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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 방문 (2015.4.18)

남녘하늘 2017. 4. 5. 01:05


  이른 아침 고려산 진달래 산행을 마치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오늘은 강화도와 연육교로 연결된 교동도를 한번 방문해 보기로 했다. 교동도는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에 속하고, 교동대교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민통선 북쪽에 있는 섬이었다. 교동도는 조선시대부터 왕족의 유배지로 유명했는데, 연산군과 광해군을 비롯해 세종의 3남 안평대군, 선조의 첫째 서자 임해군, 인조의 동생 능창대군, 인조의 5남 숭선군, 철종의 사촌 익평군, 흥선대원군의 손자 이준용 등이 교동도로 유배당했다가 풀려나거나 사사되었다.


 교동도에 가려면 검문소를 거쳐야 한다. 북한과 가까이 있는 교동도인지라 강화도 양사면에서 교동대교로 들어가기 전에 검문소에서 주민증을 제출하고 출입증을 받는다. 통행증은 귀가시 검문소에 반납하면 된다. 검문소를 지나면서 강원도 양구에서 군생활을 할 때가 생각났다. 교동대교의 통행료는 따로 없다. 다만 출입시간은 통제되고 있어서 시간을 확인해 놓아야 한다. 교동대교는 지난 2015년 7월에 개통되었으니 아직 개통된지 1년도 되지 않았다.  


 교동도는 생각보다 넓은 섬이였다. 다리를 건너니 넓은 들판이 보인다. 섬이 아니라 평야지대에 온듯한 착각이 든다. 교동도에도 볼거리가 제법 많은데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교동읍성이다. 교동읍성은 조선 인조 7년(1629년)에 경기수영을 설치할 때 돌로 쌓은 읍성이다. 둘레 430미터, 높이 6미터 규모로 세 개의 문을 내고 문루를 세웠는데 동문과 북문이 언제 없어졌는지는 알수 없으며 남문는 1921년 폭풍우로 무너지고 홍예문만 남았다. 이름이 읍성이어서 야산의 능선에 있으면서 성문과 성벽을 생각했었는데 자그마한 성문 일부만 남아 있어 조금 허탈했다. 시골의 어느집 대문 앞에 위치를 하고 있었다. 인구가 얼마되지 않는 곳에 이런 읍성이 남아 있는 것만해도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교동읍성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교동향교를 방문했다. 화개산 남쪽 자락에 자리한 교동향교는 1286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시 유학자 안향이 원나라(몽골)에 갔다가 공자의 초상화를 가지고 오면서 이곳에 봉안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향교로 교동도의 필수 답사장소다. 향교에 있는 외삼문은 문묘의 바깥문을 지칭하는데, 올라갈때는 동쪽문으로 내려올때는 서쪽문을 이용해야 하고 가운데문은 신만이 다닐 수 있는 길이라 사람들은 다닐 수 없다.   






 향교 안마당 명륜당 우측 한켠에는 노롱암(老龍巖)이라고 새겨진 작은 바위가 있다. 원래 교동현 동헌 북쪽 층계 아래에 있던 것을 1987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1717년(숙종 43년) 충민공 이봉상이 노룡암 석자를 써 놓았는데 그의 손자가 돌에 글씨를 새겨 넣었다고 한다. 강화군청에서 안내문을 세워 두었는데,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왜 노룡암이라고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더 헛갈린다. 이 안내판을 세워둔 사람이 다시 한번 제대로 읽고 고쳐 놓았으면 좋겠다.  





 향교에 학생도 없을 뿐만 아니라 관리하는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그런 모양인데, 그나마 출입문은 개방해 놓아서 내부는 돌아볼 수 있었다. 명륜당과 대성전이 모두 닫혀 있어서 건물 내부구경은 못하고 향교 전체를 돌아 보는데 만족해야 했다. 명륜당 뒤쪽 내삼문은 잠겨 있어 우측의 축대를 통해 내삼문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설명까지 들었으면 좋았을텐데 안내해 주는 사람이 없어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향교 정문 좌측으로 가면 성전약수가 있다고 하는데 굳이 약수구경까지 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해서 약수터에는 가 보지 못했다. 





 교동도에서 가장 높은 산은 화개산(260m)인데 화개산의 남쪽기슭에는 화개사가 있다. 교동향교에서도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교동도에 여러번 방문했다면 화개산 정상까지 한번 올라가 볼텐데 처음 방문한 교동도에 볼거리를 둘러 보는 것이 더 중요해서 화개사까지만 올랐다. 산속에 아늑하고 강화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화개사는 고려 때 창건되었고 고려 삼은(三隱)의 한 분인 목은(牧隱) 이색선생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주차장에 화개사 표석이 보이고 돌계단을 오르면 법당이 나온다. 





