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잠이 깨니 비가 내리고 있다. 날씨가 선선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비가 내리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닌데... 출발때까지만 내리고 그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다행히 잠실 종합운동장에 도착하니 비가 그친다. 비가 그치니 날씨가 달리기를 하기엔 너무 좋은 상태인 것 같다. 추운 것도 아니고 햇살이 비추는 것도 아니고...
출발지에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오늘은 다른 대회와는 달리 기록도 염두에 두고 달려야 하는 대회인지라 조금은 긴장도 되고 마음에 부담도 되는 대회이다. 다른 때와는 달리 물집방지를 위해 연구도 많이 하고 대비도 많이 했다. 그동안 신발끈을 너무 조여주지 않은 것이 물집 생기는 것의 중요한 원인중에 하나라는 지적을 받고 오늘은 다른 때와 달리 신발끈을 조금 더 조여주었다. 발바닥에 밸런스 테이프도 발라주고...
8시 조금 넘어 운동장에 도착했는데 어느새 출발시간이 다 되었다. 물품을 보관하고 나오니 벌써 선두는 보이지도 않는다. 기록별로 출발구역을 정해 놓았으나 제대로 지켜지는 것 같지가 않다. 너무 뒤에서 출발하면 초반에 다른 주자를 추월하는데 힘도 많이 빠지고, 리듬을 잃어버릴 것 같아 사람들을 우회해서 중간 앞쪽으로 나갔다. 더 앞으로 가고 싶어도 사람이 너무 많아 앞으로 갈 수가 없다. 현 위치에서 출발하기로 하고 약간의 준비운동을 선채로 했다. 너무 준비운동도 없이 출발하게 되어 약간은 불안하다.
출발싸인과 함께 선두가 출발. 2분 정도가 경과되어서야 출발메트를 밟게된다. 벌써 선두는 보이지도 않고 그 넓은 운동장앞 도로에는 주자들로 가득차 있다. 처음 3-4분간은 무리에 섞여서 달려갔으나 넓은 주로임에도 참가자가 많아서 시간이 많이 지체되는 것 같다.
다음 대회에서는 꼭 조금 더 앞쪽에서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다. 결국 1Km정도를 지나고나서 조금 추월하기 좋은 쪽을 택해 도로의 안쪽으로 길벗님과 함께 달렸다. 그것도 조금 달리다보니 반대편 차선에 차가 다니고 있어 다시 달리는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들어왔으나 그 짧은 시간에 수백명도 넘게 추월한 것 같다.
5Km를 지나고 나니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추월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주자간의 간격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출발하면서 오늘의 목표시간을 3시간 5-6분 정도로 생각하고 내 최고기록을 2-3분 정도 갱신해 보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운동량은 부족하지만 마이드 콘트롤을 하면서 대략 매 Km를 4분 20초로 달리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빨리 출발한 것이 아니어서 달리면서 계속 많은 사람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준비운동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상당히 가볍다. 훈련량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지난 일주일간 실시한 식이요법이 효과를 본다는 느낌이다. 이번대회를 앞두고 실시한 식이요법이 4번째 시도한 것인데 4번 모두 식이요법의 덕을 보는 것 같다. 힘은 들어도 나하고 식이요법은 궁합이 맞는 것 같다. 첫 3일간은 고기에 물리고 밥과 빵 생각이 많이 나서 힘들었지만 1년에 한번쯤은 해 볼만한 것 같다.
아침에 내린 비로 단풍이 많이 떨어지긴 했어도 아직 남아 있는 단풍의 모습을 감상하면서 거의 정속 주행을 계속했다. 힘이 남아 있고 마음의 여유가 있으니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힘들때는 앞사람의 발자국만 쳐다보면서 달릴 때도 있지만...
이번 대회는 다른 때와는 달리 코스가 약간 바뀐 것도 기록 단축에 도움이 되지 않았나싶다. 반환점이 그동안은 정신문화 연구원쪽이어서 약간의 오르막이 있어 시간상 손해를 보고, 또 내리막에서 무리를 함에따라 결국 막판에 그 대가를 치루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거의 평탄한 분당쪽으로 코스를 바꿈으로 인해서 기록이 단축되어진 것 같다.
