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산회 새해 첫 산행지를 평창의 계방산으로 정했다. 지난 연말 송년모임에서 계방산으로 가기로 미리 정해놓았는데 월요일 수도권과 강원도 지역에 워낙 많은 눈이 내려 산행을 할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계방산 등산코스는 운두령에서 정상까지 갔다오는 왕복 코스를 하면 눈이 많이 내렸더라도 그다지 위험한 코스가 아니기에 그대로 계방산으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평창으로 가는 고속도로의 제설 작업은 끝냈겠지만 일반 지방도로에 엄청나게 내린 눈을 제대로 치웠을까 염려도 되고 또 눈때문에 입산을 통제되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되기도 했다. 또한 우리가 산행 출발지로 생각하고 있는 운두령의 고갯길에 눈이라도 쌓여 치우지 못하고 있다면 그 또한 문제가 될 일인지라 평창으로 가면서 보이는 눈덮인 강원도의 산을 보면서 은근히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도로가 지나는 산과 들에는 눈이 엄청나게 쌓여 있었지만 도로는 깨끗하게 눈이 치워져 있었다. 별 무리없이 예정했던 시간인 10시 30분에 운두령에 도착했다.
계방산(1,577m)은 강원도 평창군과 홍천군 사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남한에서는 한라산(1,950m), 지리산(1,914m), 설악산(1,708m), 덕유산(1,614m) 에 이어 다섯 번째로 높은 산으로 조망이 좋은 산이다. 정상에 오르면 북쪽으로 설악산, 점봉산, 동쪽으로 오대산 노인봉과 대관령, 선자령 등이보이고, 서쪽으로는 홍천의 회기산과 태기산의 능선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산행은 운두령으로 올라왔다가 운두령 옆 능선으로 내려가 삼거리에 도착하는 방법이 있고, 정상에서 오대산쪽으로 가다가 이승복생가로 가는 방법도 있다. 우리는 계방산을 오르는 가장 쉽고 일반적인 기점인 운두령(雲頭嶺)에서 출발하기로 한다. 구름머리라는 이름답게 해발고도가 1,089m에 이른다.
국립공원이 아닌지라 다행히 눈이 많더라도 입산 통제는 없었고, 전국 각지에서 눈구경을 하려고 몰려든 등산객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이승복기념관이 있는 아랫쪽 주차장에는 산행객을 실어나른 엄청난 숫자의 관광버스가 등산객을 운두령까지 실어나르고 내려와 있었다. 아마 운두령에서 정상까지 오르는 것이 많이 힘들지 않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인 것 같다. 때문에 오늘 등산의 첫 오르막에 정체가 일어나고 있었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눈발이 다시 날리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에 오늘 눈이 온다는 말이 없었는데 이렇게 일기예보를 맞추지 못해서야.... 눈이 오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우리가 타고 온차를 운두령 정상에 세워 놓았기에 눈이 많이 내리면 산 아래로 내려 갈 일이 보통 문제가 아닌지라 걱정은 되지만 여기까지 와서 눈이 내린다고 돌아갈 수도 없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라도 일단 정상을 향해서...
운두령에서 계방산 정상까지는 4.1Km. 끊임없이 이어지는 산행객으로 인해 시간이 자꾸 지체된다. 계방산이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산이였는데 최근들어 많이 소문이 난 것 같다. 옛날에는 약초캐는 지역주민이나 가끔 오르는 산이였는데... 무엇보다도 운두령에서 등산을 시작하면 정산까지 능선길로 10리 정도가 가면 되니 1,500미터가 넘는 산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찾아오는 것 같다. 600m 정도의 산을 오르는 셈이니까...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산악인처럼 멋진 장비와 복장을 갖춘 사람들이 많았지만, 매너와 산행능력은 동네뒷산을 오르는 사람들까지 이곳을 찾아와서 많은 사람들을 고생시킨다. 시간은 자꾸만 늦어지고...
