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이지만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하고 1박 2일의 여행을 겸한 산행을 하게 되었다. 이제 집에 어린이가 없어 어린이 날에서 해방이 되었다고 말했더니, 이제 또 10년이 지나고 나면 손자들이 태어나서 어린이날을 챙겨줘야 한다고 말한다. 미처 그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생각해보니 맞는 이야기 같다.
어제 저녁에 사무실에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100산회 회원중 나를 포함해서 5명이 창원으로 출발했다. 함께 가기로 했던 일행중에 한명은 갑자기 몸이 좋지 않아서 함께 떠나지 못해, 먹거리와 음료수를 사가지고 와서 미안함을 표시한다. 멀리 창원까지 이동해야 해서 가급적 업무를 마치면 바로 출발하려고 했었는데, 함께 움직이는 일행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연되었다. 해외 출장을 떠난 회원한명이 버스 전용차선을 달릴 수 있는 차를 빌려 주어서 가고 오는 길을 편하게 갔다 올 수 있었다. 창원에 생각보다 멀어서 도착하니 거의 11시가 다 되어 버렸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중부내륙간 고속도로를 이용했는데 이 도로는 버스전용차선도 없고 차량이 많아서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100산회 회원중에 경남본부에서 근무하는 동료가 오늘 회원들을 초대해서 창원에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가지산 산행을 다녀오기로 해서 이번 산행이 진행되었다.
창원에 도착하니 서울과는 달리 벌써 후덥지근 한 초여름같은 날씨다. 우리나라도 꽤 넓은 나라인 모양이다. 서울과 창원이 가깝고 기온이나 날씨 차이가 없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차이가 많으니... 창원도착 예정시간이 늦어서 식당에서는 음식을 사 먹고 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미리 부산까지 가서 맛있는 회를 여러가지 준비해 와서 숙소에서 밤 늦게까지 회포를 풀었다. 모처럼 집떠나 회원들과 함께 있으니 내일 산행을 해야 함에도 잠자는 시간이 늦어졌다. 준비해 놓은 것 다 먹느라 더 늦어진 것 아닌지 모르겠다. 늦게 잠이 들었는데 집에 모기가 있어서 그 짧은 잠도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
아침에 경남본부에 근무하고 있는 이철환부장이 전화를 해서 아침 식사를 하자고 했는데, 나는 그래도 일찍 잠들었지만 나머지 일행은 새벽 4시가 넘어 잠들어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한다. 나도 숙면을 취하지 못한 것 같은데 나머지 일행들은 더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침 식사를 예약해 놓고 찾아온 동료가 있으니 그 정성에 나가지 않을 수가 없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것을 알고 우리 일행을 위해 해장을 할 수 있는 집으로 데려가 시원한 국물이 있는 아침을 대접해 주었다. 경남본부에 근무하는 두 회원이 교대로 어제는 각종 술과 안주를 준비해 놓았고, 오늘은 아침 준비에서 부터 시간과 노력과 정성을 많이 기우려 준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산행때 먹을 밥과 반찬을 비롯해서 과일과 음료, 족발까지 준비해서 나누어 준다. 손님들을 초대해서 제대로 대접하네. 우리는 손님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창원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경남본부에 잠시 들러 차 한잔을 하고 나서 9시가 다 되어서 밀양으로 이동했다. 가지산은 밀양과 울산과 경북 청도에 걸쳐서 있는 산이다.
창원에서 밀양으로 이동하는 것도 예상보다는 한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밀양으로 가는 도중에 표충사 표시판도 보이고 얼음골 팻말도 보이는데 오늘은 가지산으로 산행을 가니 다음에 시간을 내서 한번 와 봐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산행 출발지로 삼은 석남사가 있는 곳은 밀양이 아니라 울주군에 속하는 곳이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대략 11시 되기 조금 전에 석남사 입장권을 구입하고 산행을 시작하기로 한다. 경상남도인데도 높은 산들이 생각보다는 꽤 많이 있었다. 그것도 낮은 산이 아니라 1,000m가 넘는 산들이 모여 있어 강원도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주차장에 도착후 석남사 방향을 이동해서 들어갔는데 이곳도 절땅인지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절 방향으로 가지 않고 바로 이어지는 산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쪽으로 가면 산행 입장료를 받지 않는 모양이다. 어짜피 산에서 내려 오면서 절 구경을 할 생각으로 입장권을 구입하고 석남사 방향으로 들어갔는데, 산에서 내려 올 때 석남사로 내려 오는 길을 찾지 못해 결국 절 구경은 하지도 못하고 입장료만 낸 셈이 되었다. 좋은 산에 가면서 입장료 아낄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가지산 산행은 석남사 쪽을 산행기점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석남사 이외에도 운무사 석골사 등이 있지만 운문사는 코스가 너무 길어 지루하고, 석골사 쪽은 경사가 급한데다 둘러볼 것이 많기 때문에 하산코스로 잡는 것이 적합하다. 석남사 주차장 부근에서 길은 두 갈래이다. 왼쪽 계곡은 쌀바위 밑으로 난 주능선이다. 정상까지 빠르게 오를 수 있는 지름길이지만 가지산의 명물인 귀바위를 보려면 오른쪽으로 난 비탈길로 올라 가야 한다.
