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과 생활 /마라톤대회 후기

포항 호미곶마라톤 참가후기 (2004.12.5)

남녘하늘 2008. 3. 5. 00:14
 
 
(3시간 46분 27초)

최근 며칠동안 12월 날씨치고는 상당히 따뜻했는데 토요일 비가 내리고 나서부터 급격히 추워졌다. 4회째인 포항 호미곳의 날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바람이 세고 악조건의 달린다고 해서 출발하기 전부터 내심 걱정이 많았다.

새벽 3시.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출발. 잘 뚤린 경부고속도로를 5시간동안 달려 포항 호미곳에 도착했다. 도중에 황간휴게소에 들렀는데 추풍령의 바람도 장난이 아니다. 높은 산의 계곡바람이라 세게 불겠지만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한결 나아지겠지라며 작은 소망을 가져보았다.

출발지 포항시 대보면 해맞이광장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몸이 바람에 날려가는줄 알았다. 바닷가에는 으례 바람이 많이 불고 바람 많은 것이 바닷가의 특징인줄은 알고 있었지만 호미곶의 바람은 보통이 아니다. 이날 포항 호미곳마라톤을 한마디로 설명하라고 하면 반환점까지는 바람과의 싸움, 반환점이후에는 수많은 언덕을 넘어야 하는 자신과의 싸움이였다.

광장옆 대보중학교에서 옷을 갈아입고 광장으로 나왔다. 사실 오늘 뛸 복장을 어떻게해야할 지 몰라서 반팔 반바지의 평상시 복장과 쫄바지인 스판반바지와 쿨맥스 기능의 긴팔 긴바지의 동계복장 모두를 준비해 왔는데 두말할 필요없이 동계복장을 입었다. 옷을 갈아입고 광장에 나오니 해병대 군악대와 의장대원들이 간단한 공연을 하고 있는데 하늘로 던져올린 총이 밑으로 바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밀려가 떨어져 총을 놓치는 병사가 다수 있었다. 그 정도로 바람이 심하게 분다.

그래도 광장에 달림이들이 모여 준비운동을 하고 10시 정각 출발을 한다. 추운 겨울날 이 먼곳까지 와서 달리는 달림이들은 정말로 마라톤을 즐기는 대단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출발후 약 3Km까지는 일반 도로가 아닌 해안가의 보행자 도로와 콘크리트 도로여서 한번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추월하기도 어렵고 주로 상태가 썩 좋은 편은 아니어서 앞 사람을 따라만 가는 상태였다. 

정영주님과 함께 출발해서 목표시간을 의식하지 않고 완주만 하기로하고 출발했다. 바람이 엄청 불어서 바닷물이 해변까지 밀려 올라오는데 그래도 작년과 재작년에 비해서는 훨씬 좋은 상태라고 말하니 그 이전엔 어느정도로 악천후였는지 상상이 되질 않는다. 날씨까지 추워서 밀려운 바닷물이 얼어붙어 달리기가 더 힘들었다고 한다.

5Km를 지나면서 일반 아스팔트 도로로 접어든다. 도로폭이 넓어지면서 달리기가 한결 나아지긴 하는데 바람이 너무써 속도를 내서 다른 사람을 추월하기가 쉽지 않다. 동계훈련으로 생각하고 몸이 따라주는대로 가지고 생각하고 달려주었다. 정영주님이 4시간 안에만 들어가지고 해서 4시긴 페이스 메이커를 따라갔는데, 페이스 메이커가 급수대에서 지체하는 바람에 바로 추월하고 이후론 만나질 못했다.

거리 표시가 매 5Km 단위로 있어서 체크를 했는데 오히려 속도가 빨라진다. 지난주내내 운동도 하지 못하고 거의 매일 일찍 시작된 망년회와 모임으로 술을 마셔 난 힘이 드는데 정영주님이 너무 속도를 내시는 것 같다. 한적한 시골 해안도로를 달리는 대회이고 너무 춥고 바람이 불어 주로응원단은 없었지만 중간 중간 해병대 부대원들이 나와서 따뜻한 음료도 제공하고 음악도 틀어놓아 힘을 받곤 했다. 달리는 우리야 지가 좋아서 달리지만 급수대 자원봉사를 나온 어린 학생들은 춥고 바람부는 날씨에 정말로 고생이 많은 것 같다.

파란 바다와 파도에 부서지는 파도를 보면서 달리는 기분은 도시에서 달리는 것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기쁨을 선사해 주었다.(물론 반환점 전까지만) 멀리 영일만의 반대편에 포항제철과 포항시가 보이고 직선거리론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은데 도로 표지판으로 30여 Km정도 떨어져 있다고 표시하고 있다. 정영주님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면서 달리다보니 추월당하는 사람들이 힘이 든데 어떻게 얘기를 나누면서 뛸 수 있느냐고 부러워한다.

