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속리산을 다녀 왔는데 하룻만에 다시 관악산에 오르게 되었다. 요즘 달리기를 조금 등한시했더니 산에 가자고 하는 제의가 많이 들어온다. 본래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까지는 산에 많이 다녔기에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렇게 이틀 연속 산에 오른 것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관악산(冠岳山, 692m)은 한강 이남에 솟은 서울 시내 산을 대표하는 친근한 산이다. 물론 악산이어서 산에 오르면서 곳곳에 바위가 많기는 하지만 정해진 등산로를 따라서 움직인다면 그다지 부담이 가는 정도는 아니다. 더구나 나는 어린 시절 안양에서 살았을 때 아버지를 따라서 자주 올랐던 산이 관악산과 이어진 삼성산이었기에 매우 친근하고 부담이 없는 산이다.
또한 관악산은 개성의 송악산, 파주의 감악산, 포천의 운악산, 가평의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五岳)에 속했던 산으로, 서울의 남쪽 경계를 이루고 있고 그 줄기는 과천 청계산을 거쳐 수원의 광교산까지 이른다. 북서쪽으로 서울대학교, 동쪽으로 과천 정부종합청사, 남쪽으로 안양유원지가 자리하고 있다. 주봉(主峰)은 연주대(戀主臺)이고, 산정에는 기상청의 기상 레이더 시설이 있다.
산중에는 태조 이성계가 서울을 도읍지로 정할 때 건축하여 곤란에 대처했다고 전해지는 원각사와 연주암(戀主庵:경기기념물 20)이 있고 그밖에 자왕암(慈王庵)·불성사(佛成寺)·삼막사(三幕寺)· 관음사(觀音寺) 등의 산사(山寺)와 과천향교 등이 있다. 이 중 삼막사는 원효·의상 등의 고승들이 수도하였다고 한다.
오늘 산행은 통합전 토지공사에 재직했던 등산모임중 '느림보 산행 모임'과 함께 했다.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지만 빨리 오르내리는 것을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대신 배낭 한가득 먹거리를 가져와 걷는 것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산악 모임이다. 그동안 여러차례 함께 가려고 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 실행에 옮긴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어제 속리산 갈 때와는 달리 밤새 비가 내리고 아침에 사당역에서 모일 때까지도 비가 오락가락하며 일기가 좋지 않았다. 기온도 갑자기 많이 떨어져 산에 오를 때 옷을 가볍게 입는 나로서는 한기가 많이 느껴졌다. 가만히 있으면 한기가 느껴지니 많이 움직이는 방법밖에 없다.
사당역에서 출발해 관악산을 오르는 코스 중에도 조금 어려운 코스인 관음사 절을 왼 옆에 끼고 바위 길을 오른다. 원래 서울 근교의 산은 스모그로 인해 좋은 조망을 기대하는 것이 어려운데 오늘은 비까지 내려 한강 너머로 남산조차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사람마다 산에서 즐기는 재미가 제각각이겠지만 나는 조망의 즐거움에 꽤 큰 비중을 두는 편이다. 오늘은 산정도 구름에 둘러 쌓여 있고 서울시내 모습도 뿌였게 보이니 재미가 반감된다.
관악산에는 아직 단풍이 조금 남아 있다. 하지만 비가 오락가락 하면서 맑은 날씨가 아니고 옅은 구름이 깔려 있어 시계가 좋지 않았다. 관악산은 안양 방면이나 과천에서 오르는 코스는 자주 다녀 보았지만 사당이나 서울대 방면에서는 한번도 오르질 않았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이쪽에서 오르게 되었다. 이 코스는 오르기에는 괜찮지만 내려 오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코스일 것 같다. 바위 암벽이 많다는 이야기...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20분만에 마당바위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오늘 참석한 사람들의 단체 사진을 처음으로 찍었다. 간단한 간식을 먹고... 정말로 이 모임은 먹는 것이 풍부한 산행 모임이다. 겨우 1시간정도 올라왔는데 간식을 먹는다. 내 배낭에는 물 한병, 얼린 맥주팻트병 하나, 간단한 안주가 전부인데 다른 일행의 배낭에선 끝임없이 먹거리가 나왔다.
계속 움직이니 얇은 옷 하나로도 쌀쌀함은 가셨다. 정상인 연주대은 아직 구름 속에 쌓여 있다. 바위산을 오르기에는 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날이 별로다. 기상상태가 별로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11월 첫날이고 일요일이어선지 산을 오르는 사람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우리가 천천이 걷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추월해간다.