산아래는 여름 날씨였고, 나무의 잎도 이제 신록의 초록을 넘어 짙은 녹색을 띄어 가고 있었는데 산위로 올라갈수록 나무잎이 적어기지 시작한다. 가지산이 유명한 곳이어서 산행하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산행객이 별로 없었고, 사람이 많지 않으니 더 좋았던 것 같다. 주차장에서는 산행객을 조금 보았는데 석남사에서 출발한 이후 정상부근에 갈 때까지 산행객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호젖한 산행을 이어간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가 가는 코스로 가게 되면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반대의 코스로 가게 되면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되게 되어 있는 구조였다. 아마 그래서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중반이후 우리와 반대코스로 오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던 것 같다. 미리 정보를 구하고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산 아래에서는 느끼지 못했었는데 정상부근에 가보니 아랫쪽에서 본 것과는 달리 바위도 많은 산이고, 전망도 좋은 산이였다. 일행들끼리 천천히 즐기면서 오르다 보니 오르는데에만 4시간이 넘게 걸렸고 중간에 점심과 휴식을 취하는데 1시간, 내려오는데 2시간이 거려 총 7시간의 산행이 이루어졌다.
가지산(1,240m)은 경남 밀양, 경남 양산, 경북 청도, 울산 울주군 등에 걸쳐 있다. 영남알프스를 이루는 신불산, 간월산, 영축산, 운문산, 천황산, 고헌산 가운데서도 가장 맏형격으로 최고봉을 자랑한다. 태백산맥의 남쪽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으며 주변으로는 1,000m 이상의 고산준령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가을이 주변경관과 어우러져 가장 멋진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1,000m 고지로 올라서니 급한 오르막은 사라지고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능선길을 걷다 보면 좌측 천 길 낭떠러지 위로 큰 바위가 불쑥 솟는다. 소의 귀, 혹은 부처의 귀를 닮았다는 가지산의 귀바위다. 나는 아무리 살펴 보아도 어디가 귀를 닮았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멀리서 살펴보아야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전망데크가 있는 헬기장을 지나면 임도와 또 한 번 만나게 된다. 데크 바로 우측 능선을 따라소 산길이 나 있었지만 이번에도 편하게 임도를 따라 간다. 가지산은 긴 능선을 따라 부드러운 숲길과 험한 바위길 산행을 모두 즐길 수 있어 좋고, 산 위쪽 바위가 많아 산 아래 조망이 좋은 산이다. 1,100m 이상 고지대에 올랐더니 이제는 산 아래와는 딴판으로 이제 새잎이 나오고 있는 중이다.
임도가 끝나는 곳에서 또 한 번 거대한 바위가 나타난다. 가지산의 명물인 쌀바위다. 끼니마다 한 사람이 먹을 만큼 나오던 쌀이 사람의 욕심 때문에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전설의 쌀바위가 인간의 부질없는 욕심을 꾸짖는다. 쌀바위 바로 밑자리에 전설처럼 샘터가 자리 잡고 있다. 바위 틈에서 물이 솟는 석간수다. 돌 틈으로 쌀을 내려주던 부처님이 산꾼들이 갈증으로 허덕이지 않도록 물로 자비를 잇고 있는 셈이다. 쌀바위는 울산의 젖줄인 태화강의 상징적 발원지라고 한다. 쌀바위 동쪽편은 천 길 낭떠러지이지만, 바위 뒤편은 완만한 흙길이다. 쌀바위에서는 그 절벽을 실감하지 못했는데 정상을 지나 산을 내려 오면서 보니 대단한 절벽위에 쌀바위가 있었다.
