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여름 휴가를 앞당겨 사용하면서 인도네시아 발리로 가족여행을 다녀 왔는데, 남들이 여름휴가를 가는 것을 보고 있기에는 아쉬움이 있어 짧은 국내여행을 다녀 오기로 했다. 마침 남동생이 목포에서 올해까지 근무한다면서 자기가 있을 때 한번 내려오라고 여러차례 이야기를 했다. 동생 상황도 고려해서 목포에서 하룻밤을 자는 것으로 하고 전라남북도 몇몇 지역을 여행하는 일정을 잡아보았다. 일부 지역은 동생이 추천한 곳이였고, 그 곳을 찾아가면서 일부지역을 추가했다. 나는 평소에도 전라도 지역 방문이 잦은 편이지만 집사람은 아주 오랫만에 전라도를 여행하게 된다.
동생의 첫 여행 추천지역은 영광의 불교도래지와 몇몇 장소였는데 영광을 찾아가면서 몇년전에 가 보았던 고창읍성을 방문했다. 나는 3년전에 문화재 답사여행때 한번 와 보았지만 집사람은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기 때문이다. 집에서 나설무렵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내리기는 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비가 내리는 것은 아니다. 동해안과 경상도 지역은 태풍의 영향으로 비도 많이 내리고 바람도 많이 불고 있다고 한다. 아직 더위가 물러난 것이 아니지만 비가 내려서 더위가 한결 누그러져서 여행하기에는 좋은 듯하다. 집에서 고창읍성까지 천천히 달려 왔더니 거의 2시간 반 가까이 걸렸다. 비가 오락가락 하지만. 고창에 도착하니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원년(1453년)에 왜침을 막기 위해 산자락 능선을 따라 튼튼한 돌로 쌓아올린 성으로,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였다.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불리는데, '모양'이라는 지명은 백제시대 이 고을 일대가 '모량부'라 불리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고창읍성은 순천의 낙안읍성, 서산의 해미읍성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성곽이 온전히 잘 보전된 세 읍성 가운데 하나다. 낙안읍성은 현재도 그 성안에 마을이 있지만 해미와 고창 읍성을 그렇지 않다. 특히나 고창읍성은 성곽 안에 따로 마을이 조성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여지며, 주민들은 읍성 외곽에 거주하고 읍성 내부에는 관청과 관련된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화탐방을 왔을 때에는 읍성안에 있는 중요건물에 대한 설명을 듣고 구경하느라 정작 성곽을 따라 성을 한바퀴 돌아보지 못해 다음에 방문하면 여유를 갖고 성곽길을 걸어 보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성문 앞에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이란 표지판이 있고 바로 옆 표지판에는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한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성벽에 올라서니 성벽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가 유난히 희게 보이는데, 트레킹 코스로 걷기 좋은 평탄한 길이고 주변 경관도 아름답다. 성곽을 따라 걷기 좋은 흙길이 깔려 있고, 중간 중간에 정자도 자리 잡고 있어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고창읍성길이다.
고창읍성의 둘레는 1,684m로 한바퀴 둘러 보는데 한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평일이긴 하지만 휴가의 끝인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고, 우리처럼 성곽을 한바퀴 모두 돌아보는 사람은 없다. 단체로 방문했던 사람들이 처음에는 성곽을 따라 올라 오더니 오르막길에 지쳐서 금방 돌아가 버렸다. 돌을 머리에 이고 성곽을 3회 돌면 무병장수하고 극락승천 한다는 전설이 있고, 지금도 고창 사람들은 답성놀이 행사를 한다고 하는데 소원성취를 위해 3번을 돌 수는 없다.
성안에는 민간인이 거주하고 있지 않고 소나무를 비롯해서 각종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진 풍경이 시원스럽다. 소나무 숲 속에는 여러 곳에 기와집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당시 관아의 건물이었던 동헌과 작청, 관청, 객사, 누각 등이다. 숲속에 고을 수령이 살림집인 내아가 나타난다. 동헌과 내아는 바로 붙어 있었는데 집에서 직무실까지의 출근 거리가 1분도 되지 않은 듯하다. 보통 다른 지역의 성을 보면 성안 중심지에 동헌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고창의 동헌은 이렇게 중심지가 아닌 숲속에 자리잡고 있다. 고창읍성의 동헌 건물 정면에는 백성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고을을 평안하게 다스린다는 뜻의 평근당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관청 건물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객사를 찾아 보았다. 각 고을마다 있는 객사는 가운데 정당을 두어 임금의 궐패를 모시고 있으며 매달 두 번 궁궐을 향해 망궐례를 치르게 된다. 그리고 양편의 익실은 중앙에서 파견되어 온 관원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모양지관'이라는 현판을 내건 고창객사는 여느 객사 건물과 동일한 건축의 양상을 지니고 있다. 고창객사도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88년 발굴조사하여 확인된 유구와 각종 자료를 참고하여 1991년에 원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고 한다.
