하다. 피곤해 하면서 불평하는 집사람을 달래 가면서 오늘 하루 재미있는 일을 많이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날이 훤해지면서 주변도 보이고 언덕 아래 사람들도 조금씩 돌아다는 것이 보인다. 부지런한 새가 모이를 많이 먹는다고 했는데 너무 부지런히 움직이다가 핀찬만 받았다. 언덕에서 산티아고 요새 (Porta de Santiago) 방향으로 내려가 본다.
산티아고 요새로 내려와서 나처럼 아침 산책을 나온 현지인을 만났다. 달리기 복장을 하고 있어서 물어 보았더니 역시 마라톤을 즐기는 쿠알라룸푸르에 살고 있는 아멜리아(Amelia Ang)라는 현지인이다. 달리는 사람을 만나 반가와서 인사를 했더니 말라카가 고향이고 친정에 다니러 왔는데 아침에 달리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을 좋아하고 스마트폰도 삼성 것을 사용한다고 이야기한다. 아침은 날씨도 덥지 않아서 바닷가와 숲이 있는 곳은 달려도 좋은 듯하다.
산티아고 요새 앞쪽으로 말라카 왕국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에 의해 1985년에 복원된 말라카 술탄 팰리스(Malacca Sultanate Palace)가 있었다. 왕궁 내부는 문화 박물관으로 공개되고 있는데, 말라카 왕국의 여러가지 상황을 디오라마로 제작해 놓았고 의상이나 장식품들이 다수 전시하고 있었다. 2012년 방문했을 때 술탄이 주재하는 회의 장면을 밀랍 인형을 통해 그대로 재현한 장면이 인상 깊었다. 제법 볼거리가 있었던 기억인데 개장 시간이 10시라고 한다. 아직 박물관 개장 시간이 되지 않았지만 현지인들의 아침 산책을 위해서 무료로 개방하고 있었다. 관리인이 들어가 보아도 좋다고 한다.
왕궁은 옛날 우리 조상처럼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지은 목조주택으로 중후한 멋이 아름답다. 박물관을 입장을 하지 못하지만 박물관 앞쪽은 공원으로 꾸며 놓았는데 정원을 걷는 느낌이다. 아침 일찍 산책을 나온 현지인들이 보이고, 이른 시간부터 정원을 관리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관리인들은 날이 덥기 전에 일을 끝내려는 모양이다. 야외 정원 끝 쪽에는 초등학교가 붙어 있었고, 분수대와 기념탑도 보인다. 잘 꾸며진 야외 정원을 한참 돌아다니고 나서 다시 왕궁을 나왔다.
왕궁에서 나와 다시 산티아고 요새(Porta de Santiago)로 향한다. 새벽 너무 이른 시간에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아 사진을 부탁하지도 못해서다시 사진이라도 한장 찍을 생각이다. 이 요새는 16세기 초 이곳을 점령하고 있던 포르투갈 군이 네덜란드 군대의 침략에 대비해 세운 요새로 당시에는 산을 에워 쌀 만큼 거대한 성채였다고 한다. 하지만 네덜란드군과 영국군이 각각 침공 시에 많이 부서졌고, 1670년에 다시 복원 되었지만 관리가 되지 않아 관문만 남아있다. 주변에는 당시 사용했던 구형 포들을 전시하여 요새이었음을 알려 준다.
산티아고 요새에서 뒤쪽으로 다시 언덕을 올라 세인트 폴 성당으로 향한다. 폐허가 되어 벽체만 서 있는 이 성당은 포르투갈 통치시에는 카톨릭 포교의 거점지였으나 카톨릭을 반대하던 네덜란드 군과 영국군의 공격에 의해 파괴되어 지금은 지붕도 없이 허물어져 가는 벽과 성당 내부를 장식했던 석판만이 쓸쓸히 이곳이 성당이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날이 밝고도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세인트 폴 성당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낮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지만 아직은 시간이 많이 이른 모양이다. 어두워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성당 내부도 찬찬히 둘러보고 언덕에서 말라카 해변도 실컷 바라보았다.