18Km 지점에서 되돌아오는 선두권을 만나고 몇개의 언덕과 마을을 지나 드디어 반환점에 도착. 도시가 시작하려는 지점에서 반환을 하니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주로를 잡은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반환점까지는 바람을 맞으면서 달렸지만 올때는 등에서 바람이 불어 훨씬 편하긴 한데 이제는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갈때 느끼지 못했던 언덕의 높이가 거의 공포수준으로 다가온다. 나보다 늦게 뛰어오는 주자들을 보면서 아는 사람이 있으면 아는체 하고 서로 힘을 주고 받으면서 달리길 시작했다.

25Km 급수대에서 드디어 정영주님을 놓쳤다. 최근 들어서는 내가 늦게 뛰어본적이 없는데 오늘은 완전히 노련한 정영주님의 페이스에 한수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이후 남은 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추월당하지 말고 달리자는 전략으로 바꿨다. 바로 전날 출발하기 서너시간 전까지 동창회에서 술을 마시고 놀다 출발했더니 후반부에서는 너무 졸려서 무척 힘이 들었다. 사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잠을 잤기 때문에 수면부족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언덕에서 너무 힘이 들다보니 뛰고 싶지 않은 몸이 현실에 타협하고 그만 뛰어주기를 바라면서 신호가 아니였을까 생각한다.

아침밥도 다른때보다 많이 먹고 파워젤까지 먹었는데도 배가 고픈것 같아 힘들었는데 해병대원이 마련해준 따뜻한 음료와 귤을 먹고는 힘을 다시 냈다.

갈때는 정말로 느끼지 못했던 38Km 지점에 있는 언덕은 쳐다보기만 해도 한숨이 나왔다. 어떻게 저 언덕을 넘어왔던가 하는 생각과 함께 남산 언덕에서 달린 것도 별로 도움이 되질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다른 대다수의 사람처럼 걸을 수 밖에 없었다.

걸어도 걸어도 정상은 쉽게 보이질 않고 자기 최면을 걸고 별 방법을 다 써보아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직까지는 초보달림이라 이븐 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고 후반부에 오면 항상 힘이 든다.

다시 힘을 내서 40Km 지점에 들어오니 이제 멀리서 풍력발전소의 바람개비가 보이고 완만한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목적지가 보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 이제 힘들 달리기가 끝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리막에서 다시 초반의 속도를 회복하고 천천히 달리는 몇몇 사람을 추월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출발점인 해맞이 광장으로 다시 돌아와서 멋진 폼으로 결승점에서 사진을 찍혔다. 힘은 들었지만 역시 결승점에 들어오면 너무나 좋다. 바나나나 쵸코파이 대신에 주최측에서 준비한 과메기를 따뜻한 국밥과 함께 먹으니 추운 해변에서 네시간 동안 고생한 것이 한순간에 해소된다. 중간기록은 타임워치를 잘못 조작해 한순간에 다 날라 가 버렸다.


episode1. 이번 대회에서 옥의 티라면 완벽한 주로 통제가 되질 않아 중간 중간에 차들이 많이 지나갔다. 달리는 몇사람을 위해 생업이나 정말 급한 사람들의 통행을 막을수도 없는 일이지만 달리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빠른 속도로 지나는 차를 보면 상당히 불안하고 또 차에서 나오는 매연은 상당히 거슬린다. 좁은 땅과 잘 발달되지 못한 도로망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 달림이들의 딜레마다.

2. 달리고 난후 해수 사우나에 들렀는데 해수탕에서 바라본 먼 바다의 모습과 해수탕 옆으로 달려가는 나보다 늦은 후반부의 주자를 바라보면서 먼저 들어온 여유를 만끽했다. 다만 나올 무렵 찬물이 나오질 않아서 고생이 했는데 일시에 많은 사람이 이용해서 따뜻한 물이 부족하다면 이해가 가지만 찬물이 부족한 것은 원인이 무엇인지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목욕비를 활인받지도 환불받지도 못하고 한소리만 해주고 나왔다.

3. 4시간을 뛰자고 오고 가는데에만 14시간을 보낸 이번 달리기가 정말로 잘 한 것이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대회 참가는 앞으로 좀 더 생각해보고 참가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보통때 잘 가지고 다니던 카메라를 풍광이 좋은 이곳엔 가지고 오지 않아 좋은 풍경사진과 인물사진 한장 찍어오질 못했다. 그래서 내년에 다시 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