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산악회에서 11월 정기 산행으로 충북의 명산 월악산으로 산행을 떠나게 되었다. 월악산 백두대간이 소백산에서 속리산으로 연결되는 중간에 있는 산으로, 산세가 험준하고 기암이 어우러져 예로부터 신령스런 산으로 여겨졌으며 198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거대한 암봉으로 이루어진 정상은 영봉(1,097m)인데, 달이 뜨면 영봉에 걸린다 하여 '월악'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정상에서는 충주호를 비롯한 주변의 용두산, 문수봉, 만수봉 등 수려한 산봉우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월악산은 신라의 마지막 태자 김일과 그의 누이 덕주공주가 망국의 한을 품고 은거한 산이다. 이들 남매에 얽힌 전설은 월악산 곳곳에 남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월악산을 충주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제천에 있다. 월악산이 충주시, 단양시, 문경시, 제천시에 걸쳐 있지만 정상인 월악산 영봉이 제천에 있고, 유명 명소가 대부분 제천시에 있기 때문이다. 월악산으로 접근할때 이용하는 도로가 충주시를 통과하기 때문이 충주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월악산에는 용하계곡과 송계계곡이라는 멋진 계곡이 있는데, 영봉을 동서로 8㎞의 송계계곡과 16㎞의 용하계곡이 맑은 물과 넓은 암반, 그리고 숲이 잘 어울려 멋진 풍광을 보여준다. 험준한 산세지만 기암과 충주호의 조망이 어우러지는 월악산은 단풍이 아름다워 단풍이 절정인 10월에 가장 많은 사람이 찾지만 계곡에서 즐길 수 있는 여름 계곡산행과 봄 산행으로도 인기 있다.
오늘 산행은 지난달과는 달리 서울에서 그다지 멀리 있는 산이 아니어서 사무실에서 7시에 출발해서 2시간 조금 더 걸려 산행 출발지인 송계리 자광사 아래 주차장에 도착했다. 단풍이 멋진 계절이 지나버린 시기의 산행이어서 조금은 쓸쓸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제천 근처에 있는 산에 올 때마다 멋진 풍광으로 인해 느끼는 만족감을 항상 최고였었다. 오늘도 그 풍광을 기대하고 왔다.
월악산 국립공원 안내도이다. 우리는 동창교 매표소에서 출발해서 영봉으로 올라갔다가 960봉을 거쳐 덕주계곡으로 내려 오는 코스로 산행하기로 했다.
동창교에서 월악산 정상 영봉까지는 약 4.3km 정도로,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구간은 짧은만큼 이 코스를 통해서 올라가려면 제법 긴 오르막을 끝임없이 올라가야 하므로 힘이 드는 편이다. 동창교 매표소를 지나치면 곧바로 자광사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월악산의 3대 봉우리인 영봉,중봉,하봉이 나란히 올려다 보인다고 했는데 오늘은 날씨가 좋지 않아서 봉우리가 보이지 않는다. 정상에 도착하기 전에 산봉우리에 있는 구름이 걷혀야 할텐데...
동창교에서 출발해서 1.6km를 부지런히 올라오니 처음으로 조망이 보이는 지점에 도착했다. 1차 급경사를 지나 중간 안부에 올랐다. 맑은 날씨가 아니어서 아주 멀리까지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구경거리 없는 지루한 계곡을 걷다가 전망이 보이는 곳에 오니 기분이 좋아진다. 더구나 급경사를 오르느라 땀도 많이 흘렸는데 적당히 바람까지 불어주어서 잠시 숨을 고르며 쉬어가기가 좋다. 아마 이 코스를 통해서 올라오는 사람들에겐 조망도 되고 벤치도 있는 이곳이 공통적인 휴식처가 아닐까 싶다. 조망터에서 건너다 보는 만수봉 방향 굴곡진 봉우리들, 그리고 멀리 장쾌한 백두대간이 흘러가고 있다.
다시 힘을 내서 가파른 경사를 올라오니 월악산 주능선 송계삼거리에도착했다. 능선길에 도착하니 이제 대충 많이 올라왔다는 느낌이다. 눈앞에 영봉이 보이지만 아직도 거리는 1.2km나 남아 있었다. 이곳에서 영봉까지는 직벽이라 바로 오를 수 없고 시계 반대방향으로 270도 가까이 암봉을 돌아 오르기 때문이다. 정상을 살펴 보니 아직 정상에는 구름이 가득하다. 정상에 갈 때까지 구름이 걷혀 주어야 할텐데, 산에서의 기상상태가 어찌 사람 마음대로 되겠는가?
