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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죽서루 (2011.7.17)

남녘하늘 2011. 9. 6. 00:21

 

돗토리 여행을 마치고 동해 여객 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아침 9시가 조금 넘어서이다. 오랫만에 멀리 동해까지 왔는데 바로 집으로 갈 수 없어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강원도의 명승지나 가보지 못한 곳을 방문해 보기로 했다. 당초 계획은 동해에서 가까운 삼척의 죽서루를 방문하고 태백에서 점심을 먹고, 정선의 강원랜드를 방문하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의도와는 달리 일정을 조금 바꾸게 되었다. 강원랜드도 개장한 이래 여러번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아직까지 방문을 하지 못해 이번 여행때 가족이 한번 구경삼아 가보려고 했었다.

 

삼척 죽서루도 삼척과 동해에 여러번 왔었음에도 아직 한번도 방문해보지 봇해서 이번에 방문해 보기로 했다. 삼척에 온 김에 삼척에 있는 동생을 불러내서 함께 할까도 생각했었는데 우리 가족만 있었으면 모르겠으나 친구 가족까지 함께 있어서 그냥 우리끼리 다니기로 했다. 죽서루는 삼척 시내 중심가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문화재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그 문화재에 대해서 아는 사람의 해설을 들으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게된다. 우리 일행이 4명밖에 되지 않아서 죽서루에 근무하는 문화해설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부탁을 했는데, 흔쾌히 4사람을 위해 설명을 해 주었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설명이 없었더라면 그저 경치좋은 곳에 만들어진 누각이라는 것 정도에 그쳤을 죽서루를 상당히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죽서루는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고려 명종 때의 문인 김극기가 쓴 죽서루 시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12세기 후반에는 이미 존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후 조선 태종 3년(1403년) 당시 삼척 부사 김효손이 고쳐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벽 위 자연 암반을 기초로 하여 건축되어 있고, 누 아래의 17개 기둥 중 아홉개는 자연 암반을 기초로, 나머지 여덟 개의 기둥은 돌로 만든 기초 위에 세웠으므로 17개의 기둥 길이가 각각 다르다. 상층은 20개의 기둥으로 7칸을 형성하고 있다. 자연주의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진수로 관동제일루라고 한다.

 

누(樓)란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여 지은 다락형식의 집을 일컫는 말로, 죽서란 이름은 누의 동쪽에 죽장사라는 절과 이름난 기생 죽죽선녀의 집이 있어 죽서루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문화해설사의 진행으로 죽서루에 있는 조그마한 내용 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고, 설명도 순서에 따라 하다보니 시간이 엄청 많이 걸렸다. 어디에서 죽서루를 보아야 가장 멋있는지, 어떤 통로를 통해서 가야하고 어디에 어떤 전설이 있는지까지 알려 준다. 그야말로 알지 못하고 갔으면 사진만 몇장 찍고 왔을 뿐인데... 그런데 나중에 관람을 끝내고 나서 생각해보니 설명 들은 것은 기억이 나는데 정작 수고해 주었던 문화해설사의 이름도 불어보지 못했다.   

 

 

 

  
죽서루 옆에 있는 용문바위이다. 신라 제 30대 문무왕이 사후 호국용이 되어 동해바다를 지키다가 어느날 삼척의 오십천으로 뛰어들어 죽서루 벼량을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호국용이 오십천으로 뛰어들 때 죽서루 옆 바위를 뚫고 지나갔는데 그것이 용문바위라고 한다. 그 후 용문바위는 용이 지나가면서 만든 구멍이라서 영험한 기운이 있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소원을 빈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설명을 들었는데 그냥 지나칠수가 없어 나 역시 여러가지 바램을 기원하며 통과해 보았다.   

