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교토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다. 숙부께서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후시미이나리타이샤(伏見稲荷大社)라는 오래된 신사를 함께 가 보자고 하신다. 어제 집사람은 고모님과 함께 구경을 하고 왔는데 너무나 좋았다고 하면서 나를 위해 한번 더 가 보자고 한다. 교토를 방문하는 외국인들 가운데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숙모님이 후시미이나리(伏見稲荷)역 앞까지 차로 데려다 주어서 편하게 이동했다. 오늘은 6촌 동생의 둘째 딸이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학교에 가지 않고 우리와 함께 신사를 방문했다. 신사로 가는 길에 안내판이 많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 봐서 아주 유명한 관광지가 맞는 듯하다.
케이한(京阪)전철 후시미이나리역을 지나 길을 따라가다 보면 두 개의 철길을 지나 이윽고 후시미이나리타이샤 입구가 보인다. 후시미이나리타이샤(伏見稲荷大社)라는 명칭은 후시미(伏見)는 이 지역의 지명이고, 이나리(稲荷)는 이 사찰에서 모시는 신의 이름, 타이샤(大社)는 큰 규모의 신사를 의미한다. 후시미마을의 이나리 신사라는 뜻이다. 이 신사가 유명해진 것은 대략 1만여개의 붉은 도리이(鳥居)들이 산꼭대기까지 이어져 장관을 이루기 때문이다.
정면으로 참배길인 오모테산도를 따라 걸으면 경내에 도착한다. 신사의 입구에는 약 15m나 되는 커다란 도리이(鳥居)가 있다. 이 거대한 규모는 후시미이나리타이샤에서 모시는 이나리신에 대한 기부금이 넘쳐 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후시미이나리타이샤(伏見稲荷大社)는 농업의 신인 이나리를 모시는 신사로 일본에 약 4만개가 넘는 존재하는 이나리 신사의 총본산이기도 하다. 이나리신은 원래 농업의 신이었는데 이후 사업의 신으로 까지 영역을 확장해서 모든 돈벌이와 사업의 번창을 기원하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커다란 도리이 뒷쪽에 있는 신사 입구의 거대한 2층 대문인 로몬(樓門:다락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 秀吉)가 1589년에 어머니 병의 회복을 기원하는 목적으로 기부했다고 안내판에 적혀있다. 후시미이나리타이샤는 헤이안 시대의 황실의 후원을 받던 신사로, 1946년까지도 공식적인 칸페이타이샤(官幣大社)였다. 칸페이타이샤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신사 중 으뜸을 의미한다. 이곳은 교토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무척 인기있는 장소이다. 도리이가 빽빽히 들어선 길은 시각적으로 독특하면서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다행이 우리는 아침 일찍 도착해서 관광객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내부에 들어서면 커다란 본당건물인 고혼덴(御本殿)이 첫 번째 신사의 중심부에 있다. 건물이 붉다는 점이 불교사찰과 큰 차이점이고, 신사인지라 내부에 불상같은 것이 없다. 고혼덴은 1499년에 지어진 건물이라는데 이 부근에 있는 건물은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해서 내부 사진을 찍지 못하고 멀리서 전경사진 한장만 찍었다. 본전 옆으로 기념품 가게와 오미쿠지를 뽑아서 걸어 놓는 장소가 있었다. 기념품가게 직원 사진을 찍으려 했더니 아주 신경질적으로 사진 찍기 말라고 해서 의외였다. 친절한 일본 사람만 보다가 황당한 느낌이다.
후시미이나리타이샤는 여우 신사로 알려져 있다. 여우신을 모신다고 오해하는데, 여우는 신이 아닌 전령으로 여우신을 모시는 것이 아니다. 키츠네(狐:여우)는 일본에서 영물로 여겨지는데, 특히 이나리 신사의 여우는 신의 사자로 사람들의 소원을 이나리오카미 신에게 전해준다고 한다. 여우들은 두루마리, 벼, 구슬 등 다양한 것들을 입에 물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뭔가 재빠르고 약은 이미지의 여우가 아니라 근엄하고 약간 무서운 이미지다. 이것은 일본이 섬나라인지라 유난히 맹수가 적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본전의 뒤쪽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드디어 후시미이나리타이샤의 상징과도 같은 센본도리이(千本鳥居)의 입구가 나타난다. 여행객의 시선을 압도하는 엄청난 숫자의 도리이(鳥居)로 천 개의 도리이가 있다고 해서 센본도리이(千本鳥居)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제는 천 개가 아니라 1만개가 넘을 정도로, 헤아릴 수 없는 붉은 도리이의 행렬이 시선을 압도한다. 각 도리이에는 성공을 기원하는 글 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신사 주변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나리 산 정상까지의 모든 길에 전부 도리이가 있다.
