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꼭 한번 놀러 오라는 친구의 요청에 모처럼 부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고향집에서 멀지 않은 부산 방문은 자주 하는 편이지만 항상 집안 일 때문에 오거나 업무 처리를 위해서 방문하는 경우가 많아서 부산에 가더라도 친구를 만나고 갈 상황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여행은 부산 친구를 만나서 저녁을 함께 하는 목적으로 떠나는 여행이었다. 친구만 만나고 오면 KTX를 타고 가서 식사하고 하룻밤 자고 그냥 올라오면 되지만, 모처럼 여행으로 가는 부산이어서 차를 가지고 가기로 했다. 부산에 내려 가면서 오랫만에 경주에 들러서 구경하고 내려가는 일정을 잡았다.
경주로 향해서 가는 동안에 비가 내려서 운전하기에 조금 불편함이 있었지만, 덕분에 과속하지 않고 즐거운 기분으로 내려갔다. 다행히 경주에 도착할 무렵부터 비가 조금 덜내리기 시작해서 구경하러 다니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날씨도 덥지 않고 오히려 좋은 상태다.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경주 최씨고택이다. 경주시 교동의 교촌마을에 있는 경주최씨고택은 300년동안 부를 지켜온 경주최씨가문의 집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최부자집으로 알고 있는 이곳은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는 진정한 부자의 정신을 이어온 집이다. 9대에 걸쳐 진사를 배출하고 12대에 걸쳐 만석지기의 계보를 이어오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여 우리에게 올바른 삶의 귀감이 되고 있어서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경주 교동의 최씨고택은 독립유공자 최준 선생의 생가이기도 하다. 영남의 대지주로서 독립운동을 지원했고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심한 옥고를 치르기도 했었다고 한다. 경주최씨 집안은 원래 경주시 내남면에 살았는데, 조선 중기 무렵에 월성을 끼고 흐르는 남천 옆 이곳으로 이주하여 정착했다고 한다. 최씨 고택은 사랑채, 안채, 대문채, 사당, 고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집 구조가 전체적으로 조선시대 양반가의전형적인 구조를 하고 있다.
경주최씨는 여섯가지의 행동지침인 육훈(六訓)과 여섯가지 수신(修身) 방법인 육연(六然)을 제시함으로써 후세들의 올바른 생활을 이끌어 왔다. 이러한 육훈과 육연의 내용을 집 마당에 적어 놓아 관람객을이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경주최씨 행동지침인 육훈을 들여다보면 후손들의 안녕과 번창을 기원하는 염원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흉년기에 땅을 늘리지마라는 지침은 흉년으로 인해 헐값에 취득하기 쉬운 땅에 대한 욕심을 경계함으로써 주변의 원한을 사지않고, 주변 100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함으로써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보여준다.
여기가 안채인 듯 한데 역시 만석꾼의 집으로서는 소박한 모습을 보여준다. 안채는 'ㅁ'자 형태로 지어 졌으며 남향으로 이 곳은 안주인을 비롯한 여성들의 생활공간 이었던 것 같다. 장독대가 지금도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데 역시 규모로 보아서 소박한 모습이다. 안채를 둘러보는 동안 갑자기 비가 많이 내려서 마당에 나가지 못하고 처마 아래서 사진을 찍으면 잠시 기다렸다. 비때문에 날씨가 덥지 않아서 더 좋고, 한옥을 돌아몰 때 내리는 비는 운치가 있더 더 좋았다.
내부건물의 외관모습은 어느 종택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다. 원래는 99칸의 집이었다고 하는데, 1969년 화재로 많은 부분이 소실되어지금 남아있는 주택 자체의 규모는 그리 큰 편은 아니다. 과거에 이 집에 종살이를 하던 사람만 100여 명이었다니 살림의 규모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당시 최부자집의 소작농이 되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고 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지금은 최씨 고택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최씨고택을 둘러보면서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실천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많은 배움을 안고 떠난다.
