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은 당초 오늘 방문할 생각을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다만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기에 다른 곳을 둘러보고 시간이 되면 장릉이나 한번 다녀올까를 생각하고 있었었다. 그런데 태백에서 출발해 강원랜드를 찾아가다가 강원랜드를 찾지 못하고 지나치게 되어 장릉 관람을 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게 되었다. 아마 강원랜드에 들러 처음으로 내국인 카지노에 한번 가 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나에게는 도박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신의 계시가 아니였을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태백에 올때까지 잘 작동하고 있던 네비게이션이 점심을 먹고 나서 갑자기 작동하지 않아 정선으로 방향을 잡고 가다보면 강원랜드 표지판이 나오겠지 생각을 했었는데 영월이 다가오도록 표지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방향은 맞았다고 생각하는데 서울쪽에서 오는 사람들에게는 표지판을 많이 만들어 놓았어도 태백쪽에서는 만들어 놓지 않았거나, 아니면 도박을 부추기지 않기 위해 표지판을 없앴는지 알수는 없다. 나와 함께 타고 있던 친구도 교통표지판을 열심히 보면서 갔는데도 찾지 못했다. 하여간 강원랜드에 가지 않은 덕분에 영월을 방문해서 구경할 수 있었고, 쓸데없는 돈도 낭비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19개의 박물관과 미술 전시관이 운영되고 있어 국내 유일의 박물관 고을특구인 영월은 단종의 이야기가 곳곳에 있는 역사의 땅이다. 방절리 서강가에 우뚝 솟아있는 선돌이나 영흥리 금강공원 낙화암에도 단종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전해 오는 곳이다. 서강이 휘돌아 흐르며 육지 속의 섬인 청령포는 단종이 생전 유배당했던 곳이다. 단종은 결국 죽어서도 영월에 묻혔는데, 소나무숲 울창한 장릉이 단종 무덤이다. 그런데 오늘은 날씨가 너무 무더워 어디를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한다는 자체가 고생이다. 그나마 숲은 시원했지만 그늘이 없는 곳은 잠시 서 있기에 너무 힘이 들 지경이다. 장릉을 이렇게 더운 날에 찾게 되었다. 입구에 들어서 야트막한 산 위로 난 오솔길을 좀 걸어야 능이 나온다.
장릉은 임금의 능임에도 여느 능에 비해 그 규모가 작은 편이다.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위쪽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 세우는 긴 네모꼴의 넓적한 돌을 일컫는 병풍석과 난간석도 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능에는 없는 특이한 점도 있다. 단종에게 충절을 다한 신하들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배식단사를 설치한 것이다. 정려비, 기적비, 정자 등이 바로 그것인데, 대표적으로 정려비는 단종이 세조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아무도 시신을 거두지 않았는데, 관까지 준비해 장례를 치른 충신 엄흥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영조 때 세운 비각이다
단종은 1698년 숙종에 의해 240년만에 복위돼 문인석 등을 갖추고 장릉이라는 능호를 받았다. 복위 왕릉이라 난간석도 없고 병풍석도 없으며 무덤을 지키는 무인석도 역시 없으며 있는 석물의 크기도 작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다른 조선시대 왕릉에 비해서는 규모도 작고 초라해 보여서 볼 것도 없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나마도 불의에 굴하지 않고 단종을 시신을 수습에 이곳에 모신 충절의 신하가 있어서 남아 있게 된 것이다.
능을 올라가는 길에는 소나무 숲이 형성되어 있어 그나마 괜찮았는데 능 주변에는 그늘 한점 없어 오래 머물수가 없다. 사진 한장을 찍고 서둘러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능이 전체적으로 커다란 편은 아니였는데 올라 갔던 길이 아닌 홍살문 방향으로 내려왔다. 조금이라도 나무그늘을 따라서 움직이려다 보니 능의 구석 구석을 돌아볼 수가 없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구경도 날씨가 좋아야 가능한 것이다. 오늘도 더운 날씨로 인해 배식단(配食壇)이나 충신단 등을 모두 둘러 보지 못했다.
한옥 형태의 재실.