 

 

 

 

용문바위 위에는 여성 생식기를 뜻하는 구멍을 뚫어 놓은 암각화가 있다고 설명하면서 한번 찾아보라고 했다. 선사시대에 풍요, 생산, 다산을 상징하는 것으로 원시신앙의 형태로 발전하여 조선시대에는 칠월칠석날에 부녀자들이 성혈터를 찾아가서 일곱구멍에 좁쌀을 담아놓고 치성을 드린다음 그 좁쌀을 한지에 싸서 치마폭에 감추어 가면 아들을 낳는다는 민간신앙이 성행했었다고 한다. 총 10개가 있는데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7개 정도였다. 용문바위 위에서 죽서루를 배경으로...  

 

 

 

 

죽서루의 현판.

 

 

 

죽서루는 삼척시의 서쪽을 흐르는 오십천이 내려다 보이는 절벽 위에 있어 관동팔경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다른 관동팔경의 누, 정이 모두 바다를 끼고 있는 것과는 달리 죽서루만이 유일하게 강을 끼고 있으며, 관동팔경의 정자 중 가장 크다고 한다. 옛날에는 강에 배를 띄워놓고 죽서루에서 풍악을 즐겼다고도 하는데 이제는 도시가 개발이 되어서 그런 풍류을 즐길 수도 없게 되었다. 죽서루 앞쪽에는 삼척문화예술회관과 삼척동굴탐험관 등이 있다.

 

 

 


죽서루에는 율곡 이이 선생을 비롯한 여러 유명한 학자들의 글이 굉장히 많이 걸려 있다. 그 중 ‘제일계정(第一溪亭)’은 현종 3년(1662년)에 허목이 쓴 것이고,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는 숙종 37년(1711년)에 이성조가 썼으며 사진에 보이는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는 헌종 3년(1837년) 에 이규헌이 쓴 것이다. 지금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편액이 많이 걸려 있었는데 언젠가 왔던 태풍이 많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죽서루 앞마당 한쪽에 배용준과 손예진이 출연한 '외출'이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 죽서루에서 찰영되었음을 알리는 광고판과 함께 두 사람의 핸드 프린팅이 기념으로 놓여져 있었다.  2005년 6월에 만들어졌다는데, 이곳에도 일본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인지는 알 수가 없다. 쑥스러운 장면이지만 모처럼 사진에 나와 있는 주인공과 같은 포즈를 취해 보았다.  

 

 

 

죽서루 오른쪽 한쪽 귀퉁에는 '송강 정철가사의 터' 조형물이 있었다.  송강 정철을 기념하는 표석은 2개가 있는데, 하나는 관동별곡에 나오는 이곳 죽서루이고, 또 하나는 성산별곡의 주무대인 전남 담양의 식영정에 있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조형물과 똑같은 표시석이 식영정에도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다음에 담양의 식영정에 가서 확인을 해봐야겠다.    

 

 

 

 

멀리서 오십천과 어우러진 죽서루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죽서루에 온김에 한번 보고 가라는 문화해설사님의 말에 따라 반대편으로 오십천을 건너갔다. 오십천과 절벽과 어우러진 죽서루가 가까이서 본 모습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도로를 만들면서 추락방지 시설을 만들어 놓았는데 지나칠 때는 몰랐지만 사진을 찍고 보니 많이 거슬린다. 일부 구간이라도 다른 방법을 강구해서 죽서루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해 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오십천을 잠식하지 않더라도 주변에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남아 있어  생각을 해 본다면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강 건너의 죽서루를 찍기 위해 삼척문예회관 쪽으로 왔는데  특이한 외관을 가지고 있는 삼척동굴신비관을 배경으로 흔적을 남겼다. 아이들과 환선굴을 찾았던 한참 전에는 없었던 건물들이다. 아직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지 않아서 넓은 주차공간은 텅 비어 있다.   

 

 

 

문화해설사님의 덕분에 예상했던 것보다 죽서루에서 시간을 훨씬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떠날 수가 있었다.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정부에서 문화해설사를 육성해서 관광지에 배치하는 정책은 정말로 잘했다고 본다. 잘알지 못햇던 여러가지를 배울 수 있고, 관광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