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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무주 여행 2-2 (2008.9.28)

남녘하늘 2009. 8. 14. 06:44

 

 

무주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식사 후 무주리조트를 출발해 전주로 이동했다. 전주에서 처음 간곳은 전주세계소리 축제가 열리고 있는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이곳 뿐만 아니라 전주시내 여러곳에서 세계소리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축제기간은 9월 26일부터 10월 4일까지로 우리가 도착한 날은 축제가 시작된지 3일째 되는 날이였다. 전주세계소리 축제는 우리 고유의 전통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행사다.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후보인 판소리를 비롯, 대중성을 확보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었다.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중앙광장의 조형물을 배경으로.   

 

 

 

 

모악당을 배경으로...

 

 

 

놀이 마당에서는 멀리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소고 아프리칸'팀의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아프리카 전통 악기와 춤을 가지고 전세계를 돌면서 공연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말은 알아듣지 멋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음악과 춤은 흥겹다고 느낄 수 있다. 이런 자리가 아니면 공연장에서 실연하는 공연을 보기가 쉽지 않았을터인데 좋은 구경을 했다.

 

 

 

 

공연을 마친 '소고 아프리칸'팀의  한 멤버와 함께.

 

 

 

아프리카 팀의 공연에 이어 전주 기접놀이가 준비되고 있었는데 짧은 시간에 모든 공연과 다른 전시를 모두 보고 느낄 수 없어 자리를 떴다. 정말로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공연일정을 체크해 가면서 공연을 본다고 하지만 우리같은 비 전문가들은...  올해로 8번째로 개최되는 전주 세계소리 축전이 앞으로 더욱 발전해서 지방에서 열리는 인기있는 축제로 자리잡기를 기원한다.

 

 

 

 

 

 국제 회의장 및 전시실에서는 세계악기 및 원시미술전이 개최되고 있었다.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행사중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고 있는 행사였던 것 같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전통 국악기를 전시하고 있었고, 또 각국의 원시악기를 전시하면서 세계원시 미술전을 2층과 3층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세계의 각종 가면과 탈을 모아 놓은 것도 굉장히 흥미로왔다. 마치 외국의 박물관을 방문한 듯한 느낌이... 좋은 구경을 많이 했다.

 

 

 

 

 

전시장에서 좋은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다시 놀이마당에서는 전주 기접놀이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전주 기접놀이는 조선 중엽 칠월칠석이나 백중(음력 7월 15일)을 맞아 이웃마을 주민들과 함께 어우러져 그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있었던 물꼬싸움이나 묵었던 감정을 풀어버리는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국악을 듣고 있노라면 흥겨움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가보다.

 

 

 

 

 

중앙광장 연지홀 앞에 마련되어 있는 꽃마차를 타고... 관람객들에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인트로 활용하라고 행사 주최측에서 마련해 놓은 듯... 그렇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

 

 

 

전주세계소리 축제가 진행되던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을 출발해 방문한 곳은 전주 한옥마을과 경기전. 전주 경기전은 한옥마을 초입에 자리잡고 있으며, 조선왕조를 설립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어진)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태조의 영정은 전주, 경주, 평양, 영흥 4곳에 봉안되었는데, 전주 경기전, 경주 집경전, 평양 영숭전, 영흥 선원전이라고 한다. 현재의 경기전은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소실 된 것을 광해군 6년(1614)에 중건한 것이다. 1991년 1월 9일 사적 제339호로 지정되었다.   

    

 

 

 

 