본전 뒤에서 시작된 도리이의 물결은 두 갈래 길로 나뉘었다가 합쳐지기를 반복하면서 산 정상까지 주홍색 도리이 터널이 이어진다. 산 정상까지 빨간 도리이가 이어지는 이 길을 일본인들은 순례의 길로 여기고 있다. 입구에서부터 산 정상까지 모두 둘러볼 경우에는 약 2시간 이상이 소요된다고 한다. 두 갈래로 갈라진 길이 나타났는데 초입부분의 굵직하고 큰 도리이가 아니라 훨씬 작고 촘촘해진 간격으로 인해 더 감동적인 풍경이다. 사진을 찍어도 훨씬 보기 좋다. 아침이라 조금만 기다리면 여유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센본도리이(千本鳥居)에서 인증 사진만 실컷 찍고 바로 되돌아 간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오쿠샤 호우하이죠(奥社奉拝所)가 나오고 이곳에 오모카루 이시(おもかる 石:재미 돌)가 있어 소원이 이루어지는지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석등 앞에서 소원을 빌고 석등의 머리 부분에 있는 돌을 들어올리는데 예상보다 가볍게 느껴지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무거우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재미삼아 석등을 한번 들어올려 봐도 좋을 듯한데 실제 우리는 더 올라갈 생각에 기다리지 않고 지나쳤다.
센본도리이를 따라 다시 산길을 오르니 또 하나의 신사가 나타난다. 여기가 지도에 나온 쿠마타카샤(熊鷹社)가 싶었는데, 뒤로 보이는 연못이 있는 것을 보니 쿠마타카샤가 맞다. 산 중턱에 있는 인공호수인데 고여 있는 물이 맑지 않아서 조금 의아스럽다. 오전 이른 시간이어서 그랬겠지만 이곳까지는 그래도 관광객이 조금 있었는데 여기부터는 더욱 줄어든다. 우리 일행은 조금 더 올라가 보기로 한다.
입구에서 30분 정도 걸어 올라오니 이나리산의 중턱이라고 할 수 있는 요츠츠지(四つつじ :사거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는 산으로 둘러 쌓인 분지 지형의 교토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여기에서 길이 양 쪽으로 갈라지는데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든 이나리산 정상인 해발 233m의 이치노미네를 거쳐서 다시 여기로 되돌아 오게 된다고 한다. 내 생각으로는 한시간 정도만 더 투자하면 정상까지 갔다 올 수 있을 것 같은데 함께 온 가족들은 이곳에서 내려갔으면 하는 눈치다. 시내를 내려볼 수 있는 곳까지 올라왔고, 나머지 풍경은 지금까지 봐 왔던 것과 별 차이가 없는데 함께 한 일행들이 조금 힘들어 한다.
다음에 오면 정상까지 가 보기로 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오늘 오전중에 오사카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일정이어서 내 욕심만 차릴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봉납된 도리이 뒷면에는 언제, 누가 봉납한 것인지가 적혀 있다. 수많은 회사나 가문, 단체 등에서 사업 번창을 기원하거나 가문의 영광 등을 위해 봉납한 것이다. 도리이 하나를 봉납하는데 크기에 따라 많게는 130만엔에서 적게는 17만엔 정도 든다. 가장 큰 10호는 무려 한화로 1,400만원 정도 하니 놀라울 뿐이다.
수만개의 도리이가 줄지어 널어서 있는 모습은 가 보지 않고 사진과 글로는 그 느낌이 전달이 안된다. 센본도리이(千本鳥居)를 찍은 사진을 수없이 많이 봤지만 사진으로 보던 것과 실제로 본 느낌이 많이 다르다. 여행은 직접 가서 봐야한다는 걸 실감하게 하는 곳중 하나다. 도리이의 주홍색은 마력에 대항하는 의미를 갖고 있고, 원료는 황화수은이라고 한다. 수은은 옛날부터 목재의 방부제로서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시간이 흐르면 도리이가 훼손되어져 곳곳에서 새로 보강작업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센본도리이(千本鳥居)에서 내려와 본당쪽으로 오니 아침에 왔을 때에 비해서 확실히 관광객이 많아졌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에 붐비지 않은 상태에서 편하게 구경하고 가게 된다. 현대의 후시미이나리타이샤는 어떠한 소망보다도 부유하게 잘 살고 싶은 소망을 담고 있는 곳이다. 그 소망의 흔적이 다시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고... 오늘은 아침부터 붉은 숲속을 걷고 있는 듯한 착각 속에서 붉은 색을 원없이 많이 보았다. 일본의 사업가와 기업으로부터 엄청난 기부를 받는 후시미이나리타이샤는 입장료도 받지 않고 24시간 개방한다고 한다.
본당에서 나오면서 보니 3년 연속 외국인에게 인기 있는 일본 관광명소 1위라는 안내판을 자랑스럽게 세워 놓았다. 올라 갈 때와는 달리 기념품점이 몰려 있는 조그만 샛길 도로를 따라서 내려온다. 기념품점과 음식점이 늘어서 있고, 노점상같은 간이 판매대도 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아직 본격적인 관광객이 몰리는 시간이 아닌지 이제 영업을 시작하려고 분주하게 준비를 하고 있다. 타코야끼 등 먹거리도 많이 팔고 있었는데 관광지 앞이라 가격이 싸지는 않는 듯하다. 여우 모양의 기념품을 팔고 있다.
오늘 함께 동행한 조카는 6촌동생의 쌍둥이 딸중 큰 아이다. 초등학교 5학년인데 달리기를 좋아해서 일요일마다 동내 운동장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감기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았는데 우리와 함께 후시미이나리타이샤에 가겠다고 따라 나섰다. 너무 귀엽고 예의바르고 하는 짓이 예쁘다. 내려 오는 길에 자기가 다녔던 유치원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면서 유치원을 거쳐서 왔다. 시간이 지나서 나처럼 마라톤을 해서 함께 뛰었으면 좋겠다.
(1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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