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도 열심히 하지 않고 100Km라는 긴 거리를 달리면 몸이 어떻게 되는지 실감한 하루였다.
연습을 많이한 뒤 첫 풀코스를 달렸을 때처럼 다리에 근육이 뭉쳐 힘들었던 것과 같은 상황이 다시 연출되고 있다.
그리고 북한강 울트라마라톤에서 내가 목표로 삼았던 11시간에 들어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도 느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느끼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어 좋았고 어둠이 걷히면서 보이기 시작하는 새벽 물안개와 산에서 내려오는 안개는 육체의 피곤함을 잠시 잊게 해주었다. 그러나 몸은 모든 에너지를 사용해버려 점점 가라않는 느낌과 빨리 결승점에 들어가서 눕고 싶다는 맘밖에 남지 않았다. 힘이 들어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한 나의 머리와 심장과 다리에 스스로 칭찬을 보내는 바이다.
대회출발 전에 날씨가 너무 더웠다. 가만히 서 있어도 등줄기로 땀을 흘러내리고 그늘이 별로 없는 양수리 양서체육공원은 더운 날씨와 참가자를의 열기가 더해 더욱 달아오르는 느낌이다. 첫 울트라 대회 참가인지라 다른 사람들의 조언도 받아보았고 인터넷의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면서 자료를 뒤적거리기는 했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내가 한번 뛰어보는 것보다 더 확실한 지식이 있으랴? 어깨 너머의 지식일 뿐이지 내 스스로의 경험치가 아니어서 큰 도움이 되질 않는듯하다.
장마 기간이어서 비가 내릴까봐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비가 내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걱정하나는 해소된 셈이다. 날씨야 처음부터 더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좋은 아버지 소리를 듣기 위해 대회 당일 새벽 분당 탄천운동장에 가족과 함께 월드컵 조별리그 스위스전을 응원하기 위해 새벽잠을 자지 못하고 응원하러 갔다온 후유증이 약간 남아있어 밤새워 달리는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번 대회는 서바이벌 울트라 마라톤이어서 내 스스로 주최측에서 준비해준 음식료와 내가 준비해간 먹거리로만 달려 보겟다고 마음먹고 대회에 참가했다. 다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천원짜리 몇장을 비상용으로 준비를 하기는 했지만. 전날 물통에 이온음료를 1.3리터 넣어 냉장실에 넣어 꽁꽁 얼려 두었다가 출발할때 수건에 둘둘말아 가져와 출발전에 배낭에 넣었더니 얼음이 녹지 않아 등판이 시원하다. 먹거리로는 초코렛 몇개와 연양갱 하나, 파워젤 종류 6개, 포도즙 2개, 최준성님이 선물로 준 카보런 2개로 모두 배낭에 넣었다. 생각보다는 배낭의 무게가 느껴진다.
100Km와 60Km 참가자가 모두 모이니 넓은 공원이 가득찬다. 간단한 요가와 스트레칭을 마치고 드디어 출발. 어짜피 열시간을 넘게 뛰어야 할 터이라 선두로 출발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 거의 마지막으로 출발했다. 800여명의 참가자가 길게 늘어서니 오늘도 선두는 보이질 않는다. 모두 울트라에 참가하는 사람들이어서 초반의 긴장감도 보이질 않고 급하게 달리는 사람도 없다. 다만 도로를 통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라톤 행사로 인해 길이 막힌다고 열받은 일부 운전자의 과격한 가속음이 신경을 거스를 뿐이다. 그렇다고 엄청 빨리 가는 것도 아닐텐데. 다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럴 것이다.
마라톤 코스중 일부는 다녀본 길이었지만 대부분의 길은 초행이기에 대회주최측에서 만들어놓은 코스요약을 프린트해서 들고 뛰면서 각 지점과 도착시간을 확인하면서 뛰었는데 어둡기 전까지는 가능했었는데 어두워지면서 확인을 할 수도 없었고 프린트한 종이도 나중에 땀에 쩔어 누더기가 되어버려 확인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괜히 헛고생만 잔뜩한 셈이 되었고 그 때문에 중간기록도 모두 없어져버렸다.
