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두굴(Bedugul)에서 부라딴 사원을 구경하고 꾸타로 돌아오는 길에 멩위(Mengwi)라는 지역에 있는 따만 아윤 사원( Pura Taman Ayun)을 방문하게 된다. 브두굴에는 차가 많지 않아 한가한 느낌이었는데 멩위쪽을 오니 차도 많아지고 날씨도 많이 더워지기 시작한다. 따만 아윤 사원은 브사키 사원(Pura Besakih)에 이어 발리에서 두번째로 큰 사원으로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이 되어 있는 사원이다. 이 지역은 멩위 왕족들이 살았던 지역으로, 아름다운 정원이란 뜻을 가진 타만 아윤 사원은 왕실의 조상과 신들을 모신 사원이다. 지난번 발리 방문때에는 와보지 못했던 곳이라 이번 여행에서는 꼭 가볼 생각이었는데 와서 보니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 생각보다 아기자기 하고 멋있는 풍광이었다.
반으로 쪼갠 것처럼 수직 대칭으로 서 있는 석문 짠디 벤따르(Candi Bentar). 오른쪽은 선,삶,정화,광명을 의미하고, 왼쪽은 악,죽음,부정,어둠을 상징한다. 유일한 출입구인 다리를 건너면 잘 조성된 넓은 정원이 시원스레 펼쳐지고, 독특한 모양의 건물과 잘 가꿔진 정원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 온다. 입장권을 사고 들어오면 바로 우측에 건물이 있는데, 발리사람들이 대대로 즐겨오는 닭싸움을 하는 모습을 구현한 모형들이 있었다. 단순히 사람들이 쉬어 가라고 만든 공간인 줄 알았더니 조형물을 설치해 놓았다.
따만 아윤사원은 1890년 바둥(Badung) 왕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이후로 이십여년간 보호 없이 방치되었고, 또 1917년 지진으로 인해 심한 손상을 입었는데, 1937년에 시작된 복원 사업으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어렇게 복원된 덕분인지 현재는 외국인과 현지인들이 찾는 발리에서 꼭 봐야하는 사원중 하나가 되었다. 왕이 신에게 의례를 올리는 왕실 사원이라서 그런지 그 규모와 섬세한 아름다움은 여느 사원과는 다른 분위기와 모습을 보였다. 사원 주변의 정원은 부호의 별장처럼 잘 관리되고 있어 보기가 좋았다.
본당 출입구에 마치 탑처럼 세워져 있는 꼬리 아궁(Kori Agung)은 멩위 왕국의 왕실 사원답게 눈에 띄는 주황색 벽돌을 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탑의 양쪽에는 나쁜 기운이 사원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주는 수호신 두와라빨라(Dwarapala) 한 쌍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우리나라 사찰 입구에 사천왕이 있는 것과 같은 의미로 생각된다.
사원 안쪽에는 발레(Bale)라고 하는 벽없이 지붕만 있는 형태의 건물들이 많이 있었는데, 발리에서 발레는 다용도 건물로 창고ㆍ부엌ㆍ대기실 등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그 중 한곳에는 바롱 댄스에 사용되는 바롱 탈과 함께 그림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어떤 용도의 건물인지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음악과 춤이 있는 의식과 제례가 발달한 발리 한 단면을 느낄 수 있었다.
탑이 있는 안쪽은 관광객들이 함부로 들어 갈 수 없어서, 사원의 내부 모습은 길을 따라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담 너머로 보아야 했다. 하지만
사람 어깨 높이의 담장이 있었기 때문에 안을 들여다 보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발리 힌두력에 따라 210일마다 돌아오는 이 사원의 설립기념일에만 오픈을 하고, 외부 사람들도 그 때 사원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경내에는 메루(Meru)라고 불리는 탑처럼 보이는 사당이 있는데, 이 탑은 여러개의 지붕을 쌓은 사당으로 일반적으로는 힌두교의 성산인 수미산과 발리에서 가장 높은 아궁산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메루는 총 10개로 홀수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탑마다 모시는 신이 다르고 높이가 높을 수록 더 중요한 탑이라고 하는데, 3층 탑은 발리에서 가장 높은 아궁산을 위한 사당이라고 한다. 제사를 모시는 제전은 다시 해자로 둘러싸여 있다.
따만 아윤사원에도 동양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모처럼 우리 가족을 비롯해서 일본, 중국 사람들을 모두 만났다. 발리들 돌아다니면서 이번 여행에서는 한국 사람은 많이 만나지 못하고, 주로 중국사람만 많이 보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경제가 어려워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발리가 별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여행지가 아니어서 그런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대신 중국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아서 관광지에 가면 중국인지 발리인지 헷갈릴 정도로 많다. 이곳에서 모처럼 일본말을 잘하는 가이드가 일본사람을 안내하고 있어 동북아 3국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탑이 세워져 있는 중앙의 제전을 한바퀴 돌아서 다시 처음 입장했던 장소로 되돌아 나왔다. 안쪽 제전 뒷편에는 공원같이 나무도 많이 심어져 있고 산책길이 나 있어서 여유가 있으면 한번 둘러 보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따만 아윤사원은 최초로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한 테마로 영원의 바다에 떠있는 신들과 신들의 집, 메루, 산을 상징하도록 설계하였다고 한다. 발리의 여러 사원을 구경했지만 따만 아윤사원도 꼭 방문해 봐야 할 사원중에 하나라는데 이의가 없을 정도로 느낌이 좋았던 사원이다.
따만 아윤사원이 바다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 사원을 둘러싼 바깥쪽 해자에 바닷가 갯벌같은 모습이 연출되고 있어서 약간 의아했다. 평소에는 물이 차 있다가 조수간만의 차이로 물이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나중에 구글맵으로 자세히 보니 사원 주위를 깊게 파고 연물을 채워 넣은 것인데 물이 빠져서 그렇게 된 모양이다. 물이 채워져 있었으면 더 보기 좋았을텐데.... 옛날 성 주변에 해자를 만들었듯이 그렇게 인공 연못을 만들었던 것 같다.
따만 아윤사원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라마씨로부터 어제 사고난 렌트카의 수리는 오늘 끝낼 수가 없어서 내일 오후까지 작업을 해야 한다고 연락을 받았다고 전한다. 따만 아윤사원을 관람하고 나서 우붓으로 되돌아가 차를 받아올 생각이었는데, 하루더 수리를 맡겨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우붓에서는 오늘 아침까지만 묵기로 되어 있어서 라마씨에게 우리를 꾸타로 데려 달라고 했다. 내일은 내가 빌린 렌트카로 돌아다닐 생각이었는데 라마씨에게 하루 더 안내해 달라고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라마씨를 만나지 않았으면 차사고를 어떻게 수습했을까 생각해보면 하루 비용을 더 쓰더라도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1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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