충립문 앞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경기전을 지나는 사람들은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 경의를 표하도록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경기전 한쪽에 있는 전주 사고(全州 史庫).  고려시대부터 춘추관과 예문관을 만들어 사관을 두어 날마다 왕의 행적을 기록하였으며 한 임금이 전왕시대의 역사를 편찬하여 이를 실록이라 하고 특별히 설치한 사고에  봉안해왔다. 조선왕조에서 편찬한 실록은 처음에는 서울의 춘추관과 충주사고 두곳에서만 보관했다. 그러나 2부는 실록만으로는 그 보존이 걱정되어 1445년(세종27년)에 다시 2부를 더 등사하여 전주, 성주에 사고를 신설하고 각 1부씩 나누어 보관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춘추관, 충주, 성주의 3사고의 실록은 모두 소실되고 오직 전주사고의 실록만이  병화를 면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손홍록, 안의 등이 실록을 내장산 용굴암에 이안, 사수하였기이 때문이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은 조선왕조실록(국보 제151호)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성심성의껏 해설을 하고 있었던 문화해설사님들. 투철한 사명의식으로 관람객에게 우리의 역사를 알려 주려고 노력했다. 최근 여러 문화 유적지를 방문하면 문화해설사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 정책은 참으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역사부문은 알고 있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이어서 찾아 간곳이 전주 한옥마을. 서울 남산 한옥마을과는 차원이 다른 한옥마을이었다. 실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고, 마을의 골목길 하나 하나에도 세심한 신경을 써 놓았던 마을이다. 한옥마을 전부를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없어 몇 군데를 선택해서 방문하게 되었는데 처음으로 방문한 곳이 소설가 최명희 문학관이었다. 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 선생의 삶과 문학적 가치를 만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만든 곳이다. '아름다운 세상 잘 살고 갑니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간 최명희 작가의 혼이 남겨지는 공간이였다. 문학관은 작았지만 최명희 선생이 집필하던 원고며 친구들에게 보냈던 편지와 쓰던 물품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정문보다는 뒷문에 큰 길가에 접해 있어서인지 뒷문으로 들어갔다가 뒷문으로 나왔다.

 

 

 


들어가는 입구에 있던 최명희님의 육필 수필집의 글씨체가 너무 가지런하고 우아하다. 작가 최명희는 무려 1만2천장의 원고지를 육필로 썻다. 최명희 소설 '혼불'을 다 읽는다면 국어 사전을 한권 읽은 것이나 다름 없다고 한다. 그만큼 한글을 사랑하고 문학을 통해 우리 말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애써왔다. 이런 분 앞에서 우리말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서 영어나 외국어를 못한다고 호들갑을 떠는 현실이 우습다는 생각이다. 최명희 문학관을 배경으로.

 

 

 

 

 

 한옥마을 거리. 깨끗하고 걷고 싶은 길이다. 왜 전주에 살고 있는 친구들은 그동안 한옥마을 거리를 나에게 소개해 주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덕진공원이나 월드컵 경기장, 전북대학교, 시내 중심가나 돌아다녔던 것 같다. 나는 이런 곳을 훨씬 더 좋아하는 사람인데.... 아마 한옥마을조차 친구들에게는 생활의 일부였기에 좋다 나쁘다의 평가 대상이 아니였기 때문일 것 같다.    

 

 

 

 
전주시 교동, 풍남동에 700여 채의 전통 한옥으로 이루어져 있는 전주 한옥마을. 문화공간으로는 판소리·춤·타악 등 전통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전주전통문화센터, 막걸리·청주의 제조과정 관람과 시음까지 할 수 있는 전주전통술박물관, 숙박을 하면서 온돌과 대청 마루 등 한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전주한옥생활체험관, 전통 공예품을 전시하는 전주공예품전시관 및 명품관등이 있다. 이러한 한옥 사이로 이쁜 골목길과 잘 정비된 도로, 서울의 인사동보다 훨씬 볼거리가 많다.  

 

 

 

 

전주 한옥마을 관람으로 1박 2일동안 진행되었던 공공기관의 가족을 대상으로 한 공공이전기관 가족 문화탐방 행사가 모두 끝났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여행이었다면 전주세계소리축전에서의 몇가지 공연도 보고 싶었고, 한옥마을 답사도 더 하고 싶었지만 주어진 시간에 모든 것을 다 해볼 수는 없는 법...  다만 여러번 전주에 왔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한옥마을이 있는지도 몰랐던 무지함을 깨칠 수 있어 좋았다, 다음에 전주여행을 하게 되면 그 때는 시간을 가지고 한옥마을의 구석 구석을 찾아다니는 것도 꽤 재미있는 여행이 될 것 같다. 이번 행사를 위해서 고생해준 전라북도 도청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리고 우리 버스에서 특히 고생이 많으셨던  전북도청의 이미숙님께도 감사드린다. 짧지만 아주 알찬 여행이었다. 선물로 받은 게장도 아주 맛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