최씨 고택 바로 옆에 있는 교동법주 건물이다. 교동법주는 최부자집의 전통 가양주라고 하는데, 지금은 인간문화재인 최경이 전통방법으로 손수 빚는다고 한다. 입구에 교동법주에 대한 설명문과 샘플 등을 전시해 놓았다. 일반인을 출입은 최씨 고택과는 달리 안채는 들어갈 수 없고 마당 한켠까지만 들어갈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생활하기에 고생이 많은 모양이다. 조금 더 개방하고 안 쪽을 전시관 형태로 만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마당 한켠까지는 들어가 볼 수 있어 들어가 보았더니 양반꽃이라고 불리는 능소화가 마당 한가운데 많이 피어 있었다. 능소화 뒷편으로는 가지런히 장독이 놓여 있었는데 장독에 술을 닮아 두는 것인지 순간 헛갈렸다. 장독에는 표찰이 붙어 있었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서 무슨 내용인지 확인해 보지 못했다. 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잘 관리되어 있는 집과 마당이 상당히 운치있어 보인다.
경주 최씨고택 인근 길을 돌아 보았다. 돌담길이 잘 만들어져 있는데, 담을 높게 쌓은 집들도 있다. 한 골목에는 대문도 없는 마당에 아담한 꽃밭 하나가 보이고, 문 앞 안내판에 독립유공자 최완 선생 생가라고 적혀 있었다. 최완 선생이란 분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는데, 최완 선생의 항일운동에 대한 기록을 자세하게 써 놓았다. 골목길과 마을 전체가 아담하고 정감이 있는 곳이다.
골목이 끝나는 지점에 있던 전통찻집 고운님 오시는 길. 이곳 역시 300년 한옥 고택을 찻집으로 만든 곳이라고 한다. 찻집에 들어가서 차를 한잔 마시기에는 오늘 가보아야 할 곳이 많아서 집사람과 부산에 갔다 오면서 다시 경주에 들러 차 한잔을 하기로 했다. 비가 조금씩 내리는 가운데 마당과 정원이 너무나 운치 있어 보였다. 여유를 가지고 차한잔 해야 할 것 같아 오늘은 안쪽 구경만 하고 되돌아 왔다. 내일 다시 경주에 와야 한다.
나오는 길에 최씨 고택에서 멀지 않은 교리김밥집을 가 보았다. 집사람 말로는 이집에 꽤나 유명한 곳이라고 하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이 정기휴일이라고 문을 닫았다. 일부러 조금 돌아서 방문했는데 조금 허탈하다. 내일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카페를 갔다 오면서 이곳도 다시 방문해 보기로 한다. 주변에 교촌한옥마을이 있어서 한옥들이 이어져 있었는데, 경주최부자 아카데미도 보였다. 최부자의 이념을 가르키는 곳이 별도로 있었던 모양이다.
경주향교는 경주 최씨고택이나 경주 교동법주 인근에 위치해 있어 걸어서도 얼마 걸리지 않는다. 정문은 앞쪽에 따로 있는데 출입을 하지 않고 옆으로 돌아가면 쪽문같은 곳으로 출입을 하고 있다. 경주향고가 있는 이 장소는 신라 신문왕때 세워진 국학 이었던 곳이었고, 고려시대에는 향학으로 조선시대에는 향교로서 지방교육 기관의 역할을 이어온 역사적을 현장이다. 경주향교는 임진왜란 때 불 탄 것을 선조 33년에 대성전을 비롯한 제향공간을 다시 짓기 시작하여 광해군 때에 명륜당을 비롯한 공간을 원래 모습대로 복원했다고 한다.
경주향교는 경상북도에서 가장 큰 향교라고 하는데 경주의 다른 곳에 비해서는 관광객이 별로 없어서 여유있게 돌아볼 수가 있었다. 이곳에서 전통문화체험 집합교육을 시키고 있는지 프랜카드가 걸려 있었다. 요즘 아이들에게 예절과 전통도 가르키고, 전통놀이도 가르킬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인 듯하다.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 어떤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경주향교의 대성전은 보물 제 1727호로 지정되어 있다. 건물은 윗쪽 높은 곳에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이 있고 아래쪽 낮은 곳에 공부하고 생활하는 공간인 명륜당과 동ㆍ서재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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