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산악회에서 10월 정기 산행으로 신불산으로 떠났다. 모처럼 서울에서 아주 멀리 있는 산을 택했는데 지난 5월달에 동료들과 함께 다녀온 가지산과도 가까운 곳에 있는 산이다. 경상도에 있는 산에는 자주 갈 기회가 없었는데 올해는 영남 알프스에 있는 산을 두번째 다녀 오게 되는 셈이다. 신불산과 영축산은 영남알프스의 한 축을 이루는 산으로 특히 억새 평원으로 유명한 산이다. 산 남쪽 신불재와 신불평전, 북쪽의 간월재 일원은 국내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넓은 억새밭을 형성하고 있다. 영남알프스의 핵심을 이루는 봉우리라 할 수 있다.
영남 알프스는 지난번에 다녀온 가지산(1241m)을 비롯해 운문산(1195m). 천왕산, 재약산, 간월산 등 고봉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위치하고 있어, 마치 유럽의 알프스와 흡사하면서 영남지방에 위치해 있어 영남알프스라 부른다
신불산이 워낙 멀리 있는 산이어서 산행 출발을 오리 사옥에서 새벽 5시 30분에 하게 되었다. 이동 도중 추풍령 휴게소에 들러 잠시 휴식후 취한 뒤 1차 목적지인 통도사IC에서 부산울산본부 직원들과 합류하고 산행 출발지점인 지산마을에 오전 10시경에 도착했다. 오늘 산행은 지산마을을 출발해서 영축산을 거쳐 신불재, 다시 신불산에 오른 뒤 홍류폭포를 거쳐 간월산장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하기로 했다. 신불산이 가까운 곳에 있었다면 조금 더 긴 종주코스도 산행하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일행도 많고, 또 서둘러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억새를 볼 수 있는 최단의 코스를 선택한 것이다. 후미기준으로 산행은 6시간 정도 예상했었다.
이번 산행은 부산본부에서 산행에 앞서 오이와 귤 등을 준비해 주어서 고맙게 잘 먹었다. 산행 출발은 예상시각보다 조금 늦게 10시15분에 시작되었다. 산행은 양산 통도사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지산마을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시작해서 영축산과 신불산을 거쳐 울산광역시로 내려 오게 되는 것이다. 보통은 간월산장에서 출발하여 지산마을로 하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반대로 진행했다. 지산마을에서 산행이 시작되면 정상까지 계속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지산마을에서 영축산까지의 산행구간은 임도를 따라 올라가는 구간으로 중간중간 지름길도 있다. 영축산까지 2시간 정도 오르는 것으로 예상하고 계속되는 오르막길을 오르기로 한다. 산속 오솔길에서 가을향기를 느낄 수 있었고, 묵묵히 임도를 따라 오르면서 가을의 풍광을 즐길 수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끊임없이 오르막을 계속해서 오르게 된다. 산아래에는 아직 단풍이 물들어 있었는데 산 위쪽으로 올라갈 수록 단풍이 지나 낙엽이 떨어진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천m가 넘는 산인지라 계절의 변화를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시기적으로 조금 더 일찍 왔으면 더 멋진 단풍도 볼 수 있었을 것이고 정상에서 억새축제도 즐길 수 있었을텐데 조금 늦은 듯하다. 대신 산에 사람이 많지 않아서 편안한 산행을 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산을 오르는동안 임도도 나오고 임도를 가로지르는 지름길도 있어 번갈아 가면서 영축산으로 가는 중간 8부 능선에 있는 취서산장에 도착했다. 취서산장에 도착하니 조망이 트이면서 통도 환타지아를 비롯한 산아래 마을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간단한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었으나 우리가 준비해 온 것이 많아서 사 먹지는 못했다. 다만 취서산장까지 쉬지 않고 올라왔기에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서 다시 영축산 정상을 향해 출발한다.
산장에서 10분쯤 오르니 커다란 바위가 앞을 가로 막는다. 아무리 봐도 독수리의 모양의 바위가 아닌데 독수리바위라고 한단다. 산아래 지산마을에서 출발할 때 보였던 바위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한층 더 멋있다는 느낌이다. 영남 알프스의 한 봉우리인 영축산이 영취산이라고도 불리는데, 영취산의 취(鷲)자가 수리취자로 신령스런 독수리가 살고 있었다는 뜻이라고 한다. 아마 이 멋진 바위 이름도 영취산에서 따와서 독수리 바위라고 지은 모양이다.
독수리 바위를 지날 무렵부터 나무들의 키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고, 철쭉류의 관목들이 빽빽이 우거진 사이로 나있는 길이 이어진다. 철죽군락지를 지나면 영축산 정상이 0.6Km 남았다는 표시판이 나오고, 영축산 정상이 바로 앞에 보인다. 영축능선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는데 이곳부터는 조망이 좋아졌다. 힘들게 산을 올라온 보람이 있을 정도로 좋은 경관을 볼수 있었다. 영축산 정상과 함께 우측으로는 신불산도 보인다. 독수리 바위 정상 부근에서 일행들은 삼삼오오 모여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조금 더 이동해서 드디어 영축산(1081m)에 도착했다. 영남알프스 최고의 매력은 우리나라 어느 산지에서도 볼 수 없는 광활한 고원 풍광이다. 시원하게 펼쳐진 갈대평원과 뒤로 펼쳐진 한폭의 그림같은 조망에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해발 2천m가 넘는 곳에 형성된 평탄한 분지를 고원이라 하는데, 우리나라는 함경북도에 위치한 개마고원만을 제외하곤 고원이라 부를 수 있는 지형이 거의 없다. 하지만 영남앞프스의 경우 해발 1천m 정도의 고도이지만 신불평전은 고원 그 이상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영축산의 정상조망은 환상적이다.