거리 표지는 5Km 단위로만 되어 있어 중간 속도를 체크할 수는 없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는 코스요약도를 보면서 시간계산을 해보니 20Km까지는 대략 Km당 6분 10초의 속도로 정속주행이 되었던 것 같다. 울트라마라톤에 처음 참가하는 초보자가 정확한 데이터에 의한 산정도 없이 막연히 11시간안에 들어오겠다는 목표를 세웠었다. 머리 속 계산으로는 매 Km를 6분 페이스로 달리고 중간 중간 체크 포인트 3곳에서 20분씩 휴식을 취하면 대략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라고 주먹구구식의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그리곤 그 목표를 위해 Km당 6분 정도의 속도로 달렸다. 달리면서 조금 늦어지는 것은 휴식시간을 조정하는 것으로 보충하자는 복안도 가지고 있었다.
첫 10Km까지는 차량통행이 많은 도로여서 사람들을 추월하기에도 불편했고, 또 달리는 속도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속도보다 그다지 늦은 것 같지 않아 편안하게 사람들의 무리를 따라서 달렸다. 서서히 어둠이 몰려오는 북한강변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꽤 운치가 있어 보였다. 달리기의 초반이라 주위의 풍경도 즐길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여유가 있는 때이기도 했다.
코스 요약도에 나온 중간 지점을 찾아가는 재미도 솔솔하다. 처음가는 길목의 보물찾기라고나 할까. 대충 그 근처에 도달할 무렵의 대표적인 건물을 지칭해 놓아 찾기가 쉬운 편이였는데 그것도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불가능해졌다. 해는 이미 산에 가려 다른 지역보다 훨씬 더 빨리 져 버렸고 어둠도 다른 곳보다 빨리 밀려오는 듯하다. 선행 주자들의 깜빡이등이 켜지는 것을 보면서 정말로 울트라마라톤에 참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10Km를 지나고 나니 제법 높은 언덕이 나온다. 오늘도 높은 언덕이 나오더라도 가급적 걷지말고 천천히라도 뛰어보자는 생각으로 나왔는데 처음 얼마간은 뛰었는데 도저히 끝까지 뛸 수가 없다. 거의 모든 주자가 다 걷고 있는데 뛰어도 별로 빠른 것 같지 않아 결국 걸어올랐다. 날이 밝았으면 얼마나 높은 언덕인줄 알았을텐데 어둠속에 시계가 20m도 안되니 그저 앞만 보고 올라가면서 꽤 긴 고개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침에 돌아올 때 보니 보통 높은 언덕이 아니다. 이 정도인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걷는 것인데...
출발할 때부터 오늘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아는 몇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반주를 하자고 말하지 않고 독립군으로 달렸다. 후미에서 출발해 시간이 지날수록 평소에 알고 있는 몇분의 지인들을 통과할때에도 함께 달리지 않고 인사만 건네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혼자만의 시간은 가질 수 있어 좋았는데 처음에 생각했던만큼의 유익한 시간을 갖지는 못한듯하다.
처음에는 중간지점을 찾아보는 재미에 사색의 시간을 놓쳐 버렸고 어두워지고 나서 얼마 동안은 주변을 달리는 차량에 신경을 쓰느라 딴 생각을 할 수가 없었고 차량통행이 뜸해진 다음에는 육체의 피로가 몰려와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주변의 광경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 짧았다. 어둠 속에 모든 것이 묻혀 버리고 가끔씩 선행주자를 만나게 되면서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다시 앞질러가는 광경이 반복되었다. 20Km를 통과한 것은 대략 2시간 8분. 아주 긴 언덕을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첫 10Km에 비해서는 조금 빨라졌다. 초반에 빨리 달리면 후반에 고생한다고 했는데 사람 추월하는 재미에 나도 모르게 빨라진 듯하다. 거리 표지가 5Km 단위로 되어있으니 중간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쉽지 않다. 후반부를 위해서 속도를 조금 늦추기로 한다.
