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는 맛집도 참 많은 듯하다. 충무김밥, 멍게빵, 꿀빵, 굴밥 등등 먹을 것도 많다. 우리 일행이 50명이 넘는 대인원이어서 식당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미리 선발대가 통영을 방문해서 맛집을 섭외해 놓아서 비교적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점심은 굴요리 전문점인 영빈관이다. 바닷가 주변이라 해산물 요리가 많은데 영빈관도 맛있는 식당이었다. 다만 가격대는 지방의 음식점으로서는 다소 비싼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가격보다는 맛있는 집을 찾아다닌 여행이어서 그 수준을 충족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식사를 마치고 박경리 기념관으로 이동하기로 한다. 하동에 최진사댁 세트장이 있는 곳에 박경리 문학관이 있었는데 박경리 선생이 태어난 통영에는 기념관이 있다. 원래 기념관은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주무대였던 충렬사 광장 주변에 건립하려고 했는데 선생이 갑작스러운 타계로 묘소가 있는 통영시 산양읍에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시내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박경리 기념관. 규모도 제법 크고, 주변 경관이 뛰어난 곳에 위치해 있었다. 박경리 기념관 입장료를 받지 않고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였다. 1층 기념관 입구에 공원 안내도가 있고, 전시실은 1층과 2층, 그리고 야외 공연과 묘소가는 길로 꾸며져 있다.
기념관 앞에는 넓직한 잔디 마당이 눈길을 끈다.여유롭게 산책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잔디 마당에는 박경리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 아래의 문구가 참 인상적이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라는 글귀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지난 8월에 하동의 최참판댁 세트장이 있는 곳에 있었던 박경리 문학관에서도 입구에 기념 동상이 세워져 있었고, 그곳에서도 박경리 선생의 일대기와 관련 자료를 보았는데 통영에서 다시 한번 자료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일행 숫자가 많고, 미리 답사를 와서 오늘 우리가 방문하면 기념관 안내와 해설을 해 달라고 부탁을 해 놓았더니 문화해설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돌아 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이곳의 정서와 인문학적 지식을 갖춘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 그 깊이가 훨씬 더 깊어진다. 내용을 너무나 잘 설명해 주었던 문화해설사 덕분에 좋은 공부를 하고 왔다.
소설 '김약국의 딸들' 마을 복원 모형 전경 앞에서 관련 내용을 설명해 주는 문화 해설사님. 통영은 박경리 선생의 고향으로, 고향이 그립지 않은 사람은 없다. 고향은 삶의 기초이다. 특히 문학하는 사람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밑천이라는 말로 고향의 소중함을 강조했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해설사님의 말이 아니더라도 수긍이 가는 내용이다.
기념관 내부에는 박경리 선생 작품 관련 자료들도 많이 보인다. 작품 일부 단락 소개, 친필 원고 사본, 집필하시던 방 모습, 선생님 작품을 읽을 수 있는 작은 도서관도 있다. 책과 기념품을 살 수 있는 코너도 있었다, 또한 곳곳에 후배의 문학인을 위한 여러 글귀가 남겨져 있다. 박경리 선생의 업적과 작품들을 스토리로 풀어 놓는 다양한 사진과 전시물이 배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영상실에서는 박경리 선생의 생전 대화 내용을 담은 영상을 볼 수도 있다.
박경리 선생님의 말년의 집필 공간은 원주에 위치해 있었는데, 소설을 집필하던 서재는 원주 박경리 문학관의 서재를 그대로 본따 만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태어난 장소이며 생을 마감하고 머물러 있는 통영의 기념관도 큰 의미가 있다. 선생은 한국 전쟁때 남편을 잃고 아이도 먼저 보내는 고단한 삶을 겪었다.
우리나라 대표 소설가인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는 4대에 걸친 인물들의 삶을 통해 민중의 한과 아픔을 그려낸 작품이다. 1969년부터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해 등장인물 700명이 나오고, 1994년까지 무려 집필기간이 26년 동안 작품에 매달렸다. 그간 세상 일과의 관계를 완전히 차단한 채 집필에만 몰두했으며, 1부를 쓰던 중 암 선고를 받고 수술까지 하는 등의 고통을 겪었다. 토지는 1897년 동학에서 1945년 광복까지 49년간 한국 역사를 총망라 하여 사람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그려낸 한국 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기념관에서 나와 박경리 선생 묘소가 위치한 곳으로 가 보기로 했다. 박경리 선생의 묘는 기념관에서 10여분 정도 올라가야 하는데, 멀리 통영까지 왔으니 한번 올라가 보아야 할 것 같다. 묘소로 가는 계단길이 부담스럽다며 많은 회원들은 그냥 공원에서 쉬고 있겠다고 한다. 묘소로 가는 길에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미륵산이 보인다.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잘 가꾸어 놓은 길을 따라 오른다. 흰동백 분홍동백 소나무 숲을 지나서 간다.
박경리 선생 묘소는 소박하고 운치있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 주변의 풍경이 참 아름답다. 하지만 양지 바른 곳에 있는 묘소는 너무나 단촐했다. 묘소에는 그 어떤 장식도 볼 수 없고 심지어 흔한 비석도 볼 수 없었다. 제사 음식을 놓을 수 있는 제단이 전부로, 너무나 소박한 묘지의 모습이었다. 아마도 간소하게 해 달라는 유언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졌다.
다행히 소공원처럼 잘 꾸며진 언덕는 의자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고, 방문객들이 쉬어 갈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산과 산 사이로 보이는 통영의 바다가 너무나 아름답고 아늑하고 평온해 보인다. 가만히 보니 묘소까지 올라온 사람은 남자는 거의 없고 대부분 여성들이다. 기념관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어젯밤 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공원에서 박경리 선생의 문학정신과 삶의 철학을 조금이라고 느끼고, 마음이 넉넉해짐을 느끼고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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