세인트 폴 언덕에 올라온 사람이 없어서 집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현지인이 올라와서 사진을 부탁했는데 사진을 많이 찍어 본 사람이었다. 장소를 바꿔 가면서 몇 장을 부부 사진을 찍어 주고 지나갔다. 너무 일찍 방문해서 제대로 사진 한장 같이 찍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고맙다. 어제 밤 타밍사리 전망대에서 볼 때 보지 못했던 말라카 해협도 바라보고 주변 지역도 내려다 보았다. 밤에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네덜란드 광장에 있는 그리스도 교회(Christ Church Malaka)로 다시 내려왔다. 붉은 색 벽에 건립 년도인 흰색의 1753과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이 교회는 건립 당시 프로테스탄트 교회로 네덜란드제 벽돌이 쓰였다고 한다. 붉은색도 아니고 핑크색도 아닌 짙은 감색의 이 칼라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색상이다. 교회 내부는 다른 교회의 모습과 별로 다른 점이 없으나 제단 뒤엔 예수와 12제자들이 만찬을 하는 최후의 만찬 벽화가 있다고 한다. 교회 안쪽은 다시 방문할 때 보기로 하고 존커 스트리트로 이동한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가장 붐비는 분수대 앞에도 사람이 많지는 않다.
네덜란드 광장에서 작은 다리 하나를 건너면 사거리가 나온다. 오른쪽 코너에 붉은색 5층 건물에 홍등이 주렁주렁 달린 산슈공(三叔公)이란 상점 건물이 있는데, 여기서부터 차이나 타운이 시작된다. 사거리에서 직진하면 존커 스트리트(Johnker Street)이고 좌측 길로 가다 첫 번째 골목에서 우회전하면 탄 쳉 로크 거리(JL. Tan Cheng Lock)며 우측 길로 가다 첫 번째 골목에서 좌회전하면 하모니 거리(Harmony Street)다. 본격적인 차이나타운 관광은 식사를 하고 나서 천천히 할 계획이어서 숙소가 있는 하모니 거리(Harmony Street)로 이동한다. 차이나 타운은 15세기에 이주해온 중국인들이 만든 거리로, 좁은 거리에는 중국인들의 고가(古家)가 빼곡이 들어서 있다. 거리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어 건물의 신축 및 보수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골목길을 따라서 걷가 보니 캄풍 클링 모스크 (Masjid Kampung Kling)가 나왔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모스크 문을 열지 않아 지나치면서 사진만 한장 찍었다. 인도계 무슬림(클링)을 뜻하는 이름을 지닌 이 건물은 수마트라의 건축양식을 도입해 지었다고 하는데 미나렛(첨탑)의 모양이나 높이, 사원 건물의 구조가 터키 등 지금까지 다른 이슬람 국가에서 봤던 모스크와 매우 다르고 쿠알라룸푸르의 국립 모스크와도 많이 다른 모습이다. 이 사원 역시 나중에 다시 찾아올 예정이다.
캄풍 클링 모스크를 지나 숙소로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다시 벽화 골목을 만났다. 아주 좁은 골목에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번 말라카 여행준비를 하면서 이렇게 만은 벽화가 도시에 가득한지 몰랐는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벽화구경 투어를 나서도 될만큼 다양하고 곳곳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그림도 조잡하다는 생각보다는 꽤 신경써서 그려 놓았다는 느낌이 든다. 골목 끝쪽에 있던 말그림 벽화는 누군가의 그림을 모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생동감이 있었다.
날도 밝지 않은 새벽부터 아침까지 부지런히 돌아 다녔다. 땀 흘리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고, 관광객에 치이지 않고 여유있게 돌아볼 수 있어서 아침 산책도 좋았던 것 같다.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도 항상 붐비는 차이나 타운이 텅 빈 것처럼 현지인도 관광객도 보이지 않는다. 일요일 아침이어서 현지인들도 모처럼의 휴일을 즐기는 모양이다. 아님 밤늦게까지 영업을 하느라 원래 아침에 잘 일어나지 않거나... 이런 골목길 투어도 재미있다.
(8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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