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마라톤 대회는 니시쿄고쿠(西京極) 종합운동장을 출발하여 헤이안 진구(平安神宮) 앞으로 골인하는 코스다. 드디어 9시가 되니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출발 순서는 A그룹부터 시작해서 H그룹까지 풀코스 참가자 16,000여명이 순서대로 출발하게 된다. 오늘 대회는 혼자가 아닌 함께 혼 함께 온 일행들과 함께 출발하게 된다. 끝까지 함께 가지는 못하겠지만 최소 10km는 함께 달리면서 사진도 찍어주고 즐거운 마라톤을 할 예정이다. 출발 신호가 떨어져도 참가자가 워낙 많아서 스타트 라인을 통과하는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 이제 즐거운 여행의 출발이다.
운동장에서 나와 고조 도리(五条通)와 시조 도리(四条通)를 따라서 뛰게 된다. 일본에 있는 마라톤대회를 참가해서 가장 부러운 것중에 하나는 주로에 응원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주말 꽤 이른 시간부터 수 많은 사람들이 길가에 나와서 응원을 하고 있다. 동아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면 종로에서와 뚝섬 근처, 잠실에서만 겨우 응원하는 사람은 만나는 것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언제쯤 되어야 이런 앞선 마라톤 문화를 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교통통제 때문에 싸우는 것이나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초반부터 응원해주는 시민들 때문에 즐겁다.
4km를 달려와서시조도리(四条通)가 끝나는 곳에 가스라가와(桂川)가 나왔다. 작년에 이곳에서 바람이 많이 불어서 오늘은 이곳까지 우의를 입고 달릴 생각으로 많이 쌀쌀하지는 않았지만 비옷을 입고 왔다. 역시 가스라가와에 도착하니 바람이 세다. 작년과 비슷한 속도로 달려왔기에 아직 몸이 데워지지 않아서 비옷을 입고 있어도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았다. 4km 지점에서 시작된 가스라가와(桂川)는 6.5km 까지 갈 때까지 이어졌다. 강 주변의 잘 꾸며진 일본식 가옥과 멀리 보이는 첩첩 산봉우리가 너무나 조화롭고 멋있다.
가스라가와(桂川)를 벗어나서는 한적한 시골 길이 이어진다. 좁은 2차선 마을 길을 지나치는데 한적한 마을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교토 시내의 모습도 높은 건물이 없어서 편안한 느낌이지만 외곽으로 나오니 완전 시골 같다는 느낌이다. 이곳에서 분당에 살고 있는 분당검푸마라톤클럽의 강홍원 선배님을 만났다. 미리 연락을 하지 않아서 교토마라톤 대회에 참가한지 모르고 있었는데 우연히 주로에서 뵙게 되어 엄청 반갑다. 클럽의 몇 사람이 함께 참가했다고 한다. 나는 사진을 찍으면서 천천히 뛸 생각이어서 결승점에서 만나기로 하고 먼저 보내 드렸다.
마을을 조금 지나니 히로사와노이케(広沢池)가 나왔다. 작년에도 이곳을 지나면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응원하는 분께 부탁을 해서 겨우 사진을 한장 찍었었다. 올해는 함께 하는 일행이 있어서 부담없이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연못을 따라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연못의 풍광과 주변의 모습이 어우러져 멋있다. 마라톤 코스를 설계할 때 엄청 신경을 썼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히로사와노이케(広沢池)를 지나 멋진 대나무 숲이 있는 오르막이 나온다. 도로변에 쭉쭉 뻣은 대나무가 가득해 있어서 풍광이 멋진 10km 지점이다. 풋풋한 대나무 숲으로 인해서 달리면서도 휠링이 되는 느낌이 들었고, 오늘 달린 주로 중에서 내게는 가장 멋진 구간이라고 생각된다. 곧게 뻗은 대나무가 촘촘하게 이어지는 아름다운 산책로를 자랑하는 아라시야마(嵐山)의 치쿠린(竹林)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여서 이곳도 대나무 숲이 멋있던 것 같다.
대나무 숲길을 지나고 나니 내리막길이 시작되었다. 기누카케노미치(きぬかけの路)라고 불리는 길인데 일본의 전통가옥과 현대식 가옥이 혼재되어 있지만 조화롭게 보이는 마을이 이어졌다. 이런 한적한 마을에도 응원을 하러 나온 시민들이 많이 있어서 부러운 마음으로 지나간다. 넓지 않은 주로에는 아직 주자들로 가득하다.