장릉(국가지정 사적 제196호)은 2008년 6월 30일 조선왕릉 42기 중 남한에 있는 40기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함께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가 되었다. 앞으로 정부의 지원을 더 많이 받게 되어 관리가 더욱 잘 될 것이다. 입구에서 가까이 있는 단종역사관에는 단종의 생애를 자세히 알 수 있도록 여러가지 자료를 전시해 놓았는데,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자료는 다른 중요한 곳에 보관하고 모사품을 가져다 놓고 사진을 찍게 해 주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디카를 가지고 다니면서 중요한 것들은 사진 기록으로 많이 남기는데, 찾아온 사람들에게 좋은 공부를 시켜줄 수 있는 내용을 왜 공개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장릉을 보러 와서 청령포를 보고 가지 않을 수 없어 장릉에서 10분도 떨어져 있지 않은 청령포를 찾았다. 그런데 최근에 내린 비로 인해 강물이 불어나 청령포까지 운행하는 배들이 운항을 하지 않고 있었다. 배가 없으면 청령포에 들어 갈수 있는 방법이 없다. 반대편에 있던 매표소가 문을 닫아 놓고 있어 무슨 일인가 했더니 배가 운항하지 못하니 매표소가 운영되지 않는 것이였다. 결국 청령포와 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장 찍고 돌아설 수 밖에 없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곳이 청령포로서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해 있다. 남한강의 지류인 이 강은 영월의 동강으로 이어지는 서쪽 강이어서 서강(西江)이라고 한다.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하고 배를 이용해야만 갈 수 있는 청령포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있고 뒤편은 도산(刀山)이라 불리는 깎아지른 절벽인 육륙봉이 있어 생전에 단종은 이곳을 육지고도(陸地孤島)라 표현했다 한다. 배를 내리면 뒤로 보이는 자갈길을 걸어 송림을 지나면 단종어소와 관음송을 볼 수 있는데 오늘은 기회가 아닌 듯하다.
조선왕조 역사상 단종만큼 비운의 왕도 없다. 태어난 지 겨우 사흘 만에 어머니를 잃고, 12세에 왕이 되었으나 15세에 그 자리를 빼앗기고 17세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왕, 그가 바로 단종이다. 1441년 세종대왕의 손자이자 문종 임금의 아들로 태어난 단종은 1448년(세종 30) 세종에 의해 왕세손에 책봉되었고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세자에 책봉된다. 조선 초 기반이 채 다져지지 않은 왕조의 맥을 적통으로 잇고자 하는 세종대왕은 병약하던 장남 문종에게 왕위를 계승토록 하였고 문종의 장남인 단종에게도 어릴 적 일찍이 왕세손에 책봉하여 적장자에게 왕위가 계승되는 전통을 만들고자 한 의지가 뚜렷했다.
하지만 병약했던 문종은 제위 2년(1452년) 만에 죽고 열두 살의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르지만 일 년 뒤인 1453년 숙부인 수양대군은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킨다. 계유정난은 수양대군의 형인 문종의 충신이었던 황보인과 김종서를 척살하고 동생인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귀양을 보낸뒤 스스로 영의정이 되어 모든 권력을 장악한 사건이다.
이후 수양대군을 따르는 한명회와 권람 등의 끊임없는 협박과 회유에 견디다 못한 단종은 1455년 6월 11일 수양대군에게 왕권을 넘겨주게 되는데 이때가 즉위 3년, 단종 나이 열다섯의 일이다. 단종은 상왕인 공의온문상태왕(恭懿溫文上太王)으로 왕비 송씨는 의덕왕대비로 추대되어 고려 때의 왕궁이며 지금의 창경궁터인 수강궁(壽康宮)으로 보내고, 수양대군이 경복궁으로 들어와 왕위에 오르니 조선 7대 임금인 세조가 된다.
그러나 1년 뒤인 1456년 6월 2일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응부, 유성원 등을 중심으로 단종 복위의 역모가 일어나니 이것이 사육신 사건이다. 그리고 다시 1년 뒤 역모에 대한 고변이 또다시 있어 안평대군이 사사되고 금성대군과 단종의 장인인 송현수가 귀양을 가기에 이른다.
이 일로 단종부부는 노산군과 군부인으로 강등되어 단종은 오지인 영월로 유배생활을 떠나게 되고 부인 송씨는 낙산 청룡암(정업원)으로 가 일생을 마치게 된다. 1457년 6월 21일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 귀양까지 보내고, 역모로 단종의 외조부인 권안을 처형한 세조는 다음날인 6월 22일 단종의 어머니이며 권안의 딸인 현덕왕후 권씨가 나타나 세자를 죽이겠다는 저주의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나흘 후 6월 26일 세조는 소래에 있는 현덕왕후능인 소릉을 파헤쳐 서인묘로 만들어버리는 파행을 저지른다. 하지만 세자인 의경세자는 7월 4일 중병에 걸리게 되고 결국 9월 1일 죽고 만다. 이에 분개한 세조는 현덕왕후의 모든 장구를 수장하였고, 신숙주는 단종을 죽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게 된다. 그 무렵 순흥에 유배되어 있던 금성대군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이 되어 10월 21일 사사되고 단종은 노산군에서 서인으로 강등되기에 이른다.
이즈음 귀양 갔던 단종의 장인인 송현수가 주살 당한다. 이때 단종은 심한 홍수로 두어 달 간의 청령포 생활을 접고 영월부의 객사인 관풍헌(觀風軒)으로 처소를 옮겨 거처하다가 그 곳에서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했다. 정권찬탈을 둘러싼 비극의 하나였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참 중요하다. 우리의 정신문화 유산이면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좌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역사책 읽은 것을 참 좋아했었는데 요즘은 바쁘다는 핑계로 쉽지가 않다. 오늘은 모처럼 장릉과 청령포를 방문했기에 그 시대의 다시 한번 돌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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