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3시에 모닝콜을 부탁해 마라톤 참가 준비를 했다. 3시 반에 푸라마 씨티호텔 로비에 모여 10분 걸리지 않는 곳에 위치한 한인 식당을 이동했다. 한국에서 준비해간 찰쌀로 지은 찰쌀밥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대회장으로 다시 이동. 아직도 해가 뜨지 않아 온통 어둠에 쌓여있다.
대회 출발 장소인 시청앞 광장 물품보관소에 물품을 맡기고 스타트 지점인 에스플레네이드 문화센터앞 다리(Esplanade Bridge)로 갔다. 출발 1시간 전인 새벽 5시임에도 날씨가 후덥지근하다. 몸을 풀기위해 약간의 준비 운동을 했음에도 얼굴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한다면 어떨지 조금 걱정이 앞서기는 하지만 오늘도 기록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라 편함 맘을 갖기로 했다.
오늘 달리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알려준다. 대회 주최측에서는 대회열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대형 마이크를 통해 흥겹게 떠들고 있으나 무슨 소리인지는 알아들을 수가 없다. 평소 영어회화를 열심히 해 두지 못한 것이 늘 이렇게 해외에 나올 때마다 후회스럽지만 이제 영어로 능숙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점점 어려워져감을 느낀다.
출발지점에서 여행춘추를 통해 참가한 우리 일행이외에도 여수마라톤클럽의 회원, 일산마라톤 클럽 박길수님등 한국 사람들이 꽤 많이 보인다. 외국 마라톤 대회에서 만나는 한글이 쓰여진 복장이나 태극기가 달려 있는 달림이를 만날 때마다 무척 반갑다. 우리나라의 국력도 많이 향상되어져서 이제 어지간한 대회에 나가보면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나도 이번 싱가포르 대회에서도 태극기가 그려진 복장을 찾다보니 올 조선일보 마라톤에서 지급된 상의를 입게 되었는데 대회장에서 보니 어깨걸이 복장을 갖춘 사람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반팔 셔츠를 입은 사람은 거의 눈에 뛰질 않는다.
태극기를 찾다가 복장 선택에 실패한 듯 하다. 그러나 뛰다 보니 어깨걸이 복장이나 반팔복장이나 더워서 땀을 엄청 흘리기는 마찬가지고 뜨거운 햇살아래 피부가 덜 탔으니 덥기는 했어도 좋은 점도 있었던것 같다.
싱가폴 마라톤은 이곳의 큰 행사로서 대회주최측이 주로통제나 대회준비에 신경을 많이 쓴 흔적에 많이 느껴진 대회였다. 참가한 사람들 모두 마라톤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었다. 싱가폴 사람들 역시 중국계의 사람이 많아서 우리 한국사람과 외모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금융 무역의 중심지여서인지 서양사람들과 우리의 외모와 확연이 구별되는 남아시아 참가자뿐만 아니라 흑인등도 마스터즈 참가들 사이에 가끔 눈에 뛴다. 여성 참가자중 일부는 수영복 같은 복장을 하고 있어 눈요기하기에 좋은 듯(?)했다. 더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라 대회장 뿐만 아니라 출근하는 사람들의 복장도 나의 눈에는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새벽 6시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대형조명등이 대회장 근처를 밝히고 있으나 아직은 해가 뜨기전이라 조명이 없는 곳은 깜깜한 어둠이다. 풀코스는 6천 500여명, 하프코스 8천명여명을 포함해 이번 싱가포르마라톤대회는 총 참가자가 2만2천여명이 참가했다는데 출발시간이 코스별로 30분 간격으로 되어 있어 출발지점이 많이 붐비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으며 멀리 있는 참가자는 어둠속에 묻혀 있어 그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도 불가능했다.
이번 대회도 다른 해외마라톤 대회때와 마찬가지로 사진기를 가지고 뛰면서 4시간 정도를 목표로 삼아 즐기기로 했는데, 출발시부터 날씨가 너무 더워 즐기면서 달린다면 목표시간을 달성할지 의문이다.