사진을 찍기위해서 잠시 장갑을 벗으면 바로 손이 얼어붙었다. 정확한 기온은 알 수 없었지만 영하 20도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상까지 오르는 2시간 3시간동안 단 세번만 카메라를 꺼내 중간에 사진을 찍었다.
짧은 깔딱고개 오르자마자 헬기장과 전망대가 나온다. 계방산 최고의 조망을 자랑하는 전망대이지만 오늘은 눈과 낮은 구름으로 인해 시계가 시원치 않다. 예전의 바위로 되어 있던 전망대에 목재의 전망데크를 만들어 놓아 쉬어가기 좋게 해 놓았다. 하지만 낮은 구름으로 인해 보이는 것은 가까이 있는 나무와 간간이 내리는 눈 뿐이다.
며칠 전 내린 눈때문에 산에 눈이 제법 많이 쌓였다. 눈 속으로 등산로 하나만 길이 나 있다. 외길이어서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등산로 옆으로 눈이 50-70㎝ 정도 쌓였고, 깊은 곳은 허리가 훨씬 넘는 곳도 있다. 등산로 옆으로 스틱을 찔러보니 보통 1미터 이상 들어간다. 스패츠를 하지 않으면 신발에 눈이 들어가 제대로 등산을 할 수 없다. 눈이 워낙 두껍게 쌓였고 눈 입자가 작아서 아이젠의 효과가 거의 없었다.
온통 눈으로 덮여 있다. 눈산행은 정말 오랫만이다. 눈꽃이 잔잔하게 핀 능선이 참으로 아름답다. 바람 잔잔한 곳에서 중식을 마치고 정상을 향하는데 드 넓은 평원처럼 펼쳐진 능선 너머 바로 정상이 있지만 구름으로 인해 별로 멀지 않은 정상도 보이지 않는다.
정상에 도착하니 사방 막힘이 없어 바람도 강하게 불고 너무나 추워서 오래 머물수가 없었다. 정상으로 산행객들이 엄청 많이 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많지 않음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다들 정상에 다녀 왔다는 사진 한장씩을 남기고 바로 바로 하산해 버렸기 때문이다. 사진 속에 많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이보다 수십배나 많은 사람이 출발했었다. 우리 일행도 서둘러 사진 한장을 남기고 정상을 떠났다.
선두와 후미간의 간격이 벌어져 후미로 오는 동료들의 사진을 찍어 주느라 얼어죽는 줄 알았다. 특히 사진을 찍기 위해 장갑을 수시로 벗었더니 손이 완전히 곱아버려 상당히 힘이 들었다. 주변에 옅은 안개까지 있어 정상에서의 조망은 그다지 좋지 않았고, 너무 추워 빨리 바람이 불지 않는 곳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 이외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너무 너무 추웠다. 돌아오는 길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계방산 주차장으로 가지 않고 진행했던 코스를 반대로 되돌아왔다.
점심을 먹기 위해 산에서 음식을 팔던 텐트가 있던 장소에 자리를 잡았는데 너무 추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장갑을 벗고 버너를 피우려고 해도 가스가 얼어서인지 불이 잘 붙지도 않고, 손이 곱아서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추웠다. 다른 곳으로 옮겨서 점심을 먹자며 사진 한장을 찍고 이동했다. 다들 추워서 어깨가 움추려져 있다.
다시 쉼터가 있는 곳까지 쉬지 않고 걸었다. 계속해서 움직이니 얼었던 몸이 조금은 풀리는 듯하고, 바람이 직접 부는 방향이 아니어서 살을 에이는 듯한 한기는 한풀 겪였다. 일행들이 모두 점심은 생략하자고 의견일치를 보았고, 준비해온 간식이나 쉬면서 먹기로 했다. 보온병에 준비해온 따뜻한 물 한컵이 너무나 반가왔다.
