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회사 산악회의 첫 산행지를 환상의 설국, 덕유산으로 정하고 떠났다. 나는 덕유산과 인연이 많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무척 많이 다녀온 산인데, 겨울철 덕유산 정상을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성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해 동엽령, 중봉, 정상인 향적봉을 거쳐 무주리조트의 곤도라가 설치되어 있는 설천봉을 거쳐 하산하는 코스를 잡았다. 안성탐방지원센터에서 동엽령, 향적봉, 설천봉, 무주리조트로 하산하는 8 km구간 5시간 소요된다고 했는데 아마도 후미를 기준으로 삼은 것 같다.
시기적으로 멋진 설경을 볼 수 있는 시기이기는 하지만 날씨가 많이 추워서 산행은 상당히 고생스러웠다. 동엽령에서 덕유평전을 지나 향적봉까지 가는 동안에는 살을 에는듯한 삭풍이 불어 잠시 사진을 찍기위해 장갑을 벗으면 순식간에 손이 곱아버려 사진을 찍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더구나 중간 중간 눈까지 내려 고생이 더 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얼어붙은 대지에 눈이 어울려진 풍광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추억을 남겨 주었다. 악천후를 뚫고 고생한 기억이 편한 산행보다 훨씬 더 여운을 남겨 주기 때문이다. 하여간 힘든 산행이었음에도 아무런 사고없이 산행을 마칠 수 있어 좋았다.
아침 7시에 사무실을 출발해 덕유산 안성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해서 출발하기 전 단체 사진을 찍었다. 우리와 같은 코스를 산행하려는 사람들이 많아 등산객을 실은 대형 관광버스가 끊임없이 이어져 좁은 광장에 버스와 산행객이 상당히 붐볐다. 첫 얼마동안은 여러 단체의 산행객들이 줄지어 올라가는 산행이 되었다.
전북 무주군과 장수군, 경남 거창군과 함양군에 걸쳐있는 덕유산은 주봉인 향적봉(1,614m)을 중심으로 고도 1,300m 안팎의 장중한 능선이 남서쪽을 향해 장장 30km에 뻗쳐있다. 향적봉에서 무룡산(1,491m)과 삿갓봉을 거쳐 남덕유산(1,507m)에 이르는 주능선의 길이만도 17km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다. 장쾌한 능선과 전형적인 육산의 아름다움, 그리고 넓은 산자락과 만만치 않은 높이, 청량하기 그지없는 계곡이 있어 연중 산악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덕유산이다.
칠연폭포 옆 이정표에서 동엽령으로 올라가기 위해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곳부터는 쌓인 눈으로 인해 길이 상당히 좁아져서 앞사람이 지나갔던 길을 따라서 가야만 했다. 입구에서부터 이곳까지는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고 왔었는데 이제는 아이젠이 없이는 길이 미끄러워서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 덮인 겨울산을 오르면 기분이 엄청 좋다.
겨울 산행은 다른 사람들에게 같이 가자고 쉽게 권할 수가 없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산행시에 상당히 고생을 하게 되고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건강상 또는 추운날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기도 하고... 그래서 추운겨울 산행은 단촐하게 두세명이서 즐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 회사 산악회는 이번 산행에 처음에는 버스 한대로 올 생각으로 추진했었는데 결국 신청한 사람이 많아서 버스 두대를 채워서 오게 되었다. 추위도 상관하지 않는 대단한 사람들이 많은 산악회이다.
동엽령을 오르기 직전부터 눈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함박눈처럼 눈이 펑펑 내리는 것은 아니였지만 쓰고 있는 모자에 쌓일만큼 적당한 눈이 내렸다. 쌓여 있는 눈과 더불어 하루종일 엄청난 눈을 볼 수 있었다. 서울에서는 눈이 내리면 날씨가 포근하지만 높은 산에서의 눈은 포근한 것이 아니라 더 추워졌다. 산행하기에 쉬운 날씨는 아니였다.
동엽령을 지나 향적봉을 향하는 주능선이 매우 완만해 보였다. 이곳에서부터는 계곡이 아닌 능선길이어서 한결 힘은 덜 들었다. 모두 힘들게 동엽령까지 올라와 전망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능선길을 바라보면서 과거 이길이 빨치산들이 다녔던 길이였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불과 60여년 전에 덕유산은 빨치산 전북도당이 있던 곳이였다. 지리산에는 전남도당이 있었고... 이념때문에 이 깊은 산속에서까지 남북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덕유산은 사시사철 아름다운 경치를 품고 있는 산이다. 특히 겨울이 되면 눈길 닿는 곳마다 눈꽃과 서리꽃 피어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백두대간에서 겨울 경치가 아름다운 산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덕유산이 가장 으뜸이다. 덕유산에 눈꽃과 서리꽃이 많이 피는 데에는 지리적 이유가 있는데, 서해의 습한 대기가 산을 힘겹게 넘으며 눈을 많이 뿌리기 때문에 눈꽃이 자주 피어난다. 또한 한낮 금강 줄기인 용담호 수면에서 피어오르는 안개는 밤새 구름이 되었다가 덕유산을 넘으며 찬 공기를 만나면서 서리꽃으로 피어난다. 오늘도 원없이 눈꽃을 감상할 수 있었다.
날씨가 워낙 추워서 풍경사진과 인물사진을 찍기 위해서 장갑을 잠시 벗으면 금새 손가락과 손등이 얼어붙는 느낌이다. 날씨가 워낙 추우니 기계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어 사진만 얼른 찍고나면 밧데리가 얼기전에 디카를 주머니 안쪽으로 넣어두기를 반복했다. 산능선은 기온이 영하 20여도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추운날씨에 바람까지 심하지 불어서 산행이 무척 힘들었다. 능선으로 이동중 중간에 점심을 먹어야 했는데 다행이 바람이 미치지 않는 골짜기가 있어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바람은 피했지만 워낙 추운 날씨여서 밥먹는 동안 손이 완전히 얼어버렸다.