대회 코스는 싱가폴 시내를 가로 지르며 오피스 빌딩숲과 진짜 공원의 숲을 통과하고 다시 동쪽해안을 따라 조성된 공원(East Coast park)을 왕복해서 출발했던 시청앞 파당앞으로 돌아온다. 언덕이 거의 없어 달리기에 편하긴 하되 오솔길 같은 주로를 달리다 보니 굴곡이 몹시 심하다. 그러나 잘 꾸며진 정원같은 공원을 달리는 코스는 큰 부담이 없고 해안가를 뛸 수 있는 마라톤 코스가 부럽기만 했다.
날씨가 덥기는 했어도 이번이 나의 풀코스 45번째 참가대회이고 무리해서 달리질 않을 계획이었기에 큰 부담은 없다. 다만 싱가폴 도착 이후 쉬지도 못하고 부지런히 돌아다닌 것과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끊임없이 먹은 것이 부담으로 남는다.
어둑어둑한 도심의 도로를 달려 나가는데 500m도 가지 않아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날씨가 더워도 10분 이상을 뛰어야 땀이 나는 체질인데 덥기는 어지간히 더운가보다. 주위를 둘러보니 땀을 줄줄 흘리는 현지인들도 한둘이 아니다.
싱가폴 마라톤대회는 주로 표지와 음료제공이 잘 하고 있었다. 매 Km마다 눈에 뛰게 표지판을 정확하게 설치해 놓았고 2Km마다 음료수를 컵이 아닌 병째 나누어준다. 제2 반환점을 지난 27Km 지점에서는 파워젤도 나눠 주었고 중간 중간 바나나도 나눠 주고 있었다.
도심 빌딩숲을 2Km 정도 지나니 공원이 나오는데 주로가 갑자기 2차선 도로로 줄어든다. 풀코스 참가자 6,500여명이나 되는 적지 않은 규모이다 보니 약간의 병목 현상이 일어난다. 이른 아침이라 응원하는 사람은 한명도 보이질 않고 공원의 숲에서 스피드 칩이 통과할때 들리는 전자음의 소리를 내는 새들의 재잘거림만이 어둠속에서 주자들을 반긴다. 멀리 보이는 남쪽 하늘에서는 소나기가 내리는지 번개가 번쩍거리는데 워낙 거리가 떨어져서인지 천둥소리는 들리질 않는다.
매 Km를 6분 속도를 넘기지 않으면 4시간 안에는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달렸다. 첫 2Km만 6분을 넘겼을 뿐 이후 38Km 까지 6분을 넘기지 않고 달린 것 같다. 출발한지 30분이 지나니 조금씩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더니 7시가 되니 멀리 수평선에서 해가 떠 오른다. 이제 어둠에서는 벗어났으나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더위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 같아 조금 걱정이 된다.
13Km 지점에 지나니 처음에 출발했던 에스플레너드 다리근처가 나오고 이곳에서 모처럼 출전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의 응원소리를 들었다. 싱가폴 마라톤 대회는 멋진 주로와 대회 진행본부의 완벽한 진행은 맘에 들었으나, 아직 싱가폴 사람들에게 마라톤대회가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지 못해서인지 응원하고 박수쳐주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달리면서 간혹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도 현지인들은 거의 반응을 보이질 않았고, 간혹 보이는 서양사람들은 무척 좋아하면서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달리면서 나처럼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나 말을 건네는 달림이도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전반적으로 이곳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한 것인지 아니면 더운 날씨에 마라톤하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둘중 하나인 듯 하다.
15Km를 지나니 온몸에 흐르던 땀이 양말을 적시고 운동화를 적셔 뛸때마다 신발에서 물이 튀어나가는 느낌이다. 이렇게 달리면서 땀을 흘려본 적이 있었던가. 혹서기 대회도 이렇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래도 속도를 높이지 않으니 몸에 무리가 오지는 않았고 처음부터 더운 곳에서 뛰겠다는 각오를 하고 왔기에 즐거운 맘으로 대회를 즐겼다.
사진기를 가지고 왔으나 주로에서 응원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다른 주자들의 사진은 몇장 찍어 주었으나 정작 내 사진은 찍지를 못했다. 다른 주자들에게 뛰면서 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기에는 그 사람의 리듬이 깨어질까봐 부탁할 수 없었다. East Coast park에 도착하고 나서야 응원하는 사람이 아닌 산책 나온 사람들이 가끔씩 보여 그때마다 간혹 사진을 부탁했다. 그렇게해서 내 사진도 몇 장은 건졌다. 해외 마라톤 나와서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할 사람이 없는 대회는 처음이다.
