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남해까지 내려와서 금산과 보리암만 보고 서울로 돌아가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아서 남해의 유명 관광지 몇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원래는 가천 다랭이마을의 논을 구경하고 식사까지 하고 가려 했었는데, 식사를 하는 장소와 다랭이 마을이 반대쪽에 있어 불필요한 이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하는 쪽에 있는 해오름예술촌과 독일마을을 방문하기로 했다.
먼저 방문한 곳은 해오름 예술촌. 입구에서 본 건물의 모습이 참 이국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폐교된 학교건물의 골격을 그대로 살린 상태에서 리모델링을 한 것이다. 외관을 독일풍으로 탈바꿈시켜 전망좋은 곳에 있는 펜션같은 느낌을 준다. 남쪽 지방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마을 뒤에 있는 대나무 숲도 이곳 해오름예술촌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건물과 상당히 잘 어울렸다.
경남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해오름 예술촌은 폐교로 방치되었던 옛 초등학교(물건초등학교) 건물을 개조하여 꾸민 문화·예술공간으로 2003년 5월 개관했다고 한다. 예술촌 곳곳에는 국내외에서 수집한 약 5만여점의 수집품이 전시되어 있다. 예전엔 운동장이었을 공간에도 지금은 전시공간으로 꾸며 아주 귀엽고 앙증맞은 조각품들이 여기저기 전시되어 있었다. 하나 하나가 저절로 미소가 지어질만큼 재미있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요강등도 엄청 많이 수집해서 소품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연중 쉬는 날 없이 운영되고 있는 예술촌에는 추억의 옛날 교실과 미니어처 전시실, 복도전시관 등 재미난 공간이 많았다. 선박 모형과 미니어처, 세계범선모형 등도 전시되고 있었고, 전시실 한켠에는 중세시대의 투구와 갑옷도 전시되어 있었다.
2층 테라스에서는 예술촌 운동장 너머로 도로와 바닷가 마을을 지나 드넓게 펼쳐진 바다가 보인다. 옛날 이곳에서 학교를 다녔을 아이들은 항상 바다를 보면서 공부를 했었을 것이다. 바닷가에 살아보지 못한 나로서는 바닷가의 생활이 얼마나 어려웠을지는 모르고, 다만 바닷가에서 생활했을 그들이 부럽기만 하다. 나이가 조금 더 들어서 은퇴를 하게 되면 바닷가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도 여전하다. 해오름 예술촌은 대리 만족을 시켜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제는 해오름 예술촌도 많이 알려져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입장료가 2천원이었는데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전혀 아깝지 않은 비용이다. 1층 입구 왼쪽 복도에는 어린시절 추억을 더듬어보기에 충분한 생활용품들이 가득했다. 미닫이문이 달려있는 텔레비전, 석유풍로, 얼음덩어리를 손으로 돌려 갈아먹던 빙수기, 딱지, 옛날 돈과 숯불다리미 등. 우리나라 골동품부터 50~60년대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담긴 교실 물품, 각 나라의 크고 작은 엔틱 소품과 자수정 원석까지 1층에 마련된 전시실은 마치 추억의 여행을 위한 보물창고 같았다. 미리 이곳을 방문하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찾아왔는데 좋은 추억을 가지고 돌아오게 되었다.
해오름 예술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독일마을이 있었다. 주말 오후여서 독일마을을 찾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이곳은 원래 관광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은 아니다. 1960년대 독일에 간호사나 광부로 갔던 교포들 중 황혼기를 고국에서 보내려는 이들을 위해 조성된 곳이다. 지난 2001년부터 남해군에서 3만여평의 부지에 40여 동을 지을 수 있는 택지를 독일교포들에게 분양해, 독일교포들이 직접 독일의 재료를 수입하여 전통 독일식 주택을 지었다고 하며 관광객을 위한 민박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흰색 벽에 빨간 지붕, 잘 꾸며진 화단으로 구성된 독일마을은 아기자기한 멋은 있었지만 굳이 이곳까지 방문해서 구경할만한 장소는 아니였다는 생각이다. 한적한 시골에 하나의 테마를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지역자치단체의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언론에서 자주 떠들다보니 생각보다는 많이 과장되어진 느낌이다. 독일마을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다가 아름답기는 하지만 바다를 끼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비슷하지 않을까싶다.
개별적인 주택의 정원을 잘 꾸며져 있었으나, 아직 마을이 형성되는 초기 단계여서 전체적인 조경이 허술해 보였고 군데군데 빈터가 많아 이가 빠진듯한 느낌이다. 앞으로 독일마을이 더 발전하겠지만, 마을이 발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거주하시는 분들이 불편없이 생활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소문만 나서 사람이 너무 찾아오면 주민들의 삶이 피곤해질 수 있으리란 생각이다. 주변에 관광을 업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현상이겠지만...
독일마을의 전통적인 상징성, 독창성, 통일성 등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 남해군에서는 전통적인 주택을 표준모델로 정해 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독일마을에서는 건물의 외벽재를 목조로 사용할 수 없으며, 지붕은 평지붕을 하지 못하고 경사지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독일마을 입구에는 새로 건축하고 있는 주택들이 있었는데 벽체로 사용하는 것이 ALC(Autoclaved Light-weight Concrete)라고 했다. ALC는 고온, 고압증기로 양생한 기포콘크리트로서 단열성능은 일반콘크리트의 약 10배가 되며 실내의 습기를 흡수하고 방출하여 흙벽과 같이 실내습도를 균형있게 조절하여 주는 기능성 자재라고 한다. 마치 장난감 집을 짖는 것처럼 허술해 보였는데 완성이 되면 아름다운 집으로 변신하게 되는 것 같다.
해오름 예술촌과 독일마을 관람을 마치고 창선대교 인근에 있는 식당을 찾아갔다. 창선대교 아래로는 좁은 바다길인 지족해협이 지나고, 대나무와 참나무를 이용해 설치한 V자 모양의 정치망인 죽방렴이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다. 죽방렴은 물흐름을 이용하여 고기를 가두는 원시어업의 한 형태다. 식당이 있던 바닷가에 설치되어 있었던 줄방렴으로 이곳 죽방렴에서 잡은 멸치는 궁중에도 진상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멸치회를 먹었는데 뼈만 발라낸 생선을 양파와 미나리를 넣고 초고추장에 버물린 회무침이었다. 하루동안 멀리 남해까지 와서 금산과 보리암, 해오름예술촌, 독일마을을 두루 둘러보고 맛있는 멸치회부침에 멸치쌈밥까지 푸짐하게 먹으니 알찬 하루를 보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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