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과 생활 /마라톤대회 후기

도야마 마라톤 참가후기 (2005.5.15)

남녘하늘 2008. 3. 14. 00:15

 

 아침에 일찍 일어나니 비가 제법 많이 내리고 있다.

도야마 관광호텔에서 경기가 열리는 장소까지는 버스로 30분 정도가 걸렸다. 호텔에서 준비해 준 버스를 타고 대회장으로 이동했다. 새벽부터 내리던 비는 그쳤으나 구름이 짙게 깔려 있고 날씨가 선선해서 달리기에는 더할나위없이 좋아보인다.

참가자가 500명이 안되는 대회는 처음 참석하는 것인데 도착해보니 참가인원은 적어도 알차게 준비한 대회라는 느낌이 든다. 전날 전야제에서 배번을 찾아가지 않은 사람들은 아침에 와서 배번을 찾아가는 것 같다. 외국대회는 우리나라처럼 배번을 집으로 미리 배포해 주는 경우가 없는 것 같다.

 

 

대회장에선 일본 전통북을 치면서 분위기도 띄어주는 가운데 개회식이 시작되었다. 참가자 중에서 서울국제마라톤 참가 항공권을 남녀 각각 한명씩에게 추첨해 행운권 선물로 지급했는데 당첨된 아주머니 무지무지 좋아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오늘 참가자가 우리나라 사람 60여명을 포함 450여명만이 모여 있으니 참 아담하다는 느낌이다. 오늘도 나는 카메라를 들고 뛰기로 했다. 외국대회에 와서는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축제에 참가한 일원으로서 즐기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참가자 중에는 일본 100회마라톤 클럽회원들이 분홍색 단체복을 입고 있었는데 구성원의 나이가 너무 많아보여 조직이 활기차 보이지는 않았다. 일본의 100회 마라톤 클럽의 회원 평균 연령은 57살이고 평균 달린 횟수가 100회가 넘는다고 하니 부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주로에서 보았던 일부 회원들은 달린다고 말하기가 힘들 정도로 보였다. 그걸 즐긴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 그래도 자부심은 대단해 보였는데 우리도 배울 것은 배우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은 참고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3월 서울 마라톤대회에서 만났던 고토 사토에(後藤 里惠)님을 어제 전야제에서 이어 출발지에서도 만났다. 오늘은 맹인의 동반주자로서 봉사를 하고 있었다. 25살에 미혼이데, 쿄토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는 회사원이다.

오늘 대회 전체참가자가 460여명 밖에 되지 않는 조그마한 중소도시의 대회이지만 시각 장애인이 여러명 참가했었고 또 그들을 보살펴주는 동반자의 숫자는 더 많았다. 선진국일수록 사회체육이 발달하고 약자,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좋아지는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는 아직 부러운 현실이다. 남자 시각 장애인은 오늘 대회에서 sub-3를 했다.

8시 30분. 출발신호와 함께 힘차게 출발. 비는 내리지 않지만 구름이 잔뜩 끼어있고 날씨가 서늘해 달리기에는 최적의 날씨이다. 진즈가와(神通川)을 끼도 달리는 코스인데 여의도처럼 생긴 중지도를 돌아서 같은 코스를 3회전하는 방식이다. 뚝방길이 우레탄으로 깨끗하게 포장되어 있었고 또 오래된 벚꽃나무들이 잎이 무성해 만약 구름없이 햇볕이 내려비쳤어도 나무그늘을 달릴 수 있어 괜찮았을 것 같았다.
차량이 들어올 수 있는 몇 곳은 완벽하게 통제해 놓았고 통제를 하지 않더라도 워낙 시골길이어서 차가 들어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

 


어제 도야마시장을 만난 서울마라톤클럽의 박영석회장님은 도야마 마라톤이 시민마라톤으로서 발전하려면 이렇게 시골길만 달리게 할 것이 아니라 도심을 통과하면서 동일한 코스를 반복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건의했다고 한다. 아직 지방신문인 도야마신문에서만 주최를 하는 대회라서 코스가 한적한 시골길로 정해져 있는데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주최를 하게되면 경찰의 도움도 받을 수 있고 대회규모를 조금 더 키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렇게 시골길을 달리는 것도 나름대로 장점은 있으나 응원하는 사람이 너무 없어 심심하단 느낌은 들었다.

