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에 서현동에 준비된 관광버스를 타기 위해서 집을 나서는데 장대비가 내린다. 어제부터 태풍의 영향으로 시작된 비가 여름철 장마비처럼 밤새도록 내렸는데 새벽이 되어도 그치지 않는다. 비가 많이 내려 집사람에게 서현동까지 태워달라고 말하니 이 빗속에서 뛰러 간다고 한심한 듯 말을 한다. 이번 비는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비가 내린다고 했으니 철원에 가면 비가 그칠 것이라고 말하고 출발하지만 내심 썩 내키지는 않는다. 달리는 도중에 비가 내리는 것은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지만, 똑같은 비라도 출발전에 내리는 것은 거추장스럽고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분당을 출발할 때까지 내렸던 비는 철원에 가까이 갈수록 줄어들기 시작했고, 철원에는 구름은 가득했지만 비는 멎어 있었다. 대회장 아래에 있는 고석정이 있는 계곡에는 작년에 보였던 모래톱이 완전히 물속에 잠겼고, 상당히 유속이 빠른 황톳물이 흘러갔다. 비가 멈추어서 당장 거추장스럽지는 않는데 바닥이 온통 물바닥이다. 잔디밭을 밟아도 운동화가 잠길만큼 물이 고여있고, 어디를 가더라도 물구덩이였다.
대회 출발시간까지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대회장에 붙어 있는 호텔로 들어가서 출발 준비를 했다. 비가 내리거나 구름이 가득해도 자외선은 그 비와 구름을 뚫고 내려 오기에 선크림도 바르고 복장도 준비했다. 매년 이 호텔에 아침에 와서 준비를 하고 나가는데 다른 참가자들은 이곳을 잘 모르는지 별로 없다. 차라도 한잔 마시려고 했더니 아침식사 준비로 바쁜지 9시가 되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시간에 맞추어 회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텐트로 이동중 호텔앞 분수대에서 한병진 선배님과 함께... 나를 분당검푸 마라톤클럽으로 이끌어 준 선배이시다.
대회가 끝나고 나면 다른 회원들과 함께 이동해야 할 것 같아서 대회 시작전에 대회장에 맞붙어 있는 한탄강의 고석정에 내려가 보았다. 이곳에도 비가 많이 내렸는듯 용암대지의 계곡에 물이 많이 불어 있었고, 흙탕물이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아침이라서 고석정에 내려와 있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오랫만에 대회장에서 만난 분당검푸의 선배님들과 함께...
대회장에 설치되어 있던 우리클럽 전용 텐트의 바닥에도 빗물이 엄청 고여 있었다. 달리기를 위한 준비를 미리 마치고 왔기에 다행이지 어디에나 물이 많아서 옷을 갈아입거나 앉아서 대회 출전 준비를 하기에도 불편함이 따랐다.
출발에 앞서 분당검푸 마라톤클럽 회원들과 단체사진... 새벽에 출발할 때 비가 엄청 내렸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여명의 회원이 참가했다. 모두 마라톤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클럽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참가 신청을 했던 사람들이 많이 불참한 것 같았다. 왜냐하면 각 클럽별로 불참한 회원들의 남는 배번이 여기저기에 많이 돌아다니고 있어 우리 클럽에서 대회 신청하지 않고 왔던 몇몇 회원이 배번을 구할 수 있었다.
물이 가득해 발이 푹푹 빠지는 잔디밭. 이곳에서 출발에 앞서 준비운동을 하고 있었지만 참가자들의 대부분은 이곳에 있지않고 포장되어 있는 출발선으로 이미 이동한 상태이다. 준비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은 숫자를 셀 수 있을만큼 몇 명 되질 않는다. 이곳에서도 조금 약삭빠른(?) 사람은 물품보관 비닐을 따로 얻어서 장화처럼 신발위에 신고 다니기도 했다. 물품보관 비닐이 모자랐다면 이 사람들의 책임이다. 달리기는 시작하기도 전에 신발, 양말이 모두 질펀하게 젖지 않도록 엄청나게 신경을 썻다.
