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과 생활 /마라톤대회 후기

중앙일보 서울마라톤 참가후기 (2004.11.7)

남녘하늘 2008. 3. 4. 22:33

 

(3시간 17분 27초)

출발전 서늘한 날씨여서 달리기에는 더할나위없이 좋은 날이다. 춘천대회보다는 오르막이 없어 코스도 쉽고 날씨도 기온이 낮아 피로감만 없다면 좋은 기록을 달성하는 달림이들이 많을 것 같다. 나도 오늘은 최선을 다해 3시간 15분을 목표로 달려 보기로 했다.

운동장 입구에서 전직장의 마라톤 사부로부터 100Km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한 후배가 두명이나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풀코스에 만족해 있던 사이에 다른 사람들은 또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전해듣고 다시 한번 반성. 그래도 울트라를 도전하고 싶은 생각은 아직 없다.

탈의실에서 정광춘아우를 만나 옷을 갈아입었으나 싸늘한 날씨로 인하여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다 출발 20전에서야 출발장소로 이동. 파시코에서 제공한 비닐옷으로 인하여 그나마 추위를 막을 수 있다. 풀코스 인원이 9,300여명밖에 되지않는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 모르겠다. 출발선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나가도 사람의 행렬이 끝이 없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후 개막행사를 기다렸으나 갑자기 폭죽과 함께 출발싸인이 떨어졌다. 오늘은 3시간 20분 페이스 메이커에게 추월당하지 않으면 최소 10분대에는 들어올 수 있단 생각에서 출발이후 바로 20분 페이스메에커를 추월해버렸다. 주로에 가득메운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움직였는데 초반 3Km가 너무 빠른 것 같다. 5Km까지는 천천히 뛰려고 했는데 초반부터 Km당 4분 30초보다 빠르다. 초반에 오버하면 반드시 레이스 후반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몸이 반응하는대로 달리기로 했다.

거리에는 아직 단풍이 남아 있어 주로가 아름다웠고, 낮은 기온은 내 속도를 떨어뜨리지 않았다. 10Km 구간은 내가 속도를 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3분대의 기록이 나와 거리표시가 제대로 된 것인지 아니면 너무 무리해서 빨리 달린 것인지 모르겠다. 5Km 이후 매Km가 4분 30초가 초과하지 않아 후반에 속도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면 목표시간에 들어올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10Km에서 하프까지의 구간도 역시 4분 30초가 넘지 않는 속도로 달려 하프 통과 시간은 1시간 34분. 그다지 나쁘지 않은 기록이다. 달려도 달려도 선두가 보이지 않았느데 17Km를 통과하니 마스터즈 선두가 돌아오고 한동안 비어 있다 또 한참 지난후 많은 무리의 선수들이 달려온다. 매번 마라톤대회를 참가할 때마다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 중에 하나가 내가 비교적 앞에서 출발해도 조금만 나가서 보면 선두가 보이지 않고 그 끝없는 행열이 이어지는 것으로, 그 이유가 불가사의하다. 얼마나 앞에서 출발해야 조금이라도 선두를 보면서 달릴 수 있을 것인가?

반환점을 돌아 내리막을 700여m 내려오니 3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가 많은 달림이와 함께 오르막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나와의 시간차는 대략 6-7분. 두번째 페이스메이커는 10분이상. 많이 쳐지지 않는다면 추월당할 염려는 없다.

하프이후 약 4Km는 내리막길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속도가 나질 않는다. 하프지점까지는 날 추월한 사람 숫자보다 내가 추월한 사람이 많았는데 하프이후부터는 역전되어 날 추월해가는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 나역시 초반 5Km를 급하게 달리면 경기 후반에 반드시 영향을 받는다.

