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말 속리산으로 산행을 계획했었는데 추석을 앞두고 도로가 너무 막혀서 운악산으로 변경하는 바람에 오르지 못한 산행을 한달이 지나 실행하게 되었다. 속리산으로 등산을 계획하고 단풍 일정을 살펴보니 단풍의 절정기는 조금 지나버린 듯하다. 축제가 열리거나 단풍의 절정기등에는 찾는 사람이 많아서 오고 가며 시간을 많이 낭비하게 되고, 또 산에 가서도 사람에 치여 제대로 구경을 할 수 없는 반면 그 시기를 지나게되면 멋진 광경을 볼 수 없는 아쉬움이 남게 된다. 이번 산행도 절정기를 지난 산행이어서 아름다운 단풍구경은 하지 못할 듯하다.
속리산은 그동안 여러번 다녀왔지만 나에게는 특별한 감상이 있는 산이다. 군대를 갔다와서 복학한후 지금의 집사람을 만나 처음으로 지방으로 데이트를 떠났던 곳이 속리산이었다. 산에 오르는 것도 좋았지만 서울로 돌아올 때 어둠이 깔린 고속버스를 타고 돌아올 때의 느낌이 특별해서 아직도 속리산을 떠올리면 그 때 생각으로 늘 기분이 좋은 산이다.
속리산(俗離山)은 이름 그대로 속세와 이별한다는 이름을 가진 산으로, 우리나라에서 북한산, 지리산, 설악산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이다. 국토의 중앙부분에 있어 교통이 발달한 요즘은 쉽게 올 수 있는 산이다. 살아 생전에 속리산 문장대를 세 번 오르면 사후 극락세계에 갈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는데 이는 옛날에 교통이 불편하고 바위에 오르기가 어려워서 이런 전설이 생겼으리라 추즉된다.
아침 일찍 회사에서 100산회 동료를 만나 출발하기로 해서 회사에 나갔더니 회사에 있는 나무들도 단풍도 이제 막바지에 있다. 평지의 있는 나무들이 이렇게 단풍이 끝나간다면 산에는 거의 끝나지 않았을까 싶다. 출발하기 앞서 회사의 모습을 찍어 보았다.
속리산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레이크 힐스 호텔 앞 잔디 밭 뒤에 보이는 단풍들. 이제는 단풍이라고 하기엔 좀 민망하고 색도 이미 낙엽잎에 가까운 우중충한 색이다. 사진 속에 남아 있는 단풍 사진은 그야말로 띄엄 띄엄 남아 있는 단풍을 겨우 찾아내어서 찍은 사진들이다. 대부분의 나뭇잎은 단풍색을 지나쳐 낙엽이 되기 일보직전이거나 이미 말라버린 나뭇잎에 불과했다. 하지만 속리산에 온 것이 산에 오르기 위해서이지 단풍을 구경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속리산은 아직도 입장료 3천원을 받는다. 언제부터인가 국립공원이 무료화가 된 줄 알고 있었는데 이곳은 법주사를 지나가는 이유때문인지 문화관람료를 받는거 같다. 이곳을 통해서 입장하게 되면 사찰 땅을 통과하지 않고는 안되는가 보다. 나도 무늬는 불교신자이지만 입장료 징수는 재고해 봐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법주사에서 산 중턱에 있는 세심정 휴게소까지의 길은 포장이 잘되어 있었다. 산에서는 흙길을 걷는 것이 좋은데 산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포장을 하는데 별로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법주사를 지나 산길로 들어가는 입구에 약간의 늦단풍이 남아 있어 속리산에도 단풍이 물들었을 때 얼마나 예뻤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산책하는 기분으로 도착한 세심정. 세속을 떠나 산에서 마음을 씻는 정자라는 뜻으로 숙박과 식사가 가능한 곳이다. 아주 옛날부터 속리산으로 공부하러 찾아오는 이들에게 음식과 휴식을 제공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속리산을 처음 찾아왔던 81년도에는 세심정까지 오는 것도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 곳인데 이제는 등산을 시작한다는 느낌이니 산을 오르는 것이 많이 편해진 듯하다. 세심정에서 문장대코스, 상고암코스, 문장대, 경업대코스로 갈라진다.