사진을 찍으면서 뛰다 보면 대충 어디에서 사진을 찍어야 할지 감이 온다. 그냥 달리는 사람을 매번 찍을 수는 없는 일인지라, 무엇인가 특징이 있는 건축물을 지나게 되면 배경으로 사진을 찍게 된다. 기누카케노미치(きぬかけの路)를 지나 조금 더 달리다 보니 닌나지(仁和寺) 니오우몬(二王門 ) 앞을 지난다. 길가에 있는 니오우몬을 그냥 지나칠 장소가 아니어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닌나지는 1994년에 고도(古都)교토의 문화재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고찰이다.
작년 마라톤 대회에 달리면서 료안지(龍安寺)와 킨가쿠지(金閣寺) 사이를 지나면서 보았고, 결국 숙부님과 함께 찾아 왔었던, 쿠라스시(くら寿司)집을 다시 지나게 된다. 맛있게 잘 먹었던 집이어서 함께 온 일행들에게도 소개를 해주고 싶지만 숙소에서 가까운 것도 아니고 대중교통으로찾아 오기에는 편한 지역이 아니어서 다시 와 보지는 못했다. 추억의 장소를 지나게 되는 것만을도 즐거운 일이다. 쿠라스시(くら寿司)는 일본 여러 곳에 있는 체인점이고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주의 깊게 보지 않아서인지 다른 곳에서는 찾지 못했다.
출발점에서 함께 뛰었던 일행들이 10km를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했는데 이마미야진쟈(今宮神社) 근처까지 함께 달리고 나서는 완전히 헤어졌다. 모두가 뛰는 스타일이 다르다보니 끝까지 함께 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나중에 결승점에 들어 가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지기 전에 함께 사진을 몇 장 더 찍었다. 응원하는 주민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지 않아도 좋았는데...
15.5km 지점에서 이마미야진쟈(今宮神社)가 나왔났다. 이 곳 역시 사진을 찍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이마미야 신사는 건립된지 1천년이 넘은 곳이라고 하는데 주변에 엄청나게 많은 시민들이 모여서 응원하는 있었다. 특히 신사의 정문앞에는 북을 치면서 주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이마미야진쟈(今宮神社)는 옛날 교토에서 역병이 퍼졌을 때 역병을 막기 위해 기도를 드린 것을 계기로 세워졌다고 한다. 교토마라톤 대회는 주로에 이런 코스를 일부러 포함시켜 놓았다.
18km 지점에서 교토의 동쪽편에 흐르는 가모가와(鴨川)가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개념으로 보면 강이라고 하기보다는 하천의 개념이지만 여기에서는 모두 강이라고 부른다. 강변을 따라서 대략 3km정도를 달리게 되는데 이곳도 바람을 막아주는 건물이 없는 곳이여서 가스라가와(桂川)에서 처럼 바람이 조금 불었다. 하지만 차가운 바람도 아니었고, 그동안 달려 오느라 몸이 데워져 있어서 싸늘한 느낌은 아니다. 맞은편에서 달리는 주자를 볼 수 있는 반환 코스이기도 하다.
주로에서 만난 급수대. 이곳뿐만 아니라 주로에서 만난 모든 급급수대가 참 잘하고 있다는 생각을 들었다. 급수대에서 음료수 이외에 여러가지 먹거리가 준비되어 열량을 보충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빵처럼 생긴 과자부터 바나나, 초코렛, 사탕 등 다양한 먹거리가 제공된다. 사람들이 한 곳에 몰리지 않도록 여러 테이블이 놓여 있어서 주자끼리 부딪칠 일도 없다. 주는 것은 모두 먹어 주면서 달리기를 이어간다.
가모가와(鴨川)를 벗어나서 조금 지나니 하프지점이 나왔다. 이제 교토마라톤도 후반부에 접어 든다. 기록에 신경쓰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천천히 달렸더니 힘도 들지 않는다. 하프지점 통과 시간도 체크하지 않았고, 의미도 없다. 이곳에도 시민들이 엄청 나와서 응원을 하고 있다. 부러운 광경이다.