오늘 산행을 시작한 산 아랫쪽에는 약간의 단풍과 떨어지지 않는 마른 잎들이 남아 있는 늦가을 분위기였는데 정상 근처에 오니 눈과 얼음이 가득한 한겨울의 분위기다. 1천m가 넘는 산이라 산아래의 풍경과 산위의 풍경이 엄청 차이가 난다. 이번 가을 들어서 고두름은 이곳에서 처음보는 것 같다. 영봉 돌아드는 절벽길엔 안전하게 철제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계단이 설치되지 않았던 옛날에서 막판 정상을 오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다. 괜스레 월악산의 '악'자가 붙은 것이 의미 없이 붙여진게 아닌듯 하다.
정상은 바로 눈앞에 보이는데 등산로는 야속하게 다시 한번 내려갔다가 정상으로 올라 가게끔 만들어 놓았다. 월악산 산행의 묘미는 정상에서 충주호와 어우러진 주변의 절경들을 감상하는데 있다.정상에 서면 충주호 풍광을 내려다 볼 수 있고 사방으로 펼쳐진 장엄한 산맥의 파노라마를 느낄 수 있는데 오늘은 산이 허락하지 않아서 그 즐거움을 포기하고 다음으로 미룰 수 밖에 없다. 정상에는 바람도 엄청나게 불고, 구름이 가득해서 시계가 100m도 되지 않는다. 더구나 바람이 불면서 날씨까지 추워서 오래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월악산 영봉은 국사봉이라고도 불리며 예로부터 신령스런 산으로 여겨져 '영봉(靈峰)'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해발 1,097m로 험준하며 가파르기로 이름나 있고 암벽 높이가 150m, 둘레가 4km나 되는 거대한 하나의 암반으로 형성되어 있다. 얼마전만 해도 정상은 위험하고 서 있기도 불편한 곳이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잘 관리해 놓아서 위험하지는 않았다. 전망이 좋은 곳이라고 하지만 오늘은 산아래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쉽지만 날씨도 춥고해서 바로 하산길에 오른다.
정상에서 40m 정도 하산을 하면 우측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상당히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가을 등산인데 산 정상 주위에는 눈과 얼음이 가득해서 겨울 산행을 온듯한 느낌이다. 철제 계단의 손잡이는 손이 시려울 정도여서 맨손으로 잡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오늘 하산은 덕주사 방향으로 하게 된다. 신륵사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진행방향을 잡아서 올라 올 때 마주쳤던 송계삼거리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산불초소도있다.
월악산에는 산양이 살고 있으니 보호하자는 내용의 안내판이 여러 군데 설치되어 있었다. 안내판은 곳곳에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이 설치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산행을 하면서 산양은 볼 수가 없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우리같은 산행객이 문제가 아니라 밀렵꾼들이 문제일텐데...
송계 삼거리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헬기장이 나오는데 이곳 헬기장에서 뒤로 돌아보면 월악산 영봉의 암릉이 얼마나 장엄 한가를 느낄 수 있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사이에 구름이 걷혀져서 정상이 확실하게 보인다. 지금 시간에 정상에 있었다면 영봉에서 주변의 풍광을 제대로 볼 수 있었을텐데 아쉬운 마음이다. 그렇다고 다시 정상으로 돌아 갈 수도 없는 일이고... 이곳에서 보이는 영봉은 참으로 대단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아쉬운 마음에 영봉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을 남긴다.
구름이 걷히면서 덕주사로 하산하는 동안 멋진 풍광을 감상할 수 있었다. 조망이 좋은 능선을 따라 움직이다 보니 산 아래 충주호를 비롯해서 남쪽으로 백두대간의 산군이 이어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더구나 구름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상태에서 햇살이 산아래로 퍼져나가는 멋진 풍광도 볼 수 있었고... 조령산, 마패봉, 탄항산, 포암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과 멀리 주흘산의 모습도 보인다.