중봉에서 향적봉으로 이동중 중간에서 만나게 되는 향적봉 대피소. 날씨가 워낙 춥다보니 이곳에서 정비를 취하고 있는 산행객들이 많아 엄청나게 붐비고 있었다. 능선길을 따라 오다가 갑자기 오르막이 시작되니 오르막길에서는 정체현상도 생긴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쉬지 않고 정상을 향했다. 주변에 갑자기 안개구름이 많이 몰려와서 꿈길을 걷는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첩첩산중으로 장쾌하게 이어진 크고 작은 연봉들이 눈가루를 흩날리며 엄청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중봉에서 향적봉으로 가는 길에는 곳곳에 주목나무가 많이 있다. 더불어 경사진 사면에는 구상나무도 있다고 한다. 철쭉군락과 주목, 구상나무숲이 보여주는 설화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했다. 주목과 구상나무는 매우 비슷해 보여 얼핏 보면 거의 구분이 가지 않는다. 구상나무는 소나무과이고 주목은 주목나무과인데도 생김새는 전문가도 자세히 보아야 구분할 정도라고 한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는 주목(朱木)..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맞고 있는 주목나무. 주목은 나무가 붉다 하여 붉을 주(朱)를 썼다고 하며 높은 산 추운 곳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태백산, 함백산, 소백산, 덕유산 등 해발 1,300m 이상 되는 고지대에만 군락지가 있다. 겨울철에는 나무의 특성상 눈이 많이 쌓여 있어 눈꽃이 정말로 아름다웠다.
백암봉에서 덕유평전과 중봉(1,594.3m)을 지나 향적봉까지 이어진 산길은 한두곳을 제외하곤 대체로 평평하고 다소곳하다. 주목에 핀 눈꽃을 머릿속에 담으며 사진 몇장을 찍다보면 어느새 향적봉이다.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香積峰, 1,614m)은 향적봉 부근에 군락을 이룬 향나무의 향기로 인해 얻은 이름이다. 생명의 향기가 쌓여 있는 산이고 봉우리란 뜻으로 이름이 참 예쁘다. 날씨도 그다지 좋지 않고 눈길 산행을 하느라 힘은 들었지만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향적봉 정상에 올랐지만 날씨가 흐려서 눈까지 뿌려서 평소에 보이던 주변의 산들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냥 향적봉 정상의 표시석이 이곳이 덕유산의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이곳에서 북쪽으로는 가까이 적상산이 있고 멀리 황악산과 계룡산이 있다. 서쪽으로는 운장산, 대둔산, 남쪽으로는 남덕유산이 있으며 날씨가 좋을 때에는 멀리 지리산 주능선도 아스라히 보이는데 오늘은 바로 앞에 있는 남덕유산은 물론이고 주변의 능선조차도 보이질 않는다.
앞서 지나간 동료들과 너무 뒤로 쳐진 동료들을 제외하고 중간 그룹 동료들과 함께 단체 사진... 바람이 너무나 거쎄고 날씨가 추워서 정상에 오래 머물수가 없었다. 사진 한장 찍기 위해 장갑을 벗으면 바로 손가락이 곱아서 장갑을 끼기도 힘들만큼 날씨가 추웠다. 산행을 온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정상이 붐비지 않는 것은 워낙 추운 날씨때문이었다. 정상에 있는 사람들중 70-80%는 우리와 같은 산행을 한 사람들이 아니고, 무주 리조트쪽에서 콘도라를 타고 설천봉까지 오른 다음 아주 쉽게 정상에 오른 사람들이다.
덕유산 설천봉(1,520m)까지 곤도라가 운행되고 있어 설천봉까지는 아무 어려움없이 쉽게 누구나 오를 수 있다. 덕유산 정상 향적봉에서 설천봉까지는 20분 만에 갈 수 있어서 이 코스에는 산행객이 엄청 많았다. 산행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부실한 복장의 산행객이 많았는데 설천봉까지 콘도라가 데려다 주니 무리해서 정상을 오르는 듯해 보였다. 겨울철 산행준비를 하지 않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전사고가 생길 수 있어 걱정이 앞선다. 겨울산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설청봉에 도착하니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니 스키보다 대부분이 보드를 타고 있다.
정상 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콘도라 탑승료가 만만치 않았는데 그 비싼 탑승료보다 콘도라를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인파가 더 놀라왔다. 8,000원을 주는 콘도라 이용은 탑승하는데에만 거의 30분을 기다렸고 내려가는데에는 15분 정도가 걸렸다. 덕유산의 높이가 1,614m나 되고 남한의 산 중에서 높이가 세 번째여서 콘도라를 이용해서 내려가는데에도 시간이 걸린 듯하다. 이 콘도라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덕유산에 오를 수 있는 것 같다. 스키 장비를 사 놓고도 스키장을 찾은지가 오래 되어서 스키를 한번 타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아직도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무주시내로 나와서 무주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무주 큰손식당(063-322-3605)에서 어죽을 한그릇 먹고 왔다. 원래 민물고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붕어찜이나 어죽같은 것을 별로 즐겨하지 않는 편이였는데 이곳에서 먹은 어죽이 맛이 좋아서 카운터에 있는 명함까지 한장 가지고 왔다. 다음에 무주에 올 일이 있으면 다시 한번 찾아보아야겠다는 생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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