연주대 쪽으로 방향을 잡아 암릉길이 걷다보면 자연 바위로 이루어진 관악문을 통과한다. 관악문을 통과하면서 바로 우측 위에 한반도 형상의 지도바위가 있다. 정말로 한반도 형상의 모습이어서 신기하다. 지도바위 근처에 도착하니 산위에 있던 구름이 조금씩 걷히면서 정상이 가깝게 보인다. 구름이 걷히는 대신 바람이 조금 더 많이 불어 쌀쌀함을 느끼게 된다.
이제 정상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다. 언덕같은 암벽 하나만 더 올라가면 된다. 암벽에 정상을 향해 오르는 사람들의 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조금 위험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너무 잘 올라간다.
연주대 정상에서 바라 본 기상레이더와 방송중계시설.
관악산의 봉우리 중에 죽순이 솟아오른 듯한 모양을 한 기암절벽 위에 석축을 쌓고 자리잡은 암자를 연주대라 한다. 원래는 의상대사가 문무왕 17년(677)에 암자를 세우면서 ‘의상대’라 이름했었는데, 고려 멸망 후 조선을
반대하며 고려에 충성을 다하던 유신들이 이곳에 모여 멀리 개경쪽을 바라보며 고려를 그리워하여 연주대(戀主臺)로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조선 태종(재위 1400∼1418)이 셋째왕자 충녕대군을 장차 태자로 책봉하려 하자 이를 눈치챈 첫째 양녕과 둘째 효령대군이 궁을 나와 관악산에 입산 수도하면서, 이 연주대에 올라 왕궁을 바라보며 왕좌를 그리워하였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관악산의 주봉인 연주대(해발 629m)에서.
이 바위 봉우리 오른쪽 아래로 돌아 내려가면 기도처로 알려진 연주대라는 조그마한 암자가 자리하고 있다. 사실 연주대라는 지명이 봉우리 이름인지, 암자 이름인지 아직도 헷갈린다. 연주대 정상에서 내려오면 연주암이란 이름의 절이 있다. 규모가 꽤 큰데 사(寺) 대신 암(庵)이라고 부르는데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이 절에도 늦가을의 정취가 가득하다.
옛날에 관악산에 오르면 연주암에서 절밥을 먹곤 했었는데 오늘 산행은 우리 일행이 준비한 것이 많아서 이곳의 유명한 절밥을 먹지 못했다. 절에서 조금 떨어진 한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점심판을 펼쳤는데 산에서 족발에 각종 회까지 먹어본 것이 오늘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구름때문에 햇살이 없어 한기가 느껴질만큼 오랜 시간 점심 식사를 했다.
함께 산행한 회원들의 단체사진.
삼성산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 가다보니 어느듯 기상레이더와 방송중계시설이 저 멀리 보인다. 무슨일이든간에 멀다고 한탄만 하고 있으면 끝까지 도달하지 못하지만 한걸음 한걸음 걷다보면 어느새 목표에 도달하는 것처럼 산행도 천천히 걷다보면 멀게만 보이던 목표점에 도착한다.
관악산만큼 태극기 게양대를 많이 설치해 놓은 곳이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국기봉이 여럿 있다. 삼성산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 이동하면 또 국기가 있는 봉우리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곳도 국기봉으로 불린다. 팔봉능선의 북쪽에서 관악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풍광.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관악산은 어디를 둘러 보아도 언제나 멋진 암릉과 기암들이 많아 눈이 즐거운 산행을 할 수 있다.
오늘 삼성산까지 가보려고 했는데 가을산행인데다 이곳까지 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삼성산까지 가기에는 조금 무리가 따를 것 같아 중간에 서울대 방향으로 목표를 바꿨다. 팔봉능선의 마지막 봉우리를 내려서서 만나는 삼거리. 좌측은 안양예술공원 쪽으로 내려서는 길이고, 서울대 방향은 우측으로 내려서야 한다.
계곡을 내려서서 완만한 길을 따라가면 잠시 후에 무너기고개가 나오고 계곡을 따라 지루한 하산길이 이어진다. 한참을 내려오면 우측에 철망이 보이고 갈림길이 나오는데 철망을 지나면 서울대로 들어서는 길이고, 직진하면 호수공원으로 가게 된다. 우리는 서울대로 들어가서 버스를 타고 산행을 마무리했다. 평소 내가 하는 산행의 스타일이라면 6-7시간이면 충분했을 산행이 거의 9시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함께 한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도 나누고, 먹는 것도 충분히 먹고 좋은 시간을 보낸 관악산 등산이었다.
'나의 생각과 생활 > 등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백산 산행 (2010.1.16) (0) | 2010.03.26 |
---|---|
계방산 산행 (2010.1.9) (0) | 2010.03.25 |
속리산 산행 (2009.10.31) (0) | 2010.01.19 |
운악산 산행 (2009.9.26) (0) | 2010.01.12 |
시궁산, 삼봉산 산행 (2009.8.29) (0) | 2010.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