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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 읍성 (2014.3.30)

남녘하늘 2016. 4. 7. 00:29

 

 만리포 해수욕장과 천리포수목원 구경을 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금 돌아 오겠다는 생각으로 태안군을 떠나 서산시를 거쳐 해미읍성을 방문했다. 지도상으로 보면 집으로 오는 길목에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조금 돌아가더라도 해미읍성도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태안을 온김에 다녀오게 되었다. 


 해미읍성은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석성으로 충청도 지역의 군사 방어를 담당했던 병영성(兵營成)이다. 고창, 낙안을 포함한 조선시대 대표 읍성 중 하나로 서해안 방어와 왜구 침략을 막기 위해 조선 태종 때 성을 쌓기 시작하여 세종 3년(1421년)에 완성된 읍성이다. 병마절도사가 효종3년(1652년) 청주로 옮겨가기전까지 230년간 충청도 군사의 중심지로 국방은 물론 내란 방지 등의 업무를 맡았었다. 남문인 진남문과 동문, 서문이 있고, 성내에 동헌, 어사, 교련청, 작청, 사령청 등의 건물이 있다. 진남루는 원형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데 올라가보면 해미 시내가 한눈에 들어 온다고 한다. 해미읍성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다.   

 

 



  해미읍성의 정문 진남문을 들어서니, 초가집과 관아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찬 순천 낙안읍성과는 달리 읍성 안쪽에는 텅비어 있는 느낌이다. 성의 복원을 위해서 성안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모두 이주시킨 것 같은데, 이주를 시켰더라도 안쪽에 과거 읍성의 느낌이 날 수 있도록 적당한 건물을 복원해 놓았으면 좋았을텐데 너무 빈 공간이 많았다. 박물관이나 여러 시설이 없는 상태에서 비어 있는 공간이 너무 인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방문한 사람이나 현지 주민이 공원처럼 이용하려고 여유 있게 만들어 놓으려고 했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읍성을 방문했으니 먼저 성을 한바퀴 돌아보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싶어서 성 안쪽 구경에 앞서 성곽으로 올라갔다. 읍성 문을 통과하자마자 양 옆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문 위에 정자같은 곳에 오르게 된다. 오후가 되면서 바람이 불기 시작해서 서늘함이 몰려 오기는 하지만 이제는 봄바람이다. 성 둘레가 약 1.8km로 걸어서 약 한시간쯤 걸린다고 하였는데 느긋하게 주변을 돌아보면서 걸었더니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사진도 찍지 않고 빠르게 걷는다면 30분이면 한바퀴 돌아 볼 수 있을 듯하다. 

 

 



 읍성은 쉽게 성곽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는 거대한 규모는 아니지만 방어의 목적을 가진, 뒤에 산을 끼고 만들어진 조금 작은 성곽으로 보였다. 성벽의 바깥쪽은 돌로 쌓아 올렸고 성벽안쪽은 돌과 흙으로 채워, 성 안쪽에서는 누구나 쉽게 성벽을 오르내릴수 있게 되어 있었다. 성 안쪽으로는 관광객을 위한 마차가 운행되고 있었다. 우리는 걸어서 성벽을 걷고 있는데, 재미로 타고 있었겠지만 평지조차 마차를 타고 있으니 너무 편한 것만 찾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진남문에서 출발해서 동문쪽으로 이동하다 보니 성 안쪽으로 과거 사람들이 생활했던 민가를 몇 채 복원해 놓은 것이보였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집이 조금 더 많이 있어야 볼거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무조건 주민을 성밖으로 내몰 것이 아니라, 좀 더 자연스럽게 과거 삶의 흔적들을 볼 수 있도록 해 놓았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주변의 공간이 너무 휑하다. 아직 봄다운 봄이 오지 않아서 더 그런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다.   

 

 



 동문을 지나 북쪽 경사진 곳을 올라가며 성안을 바라본 모습이다. 북문으로 가는 길이 가장 경사도 심하고 작은 언덕 같은 곳을 올라야 했다. 북문이 있는 뒷동산에는 소나무 숲이 있는데 많은 소나무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었다. 성 북쪽 정상부는 구릉지대로 높아서인지 해미 시내도 잘 내려다 보였다.    

 

 



 북쪽 구릉지 정상쪽에는 성 바깥쪽으로 방어벽 같은 성이 하나더 쌓여져 있었다. 최근에 복원한 것으로 보이는데 내가 보기에는 과거에 방어벽이 있었는지 알수가 없고, 정확한 고증에 의해서 복원한 것인지 궁금하다. 높은 지역에 있는지라 성과 성 사이에 해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방어벽이 오히려 성을 방어하는데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 같은 느낌인데.. 새로 복원을 해 놓아 관심이 갔는데, 전문가도 아닌 내 생각일 뿐이다. 기존에 있는 성곽길도 이곳은 협소하고 다니기에 조금 불편함이 있었다.        

 

 

 



 궁금증을 뒤로 하며 서쪽방향으로 내려 오니 북문은 따로 보이지 않고 북문으로 보이는 암문이 나타났다. 복원된 누각도 없었는데 북문은 처음부터 없이 암문만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암문으로 내려오는 계단도 만들어져 있지 않아서 소나무 숲 사이로 잠시 내려와 보았다. 산책로는 만들어여 있지만 역시 방치되어 있다는 느낌. 고증에 의한 복원인지가 역시 궁금하다. 암문(暗門)은 평상시 성 안팎을 출입하는 성문이 아닌, 적의 눈을 피해 아군이 몰래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든 문이다. 설명은 그렇게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눈을 피해서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숨겨진 문은 아니라는 느낌. 