성내에는 1871년에 세운 흥선대원군 척화비도 있었다. 전면에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洋夷侵犯 非戰卽和 主和賣國)'의 열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 서양의 오랑캐가 침범했을 때 싸우지 않고 화의를 주장하는 것은 곧 나라를 파는 행위다. 신미양요 이후 설치된 척화비는 정부의 개화정책 이후 거의가 철거되었지만, 함양 상림의 척화비와 더불어 몇 기가 이렇게 온전히 남아있기도 하다. 개국을 하지 않아 외국의 문물을 늦게 받아들이고 외침을 받은 점도 있지만, 그 정신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읍성 한켠에는 고인돌도 보인다. 집사람과 함께 와보고 싶었던 고창읍성을 오게 되어서 좋다.
고창읍성을 나오면 제법 넓직하게 조성된 공원이 있고, 그 공원 한켠에 판소리박물관, 신재효고택, 고창군립미술관 등이 들어서 있다. 고창은 예로부터 많은 명창이 배출한 판소리의 고장이다. 여기에 판소리에 심취한 후원자이자, 판소리 사설의 집성자이며, 이론가이자 비평가로 이름을 날렸던 신재효 선생의 복원된 고택이 있다. 신재효 선생은 중인 출신으로 평생을 고작 아전에 머물렀지만, 40대 초반에 곡식 1000석을 추수하고 50여 가구가 넘는 세대를 거느렸던 대부호였다고 한다. 지난번 방문때 신채효 선생에 대한 설명을 들었기에 오늘도 고택과 판소리박물관을 한번 방문해 보기로 했다.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택으로 중요민속자료 제39호인 신재효 선생의 고택은 판소리를 집대성한 국악의 개척자 신재효의 산실이자 판소리 교육공간이다. 그가 여생을 마치던 1884년(고종 21)까지 기거하였던 동리정사(桐里精舍)는 1850년대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의 아들이 1899년에 중수하였다고 전한다. 당시 안채를 포함한 크고 작은 여러 채의 건물들이 한 곽(廓)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조촐한 초가지붕인 사랑채만 남아 있다. 하지만 오늘은 건물 보수작업을 하고 있어 출입이 통제되고 있어, 밖에서 담장 너머로 살펴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신재효 고택 바로 옆에 있는 판소리 박물관이 있다. 판소리박물관은 판소리를 중흥시킨 신재효손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가 살았던 고택에 들어섰다. 고창의 명창 김소희 선생에 대해서도 소개 되어 있었다. 1964년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된 판소리는, 2003년에 유네스코 인류 구전 및 세계무형유산 걸작으로 지정되었다. 우리에게는 일부 세대에서만 듣는 것으로 되어 있는 판소리이지만, 유네스코는 한국의 판소리를 인류가 함께 듣고 즐겨야 할 공통 문화예술로 공인해 놓은 것이다.
판소리 박물관의 주요 전시물은 판소리와 관련한 자료들이다. 상설 전시를 하고 있는 본관은 멋 마당, 명예의 전당, 소리 마당, 아니리 마당, 발림 마당, 혼 마당 등으로 구성이 돼 있다. 멋 마당에는 판소리 장면을 묘사한 풍속화 등이, 명예의 전당에는 판소리 명창들의 사진이, 소리 마당에는 판소리의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모형과 판소리 거장들의 유물들이 각각 전시돼 있다. 직접 체험해 보실수 있는 체험 공간도 있는데 부스안에 들어가서 소리를 질러 보시면 음압을 측정해 보실수 있었다.
한국의 세익스피어로 지칭되는 동리 신재효(桐里 申在孝)는 심청가, 적벽가, 춘향가, 토끼타령, 박타령, 변강쇠타령(가루지기타령) 등 판소리 여섯마당의 체계를 세웠으며, 판소리의 창극화와 함께 판소리 사설을 집대성하는 등 우리나라 판소리의 발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1812년에 태어나 당시 천대와 멸시당하던 광대와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고 발전시키는데 온 정력을 기우렸다고 한다. 그래서 가람 이병기 같은 학자도 신재효가 이룩한 판소리의 업적이, 우리 민족성을 발휘하여 국가문학을 크게 발전시켜 주었다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고창읍성과 판소리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왔다. 동생은 오후 3시에 영광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아침에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시간이 조금 지체 되어서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고창에 오면 고창에 있는 선운사와 청보리밭, 고인돌 박물관까지 둘러보아야 아쉬운대로 고창여행을 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럴 시간적인 여유가 되지 않는다. 다음에 고창만 따로 여행와서 오늘 가보지 못한 장소를 둘러 보기로 했다. 고창에 오면 풍천장어까지 먹어야 제대로 고창여행이 되는데 그럴 시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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