25Km를 넘어서서는 구간 속도가 이제 4분 30초를 초과하기 시작한다. 이븐 페이스는 안돼더라도 비슷하게는 나와야하는데 역시 난 아직 초보달림이다. 배워야 할게 많다는 얘기다. 마음으로 펀런을 하고 있다고 우기고 있지만 몸은 서서히 자신과의 싸움단계로 접어들었다. 3시간 15분에 목표를 맞추고 어느 속도로 가야지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를 계산하면서 그 목표달성에만 온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난 30Km를 통과하면 스스로 이제 남산 수달 코스 두바퀴만 더 뛰면 되는 거리가 남았다고 최면을 건다. 30Km 이후가 누구에게나 힘이 들겠지만 남산 두바퀴는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스스로 최면을 걸었는데 30Km를 지나 서울공항을 지나면서 공항 주변의 시원한 나무그늘을 보면서 한숨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발이 많이 무거워졌다. 물집도 작게 잡힌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도 30Km 통과하면서였다. 그래도 구간기록은 5분을 넘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주 힘들게 35Km를 통과했다. 통과시간은 2시간 39분. 남은 거리를 매 Km당 5분 속도로 달려야 목표시간에 들어올 수 있다. 이 때부터는 매Km를 잘라서 5분을 넘기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했다. 수서역 부근에서  송행옥님이 힘을 외치고 추월해 나가신다. 요새 보이질 않아서 달리지 않는줄 알았는데 막판 스퍼트하는 힘이 너무나 좋다. 난 펀런도 아니고 오로지 내가 정한 목표달성을 위해 막판 힘을 다해도 5분이 넘어가기 시작했는데. 힘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발이 나가질 않는다. 그게 힘이 부족한 것인지 모르겠다. 힘이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냥 관념상의 생각일 뿐인지도...

40Km까지 목표에 들어갈 수 있는 속도를 맞추었으나 이후 점점 속도가 늦어진다. 걷지는 않으나 내가 추월하는 사람은 걷는 사람뿐이다. 다들 40Km를 뛰어왔을텐데 무슨 힘으로 이렇게 잘 달리는지 모르겠다. 목표시간에 도착하는 것은 점점 힘들어지고 이제는 부상을 당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달렸다. 발바닥에 물집에 조금씩 커지고 있는 것이 느껴?기 때문이다. 즐겁게 달리자는 것이 내 모토아닌가? 현실에 조금 타협을 했다.

그렇게 들어온 것이 3시간 17분 27초. 난 아주 만족한다. 내가 연습한 훈련량에 비해선 과분한 성적이다. 그나마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기초체력과 지난 달 나갔던 3번의 풀코스대회가 연습이 된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제 1년에 한번 욕심을 조금 부렸으니 다시 펀런모드로 바꿀 예정이다. 다시 일에 더 충실하고 내가 운동에 더 전념할 수 있을 때까진 욕심부리지 말고 달릴 것이다.

대회 초반 서늘함이 대회를 마치고 나니 한여름의 날씨다.


episode1. 판교 톨게이트 입구 부근에 판교개발과 관련해 철거민들이 대형스피커를 설치하고 노래를 틀어놓았는데 그 음악소리가 경쾌한 운동가요라 힘을 받았다. 돌아오는 길엔 같은 장소에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운동가를 부르고 있었는데 옛날 생각을 하면서 또 한번 힘을 받았다.

2. 중앙대회는 조선 춘천대회를 벤치마킹할 것이 많다. 마라톤대회 중에서 아직까지 조선대회의 운영방법을 따라갈 대회가 아직은 없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음료수대의 번호를 꺼꾸로 설치해 남은 음료수대가 몇개가 남았는지 알려주는 것이나, 자원봉사자들을 제대로 교육해 완벽한 운영을 하는 것이나, 미리 지역주민에게 양해를 구해 경찰과 시민이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나...
대회운영을 더욱 완벽하게 하려면 미워도 배워야 할 것은 배워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는가 보다.

3. 대회를 마친후 동생과 함께 사우나에 갔는데 시상식을 마친 위아선수들이 무더기로 들어왔다. 마스터즈 1등을 비롯해 상을 받은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정말 군살 하나없는 그들의 몸을 보면서 잘 달리기 위해서 엄청난 자기통제를 통해 저런 몸매를 유지해야 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