한참을 더 가다보니 신청평대교가 나타난다.춘천을 갈때 가끔 지나치던 곳으로 오늘 울트라 구간중 유일하게 내가 다녀본 길이고 아는 길을 만나는 것이 반갑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채 달리는 것과 아는 길을 달리는 것은 심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25Km를 지나고 나니 슈퍼가 하나 나오는데 슈퍼에 평상이 놓여있어 그곳에서 처음으로 간단한 정비를 취했다. 그간 이온음료만 계속먹다가 처음으로 준비해간 파워젤을 하나먹고 배낭에 있는 이온음료를 빨아먹으려는데 나오질 않는다. 울트라 배낭을 준비해 놓은지는 오래 되었지만 처음으로 사용하다보니 물통을 거꾸로 넣어야 하는 것을 모르고 바로 넣었더니 물이 나오질 않는 것이다. 마침 휴식시간에 알게 되어 바로 조치를 했는데 달리다 물이 안 나왔으면 많이 골치아팠을 것 같다.
오늘 달리기에서 가장 고충사항은 배낭에 어깨에 딱 맞지 않은 점이다. 가볍게 달릴때는 몰랐는데 물건이 제법들어가니 달리는내내 내 어깨를 쓸리게 하고 많이 아프게 했다. 비교적 이름있는 메이커의 울트라 배낭이어서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물품이 많이 들어간 원인인지 아니면 나의 달리는 자세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어깨부분이 많이 쏠려 절발이상의 거리를 배낭끈을 손을로 꼭 잡고 달렸다. 배낭끈을 잡고 달리는 것이 귀찮아져 끈을 놓고 달리면 흔들리는 배낭때문에 다시 어깨부분의 마찰로 고통이 가중되고...
간단한 휴식을 취한뒤 첫번째 체크포인트까지는 다시 달리기로 한다. 많은 사람들이 슈퍼를 지나면서 여러가지를 사먹지만 오늘은 주최측이 제공하는 것만 받아 서바이벌의 진수를 느껴보기로 마음먹었기에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생각났지만 생각을 접었다.
첫번째 체크포인트에 가까와 졌는지 60Km의 선두주자들이 몇사람이 반환하여 돌아온다. 드디어 첫번째 체크포인트인 30Km에 도착했다. 시원한 이온음료가 많이 준비되어 있어 수분보충을 해 주었고 커다란 물통에 세수대까지 준비되어 있어 간단히 머리를 감고 세수를 했다. 열기가 식으며서 한결 몸이 가벼워진다. 카보런을 다시 하나 먹어주고 주최측에서 준비한 바나나와 음료를 충분히 먹으면서 10분간 휴식을 취했다. 10분의 시간이면 꽤나 긴 시간인데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버리는지. 조금 더 쉬고 싶은 마음을 추수려 반환점을 향해서 다시 출발. 아직 풀코스의 거리도 달리지 않은 상태인지라 몸의 상태에는 큰 문제가 없다.
30Km를 지나면서 주로에서 달리는 주자를 만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앞서간 주자가 얼마나 되는지 선두와는 얼마나 떨어졌는지도 궁금하다. 길가의 개구리 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로 들리면서 시골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는데, 강변과 산속의 팬션과 콘도에서 나오는 불빛과 술마시고 웃고 떠드는 소리는 도시와 다를바가 없어 묘한 대조를 이룬다. 가끔씩 어둠속을 달리는 사람을 쳐다보기도 하는데 밤 늦은 시간까지 달리는 우리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날씨도 더운데 이런 시골까지 와서 달리는 정말 달리기에 중독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것임에 틀림없다.
앞뒤 사람과의 간격이 자꾸 벌어지면서 앞사람의 깜빡이 등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점점 더 많이 생기고 있다. 대회 참가가 아니었다면 이런 산길을 혼자서 뛴다면 얼마나 무서웠을지도 모르지만 앞 뒤로 나와 같이 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그런 무서움이 들지 않는 것을 보면 공포감이나 무서움도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35Km를 지나면서 정말로 긴 언덕이 나타났다. 언덕을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없다. 미리 높고 긴 언덕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험한지는 몰랐다. 그나마 어둠 속에서 만났기에 다행스러웠다고 생각하는데 낮에 보았다면 처음부터 지레 겁을 먹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첫번째 언덕에서의 학습효과로 인해 이번 언덕을 조금만 뛰고나서는 바로 걷기 시작했다. 긴 언덕과 내리막을 몇개나 지나고 나서야 40Km 표지판이 보인다. 이제서야 풀코스 정도의 거리를 달려온 셈이다.