 법당 좌측에는 수령 200년의 보호수 소나무가 멋진 자태를 보이고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날이 마침 이 소나무에 막걸리를 부어 주고 날이었다. 오래전에 청도의 운문사에 방문했을 때 소나무에 영양을 위해서 막걸리를 준다는 안내판을 본 적이 있었는데 실제 나무에 막걸리를 부어 주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다. 그냥 막걸리를 부어 주는줄 알았더니 물에 희석을 해서 뿌려 주었다. 나무에 막거리를 뿌려주면 영양이 있는 모양이다. 좋은 구경을 했다.   







 보통 사찰의 중심전각에는 대웅전 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는데, 이곳은 본채만 하나 있는 것 같았고 법당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건물에 희미한 화개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법당 문이 닫혀 있어서 문을 열고 경내를 둘러 보지는 못했다. 볕이 들어 따스한 느낌이 드는 화개사는 워낙 전망이 좋은 위치여서 법당 앞에서 강화 앞바다와 석모도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화계사에서 내려와 교동향교로 가는 갈림길에는 총 40여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는 읍내리 비석군이 있다. 이 비석들은 1970년대 새마을 사업이 한창일 때 교동의 지난날의 역사를 정립한다는 뜻에서 옛 교동의 관문이었던 남산포길 옆에 이전했다가 1991년 다시 향교입구로 옮긴것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선정을 배풀었던 교동지역의 목민관을 비롯하여 수군절도사겸 삼도통어사 도호부사 방어사 등의 영세불망비라고 한다. 한곳에 모두 두기는 했지만 관리가 허술한 느낌이다.      






 교동대교가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월선포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교동대교가 들어서기 전에는 강화도 화개항에서 이곳 월선포항으로 배가 들어왔다고 하는데, 이제는 썰렁한 모습이다. 당시 강화도와 교동도를 연결하는 유일한 관문이었다고 한다. 주차장도 넓고 젓갈류를 파는 가게도 있지만 이제는 새로운 도로에 밀려 한적한 장소가 되고 말았다. 사람들로 붐볐을 선착장 대합실은 부동산 중계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선착장으로서의 수명은 끝났지만 교동도가 연육교로 연결되어져 오히려 교동도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고, 더구나 걷기 열품으로 교동도의 도보여행을 하는 인구도 많아졌다고 한다. 교동도 도보여행 코스가 이미 2개 코스가 개발되어 있는데 1코스에 월선포선착장이 포함되어 있으니 찾는 사람이 앞으로도 꾸준하게 늘 것 같기도 하다. 새로운 길로 사람이 몰리는 곳이 있는 반면 이곳처럼 설렁해지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선착장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모습이 시원하다. 






 교동도의 마지막 행선지는 대룡시장 골목이다. 교동도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라고는 하지만 여느 지방의 읍내보다도 작은 규모로, 마치 1960년대의 영화세트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분위기다. 언젠가 TV 프로그램에서 방영되었다고 하는데, 교동도를 찾는 사람들이 한번씩은 방문하는 곳이라고 한다. 와보니 어린 시절에 보았던 옛날 시장의 정취를 복사하여 재현시켜 놓은 듯 그대로다. 시간이 멈추어 버린 이곳 시장도 한 때는 이 섬의 중심 상권이었을 것이다. 생각보다 넓은 이 섬에 과거에는 많은 주민들이 살았지만, 지금은 도시로 떠나서 성시를 이루던 골목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골목은 비교적 짧아 400여m 정도 되는 것 같다. 빠른 걸음으로 10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고 어른 두 명이 나란히 걸어갈 만한 폭이다. 칠이 벗겨진 창틀, 썬팅이 벗겨진 유리문, 붉은 보도 블록이 깔린 길은 울퉁불퉁하다. 짧은 골목이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이발소과 분식집, 통닭집, 전파사 등등... 골목 중간에 있었던 거북당은 모 방송국 주말드라마 전설의 마녀라는 프로의 세트장이었다고 한다. 교동도를 찾는 외지인들이 많이 방문한다고 하는데 오늘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골목에서 팔고 있는 호떡을 사서 먹으려 시장길을 정취를 느껴 보았다. 





 교동도를 들어 가면서는 교동대교의 사진을 찍을만한 공간이 없어서 사진을 남기지 못했는데 교동도에서 나오면서는 다리 입구에 차도 많이 다니지 않고 넓은 공간이 있어서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 한장을 남긴다. 교동대교는 왕복 2차로에 3.44km의 우리나라 서해 최북단에 있는 다리다. 교동도에서 동북쪽으로는 8km, 서북쪽으로는 3km 사이 바다를 두고 마주하고 북한땅이니 엄청 가까이 있는데 다리를 지나면서 북녘땅을 볼 수가 있다. 오늘 하루동안 고려산 진달래로 눈 호강을 하고 다시 교동도를 방문해서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고 가니 하루를 알차게 보낸 듯하다.