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서 달리기 연습을 하러 나갈 준비는 끝내 놓았는데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가을비가 생각보다는 많이 내린다. 여름의 끝자락에 달리기를 하는 중에 내리는 비는 체온을 낮춰주어서 반갑지만, 출발하기 전에 비가 내리면 갈등에 휩싸인다. 아직 진정한 달림이라고 보기 힘든 탓이라는 생각이다. 아침운동을 하러 가겠다고 약속을 해 놓았지만 비 때문에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아침 달리기 모임을 취소한다는 문자가 왔다. 엄청 고민하고 있던 것을 한방에 날려 주었다. 원래 새벽에 달리기하고 아침을 먹고 돌아올 계획은 취소되었으나, 함께 운동을 하기로 했던 문희형이 남산을 한번 걷자고 제안해서 점심무렵 동대문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집에서 나설 때에는 비가 내렸는데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비가 개었다. 비 때문에 가지고 온 우산과 갈아 입을 옷이 짐에 되어 버렸다. 문희형님과 장호형님을 만나서 처음으로 남산 성곽길을 걷기로 했다. 장호형은 강의를 마치고 남산에 갈 생각이 없이 왔는데 함께 하게 되었다. 따라서 구두를 신고 산책을 해야 한다.
남산 성곽길은 한양 도성길로 개발된 일부 구간으로 보면 되는데 오늘 걷게 되는 것은 꼭 한양도성길만 걷는 것은 아니다. 자주 달리기 연습을 하러 다녔던 남산의 새로운 성곽길을 따라서 한번 돌아 본다는데 의미가 있다. 최근 서울시에서 복원한 한양도성길은 성곽의 전체거리 18km로 백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의 능선을 잇고 있다. 조선시대 성곽을 쌓고 사방에 대문을 내고 그 사이에 작은 문을 두었다. 4대문은 동쪽에 흥인지문, 서쪽에 돈의문, 남쪽에 숭례문, 북쪽에 숙정문이고 4소문은 동북 혜화문, 동남 광희문, 서북 창의문, 서남 소의문인데 흥인지문 앞에만 옹성을 두었다. 오늘은 남대문인 숭례문에서 출발해 남산을 거쳐 동대문인 흥인지문까지 걸어볼 계획이다. 동대문에서 만났지만 광장시장을 이동해서 점심으로 비빔밥을 사 먹었고 청계천을 따라서 숭례문으로 이동했다.
최근 몇년동안 청계천에 가보지 못했더니 그 사이에 엄청 고기가 많이 살고 있다. 탄천에 있는 모든 종류가 청계천에도 살고 있었다. 심지어 인공으로 놓아둔 것으로 보이는 비단잉어도 보이고, 토종 피래미와 모래무지 등 물반 고기반으로 보일만큼 많이 있었다. 아침에 내린 비로 청계천도 범람을 했었는지 보도쪽에 미쳐 빠져 나가지 못한 피래미 몇마리는 물가로 옮겨 주었다. 청계천을 걸으면서 우리나라도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 든디/ 해외여행을 가면 조그마한 시골에도 집과 집사이에 있는 수로에 물고기들이 살고 있고, 아무도 그 물고기를 잡지 않아 부럽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 우리나라도 그 수준까지는 왔다는 느낌이다. 고기를 잡아 먹지 않아도 될만큼 먹는 것에 대해서 여유도 생겼고, 의식도 높아져 이런 고기를 잡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있을 것이고, 잡아도 팔리지 않으니 잡지 않는 것도 있을 터이지만 어찌되었든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서울시청 광장에는 아직 철거되지 않은 민주당 천막도 있었다. 이제는 하도 많이 보아서 이제는 식상하다. 광장을 시민에게 주어야 하는데 왜 정치적인 선전장이 되는지 알 수가 없다. 광장 한켠에서는 구속된 이석기씨를 석방하라고 하는 유인물도 나눠주는 있던 회사 후배도 만났는데 난감스러운 느낌이다. 서로 지향하는 바가 다르니 뭐라고 할 수도 없다.
오늘 산책코스는 동대문에서 출발해서 청계천을 거쳐 시청앞, 남대문, 그리고 남산으로 올라가서 성곽을 따라 남산을 오르내리고 다시 타워호텔(이름이 반얀트리 라고 바뀐 것 같다.)과 신라호텔 옆길로 해서 장충체육관, 광희문, 서울역사공원 다시 동대문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잡았다. 매번 차를 타고 지나쳤던 숭례문(崇禮門)을 처음으로 걸어서 와 보았다. 방화사건 이후에 처음으로 숭례문에 왔다. 방화사건 전에는 숭례문이 길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가볼 수도 없었는데 이번에 복구를 하면서 숭례문을 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아서 처음으로 지나가 볼 수 있었다.