이 구간부터 반환점까지의 거리를 달리는 시간은 밤 11시가 넘어간 때이고, 아주 외진 도로여서 오고가는 차량이 거의 없어 차량에 대한 부담감은 많이 줄었다. 혼자만의 고독을 즐길수 있는 유일한 구간이었던 것 같다.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도 생각해보고,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결론은 없다.내가 좋아서 달리는 것이고 힘들어도 완주한 뒤의 성취감이 달리는 동안의 고통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란 간단한 결론이 난다.
46Km 쯤 통과했을때 드디어 선두주자가 반환점을 돌아온다. 나와의 거리는 대략 8Km. 반환점에서의 휴식을 감안하면 1시간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힘을 내서 반환점을 향해 달려가는데 그 끝이 보이질 않는다. 다시 나즈막한 고개가 자주 반복되면서 모퉁이를 돌면 나오려나 다시 다음 모퉁이를 돌면 나오려나 해도 보이질 않는다. 밝은 불빛이라도 보여야 반환점일텐데 그 불빛이 보이질 않으니 답답하다. 그러다가 갑자가 모퉁이를 도니 불빛과 함께 차량과 사람들이 몰려 있고 반환점이 나온다.
드디어 두번째 체크포인트 50Km 지점이다. 도착 시간은 5시간 20분. 이제 절반을 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바닥에 누어서 휴식을 취하고 싶었는데 깔판을 깔아논 자리가 완전히 자갈밭이다. 울퉁 불퉁해서 도저히 누울수가 없다.
자원봉사를 나온 지인들이 주최측에서 준비해준 김밥과 미역냉국을 가져다주고 물도 갖다준다. 많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자원봉사자들의 서비스를 있는대로 다 받았다. 땀으로 인해 습기가 찬 양말만 갈아신고 도저히 누울수 없다고 생각했던 불편한 자리이지만 잠시 누워 휴식을 취했다.
처음에 마음먹었던 11시간의 목표달성은 이미 힘들다는 것을 뛰면서 느낄 수 있었고 왜 북한강울트라 마라톤대회의 제한시간이 다른 대회와는 달리 1시간이 더 많은 16시간인지 실감을 했다. 이제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달리기로 했다. 30여분간 충분한 휴식을 취한뒤 결승점을 향해 다시 출발한다. 반환점 체크포인트에서 윤태서님이 사진을 엄청 찍어주었다.
반환점에 도착할 때 어떤 분이 30등 안에 들었다고 했는데 반환점에서 많이 쉬었더니 그 사이에 많은 주자들이 앞서 가버렸다. 그러나 큰 의미은 없다. 난 첫 도전이고 완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는 있다고 생각하니. 돌아오는 길은 외롭지 않게 달릴 수 있었다.
반환점에서 만난 현병인님과 함께 동이 틀때까지 함께 달렸다. 혼자서 달리는 것보다 옆에 누군가가 있어주는 것은 여러가지 면에서 좋다. 특별한 도움이나 말을 하지 않더라도 옆에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심적인 안정을 찾게 된다. 갈 때와는 달리 올때는 육체적인 피로가 몰려올 것이고 혼자 사색을 하겠다는 것도 말이 좋아서이지 전반부에도 하지 못한 것을 후반부에 하겠다는 것도 사치스러워 보일 뿐이다.
반환점에서 너무 오래 쉬어서인지 다시 달리려고 하니 발걸음이 잘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얼마간 천천히 달리니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편해지기 시작한다. 이제 한걸음을 걸을 때마다 결승점에서 한걸음 가까워지는 것이고, 앞으로 나가는만큼 뛰는 거리가 줄어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한결 편하다. 시간은 새벽 1시가 넘었다. 일찍 잠들고 일찍 일어나 일하는 시골인지라 마을의 불은 거의다 꺼져있고 개들만이 이방인을 향해 짖을 뿐이다. 불꺼진 시골집의 우물가에서 주인의 허락없이 미안한 마음으로 수도물로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하면서 덥혀진 몸을 식혀주기도 했다.