17Km를 통과할 무렵 엘리트 선두가 반환점을 돌아오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하나도 보이질 않고 시커먼 사람들의 무리만 휙 지나가 버린다. 한참 뒤에서야 우리 선수들을 마주칠수 있었다. 이후 반환점 근처 5-600m전에 도착하니 Sub-3를 노리는 주자들의 한 무리가 페이스 메이커를 따라서 우르르 지나친다. 언제쯤 그들과 함께 달릴 수 있을까. 당분간은 기록에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으니 편하게 달리잔 생각을 다시 한다. 그래도 그들과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으니 연습을 많이 하지 않은셈 치고는 꽤 잘 달린 것이라고 위안했다.
반환점을 돌고나니 25Km 급수대. 이제 절반을 넘게 달린 셈이다. 몸이 힘든 것은 아니고 정신력이 떨어진 것도 아닌데 전반에 비해서는 속도가 조금 떨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다른 때와는 달리 많이 느려진 것도 아니고 힘이 없는 상태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내가 속도가 떨어진 것보다 다른 주자들의 속도가 더 떨어진 것을 느낀다. 내가 추월하는 사람의 숫자가 날 추월하는 사람보다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이제는 주자간의 간격이 많이 벌어져 있기에 한사람 한사람 추월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래도 타켓을 정해 한사람 한사람 줄여나갔다. 추월하고자 하는 의욕이 속도를 늦추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오늘 대회에서는 100회 마라톤 소속의 회원 8명이 내기를 했다. 8명중 기록순으로 4명은 무료로 식사에 참가하고 나머지 4명이 비용을 내어서 회식을 하기로 했다. 밥값 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다들 기록 단축과 더불어 보이지 않는 경쟁의식으로 인해 일종의 전쟁상태이다. 오늘 내가 컨디션이 좋은 것인지 다른 사람이 그동안 너무 무리해서인지 38Km 지점까지는 내가 2등으로 달렸다. 출발은 내가 제일 뒤에서 했는데 오는 동안 6명을 추월했다. 나머지 1명은 출발점부터 보지를 못한채 결국 끝까지 보질 못했다.
다른 때와는 달리 35Km를 통과하고도 힘이 많이 들지는 않는다. 내기를 한다는 것이 이렇게 작용을 많이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속도가 그다지 느쳐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반부의 속도를 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 가능한만큼만 뛰어가기로 했다. 정말로 지금까지 최고 기록인 3시간 8분 2초의 기록을 단축해보겠다는 열의가 있었다면 35Km 지점부터 오기를 가지고 달려 보았을텐데 기록갱신에 대한 열의가 부족했고 내기에서 3등안에만 들어오자는 생각을 하다보니 시간을 앞당기지는 못한 것 같다.
38Km 지점에서 내기했던 친구중 한명이 내 옆을 스쳐 날 추월해간다. 아직 힘이 남아 있던지라 그 친구를 따라가기로 했다. 내가 15Km에서 추월했었는데 그동안 날 따라오다가 다시 날 추월한 것이다. 힘이 있어 쉽게 따라갈것 같았던 그 친구는 막판에 힘이 넘치는지 바싹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바싹 뒤를 따라 가다가 운동장에서 재 추월하고 싶었는데...
운동장이 보이고 주변에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많이진 40Km 지점에 도달해서도 간격이 조금씩 더 벌어지고 맘과는 달리 그 간격이 좁혀지질 않는다. 또 모진 마음을 먹지 못하고 3등으로 만족하자는 합리화를 하고 나서 천천히 즐기면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갔다. 운동장 입구에서 런클 식구들의 기분좋은 응원도 받고...
결승점 통과 시간은 3시간 10분 2초. 3초만 당겼으면 한자리 숫자일텐데 막판에 사진 찍히는 것 의식하고 포즈를 잡으면서 여유를 부렸더니 10분이 넘어가버렸다. 조금 아쉽기는 해도 큰 의미는 없다. 다음에 내가 조금 더 열심히 하면 기록 갱신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했다.
지금까지의 기록중 2번째로 좋은 기록인데 몸 상태는 43번의 풀코스 대회중 가장 좋은 것 같다. 내기에서는 8명중 3등. 만족할 만한 경기 결과이다. 출발할 때 마음먹었던 5-6분의 기록은 비록 달성하지 못했지만 발에 물집도 잡히지 않고 부상도 없으니 행복한 하루를 보낸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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