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운악산을 지나가는 일은 많았지만 운악산을 직접 올라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가평 인근의 산은 모두 올라가본 것 같은데 이상하게 운악산과는 인연이 멀었던 모양이다. 오늘 운악산 등산도 미리 예정되어 있던 것이 아니였는데 여러가지 사정으로 갑자기 속리산 산행에서 장소를 바꾸어 오게 되었다. 전날 저녁 산행 멤버 몇 명이 함께 저녁 모임을 가졌는데 그중 두사람이 과음으로 인해 산행에 참가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당에서 속리산으로 출발했는데, 속리산 가는 고속도로가 추석 연휴를 앞두고 너무 정체가 심해 수원 톨게이트에서 방향을 북쪽으로 돌려 가평 운악산으로 가기로 했다. 늘 생각만 하고 오르지 못했던 산을 너무나 갑자기 오르게 되었다.
운악산은 경기도 가평군 하면과 포천군 화현면의 경계를 이루며 남북으로 솟아 있는 산이다. 해발 937.5m(동봉)로 기암과 봉우리가 많아 산세가 아름다운 운악산은 산이 크지는 않지만 경사가 급하고 산세가 험하다. 골짜기마다 하늘을 가리는 활엽수림이 빽빽이 자라 있어 가을이면 만산홍엽을 이루는 장관을 연출한다.
운악산은 가평의 화악산· 서울의 관악산(冠岳山:629m)· 파주의 감악산(紺岳山)· 개성의 송악산(松嶽山:489m)과 함께 경기 5악에 속하는데, 그 중에서도 산수가 가장 수려한 곳으로는 운악산의 망경대가 꼽힌다. "운악산(雲岳山)"이란 이름은 망경대를 중심으로 높이 솟구친 암봉들이 구름을 뚫을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현등사의 이름을 빌려 현등산이라고도 한다.
운악산 입구에서 함께 한 일행들과 함께. 오늘은 4명의 정예멤버가 산행에 참가했다.
오늘 산행은 만경로를 따라 눈썹바위, 미륵바위, ,병풍바위, 만경대, 정상을 거쳐 남근석바위, 절고개, 현등사로 내려오는 코스로 움직일 예정으로 운악산을 오는 사람들이 거의 모두 이 코스를 따른다. 입구에서 정상까지 약 3㎞ 정도 거리다. 운악산을 소개하는 안내 등산도 앞에서 산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단체사진 한장을 찍었다.
한글로 적혀있는 운악산 현등사 일주문. 한글 현판을 어느 사찰의 입구에서 보기는 본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일주문에 한글 현판이 거의 없는데...
산행을 시작한지 약 1시간만에 운악산의 첫번째 명소인 눈썹바위에 도착했다. 강화도 보문사의 눈썹바위에 비해서는 크기는 훨씬 작았지만 앙증맞고 누가 보더라도 눈썹바위임을 알 수 있게 생겼다. 멀리서 볼 때보다 가까이에서 보면 눈썹이라는 느낌은 훨씬 덜하다.
눈썹바위를 지나고 나서는 본격적인 암벽등반이 시작된다. 하지만 위험한 수준은 아니였고 조금 불안해 보이는 곳에는 손잡이와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산행이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역순으로 내려온다면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드디어 앞 뒤로 조망이 펼쳐지기 시작하면서 운악산과 더불어 주변의 광경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운악산 최고의 절경지대인 병풍바위 조망대에 도착했다. 금강산의 만물상을 축소해 놓은 듯한 느낌이었는데 최근에 다녀본 산 중에서 가장 빼어난 경치에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처음부터 계획을 가지고 온 산이 아니었는데 왠지 횡재한 기분이 들만큼 좋았다. 단풍이 들지 않은 모습도 이렇게 보기 좋은데 얼마후 단풍이 들면 얼마나 멋있을지 모르겠다. 여건만 된다면 단풍이 있을 때 다시 한번 와봐야겠다는 생각이....
운악산의 또 다른 명물인 미륵바위. 운악산 병풍바위 일대 풍경은 산에서 만나는 대한민국 베스트 절경에 꼽아도 될 것 같다. 이 일대 만큼은 대한민국 최고 명산인 설악산과도 거의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정상 부근에서 만난 단풍. 이제 산정부터 단풍이 조금씩 물들기 시작하는 것 같다. 아직 단풍을 많이 볼 수는 없었지만 조금만 있으면 이런 단풍이 온 산을 물들일 것이다. 올해는 다시 오기 어렵겠지만 꼭 가을 단풍이 든 운악산을 보고 싶다. 올해 다닌 산중에서 운악산이 가장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수직급경사인 바위에 말발굽 모양의 쇠를 발디딤용과 손잡이용으로 바위에 박아 놓았거나 철계단을 설치하여 위험한 구간임에도 아기자기하게 오르 내릴 수 있도록 등상로가 잘 되어 있어 특별히 노약자, 어린이가 아니라면 그리 어려운 구간은 없는 것 같았다. 정상을 향해서 철제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
멀리 가평 베네스트 골프장이 보인다.