60Km 부터 시작되는 그 긴언덕. 처음부터 걷기로 작정하고 천천히 걸어간다. 그러나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것 같다. 반환점을 향해서 갈때보다 시간이 훨신더 많이 걸린다. 예전 한강에서 63Km 대회에 참석해 본 적이 한번 있었고 그 이상의 거리를 달리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어서 몸의 변화가 어떻게 될지 알수 없어 다소 걱정이 된다. 그래도 내리막에서는 다시 속도를 회복할 수 있고 평지에서도 처으의 속도에서 다소 떨어지기는 했지만 많이 늦은 것은 아니다.
아직 정신이 혼미하지 않아서인지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있어 북한강변을 살펴보니 어둠속에서도 북한강의 운치는 그런대로 볼만하다. 건물이나 불빛이 없다면 그다지 볼 거리가 없었겠지만 풍광이 좋아보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팬션이나 콘도 또는 모텔이 위치해 있고 현지인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 늦게까지 불빛이 비쳐지니 그 모습이 그런대로 볼만한 것이다. 언덕코스는 5Km 구간 기록이 36분이 나오는 것을 보니 Km당 7분이 넘어 처음보다는 많이 늦어졌다. 걸었던 영향도 있겠지만 몸이 점차 지쳐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언덕구간 이외에는 걷지 않고 달리다 보니 70Km 체크포인트가 나온다. 세번째 휴식장소에서 가장 많은 것을 먹었다. 주최측에서 준비한 음료와 오이, 바나나와 함께 내가 준비한 쵸코렛과 포도즙, 파워젤을 하나 먹고 나서 모 클럽에서 준비해온 전복죽까지 먹고나니 배가 꽉 찬 느낌이 든다. 중간에 배가 고파서 포기하는 일은 없을 듯 싶다.
먹거리를 보충하고 나서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나서 바닥에 누어 약간의 휴식을 취했다. 새벽 3시가 되어가면서 휴식을 취하니 몸이 식는듯한 느낌이 든다. 어제 낮에 그렇게 덥더니 그래도 강가여서 그러지 밤에는 기온이 많이 떨어진다. 반환점에서처럼 오래 쉬면 또 힘들것도 같고 기온이 서늘해서 체온이 더 떨어지면 안될 것 같아 다시 출발하기로 한다. 어제 잠을 충분히 자질 못해서 오늘 달리다 졸리면 어떡하나하고 조금은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이 아직까지는 졸리지는 않는다. 긴장때문에 졸음이 달아난듯...
평지를 달림에도 불구하고 달리는 속도가 조금씩 더 늦어지고 있다. 다시 내가 알고 있는 지형물인 신청평대교가 나온다. 차량통행이 많이 도로임에도 불구하고 새벽시간이라 지나가는 차가 거의 없다. 어제 이 시간에는 탄천운동장에 모여 월드컵축구를 보면서 소리치며 응원하고 있었는데...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날이 밝아 올 것이다. 날이 밝으면 차량도 달리는 주자를 확인할 수 있어 위험도 줄어들 것이고 달리는 주자도 주변을 보면서 달릴 수 있으니 덜 지루할 것이 아닌가.
80Km를 향해서 가고 있는데 박상학님이 과일을 준비해서 응원을 가고 있다고 어디에 있느냐고 여러차례 전화가 온다.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도 이미 출발했으니 80Km지점 근처에서 만나자고 한다. 어제 출발이후 날이 어두어져서 주변을 볼 수 없었던 위치에 도착할 무렵 드디어 날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강가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산에서는 안개가 아랫쪽으로 밀려온다.
늘 새벽에 느끼는 상쾌함이 오늘도 나를 반긴다. 온몸이 피곤을 느끼고 특히 다리와 종아리가 더 아프긴해도 아침을 맞이하는 기쁨에는 미치지 못한다.