드디어 문장대(1,054m)에 도착했다. 그런데 충청도가 아닌 경북 상주시 소속이다. 문장대는 본래 큰 암봉이 하늘 높이 치솟아 구름속에 있다하여 운장대라고 하였으나 세조가 속리산에서 요양중 꿈속에 귀공자가 나타나 '인근 영봉에 올라 기도하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 이라는 말을 듣고 찾았는데 정상에 삼강오륜을 명시한 책이 있어 세조가 종일 글을 읽었다 해서 문장대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단풍시즌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속리산을 찾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 문장대에서 사진 찍기도 쉽지가 않다. 얼른 사람이 붐비지 않는 틈을 이용해 사진을 한장 찍고 문장대 암봉으로 올라가는 줄을 서야만 문장대에 오를 수 있다. 문장대에 오르는 철제계단에도 사람들이 줄지어 오르고 있었다.
사람들로 복잡한 철계단을 올라 넓은 바위로 되어 있는 문장대 바위 위에 오르면 속리산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위에 거칠 것이 없으니 바람도 제법 많이 불어 모자가 날려갈 듯하다. 올라 오면서 흘렸던 땀이 선선한 바람에 식으니 좋은데 다른 등산객들은 한기를 느끼는지 윈드자켓을 꺼내 입기도 한다. 문장대에서 내려다 본 속리산과 주변의 가을산... 2주만 더 일찍 와 보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문장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경치를 구경하고 사진을 찍느라고 정신이 없다. 우리도 이 대열에 합류하여 정상에서 주변 경치를 구경하고 다시 문장대 표지석이 있는 곳에 내려와 약간 더 머문 후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아래도 이동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장대 바로 아래 공터(예전에 휴게소가 있었으나 현재는 철거하여 없음)에는 식사와 휴식을 취한다. 바람도 불지 않고 양지 바른 곳이어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 식사 및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우리도 여기서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를 한 후 신선대로 향하는 순간 뒤로 쳐졌던 지형구 실장이 문장대로 오르기 위해 이곳까지 올라왔다. 몸이 불편해 중간에 돌아갈 줄 알았는데 끝까지 올라온 것이다. 반갑게 해후를 하고 사진 한장을 찍은 후 우리는 천왕봉 방향으로 움직였고, 지실장은 문장대로 올라갔다.
문장대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백두대간 주능선으로 주로 산죽이 많은 완만한 능선길로 이어진다. 문장대서 신선봉(1,026m)까지는 1.1km로 문장대에서 30여분이 걸려서 도착했다. 문장대에서 천왕봉 구간에는 암봉들이 많이 있고 이런 주변 풍경구경에 빠져 지나다보면 어디가 어디인지 알수가 없는데, 표지석조차 없어 더욱 확인하기가 어렵다. 신선대에는 휴게소가 있었고 정상석은 휴게소 바깥 한쪽 구석에 있어 이 또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다.
신선대 휴게소에서 만난 개. 이런 산꼭대기에 개를 키우고 있었다. 사람들을 워낙 많이 접하다보니 성격이 온순해진 듯하다. 이름이 '진순'이라고 하던가?
좋은 전망을 구경하고 다시 천왕봉 쪽으로 길을 재촉했다. 신선대 정도부터였던가 능선에 산죽이 크게 자랐다. 속리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대부분 문장대까지만 오르고 천왕봉 방향으로는 잘 다니지 않아서인지 사람 키를 능가하는 곳도 많이 있었다. 해발 900 내지 1000m 정도의 구간이다.
비로봉과 신선대를 배경으로
천왕봉 쪽으로 가다보면 입석대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등산로에서는 입석대가 잘 보이지 않았다. 입석대 뿐만 아니라 다른 봉우리도 어디가 어딘지를 잘 알 수가 없다. 지나치는 사람이라도 많으면 물어보련만 이 코스는 지나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속리산 능선길중 가장 전망이 좋을 곳에서 사진 한장을 찍었다.
석문 통과. 이 바위를 통과해야만 천왕봉으로 갈 수 있다.