적당히 잘 걷는 사람이 산행을 하게 되면 5시간도 걸리지 않는다고 하던데 우리 일행은 쉽지 않을 듯하다. 산 아래서 볼때는 바위산이 아닌줄 알았는데 산 정상에서 보니 바위가 보통 많은 것이 아니다. 더구나 올라갈때는 흙길이 많아서 육산이줄 알았더니 내려가는 길에는 바위투성이였다. 입장료를 내는 것이나, 바위가 많은 것을 모르고 오른 것이나 미리 상황을 알고서 올라 왔어야 했는데 정보가 다소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쌀바위 윗쪽 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는 장소에서 정부장이 준비해 준 간식을 먹는 시간을 가졌다.
가지산에는 곳곳에 바위봉과 억새밭이 어우러져 운문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로 능선을 따라 종주할 수 있다. 가을이면 석남고개에서 정상에 이르는 억새밭이 장관을 이루고, 나무가 많지 않은 대신 시야가 훤하게 트인다. 가지산은 풍광이 수려하여 사계절 두루 인기가 있다는데, 억새가 만개하는 10-11월 억새산행으로 가장 유명하다고 한다. 다음에는 가을 산행을 한번 와 보아야겠다. 정상 능선을 따라 걸으니 산을 오를 때와는 달리 바람도 불고 한기가 느껴져 반팔 셔스 위에 바람막이를 하나 더 입었다.
가지산은 멀리서 보면 웅장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정상의 암봉 부근만이 봉긋하다. 영남알프스의 주봉이 가지산이어서 주변의 산들을 내려다보는 재미가 있다. 사방팔방으로 탁 트인 산을 내려보고 있으면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느껴진다. 능선길을 걸어 오면서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정상에 서니 사람이 흔들릴 정도의 바람이 불면서 서늘함이 느껴진다. 5월의 날씨가 이 정도라면 한겨울에는 정상에 서 있기가 여려울 것으로 보인다. 주변으로 능동산과 신불산, 재약산과 천황산의 사자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가지산은 봄에는 철쭉이 정평이 나 있고 가을이면 억새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봄에 8부 능선에서 정상까지 이어지는 철쭉은 수령이 오래되고 개체수가 많다. 아직 철쭉이 필 시기는 되지 않았고 진달래는 막 꽃이 지기 시작하는 절기였다. 그나마 가지산이 높아서 5월에도 진달래를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정상에서 중봉 방면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중봉쪽으로는 경사도 급하고 층층으로 깎인 바위를 밟고 내려선다.
중봉을 지나 다시 산행 출발지인 석남사 방향으로 내려 서니 다시 나무에 가려 산위에서 보았던 전망은 없어지고 끊임없이 산길이 이어져 지루함이 느껴진다. 중봉을 지나면서 정상쪽을 바라보니 가지산이 바위산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만큼 바위 절벽이 많았다. 산위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조망이다. 산아랫쪽으로 내려 올수록 정상쪽과는 판이하게 녹색의 푸르름이 짙어지고 있어 가지산이 높은 산이란 것을 증명하고 있다.
산을 다 내려와서 주차장 앞쪽 계곡에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얼굴을 씻고 발을 담궜는데 물이 너무 차가와서 1분을 담고 있기가 힘들었다. 덕분에 산행의 피로가 빨리 회복된 것 같다. 가지산 산행을 하는 동안에 쌀바위 아래에서 물이 조금 있었을 뿐 계곡을 보지 못해 물을 볼 수가 없었다. 1,240m 나 되는 산이라서 오르 내리는데 7시간이 걸렸고, 오늘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라 주차장에서 다시 절 쪽으로 돌아가 석남사 구경을 할 형편이 되지 않았다. 등산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산행을 하느라, 산행을 시작할 때 절구경을 하고 올라 갔어야 했는데 입장권까지 끊어놓고 절구경도 하지 못하고 내려 온 셈이 되었다. 다시 가지산에 오기가 쉽지 않을텐데 언제 석남사를 다시 한번 구경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산행을 빨리 마쳤으면 석남사 뿐만 아니라 가지산 북쪽 자락에 있는 운문사에도 한번 더 갈볼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석남사도 못가고 오게 되었다. 산행을 마치고 가능하면 빨리 서울로 출발하려고 했었는데, 경남본부에 있는 동료들이 아쉽다고 바로 보내 주질 않아서 결국 주차장 근처에 있는 간이 식당에서 동동주에 파전, 더덕구이와 함께 이른 저녁까지 먹고 출발하게 되었다. 산행은 당일로 끝났지만 1박 2일에 걸쳐 동료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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