급수대와 간식을 제공하는 장소가 많이 있었고, 다양한 먹거리가 제공되고 있었다. 오늘의 하일라이트는 하프지점을 지나서 나온 간식 제공장소에서 나온 교토의 명물 야츠하시(八ッ橋)다. 야츠하시는 쌀가루와 계피를 넣고 반죽해 앙꼬를 넣은 교토의 전통떡으로 맛은 우리나라 단팥 모찌를 연상하면 된다. 관광지의 야츠하시 전문점에 가면 꽤 비싼 가격으로 팔리는 야츠하시가 주로에 간식으로 나와 있어서 감짝 놀랬다. 먹으라고 나와 있는 야츠하하시를 몇 개 먹어주고 지나친다.
작년에 달리면서도 분명이 있었을 터인데 신경을 쓰지 않아서 보지 못했던 고잔 노 오쿠리비(五山の送り火) 표시판을 이번에는 여러 번 보게 된다. 오쿠리비(送り火)는 하늘에 있던 조상들의 넋이 산(山)을 통해 집으로 오는 것을 맞이하고 또 보내기 위해 산(山)에다가 밝히는 커다란 횃불을 말한다. 현재는 교토에서 관광용 행사 중의 하나로 교토 북쪽에 있는 다섯 개의 산에 민간에 전해져 오던 오구리비를 변형해서 행사를 한다고 한다. 산에 나무를 베어내고 大,妙,法, 배모양 등의 글씨를 써 놓았고, 주자들에게 달리면서 그것을 보라고 안내해 주었다. 교토에서 자랑하고 싶어서 사람까지 배치해 놓았는데 봐주고 사진까지 찍어 주어야 예의가 아닌가 싶다.
약간의 오르막이 있는 키타야마도리(北山通)의 끝에 첫 반환점이 있었다. 덕분에 처음으로 같은 주로에서 마주치는 주자를 볼 수 있다. 가모가와(鴨川)를 지나갈 때도 주자가 보이지만 그 때는 강 건너편에서만 보였는데 5km 남짖 되는 이구간에서는 도로 맞은편에서 주자를 볼 수 있다. 비슷한 시간대를 달리는 주자들이어서 달리는 속도나 자세가 비슷해 보인다.
일본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식물원이라는 교토후라쓰 쇼쿠부쓰엔(京都府立 植物園:교토부립식물원)을 지나게 된다. 교토마라톤 참가자들의 요청에 따라 재작년 대회부터 새롭게 주로에 포함되었다는, 작년에 지나치면서 반했던 장소다. 식물원 전체를 달리는 것은 아니고 일부 구간만 뛸 수 있도록 해 놓았지만, 식물원을 주로에 포함해 놓았다는 아이디어가 신선하고 대단하다. 전체적으로 식물원의 나무들이 크고 높아서 웅장한 숲의 느낌이고, 멋진 숲 길을 달릴 수 있어 행복했다. 정말 멋진 주로다.
작년에도 이 구간을 달리면서 분위기가 참 좋았는데 올해도 마찬가지다. 공원보다도 더 공원처럼 되어 있는 식물원을 통과할 수 있도록 코스를 설계한 대회 관계자들의 노고가 느껴지는 곳이다. 시에서 협조하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코스라고 생각한다. 달리는 주로를 따라서 벤치가 있어 날씨가 좋으면 가만히 앉아 책을 읽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중간에 온실이 보이지 않았다면 식물원이 아니라 공원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곳이다.
식물원을 나와 다시 가모가와(鴨川) 강변을 따라서 달리게 된다. 이제는 강변 도로가 아니라 아예 강변으로 내려와서 산책 보행로를 따라서 뛰게 된다. 대략 6-7km 를 강변을 따라서 뛰게 되는데 이는 교토 도심의 교통 상황을 고려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도로를 따라서 달리게 되면 가모가와를 지나는 교량 모두를 통제해야 하니 교통체증이 심각할텐데 산책로를 따라 달리니 체증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이 구간은 교토의 도심에서 가까운 곳이여서 주변에 차량 통행량이 많아 보인다.
조금 지루했던 강변 구간을 통과한다. 지루하기는 했어도 아스팔트 구간이 아니어서 편안하게 달릴 수 있었고, 가모가와(鴨川) 강변을 산책한다는 기분으로 달릴 수 있었다. 강변에서는 주로와 보행로가 따로 구별되어 있지 않아서 응원을 나온 시민과 바로 접할 수도 있다. 강변에 나와서 응원하는 시민들도 먹거리를 나눠 주어서 주는 것을 다 먹으면 제대로 달릴 수도 없을 정도다. 가모가와(鴨川)를 벗어나게 되면 본격적으로 교토의 도심을 달리게 된다.
(9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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