덕주사로 하산하는 암릉길도 만만치 않게 험준하고 철계단이 줄지어 놓여있다. 산행을 시작했던 동창계곡도 상당한 급경사였지만 계곡을 따라 올라가느라 그 느낌도 모르면서 올라갔지만, 덕주사로 내려가는 암릉길이 눈으로 보이는 급경사여서 이곳으로 올라 왔다면 상당히 힘들었을 것 같아 보였다. 오늘 우리가 선택한 동창교로 올라와서 덕주사로 내려가는 방법이 현명한 코스였다는 생각이다. 산 아래로 보이는 멋진 풍광을 감상하며 산행을 이어간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서 한참동안 내려 오면 좌측에 암자가 보인다. 암자를 조금 지나치면 월악산에서 유명한 덕주사 마애불이 있다. 덕주사 마애 여래입상은 월악산 남쪽 기슭의 상덕주사 극락보전 동편의 큰바위에 조각한 불상이다. 보물 406호로 지정된 마애불은 전체 높이가 13m에 이르고 얼굴 부위를 선명하고 자세하게 표현하고 몸통과 하체는 간략한 선으로 처리한 고려시대 불상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신라의 국운이 다하자 경순왕은 신라의 천년사직을 고려 왕건에게 넘긴다.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는 끝까지 저항하고자 했지만 대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마의태자가 신라 재건운동을 벌일 것을 두려워한 고려의 호족들은 마의태자는미륵사에, 덕주공주는 북쪽 40리 밖 덕주사에 볼모로 가두었다. 망국의 한을 달래면 만들어졌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마애불이다.
마애불을 거쳐 덕주사로 내려 오는 길에 덕주산성이 나타난다. 덕주산성 역시 덕주공주가 부왕인 경순왕을 그리워하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권토중래의 비장함으로 쌓았다고 전설이 있지만 전설일 뿐이듯... 덕주산성은 백제 때 축조된 석성(石城)으로 알려져 있으며 충주에서 동으로 45리,청풍에서 동남으로 50리 떨어진 월악산 남쪽에 위치, 둘레가 15km에 이른다고 한다. 조선 중종 때 내성을 축조했다는 기록도 있으며, 조선 초기까지는 3중의 성벽이 존재했었다. 이후 4겹의 성벽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유례가 없는 것이며 충청과 전라 지역을 통틀어 최대 규모라고 한다. 산성이 완벽하게 산을 둘러쌓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등산로에서 바라본 산성의 규모가 엄청나 보였다.
마애불과 월악산성을 지나 내려 오니 덕주사는 나타났다. 덕주사는 신라의 마지막 왕손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전설이 서린 도량이다. 월형산 월악사(月岳寺)로 불렸던 절인데 신라가 멸망한 후 경순왕의 장녀 덕주공주가 불교에 입문하고 망국의 한을 달래면서 마애불을 조성한 후 덕주사로 개칭했다고 전해진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소실됐는데 1963년에 새로 중창했다고 한다. 덕주사에 들러서 받은 느낌은 절이 너무 산만하게 지어져 있다는 느낌. 아마도 계획적으로 한번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필요에 의해서 계속적으로 지어 나간듯한 느낌이다. 보통 절에서 느끼는 편안함이 느껴지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법당에 한번 들어가보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
산 중턱에서 보았던 산성뿐만 아니라 다시 아랫쪽으로 내려 오니 산성이 하나 더 나타났다. 덕주산성 내·외 4겹의 성벽으로 되어 있고, 축조연대가 각기 달라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쌓은 남문, 동문, 북문 등 아치형의 성문은 현재 복원됐다. 덕주산성은 우리나라 산성중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하는데, 이곳 충북에 있는 몇 몇 산성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만큼 가치가 있는지, 제대로 복원되었는지는 문화재에 대한 문외한인 나로서는 의문이다. 지자체가 너무 실적만을 의식해 졸속으로 복원한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덕주 산성을 지나 덕주사 역사 자연관찰로가 나오면 산행은 끝이 난다. 오늘 살짝 찌푸린 날씨로 인해 정상에서 산아래를 조망하지 못했고, 월악산 주변의 절경을 선명하게 담을 수 없어 아쉬움이 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 보였던 바위산의 모습과 충주호를 비롯한 주변의 용두산, 문수봉, 만수봉 등 수려한 산봉우리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산을 내려 오면서 움직이는 동양화를 보듯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과 햇살의 모습이 꽤 오랫동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산을 내려 오니 이곳에도 단풍이 남아 있다. 오늘 산행의 끝은 덕주계곡 끝에 있는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까지 먹는 것, 보람찬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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