망경봉에서의 보이는 전체 조망은 말이 필요없을만큼 아름답다. 나무 숲속에 불끈 불끈 솓아 있는 기암들, 멀리 산아래로 펼쳐지는 민가와 도로들, 더 멀리로는 화악산, 명지산등이 거침없이 조망되어 보는이의 시야가 환해진다. 중간에 바위 구간이 있어 산행이 조금 어려울 수는 있지만 서울에서 멀리 않은 이곳에 이런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너무 좋았다는 말이 계속해서 나왔다.
적당한 암릉과 시원스럽게 터지는 조망들 운악산은 산 타는 맛이 아주 탁월한 경기 북부 최고의 명산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30분만에 마주치는 등산객이 없어 동봉 정상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등산객이 우리와 같은 코스를 택해서 올라온 듯하다. 하지만 올라오면서 보이던 조망은 정상에 오르자 오히려 나무숲에 가려 그다지 볼품이 없어져 버린다. 대신 정상석이 덩그러니 서있다. 동봉 정상은 운악산에서 가장 넓은 공터가 있는 곳이다.
동봉은 937.5미터, 서봉은 935.5미터이다.
정상석 뒷면에는 가평군출신의 백사 이항복 선생이 쓴 운악산을 칭찬한 시조가 새겨져 있었다.
정상에서 절고개로 내려 가는길에 있는 남근석. 옛여인들이 아들 낳기위해 남근석 바위에서 치성을 드리면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전설이 있다는데.... 지나치는 등산객들이 모두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마디씩 하고 사진을 모두 찍고 지나간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만경로를 따라서 정상에 오른 후 절고개를 거쳐 현등사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절고개를 지나서부터 현등사까지의 내리막은 경사가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가파른 바위는 없다. 내리막 초입에서 만난 코끼리 바위의 긴 코는 아니지만 정말로 코끼리 코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바위가 아래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으니 평소에 보기 힘든 광경이다.
운악산에 있는 현등사는 산아래에 있는 사찰이 아니라 산 중턱에 있는 사찰인지라 절터가 그다지 크지 않고 절의 각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현등사는 신라 법흥왕(法興王) 때에 신라 법흥왕때 새워졌다고 하니 1,500년이나 된 고찰이다. 신라 말기에 도선(道詵)이 중창하고 다시 고려 지눌(知訥)이 재건하여 현등사라 이름하였고 한다. 현재 경내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극락전), 보광전(普光殿) 및 요사(寮舍)와 3층석탑·지진탑(地鎭塔)·부도탑(浮屠塔) 등이 있다.
유명 사찰에 비해서 웅장한 미는 없지만 운악산에 가면 한번쯤 들어 볼만한 절이다. 특히 해우소(화장실)는 모든 근심 걱정을 내려놓게끔 자연친화적으로 만들어 놓아 느낌이 참 좋았다. 사진 뒤로 보이는 마당이 절의 마당 전체이다.
산을 거의 다 내려와서 계곡에 발을 담글만한 곳이 있었는데 이곳에 송사리가 떼를 지어 살고 있었다. 보통의 송사리라면 사람이 나타나면 몸을 숨기기에 바쁠텐데 이곳의 물고기는 사람이 다가가도 통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혹시 하는 마음에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 주었더니 송사리떼가 그야말로 시커멓게 모여들어 과자쟁탈전이 벌어졌다. 이미 이곳에 송사리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던져주는 먹이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다. 이후 장난기가 발동해 아주 자그마한 돌을 던져 주었더니 먹이로 알고 모여들기를 반복했다. 모처럼 송사리와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속리산 대신에 계획도 없이 찾았던 운악산이였는데 정말로 순간의 선택이 탁월했던 것 같다. 서울 근교의 어떤 산보다도 볼거리가 많았고, 조망도 좋아 산을 오르면서 내내 기분좋은 시간이 이어졌다. 오늘 참가한 회원이 4명밖에 되지 않아 내년에는 단풍이 드는 시기를 택해서 다시 한번 오기로 의견을 모았다. 분당으로 돌아오는 길은 오늘도 막혔지만 길 막히는 것이 짜증나지 않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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