영남알프스는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 여름에는 폭포와 계곡, 가을에는 억새와 단풍, 겨울에는 설경 등 4계절 모두 절경을 자랑한다. 특히 가을 억새 군락지의 억새는 환상적인 자태로 전국에서 등산객들이 부른다. 영남알프스의 억새는 한강 이남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억새 군락의 규모는 신불산과 영축산 사이 평원을 비롯해서 신불산과 간월산 사이에 있는 간월재, 고헌산 정상 부근 등 산악 억새 군락지로는 전국 최대 규모다. 울산시와 울주군은 이 같은 풍경을 쉽게 감상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하늘 억새길'을 만들었다.
하늘억새길 총길이는 29.7㎞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억새 탐방로라고 한다. 코스는 간월재에서 신불산과 영축산, 천황산, 능동산을 거쳐 다시 간월재로 이어진다. 하늘억새길은 전체 5개 구간으로 돼 있다. 간월재~영축산 1구간은 억새바람길, 영축산~죽전마을 2구간은 단조성터길, 죽전마을~천황산 3구간은 사자평억새길, 천황산~배내고개 4구간은 단풍사색길, 배내고개~간월재 5구간은 달오름길이다. 대부분 길은 해발 1000m가 넘는 능선을 따라 조성됐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5개 구간을 다 걷는 데 16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역시 이름처럼 억새평전의 규모나 모습이 장관이다.
영남알프스 억새 축제가 지난주에 끝났다는데 역시 축제기간이 지나서인지 억새의 하얀 솜털이 바람에 많이 날려 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은빛 물결은 처음 방문한 나에게 감동을 준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등산로에서 비켜나서 억새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보니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시야를 가득 채운 억새가 주는 자연의 모습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억새밭 사이로 나있는 길을 따라 언덕위로 올라가니 그곳엔 더욱 광활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신불산을 향해 산행을 이어가다 사진 가운데 둥그런 목재 데크가 있는 곳이 신불재인데, 그 전까지 보지 못했던 산행객들이 이곳에는 엄청나게 많이 모여 있다. 이곳은 자연휴양림쪽에서 올라오는 등산객이 많아서인지 매우 붐볐다. 아마 멋진 풍광은 보고 싶고 산행은 짧게 하려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쭉 가면 신불산 가는 능선길, 좌측은 가천저수지 방면 하산길, 우측은 상단지구 방면 하산길이라고 한다. 신불재 목재 데크는 야영을 할 수 있을 만큼 널찍해 보였다. 이곳에서 하룻밤 텐트를 치고 쉬어 갈 수 있다면 썩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 언젠가는 한번 도전해 보리라고 생각한다.
신불산과 영축산은 태백산맥의 끝 부분에 솟아있는 산들이다. 이 근처에는 해발 1,000m급 이상되는 산이 여덟 봉우리나 연이져 있다. 특히 영축산, 신불산, 간월산은 3km씩 간격을 두고 봉우리가 이어져 있는데, 우리는 신불산에서 하산하기로 되어 있다. 다음에 편하게 올라 올 수 있는 간월산은 남겨 두기로 했다. 신불산의 높이가 다양하게 표기되고 있는데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상에는 신불산 1,159m 이다. 정상표지석, 등산지도, 지방자치단체 행정지도, 인터넷 등에서는 서로 다르게 표기되고 있다. 이는 국토지리정보원의 자료를 토대로 하지 않고 옛 문헌 자료 등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불산 정상에는 큰 돌탑이 있으며, 그 위쪽으로 조그마한 신불산 정상석이 있다. 작은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아서 돌탑을 배경으로 오늘 함께 산행을 한 동료들과 단체 사진을 찍었다. 신불산 정상에도 목재 테크를 잘 만들어 놓아 쉬면서 주변전망을 돌아 보기 좋게 만들어 놓았는데, 서쪽으로 천황산 사자평도 보이고 동쪽으로는 가천저수지와 함께 경부고속도로도 보였다. 정상에서 약간을 휴식을 취한뒤 이제 하산하는 일만 남았다.
신불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 있는 공룡능선은 신불산의 주요 등산로인데 스릴과 함께 조망도 좋은 뿐만 아니라 그다지 위험한 구간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은 함께 한 일행이 위험구간이라고 쓰여 있어 우회도로를 따라 내려가느라 이 칼바위 능선을 구경하지 못했다. 게다가 우리가 내려 가야 하는 홍류폭포로 내려가는 길을 놓쳐버려서 함께한 일행들이 자수정 동굴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한참 지나서 알게 되어 다시 산을 올라 갈 수가 없어 신불산에서 유명한 홍류폭포도 보지 못하고 거리는 5km 이상을 돌아서 가게 되었다.
홍류폭포를 지나 20여분만 내려오면 오늘의 산행종점인 간월산장이 나온다고 했는데 우리는 2시간 가까이를 산길을 돌아서 간월산장에 도착했다. 우리가 정상에서 출발할 때에는 일행들 중에서 중간 정도 되었는데 식당에 도착하니 이미 파장 분위기. 늦게 도착했지만 식당에서 파전, 도토리묵 그리고 두부와 함께 부산본부와 대구경북본부에서 준비해준 술을 맛있게 먹었다. 많이 걷고 고생을 한지라 음식맛이 더욱 있었던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길을 잃을만한 곳이 아니었는데 단체로 무엇엔가 홀린 것이 아니었는지... 그래도 멀리 양산과 울산에 걸쳐 있는 신불산 산행은 볼거리도 많았고,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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