잔디밭이 있던 대회 본부장에는 사람이 별로 없고 대회 출발 장소에는 이미 사람들이 가득해있다. 이곳에서 참가자들이 준비운동도 하고 출발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럴 때에는 조금 대회주최측에서 융통성을 부려서 행사진행을 옮겨도 될텐데... 마이크 시설이나 기타 어려운 점이 있기는 했을 것이다.
출발 직전 스타트라인, 작년에 비해서 위치가 조금 옮겨졌다. 아마 출발하자 마자 각도가 꺽이는 것이 사고의 위험성이 있어서인듯 츨발후 직선으로 나가도록 방향을 조금 틀어놓았다.
오늘도 우리 클럽의 친구 김종호가 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출발해서 혼자서 뛰다가 대략 7Km 지점에서 달리고 있는 내 모습을 찍어 주었다. 작년에는 7Km지점까지 안개가 끼어 있다가 이후 날이 맑아지면서 날씨가 더워져 엄청 힘들게 뛰었는데, 올해는 태풍의 영향으로 뛰는 내낸 구름이 있어 철원 DMZ 평화마라톤 대회에 참석한 5번의 대회중 가장 좋은 여건에서 뛸 수 있었다.
주로 양 옆으로 이어지는 들판에는 철원이 자랑하는 오대벼가 누렇게 여물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예년과는 달리 태풍이나 다른 해충의 영향인지 쓰러진 벼들이 많아 안타까움이 많았다. 달리는 내내 따가운 햇볕이 없어 너무 좋았고 주로에서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던 자원봉사 학생들의 응원에 힘입어 공해없는 자연환경에서의 달리기를 마음껏 즐겼다. 이번 대회도 전반적인 대회 운영은 잘 되었지만 주로에서 간식지급은 아주 문제가 많았다. 20Km지점에서 바나나를 한번 지급하고 나서 35Km 지점까지 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준비해 놓지를 않았다. 35KM 지점에서야 바나나와 쵸코파이를 함께 주었는데 이때는 그렇게 많이 먹을 필요가 없었는데... 대회 운영의 옥에 티였다.
3시간 50분 57초의 기록으로 107번째의 풀코스 완주를 했다. 햇살이 없어 달리기 여건이 좋았음에도 작년보다 기록이 1분밖에 단축되지 않은 것은 지나간 여름 운동량이 부족했던 결과일 것이다. 운동을 한참 열심히 했을 때에는 3시간 30분의 기록은 아무때나 가능했었는데, 이제는 마음먹고 열심히 해야만 달성가능한 목표가 되어 버렸다. 오늘도 달리는 동안 큰 아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올해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마음속 깊이 기원했다. 힘들고 중간에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마침내 결승점에 도달하는 마라톤처럼 아들도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
아직도 대회 본부 잔디운동장은 배수가 되지 않아 물범벅이었다. 대회장에 들어와서 보니 선크림을 발랐던 얼굴과 목 주변은 별로 타지 않았는데 구름이 가득했음에도 나머지 부위는 시커멎게 타 버렸다. 특히 어깨쪽은 옷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구름이 아무리 많아도 자외선은 구름을 통과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구름때문에 많이 덥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땀은 제법 많이 흘린 것 같다. 대회 주최측에서 마련해준 샤워장에서 간단히 사워를 했는데도 땀을 한참동안이나 더 흘렸다.
대회 주최측에서 마련해준 점심식사까지 마치고, 아침에 타고 왔던 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중이다. 철원마라톤 대회는 대회 주최측에서 식사도 준비해주고 이곳으로 오고가는 교통편까지 제공해 주는, 달림이들을 배려해 주는 대회이다. 그래서 날씨가 아직은 더운 9월 초순이지만 참가자가 굉장히 많은 대회이기도 하다. 구름이 가득하던 하늘이 대회를 마치고 돌아올 무렵부터는 구름이 걷혀 다시 더운 날씨로 바뀌었다. 달리는 동안에만 구름이 있었던 셈이다. 내년에는 좀 더 열심히 해서 날씨가 덥더라도 기록을 조금 더 단축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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