울트라에서 가장 힘이 든다는 80Km 지점이 바로 눈앞인데 아직 한계점이라고 느낄만큼의 고비는 아닌 듯하다. 힘은 들지만 충분히 버텨낼 수 있는 정도이다. 신선한 새벽의 맑은 공기가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촉진하는 듯하다. 풀코스를 두 번 달리는 거리를 밤새워 왔음에도 아직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은 반환점이후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속도를 많이 늦추어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80Km를 조금 더 지난 지점에서 박상학님을 만나 시원하게 냉장된 수박 한조각을 얻어 먹었다. 수박이 너무 맛있다고 하니 지금은 무얼 먹은들 맛있지 않은 것이 있겠냐며 웃는다. 새벽 일찍 자신이 아는 몇사람이 힘들게 달리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멀리까지 와줄 수 있는 친구의 배려가 너무 고맙다. 밤새워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런클의 가족들도 생각해보면 너무나 고맙다. 정말 내년에 다시 울트라 대회에 참가하지 않는다면 꼭 와서 자원봉사를 한번 해 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또한 주로에서 수박 한조각 얻어먹은 것이 서바이벌 울트라에 위반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자위해본다.
수박을 먹고 나서 다시 출발. 반환점 이후 30Km를 함께 달렸던 현병인님을 따라가기가 조금 벅찬 것 같아 먼저 보내드리고 혼자가 되어 뛴다. 다시 만나는 오르막길, 말이 필요없이 걷는다. 이제 20Km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해보지만 그 거리면 풀코스의 절반이나 되는 거리가 아닌가?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한다. 뛰어온 거리를 생각하면 남은 거리쯤이야... 오르막과 내리막을 몇개 반복하는데 이제는 오르막보다 내리막길이 월씬 더 힘이든다. 차라리 오르막길은 걸으면 되는데 내리막길에서는 무릅에 무리가 가는지 그냥 주저않고 싶은 마음이다. 뛰기는 뛰는데 걷는것보다도 늦는 것 같은 느낌이다.
86Km 지점에서 오석환님이 기다리다가 박카스와 얼린 물수건을 건넨다. 이번 울트라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내 스스로 규칙보다 더 강화된 서바이벌로 뛰어보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도와주질(?) 않는다. 그러나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 박카스도 너무 맛있었고 얼린 수건도 너무 필요한 것이었다. 지난해 같은 코스를 달려본 경험을 이야기해 주면서 내리막길에서 나와 똑같은 경험을 했다고 한다. 무릅부분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하는 생각을 하니 많이 안심이 된다.
그 힘들었던 내리막길 고개를 내려오니 이제 평지만 남았다. 뛰면서 배낭속에 있는 것을 거의 먹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줘 배낭속에는 물밖에 없어 가볍지만 그 배낭도 벗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가벼운 배낭이지만 끝까지 어깨와 목부문에 마찰과 충격을 주어 목주변이 벌겋게 되어 있다. 규정상 배낭을 메고 뛰어야 하니 버릴 수도 없다.
80Km를 넘어서고 나서는 매 5Km를 가는데 40분이 걸린다. 결국 매 Km당 8분으로 늦쳐진 셈이다. 달리는 전략을 잘못 세운탓으로 80Km 이후 결승점까지 나를 추월해 간 사람이 대략 30여명 정도 된 것 같다. 전반부에 조금 천천히 달렸다면 후반부에 그처럼 많이 늦어지진 않았을 듯한데 처음 참가하는 울트라대회인지라 초반 매 Km를 6분으로 달리는 것도 답답한 마음이 들었었다. 힘빠진 후반부에는 8분으로 달리는 것도 힘겨워하면서....
나의 한계는 92Km를 지날때쯤에 왔다.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뛰고 싶은 맘이 생기질 않는다. 어디 시원한데 가서 눕고 싶다는 마음만 자꾸 생길뿐이다. 주변의 경관도 눈에 들어오질 않고 머리는 자꾸 쳐져 도로 바닥만 쳐다보게 된다. 해도 떠 오르면서 날씨가 엄첨 더워지기 시작하는데 차량 통행까지 많아져 달리는 주로 상황은 자꾸 나빠지는데 걷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긴다. 더욱이 오른쪽 종아리 부근에 문제가 생긴듯하다. 자꾸 신경이 쓰이는데 부상은 아니였으면 좋으련만.