숭례문은 국보 제1호로 한양도성의 남대문이자 정문이다. 1395년에 짓기 시작하여 1398년 완공하였고, 1448년에 개축했다. 1907년 교통에 불편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좌우 성벽이 헐린 뒤에는 문화재로만 남았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었으나 2008년 2월 방화로 목조인 1층 약 10%, 2층 문루 약 90%가 소실되었다가 금년 5월 복원해서 개방했다. 이때 숭례문 서쪽 16m, 동쪽 53m의 성벽을 연결하였다. 숭례문 현판의 글씨를 세로로 내려 쓴 이유는 숭례문을 마주하는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처음으로 남대문에 직접가서 출입구 천장에 단청으로 구려진 용그림도 구경했다. 잘 복원한 숭례문을 배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진도 찍고 구경하고 있었다. 관리사무실에서는 성곽일주 스템프를 찍어 주는 곳이 있었는데, 모두 모두 돌아보지 못하더라고 다음에 완성하겠다는 생각에 스템프를 찍었다.
숭례문은 출발해서 남산으로 올랐다. 어린시절 만화책을 보러 찾았던 남산의 어린이 회관도 다시 들러 보았다. 가끔씩 달리기를 하러 갔었던 남산이었는데 몇 년만에 와 보았더니 너무나 많이 바뀌었다. 돈을 들여서 볼거리도 많이 만들어 놓고,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내국인 보다는 대다수의 중국사람과 일부 일본인과 서양사람들로 붐빈다. 백범광장도 새로 단장을 해 놓았는데, 백범광장 주변에는 백범 김구 선생 동상, 성재 이시영 선생 동상,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동상 등 항일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기념물이 많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일제가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성곽을 훼손했던 곳이다. 일제 식민지배의 상징을 항일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대체한 것이다.
백범광장이 끝나는 지점에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있었다. 오랫만에 남산에 왔더니 바뀐 것이 너무나 많다. 기념관은 남산 아래있다는 지리적인 위치때문인지 초등학생들의 체험학습현장으로 많이 이용되는 듯하다.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총 3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반 시민들도 많이 방문하는 것 같았다. 기념관 입구 벽에는 안중근의사의 글이 새겨져 있었는데, 나름 역사에 관심이 많고 안중근의사에 대해서는 잘 안다고 생각해서 기념관이 입장하지는 않았다.
정말로 오랫만에 남산도서관 뒷쪽으로 해서 남산을 걸어 오르게 되었다. 오랫만에 걸어서 이 길을 따라서 올랐더니 옛날에는 없던 잠두봉 포토아일랜드를 나무테크로 만들어 놓았다. 과거에 이곳에 바위언덕이 있어서 전망이 좋았던 곳을 조금 더 꾸며 놓은 듯하다. 남산 서쪽 봉우리는 누에머리를 닮았다하여 잠두봉이라 불렸다고 하는데, 그것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이곳 전망대에 오르면 나무가 시야를 가리지 않고 서울시내 빌딩 숲과 주변 풍광을 살펴 볼 수가 있는데,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건물들이나 명소을 알려주는 안내 표지판도 있다. 포토아일랜드라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사진을 한장 남긴다.
남산 정상의 타워광장도 유명 관광지로 변해 버렸다. 내가 한국에 있는지 외국에 있는지 모를 정도로 우리말이 들리지 않는다. 볼거리와 사람들을 찾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이 많아 보인다. 거리 공연도 하고 있었고, 주변 경관도 사람들이 찾아올만한 분위가로 꾸며 놓아 완전 중국인 판이다. 시끄러울 정도로 중국말이 들리는데 그만큼 우리나라를 찾는 중국인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고 봉수대 앞쪽 광장에서는 국악공연이 있었는데, 꽤 수준높은 공연을 하고 있어 한참을 구경하면서 산에 오를때 흘린 땀을 식혔다.
서울 남산 아랫쪽에도 전망과 더불어 볼거리가 많이 있었다. 외국인들이 남산에 많이 올 수 있게끔 여러가지를 갖추어 놓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순히 높은 곳에 와서 서울을 내려다 보는 것만이 아닌 나름 남산의 컨덴츠가 많이 있었다. 여러 조각들도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고, 하트모양의 조각작품도 있어 보기 좋았는데 무엇보다 눈에 확실하게 띄는 것은 형형색색에 예쁜 열쇠들이 달려있는 사람의 자물쇠다. 외국에 가서도 간간히 이런 것을 보았는데 남산에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되어 있다는 느낌. 열쇠탑도 있고, 트리도 있고 담장도 있다. 이런 것들이 관광객을 더 이끌어 내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많아서 담장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생긴다. 외국의 연인들도 많이 걸어 놓았는지 외국어도 눈에 많이 띈다.
