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과 생활 /나의 단상

기분 좋았던 하루 (2011.9.19)

남녘하늘 2011. 10. 13. 23:18

 

최근 들어서 국정감사 준비등 여러가지 일로 인해 퇴근 시간이 늦어서 해가 짧아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얼마만큼 짧아졌는지를 실감하지 못하고 지냈었다. 얼마 전까지 7시 반이 넘어 퇴근해도 날이 훤했었는데 이번주 금요일이 추분이고 이제는 낮과 밤의 길이가 거의 비슷해져 7시가 되면 어둑어둑한 느낌이 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도 퇴근을 빨리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직장 선배님과 친구가 함께 사무실 근처로 와서 식사를 하기로 해서 모처럼 사무실을 7시가 되기전에 나왔다. 낮이 많이 짧아져 어둑어둑해지는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 어두워져가는 서쪽하늘의 저녁노을이 너무 아름다워 보여서 사진이라도 한장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디카를 가지고 나와서 사진을 한장 찍었다.

 

똑딱이 컴팩트 디카이고, 사진을 찍는 실력이 워낙 없는지라 내가 저녁 노을을 보면서 느꼈던 느낌을 사진에 표현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사진을 보면 사진을 찍었을 때 느꼈던 감정이 사진 속에 남아 있다.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에는 그냥 보통의 허접한 느낌으로 보여질지라도... 날이 급격히 어두워져 가고 있어 조금만 지체해도 노을 사진을 남기지 못할 것 같아 급히 찍느라, 게다가 사무실 주차장이 배경이어서 구도도 엉망이다. 멀리 보이는 산은 청계산일 것이다. 7시가 되기 전에 이렇게 어두워지면 앞으로 겨울이 되면 얼마나 해가 빨리 질 것인지... 

 

 

 

 

 

 

내가 기분이 좋았던 것은 내가 마음에 들었던 사진을 찍어서가 아니다.

 

사진을 찍고 나서 카메라를 사무실에 갔다 놓고 나올까 생각하다가 다른 동료들은 일을 하고 있는데 다시 들어가 방해를 하기 싫어서 그냥 카메라를 들고 식당으로 향했다. 식사할 때 옆자리에 잘 놓아두고 저녁식사도 하고, 모처럼 선배님과 함께 막걸리를 한잔 하고 식당을 나올 때도 잘 챙겨 나왔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2정거장을 와서 지하철을 갈아 타려고 가면서 호주머니를 만져보니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카메라가 없어졌다.

 

잃어버린 장소가 버스를 타고 오는 길가였거나 잠시 앉았던 버스밖에 없기에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가보았다. 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신속히 내가 탔던 버스 기사님에게도 연락을 취해 보았는데 내가 않았던 자리에 카메라가 없다는 소리만 들었다. 종점에서 출발한 버스에 탄 승객이 많지도 않았을텐데 버스에는 없다고 하고, 내가 분실한 장소가 버스인지 아닌지조차 정확하게 알 수 없으니  답답했다. 혹시 카메라를 분실할 것을 대비해서 카메라 케이스에 명함을 한장 넣어 두었는데 누군가가 발견해서 돌려줄 마음이 있으면 전화를 해 주겠지 생각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날 점심때까지 기다려도 전화가 오지 않아서 어제 저녁 비싸게 먹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반대로 내가 디카를 주웠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도 생각해보니 욕심이 생길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 같은 것과는 달리 습득한 사람이 그냥 디카를 사용하더라도 찾을 방법도 없었다. 더구나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굳이 찾아주기가 쉽지 않으리란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회사 동료들에게 어제 비싼 저녁을 먹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디카를 분실했다고 말했더니 어려가지 조언을 해 준다. 하지만 명함을 넣어 두었는데 누군가가 돌려줄 생각이 있었다면 아직까지 전화를 하지 않을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버스회사에 연락을 해보면 혹시 분실물이 보관되어 있을 수 있다고 전화를 해 보라고 한다. 다시 연락처를 확인해서 전화를 해 보았더니 어제 들어온 디카가 하나 있다고 한다. 내가 잃어버린 사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케이스에 명함이 있다고 말하니 사양은 맞는데 명함은 없다고... 사진을 찍어 놓은 것이 있으니 확인하니 내가 분실한 디카가 맞다.

 

잃어버린 이후 케이스에 명함을 넣어 두었기에 누군가가 전화를 해주겠지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명함이 없으니 연락할 방법이 없었던 것 같다. 그것도 모르고 나 혼자 별의별 생각을 다 했던 것이다. 내가 탔던 버스가 학생들이 많이 타는 버스였기에 학생들 중에 누군가가 그냥 가져 갔으리라 생각하고 포기했었는데 그것을 가져가지 않고 반납을 했던 모양이다. 버스 회사 관계자는 누가 발견해서 갔다 놓았는지도 알 수 없다고 하면서, 그냥 버스회사 사무실에 보관되어 있으니 바로 찾으러 오라고 한다. 내가 그 입장이 되어도 욕심이 났으리라 생각했는데 다시 찾게 되니 기분이 엄청 좋아졌다.  

 

하루 종일 충분히 욕심을 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잃어버린 현실을 인정하고 다시 어떤 기종을 살 것인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 기분이 좋아졌다. 아직은 정직한 사람이 더 많은 세상이라고... 이후 디카를 찾아오고, 하루종일 기분 좋게 보냈다. 위에 있는 사진 4장은 굉장히 사연이 많은 사진이 되었다. 비싼 사진이 될 뻔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