'이제 남은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데 조금만 참고 더 가자'고 마음속을 몇 번이나 되새겼는지 모른다. 머리를 들지 않고 바닥을 보고 달리다 보니 도로가에 사슴벌레와 풍뎅이등 많이 죽어있는 것이 보인다. 힘든 상황에서도 이곳에 저런 곤충들이 아직도 살고 있으니 오염이 덜 되었구나 하는 생각은 든다. 지루한 강변도로를 끝까지 걷지 않고 달리다 보니 멀리 양수리의 다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결승점 근처가 멀리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결승점을 4Km 남겨놓고 다시 한번 꿀같은 수박을 얻어먹었다. 조석현님과 60Km부분에 참가했던 런너스클럽 식구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시원한 수박과 물을 건넨다. 굉장히 힘들었는데 수박 한두조각이 힘을 다시 북돋아준다. 여기에서 80Km에서 먼저 보내드렸던 현병인님을 다시 만난다. 수박을 먹는 핑계로 자리에 퍼져않아 다시한번 휴식을 취하고 마지막 전의를 가다듬었다. 오늘 뛰면서 얼마나 많은 물을 마시고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모른다. 배낭은 땀으로 흠뻑 젖어버렸고 배번도 땀에 쩔어 아래로 축 쳐져버렸다.
이제 남은 거리 걸어서만 가지 않는다면 13시간 안에는 도착할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생긴다. 아니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완주할 수 있다는 의지가 샘솟는다. 하지만 정신력과는 달리 발걸음은 잘 따라오질 못한다. 그래도 걷지않고 걷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결승점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줄여나간다.
마을 입구 철도 건널목을 건너니 이제 남은 거리는 1Km 남짖. 멀리 양서체육공원이 보이길 시작한다. 96Km 지점에서 만나 함께 동반주를 해 주던 조석현님은 먼저 마을로 부지런히 가시더니 쮸쮸바를 사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건네 주신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 대회는 이 쮸쮸바로 인해 서바이벌 대회가 아니었음을 선언한다. 손에 쥔 시원함이 막판 힘을 북돋운다. 마을로 들어오니 주민들이 박수를 쳐 주면서 응원을 해 주기도 한다.
현병인님과 함께 손을 잡고 나란이 양서체육공원에 들어온 시간은 출발한지 12시간 44분이 지난 시간이다. 중간에 지나가는 차를 얻어타고 들어오고픈 마음이 들 정도로 힘은 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백 오십리길을 밤새워 달려왔다. 처음 울트라를 뛰면서 11시간에 들어와 보겠다고 했는데 북한강울트라에서 11시간내에 들어왔으면 전체 7등을 하는 시간인데 그것도 모르고 우습게 생각했던 것 같다.
막판 날씨가 다시 더워지기 시작했는데 그나마 많이 더워지기 전에 들어와서 다행이다. 후반부에 뛰는동안 내내 결승점에 들어가면 누워서 휴식을 취해야지 했는데 도착하고나니 그늘도 별로 없는 양서체육공원인지라 쉴곳도 없었지만 별로 피곤함이 느껴지지도 않으니 웬일인가 모르겠다. 종아리가 많이 뻐근하지만 걱정했던 물집은 잡히지 않았고, 힘은 들지만 도전을 이뤄냈다는 기쁨으로 가득하다. 결승점에서 여러사람의 축하를 받으니 밤새 힘들었던 순간들은 잊혀지고 완주를 하긴 했구나 하는 행복한 느낌이 몰려온다.
그러나 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은 이 자리에서는 전혀 없다. 오늘 대회참가자가 500명이 넘었는데 완주자는 300여명 조금 넘는 것 같고, 내 기록이 전체 참가자중 71등이니 그 정도면 잘 한 것 아닌가싶다. 이것으로 만족한다.
나는 내가 좋아서 달렸지만 밤새 자원봉사를 해준 많은 분들과 멀리서 새벽잠을 줄이며 응원해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다시 한번 힘이 들어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한 나의 머리와 심장과 다리에 스스로 칭찬을 보내는 바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나도 "울트라 런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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