응원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대회이지만 같은 코스를 3번 반복하다 보니 아는 사람을 5-6번 정도는 만날 수 있었고 뛰면서 아는 사람을 여러번 만나는 것도 색다르고 재미가 있었다. 또한 급수지점을 양쪽 끝 반환점과 중간에 설치해 놓아 달리면서 12번이나 음식료를 보충받을 수 있었다.

날씨가 덥지 않아 물은 별로 많이 마시지 않았지만 중간 중간 초밥이나 떡등 다른 먹거리는 충분히 먹었다. 기록에 신경을 쓰면 물먹는 시간도 아까울 수 밖에 없고 이렇게 많이 준비한 것을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으나 나는 기록에 연연하지 않았기에 달리면서 즐길수 있는 것은 모두 즐겼다.

다만 이번 대회에서 가장 아쉬운 것이라면 중간에 거리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아서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중간기록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기록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내가 어느 정도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대회 주최측에서 한국에서 출전한 사람들에게 배번호를 1번부터 주었기에 달리면서 우리나라 사람을 알아보기가 쉬웠다. 참가한 사람들이 많이 않았기에 멀리서도 배번확인이 가능해 한국 사람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고 그들을 만날때마다 멈쳐 서서 달리는 사진을 찍어 주었다. 뛰다 서다를 계속하다 보니 빨리 지치고 리듬이 많이 흩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30번 넘게 완주를 한 덕분인지 힘이 많이 들지는 않았다.

사진을 찍어주면서 고맙다는 소리를 참 많이 들었다. 달리면서 나처럼 카메라를 들고 뛰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으니까. 워낙 조그만 대회다보니 우리나라처럼 중간에 사진을 찍어주는 서비스를 하지 않았고 결승점에 들어올 때 한두장 정도 찍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내가 비록 힘은 들었지만 사진을 찍는 보람은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사진을 찍느라 멈쳐선 시간과 리듬이 무너져 달리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20분 이상은 허비한 것 같으나 상관없었다. 난 그것을 즐겼으니까.

도야마라는 도시가 도농이 함께 공존하는 도시인지라 달리는 코스 주변으로도 논밭이 많았고 논에서는 이양기로 모심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주로 옆으로 지나는 강물과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아카시아꽃, 그리고 멀리 보이는 눈 덮힌 다데야마(立山)연봉들이 달리면서 볼 수 있는 멋진 광경이었고 깨끗한 주로환경이 참 마음에 든다.

 


거리표시를 찾질 못해 대략 머리 속으로 거리 계산을 하면서 뛰었는데 처음에 마음먹었던 4시간보다는 빨리 들어갈 수 있으리란 확신이 생겼다. 37km부터는 잔여거리가 표시되어 있어 남은 거리를 측정할 수 있었는데 40km 지점을 3시간 30분 정도에 통과했다. 남은 2km 걸어가더라도 4시간 안에는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중간에 잠시 비가 조금내려 카메라가 비에 젖지 않도록 장갑으로 감싸고 뛰었는데 다행히 비가 바로 그쳐 카메라가 젖지는 않았다.

2반환점을 돌때마다 손목밴드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는데 마지막 39km 지점에서는 붉은색 띠를 나누어 주어 목에서 어깨로 늘어뜨리고 결승점으로 달렸다. 3바퀴를 다 뛰었다는 표시인데 굳이 나누어 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모두가 자기 자신과의 무언의 약속을 지키며 달리는 달림이들인데..

결승점을 200여m 앞에서 문종호님을 만났다. 오늘 주로에서 달리는 속도를 보니 기록 갱신을 할 것 같아 결과를 물어보니 sub-3를 달성했다고 한다. 얼마나 기쁠까? 축하의 말을 건네고 결승점을 통과. 참가자가 많지 않으니 결승테이프도 설치하고 사진도 찍어준다. 기록은 3시간 41분 48초. 즐기면서 달린 기록치고는 매우 만족스럽다. 그리고 행복하다.

들어오니 바람도 조금 불고 체온이 내려가는 느낌인데 대회 주최측에서 따뜻한 국물을 준비해 놓고 제공한다. 역시 진행이 마음에 든다. 주최측에서 제공한 초밥과 빵과 따뜻한 국물을 먹고 나보다 늦게 들어오는 일행을 맞이했다. 또 하나의 즐거운 추억거리를 만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