시산제는 지낼 생각은 아니였지만 홍인기 총무님이 북어 한마리와 막걸리 몇 병을 준비해 왔다. 따로 제단을 차릴 형편이 아닌지라 등산안내도 위에 북어를 올려놓고 한해 산행에 아무런 탈이 없기를 기원했다. 준비해온 막걸리에 얼음이 동동, 막걸리마져 얼만큼 추운 날씨다. 쵸코렛 과자와 소시지 한개, 귤 한개씩을 간식으로 먹고 운두령으로 다시 출발...
산행 내내 눈은 정말로 원없이 보았고, 밟아 보았다. 장갑 선택을 잘못해 손이 너무 시려워 어쩔줄 몰라하는 황정섭님께 따뜻한 모직장갑을 빌려주고 대신 얇은 장갑을 착용했는데 계속해서 움직이니 그다지 손이 시렵지는 않았다. 다만 사진을 찍기 위해 장갑을 벗을 때만 잠시 한기가 들었다. 산행 내내 내 사진을 찍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할 때마다 너무 추운 날씨로 인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산행객에게 부탁해도 싫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아직은 그런 부탁을 할 수도 있고, 해도 거절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어 행복하다.
운두령을 1.2Km 남겨 놓은 곳에서 지형구님과 함께...
스패치도 없이 아이젠도 없이 산에 와서 오늘 산행이 가장 힘들었던 이학순님과 함께. 간식을 많이 준비해 와서 점심 대신에 정말로 잘 먹었다.
출발점이자 도착지인 운두령에 거의 도착할 무렵에서야 시야가 조금 밝아졌다. 아직 구름이 다 걷히지는 않았지만 멀리 있는 산까지 보이면서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듯한 느낌이다. 역시 산에 오면 멀리까지 내려다 볼 수 있어야 맛이다.
산행 출발지인 운두령으로 다시 돌아왔다. 고개를 뜻하는 세 가지 단어인 령(嶺), 치(峙),재가 있는데 '령(嶺)'은 옛날에 우마차가 다닐 수 있는 고개로서 오늘날에는 도로가 잘 뚫려 있다. 우리가 지금 있는 운두령을 비롯해 대관령, 한계령, 진부령, 조령 등 붙여진다. '치(峙)'는 산(山)과 절(寺)이 합쳐진 것이니 고개 너머에 절이 있을 경우에 붙어졌다. '재'는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고개로서 그 너머에 마을이 있을 경우 붙인다고 한다. 산행을 하고 오는 사이에 도로에 적당히 눈이 쌓여 있었다.
정상을 기점으로 고개 너머는 홍천군, 고개 이쪽은 평창군이다. 홍천군을 알리는 이정표를 배경으로...
산위에서는 너무 추워 단체사진을 한장도 찍지 못했고, 휴게소에 내려와서 라면 한그릇씩을 먹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오늘 처음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날씨가 추웠던지라 오늘 내내 사진을 찍기도 힘들었었고 다른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기에는 더욱 힘들었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계방산 주차장 방향으로 내려가 버려 운두령 쪽에서 사람이 별로 없었다. 산행에 참가한 7명의 단체 사진도 마침 옆을 지나가던 분께 아주 미안한 마음으로 부탁해서 겨우 한장 건졌다.
날씨는 추웠지만 눈 구경은 정말로 실컷했다. 다행히 계방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95% 이상은 운두령에서 출발해서 계방산 주차장 방향으로 산행코스를 잡기에 정상에서 돌아오는 길은 붐비지 않아서 좋았다. 올 한해동안 보아야 할 눈을 계방산에서 충분히 본 듯하다. 올 한해도 오늘처럼 즐거운 산행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이고, 새해 첫 산행지로 계방산을 잡은 것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생각과 생활 > 등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백산 산행 (2010.3.6) (0) | 2010.08.02 |
---|---|
소백산 산행 (2010.1.16) (0) | 2010.03.26 |
관악산 산행 (2009.11.1) (0) | 2010.01.21 |
속리산 산행 (2009.10.31) (0) | 2010.01.19 |
운악산 산행 (2009.9.26) (0) | 2010.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