드디어 천왕봉(1,058m) 정상에 올랐다. 주봉치고는 정상이 너무 옹색하다고 생각 할만큼 바위 몇개만 있는 모습이지만 경관 만큼은 일품이다. 서쪽으로는 문장대, 관음봉, 묘봉이 한눈에 보이고, 남쪽으로는 형제봉, 구병산이 보인다. 천왕봉 정상에 떨어진 빗물을 삼파수라고 하는데 동쪽으로 흘러내리면 낙동강 물을 이루고, 서쪽 법주사 앞으로 떨어지면 남한강과 만나게 된다. 또한 남쪽으로 떨어지면 금강을 이루게 된다.
천왕봉에서 다시 비로봉방향으로 되돌아와 중간 갈림길에서 하산을 시작한다. 중간 중간 단풍이 남아 있는 곳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부지런히 내려왔다. 여유 있게 산행을 했더니 생각보다는 시간이 많이 지나갔다. 천왕봉에서 법주사 방향으로 내려 오는 길은 문장대로 오르는 길에 비하여 비교적 바위도 적고 오르내리기 편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계곡 물가에는 아직 단풍이 조금 더 남아 있었다. 수분 공급이 원활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정도 남아 있는 단풍을 보니 더욱 1주 전이라도 와 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세심정에 못미친 계곡에서 산행의 피로를 풀기위해 간단히 세족(洗足)을 했다. 깊은 산골물에서 한 세족(洗足)이었는데 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물속에서 1분을 버티기가 어려울 정도로 차가왔다. 평소에 달리기를 하면서 피로를 풀기위해 찬물에서 아이싱을 많이 한 덕분에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계곡에서 한참을 버텼더니 발의 피로가 많이 풀렸다.
세심정 인근의 계곡 웅덩이, 낙엽이 겹겹이 쌓여 있어 가운데 조그만 공간이 없었다면 이곳에 물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사진으로는 그 느낌을 전할 수 없는데 마침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듯한 분이 작품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 찍고 있는 모습까지 찍으니 또 하나의 작품(?)이 된다. 침대에서처럼 눕고 싶다는 맘이 생길 정도로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속리산에 들어오면서 문화재 관람료 3,000원을 냈으니 시간이 바쁘더라도 법주사 구경은 해야겠다. 속리산 법주사는 유명한 사찰이어서 설명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요즘 사찰은 너무 현대적인 모습이 혼용되어 있어 갈 때마다 섭섭한함이 많다. 문화재를 보호하는 사람들이 현수막, 안내판, 경고문 등등 사찰을 훼손하는 것을을 곳곳에 붙여 놓아 갈 때마다 짜증이 난다. 고즈넉한 천년 사찰로 그냥 놔 두면 안되나?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문화재 보호가 아닐까 싶다.
법주사의 쌍사자 석등. 옛날 국사교과서에 나왔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신라시대 석등으로 국보 제5호다, 신라 석등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하나로 신라 성덕왕 19년(720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 뒷편 오른쪽에 있는 것이 우리나라 유일의 목조 5층탑 팔상전이다. 국보 55호로 탑이라기 보다는 5층짜리 집 같아 보인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목조탑이며 탑 중에서도 가장 높은 건축물이기다 하다.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짓고 1968년 해체 수리하였다. 안쪽 벽면에 부처의 일생을 8개 장면을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고 한다.
법주사 대웅보전을 배경으로...
10월의 마지막날 다녀온 속리산과 법주사. 산행시간이 길어져 법주사에서 조금 머물렀더니 바로 어둠이 몰려왔다. 산에서 조금만 더 지체했더라면 어두운 산길을 내려올 뻔했다. 가을의 산행은 일찍 시작해서 일찍 끝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단풍이 져버려 조금 아쉬운 감은 있었지만 오랫만에 찾은 속리산은 역시 명산이었다.
속리산 입구 음식점에서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부담없이 서울로. 오는 길에 비까지 제법 많이 내렸는데 산에 있을 때 왔다면 또 얼마나 귀찮았을지 모른다. 비를 맞지 않고 산행을 끝낸 것만 해도 복 받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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