East Coast park는 정말 부러운 공원이었다. 그 크기도 엄청났지만 잘 가꾸어진 커다란 나무들과 정원같은 분위기,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가족간의 산책과 캠핑, 바다와 접해 있는 해변과 수영장 그 모든 것이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볼 때는 부럼움 그 자체였다.
제 2반환점인 27Km를 지나니 9시가 다 되어가면서 주로에 산책나온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다. 마라톤에 대한 개념이 없는 현지인들이 달리고 있는 주자들 사이로 건너가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비켜달라는 손짖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은 아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변과 숲속을 달리기는 즐겁기만 하다.
해변 공원을 벗어나 다시 도심으로 들어오니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이색복장을 한 응원단들도 보인다. 사진기를 가지고 뛴 덕분에 이쁜 아가씨들과 더불어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었다. 사진기를 들고 뛰기에는 많이 불편하지만 이런 기록들을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해외마라톤 참가시에 카메라를 들고 뛸만하다.
38Km를 지날 무렵부터 더운 날씨에 사진 찍는다고 뛰다 걷다를 반복한 관계로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통과 시간은 3시간 35분. 결승점까지 예상했던 목표시간에 25분 정도 남아 있는데 의욕이 상실되면서 뛰기가 싫어진다. 매 Km당 8분 속도로 뛰어도 목표시간은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말 너무나 덥다. 더구나 이 구간의 주로는 아스팔트가 아닌 보도블럭위를 달리는 코스여서 발에 전달되는 느낌 또한 달리기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래도 풀코스 45번을 뛰는 동안 중도포기가 없는지라 오늘도 중도포기를 할 수는 없다. 더구나 기록을 의식하지 않고 즐기러 온 마라톤 여행이잖은가? 억지로 힘을 내서 뛰다보니 아침에 출발할 때 보았던 두리안 과일 모형을 본떠 만든 에스플레네이드 (Esplanade) 건물이 멀리서 보인다.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걷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면서 시청앞 거리로 들어섰다.
무지무지 더운 가운데 드디어 결승점 통과. 이곳에서도 사진촬영 서비스가 있어 최대한 힘들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들어왔다. 통과 시간은 3시간 57분 20초. 목표로 삼았던 네시간은 넘기지 않았다. 막판에 그렇게 뛰기 싫었지만 역시 결승점을 통과하면 기분이 좋다.
주최측이 쳐놓은 천막 그늘 아래서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스피드칩을 반납하니 풀코스 완주자에게는 셔스 한장을 완주메달과 함께 나누어준다. 참가비 조금 더 냈다고 다른 대우를 받는 것 같아 기쁘다.
맡겨 놓았던 물품을 찾으러 갔는데 이곳에서 난리가 났다. 아마도 자원봉사자들이 물품관리에 대한 경험이 없었던 것 같다. 대회 주최측에서도 참가자가 대폭 늘어나면서 물품관리에 대한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한 듯하다. 길게 늘어선 줄은 줄어들 생각을 아니하고 결국 참가자들이 물품 보관 장소에 들어가서 자신의 물건을 찾아나오는 불상사까지 생겼다. 주로상에 환호하는 관중이 부족한 것과 더불어 오늘 대회의 옥의 티가 아닐까싶다. 그래도 싱가폴 대회를 평가하라면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더운 날씨야 이미 각오를 하고 왔던 것이기에 문제가 되질 않으니...
이렇게 싱가폴 마라톤은 끝났다. 너무나 더웠지만 추운 한국과는 달리 겨울에 여름을 느낄 수 있어 좋았고, 정원같은 공원과 해안을 달릴 수 있어 좋았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어 더욱 좋았다.
'나의 생각과 생활 > 마라톤대회 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마라톤 참가후기 (2006.3.5) (0) | 2008.05.01 |
---|---|
고구려역사지키기 마라톤 참가후기 (2006.2.19) (0) | 2008.05.01 |
동아일보 백제마라톤 참가후기 (2005.11.20) (0) | 2008.04.18 |
중앙일보 서울마라톤 참가후기 (2005.11.6) (0) | 2008.04.18 |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참가후기 (2005.10.23) (0) | 2008.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