정상에서 내려와 드디어 처음 가보는 길을 따라 걷는다. 남산에는 운동을 하러 수없이 올라 보았지만 정상에서 동쪽편에 있는 성벽을 따라서 걸어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거북이 마라톤대회에 참석했을 때에도 늘 도로를 따라서 내려 왔었기 때문이다. 숲속에 이런 성벽이 남아 있으리라고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오늘 걷고 있는 길 가운데 유일하게 처음 접하는 길로 남산에 이런 곳이 숨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성벽은 오래 되었지만 성벽을 따라서 걸을 수 있도록 길을 새로 만들어 놓은 듯하다. 남산에 자주 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는 느낌이다. 숲속길이 너무나 좋다.
오후 내내 장호형과 문희형과 함께 여유있게 걸으면서 여러 주제로 대화도 나누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서울마라톤클럽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부터 각자의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이들어서는 함께 여행을 자주 다니자고 약속했다. 문희형이 올 10월말에 중국에 있는 태항산과 운대산에 트레킹을 함께 가자고 한다. 가을에 광저우를 가고 싶었는데 오늘 산책을 하면서 태항산 트레킹을 하는 것으로 정해버렸다. 산책을 하며서 또 다른 트레킹 계획이 세워졌다.
숲 속 성곽길을 내려 오니 달리기 연습을 하던 남산 북측 산책로와 국립극장 길이 나왔다. 이후 성곽길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내심 궁금했는데 성곽길은
광희문으로 이어지는 성벽길은 장충동 주택가로 들어서면서 길은 이어지지만 성벽은 사라져 버렸다. 일제시대에 이 지역에 주택단지를 조성하면서 한양도성의 상당 부분을 훼손했고, 해방 후에도 또 다시 주택을 만들면서 성벽이 또 훼손되었다고 한다. 지나면서 보니 이곳에도 성북동처럼 성벽에 쓰였던 돌은 주택의 담장이나 축대로 사용되고 있다. 개인의 사유재산이지만 언젠가는 성벽도 복원하고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택가를 지나쳐 나오니 광희문(光熙門)이 나타났다. 한양도성의 동남쪽에 있는 문이로 시구문(屍口門) 또는 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불리웠다. 일제강점기에 일부 무너지고 1960년대에 퇴계로를 만들면서 반쯤 헐렸던 것을 1975년 원 위치에서 남쪽으로 조금 옮겨 현 위치에 중건하였다. 오늘도 지나치면서 보니 추가로 복원작업을 하는지 가까이 접근할 수 없도록 하고 작업중이다.
광희문을 지나 흥인지문으로 이동하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나온다. 옛날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조성된 공원이다. 조선 후기 이곳에는 훈련도감의 별영인 하도감과 화약 제조 관서인 염초청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도 과거 일제때 이곳에 경성운동장을 지었는데, 성벽을 이용하여 관중석을 만들었다고 한다. 경성운동장은 해방 후 서울운동장으로 개칭되었다가, 88올림픽 이후 다시 동대문운동장이 되었다. 근현대 한국 스포츠의 중심지였던 이 운동장이 헐린 것은 2007년이다. 당시 철거 과정에서 땅 속에 묻혀 있던 성벽의 일부와 이간수문(남산에서 발원한 물이 도성 밖으로 빠져나가는 두 칸짜리 수문), 치성(雉城 ·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물) 등 여러 유적이 발견되어 복원되어 있다. 공원에 걸을 수 있는 도로가 성곽길을 복원해 놓은 것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마침내 흥인지문(興仁之門)에 다시 도착했다. 조선 후기 건축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어 보물 제1호로 지정된 한양도성의 동대문이다. 점심때 이곳을 출발한지 4시간만에 남산 성곽길을 걸어서 되돌아 왔다. 동대문 근처는 워낙 많이 다녔던 곳이라 큰 감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남산성곽길 산책의 출발점이자 종점이다. 주변에 동대문시장, 평화시장 등이 있어 오늘도 관광객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오늘 남산 성곽길을 다 돌아 보아서 개인적으로 한양 도성길을 모두 걸어보게 되었다. 한양 도성길은 시간적으로 여유만 있다면 하루에도 돌아 볼 수도 있지만 , 그렇게 되면 걷는 것에만 몰두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여유있게 남산 주변을 돌아 다니면서 하루를 잘 보낸 듯하다. 점심을 먹고 동대문을 출발했는데, 다시 동대문 근처에 있는 한방 오리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오늘 모임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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