 

 



 서문 앞쪽에는 국궁장이 있어 활쏘기 체험을 할 수 있었는데,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활쏘기 체험은 하지 못했다. 천천히 이곳 저곳을 둘러보면서 걸었더니 시간이 제법 많이 흘렀는데 아직 읍성 안쪽을 모두 둘러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문까지만 성곽길을 따라서 돌고 나서 남문까지는 돌지 않고 성 안쪽을 둘러 보기로 했다. 성곽길을 따라서 깃발이 세워져 있었는데 좌청룡, 우백호 등의 의미에 따라서 동쪽에는 흰색, 북쪽에는 검정색, 서쪽에는 청색, 남쪽에는 붉은색 깃발이 세워져 있었다. 흰색 깃발을 보고 성 내부로 이동했다.  

 

 





 해미읍성은 우리나라에서 있는 읍성 중에서 가장 원형이 잘 남아있는 읍성이라고 하는데, 과거 정비를 하면서 안쪽에 있었던 민가와 하교등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그중에서 일부만 복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썰렁하고 황량함에 적막함만이 감돌다는 느낌이다. 성안에 현대적인 건물로 가득하 있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과거 선조들이 살고 생활했던 것을 복원해서 놓아 두면 더 효과가 크지 않을까 싶다. 성 구경에 약간의 입장료를 받아서 성안에서 과거의 모습으로 불편함을 감수하면 살아가는 지역주민에게 도움을 주는 형식도 검토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순천 낙양읍성의 사례도 한번 검토해 봄이 어떨까 싶다. 나무 몇 포기와 잔디밭이 해미읍성의 특징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동헌과 내아 그리고 객사를 복원해 놓다. 동헌은 병마절도사를 비롯한 현감의 집무실로서 관할 지역의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이 행해지던 건물이다. 내아는 관리와 가족들이 생활하던 관사 건물이고, 객사는 조정의 관리들이 묵어가던 일종의 귀빈 숙소이자 관아의 관원들이 국왕에 대한 예를 올리는 장소였다. 복원을 잘 해 놓았는데 이 역시 다른 건물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휑한 곳에 있어 조화롭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더구나 저녁 시간이 되어서 구경하는 사람도 없으니 그런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동헌 바로 옆쪽에 있는 계단길을 따라 올라가면 해미읍성에서 가장 높은 장소인 청허정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까 성곽을 따라서 북쪽으로 오르면서 지나치면서 보았던 정자로, 잡된 생각이 없어져 마음이 맑고 깨끗해진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청허정으로 가는 길 언덕에는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조각해 놓은 장승이 볼거리를 준다. 태풍의 영향으로 이곳에 있는 소나무가 뽑혔는데 재활용 방법으로 장승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재미로 볼만하다. 일제강점기에는 청허정 자리에 신사를 만들어 신사참배를 강요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원래는 멀리 천수만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이곳에서 문인들이 시를 읊었던 곳이라고 한다.    

 

 

 

 

 

 언덕을 다시 내려와 읍성 안에 있는옥사를 찾아갔다. 1935년에 간행된 해미순교자약사를 토대로 복원한 옥사인데, 100여년간 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규정해서 이곳에 투옥했다고 한다. 옥사에 수감되었던 천주교 신자들은 옥사 뒷쪽에 있는 커다란 회화나무에 매달아 고문도 하고 처형하기도 했다는데 우리나라 천주교의 역사로 봤을 땐 아픔과 비극이 서려있는 옥사이다. 그래서 해미읍성은 천주교 신자들의 순례지이기도 하다. 지금은 옥사에 형틀과 곤장을 가져다 놓아 사람들이 장난도 치고,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아픈 과거가 남아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남문인 진남문에서 동헌으로 향하는 길가에는 조선시대에 사용되었던 우리나라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조선총통부터 신기전 등등 여러가지 무기류가 일렬도 길게 전시되어 있다. 이런 것들은 아이들과 함께 와서 본다면 교육적인 측면에서 좋을 듯하다. 성 자체가 가족단위로 함께 놀러오면 여러가지를 배워 갈 수 있을 듯하다. 

 

 

 


 성이 이곳 저곳을 모두 둘러보고 나가는 길목에는 맛있는 음식과 가볍게 술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장터 같은 곳도 있었는데 규모가 너무 작았다. 규모가있는 저잣거리가 되려면 광광객들이 많이 찾아와야 할 것이고, 그렇게 되려면 볼거리가 있어야 한다. 성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은 참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안쪽이 휑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성 내부를 복원하면서 성안에 거주한 사람을 성밖으로 내보낸 것은 잘한 일이지만, 향후라도 민가도 만들고, 장터도 만들어서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올 수 있는 살아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장터에서 판매하는 것도 특별한 것이 없어 그냥 나와버렸다. 그래도 한번 와 보고 싶었던 해미읍성에 와서 성곽을 둘러보는 좋은 시간을 가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